국민은행이 9년 전 9541억원을 들여 인수했던 카자흐스탄 은행 투자가 참담한 실패작으로 끝날 전망이다.
국민은행은 내주 중 이사회를 열어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지분(41.9%)을 전량 매각하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25일 전해졌다. 현재 국민은행 장부에는 이 은행의 가치가 ‘1000원’으로 적혀 있다. 9541억원을 쏟아 부었는데, 전액 손실로 처리해 놓은 셈이다.
BCC 지분 매입 당시 강정원 행장은 “국민은행의 성장 및 수익 증대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었다. 강 행장이 ‘황금알 낳는 거위’처럼 자랑했던 투자가 어쩌다 ‘밑 빠진 독’이 됐을까.
◇9541억원에 인수한 외국 은행, 장부 가치는 1000원
2008년 8월 국민은행의 BCC 지분 인수는 그때까지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인수·합병(M&A) 중 인수 금액 기준으로 최대였다. 당시 국민은행은 BCC가 카자흐스탄 6위 은행으로, 연평균 성장률(80%), 수익성(순이자마진율 6.2%), 재무건전성(부실채권비율 0.6%) 등 여러 면에서 ‘알짜’라고 소개했다. “향후 BCC 수준의 투자 대상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장밋빛 기대’를 성급하게 쏟아냈다.
하지만 투자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은행 인수 직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카자흐스탄 화폐 가치가 폭락했고 해외 차입금이 있는 금융회사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BCC는 막대한 적자를 내기 시작했고, 주가 급락으로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민은행은 BCC 투자금 9541억원 전액을 순차적으로 손실 처리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BCC 지분이 매각돼 대금이 들어오면 실제 손실 규모는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라고 말했다. BCC 지분 매각 가격은 비밀에 부쳐져 공개되지 않고 있다.
BCC 투자는 이전의 성공 경험에 도취돼 위험 요인을 과소 평가한 탓도 있다. BCC 투자 이전에 국민은행은 해외 은행 지분 투자로 짭짤한 수익을 낸 바 있다. 2003년 인도네시아 6대 은행인 BII 지분 13.9%를 835억원에 인수했던 것을, 2008년 말레이시아 메이뱅크에 3670억원을 받고 매각해 2800억원이 넘는 차익을 올렸다. 국민은행은 “한국 금융사에서 보기 어려운 대단히 훌륭한 일을 했다”는 찬사를 금융 당국으로부터 받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은행이 카자흐스탄 BCC 투자금 마련을 위해 인도네시아 BII 지분을 서둘러 팔았던 것 아니냐는 설(說)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치 그림자’도 어른거려
KB금융 고위 임원 출신 A씨는 “BCC 투자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카자흐스탄의 경우 은행들은 해외에서 차입한 자금으로 고객에게 대출하는 ‘돈놀이’에 빠져 있었고, 국가 경제는 원유 등 자원 가격 등락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상황이었는데 국민은행이 BCC 가치를 지나치게 고평가했다는 것이다.
BCC 투자를 결정한 강정원 전 행장은 2010년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 끝에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받았다. 당시 금감원은 “강 전 행장이 BCC에 대한 외부 자문사의 자문 결과 가운데 낙관적 재무 추정치에 근거한 고가의 매입 가격만 이사회에 보고하고 저가의 매입 가격은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었다.
BCC 투자 과정에서 국민은행 이사회의 감시·견제 기능도 작동하지 않았다. A씨는 “강 전 행장이 사외이사 보수를 크게 올려주며 자신의 결정에 따르도록 유도했다”고 말했다.
A씨는 또 국민은행이 투자 실패에 대한 원인 분석과 사후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강 전 행장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투자 실패에 대한 백서도 냈어야 한다”며 “1조원 가까운 돈이 허공으로 사라졌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
국민은행의 BCC 투자에 정치권 입김이 작용했다는 루머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자원 외교를 적극 추진하면서 국민은행의 BCC 투자를 불쏘시개로 썼다는 주장이다. 국민은행은 BCC 투자 당시 카자흐스탄에 대해 “석유 매장량 세계 11위, 천연가스·우라늄·아연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BCC 행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은행의 지분 참여는 한국 정부가 카자흐스탄에서 펼치는 자원 외교에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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