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는데 승객이 조수석 문을 열어 사고가 날 뻔했어요. 꼭 처벌해주세요"
지난해 9월 택시기사 김모(59)씨가 격분하며 경찰서를 찾았다. 이틀 전 승객과 안전벨트 착용 문제로 언쟁을 벌인 게 발단이 됐다. 하지만 조사 결과 김씨의 주장은 거짓인 것으로 나타났다.
알고 보니 김씨는 무고한 승객을 상대로 지난 20년간 300차례 가까이 고소·고발을 남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지난 5월 법원은 무고죄를 일삼은 김씨에게 징역 1년 3개월을 선고했다.
◇ 허위 고소 매년 증가…무고죄 2015년 5천386건 발생
최근 5년간 형사 고소·고발은 평균 50만건을 넘어 '한국=고소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우리나라 고소·고발 건수는 일본에 비해 대략 60배 많고, 인구 10만명당 피고소·고발 인원은 150배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소가 많다 보니 자연히 무고에 해당하는 허위 고소도 많아지는 추세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1년 4천374건이었던 무고죄 발생은 2015년 5천386건으로 24% 증가했다. 허위 또는 잘못된 신고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불륜 들킬까 내연남을 성폭행으로 허위 고소하기도
지난 12일에는 한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40대 A씨가 오히려 처벌받은 사건이 있었다. A씨가 남성으로부터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허위였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A씨는 이 남성과 내연관계였다. 합의해 성관계를 맺었지만 남편에게 불륜 사실을 들키자 내연남을 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월에도 동창회에서 만난 남성과 불륜관계를 유지하다 사이가 틀어지자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허위로 고소한 50대 여성이 손해배상 명령을 받기도 했다.
그는 "모두 4차례 성폭행을 당했으며 동의도 없이 나체를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계속 안 만나주면 죽이겠다는 협박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 억울한 피해에 직장 잃고 명예 훼손
무고는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 무고로 인해 직장을 잃거나, 명예를 실추당하고, 자살하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지난 8월 학생 성추행 의혹으로 조사받던 전북의 한 중학교 교사(54)는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사건은 무혐의로 결론 났지만 명예는 이미 땅에 떨어진 뒤였다. 그의 부인은 "고인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치욕과 수치심으로 괴로워했다"고 밝혔다.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240번 버스 기사 사건'으로 무고죄를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무고죄 강화를 안 시키니 무조건 남을 선동하고 비난해 그 사람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직장을 잃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청원개요에 적었다.
◇ 무고죄 드러나도 '솜방망이 처벌'…엄벌 필요성 커져
무고죄는 형법 제156조에 의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대부분 벌금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무고로 기소된 인원 2천104명 중 불과 5%인 109명이 구속되고 나머지는 불구속되거나 약식명령이 청구됐다.
반면, 미국에서는 무고죄의 경우 기본 20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그에 상응하는 벌금형을 내리고 있다. 무고죄로 억울하게 옥살이한 남성이 결국 무죄 판정을 받자, 가해자가 벌금 27억 원을 선고받은 사건도 있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한국 검찰의 무고사범 대응은 매우 관대한 실정"이라며 "처리 관행과 처벌 수준이 적절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제로 선고되는 최고 징역형이 2년, 대부분이 징역 6∼8월 정도"라며 조선 시대 '반좌 제도'를 소개하면서 엄중한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좌제도는 살인죄를 무고하면 살인범이 받는 형벌로, 상해죄로 무고하면 상해죄의 형벌로 처벌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고 처벌이 강해지면 건전한 고소·고발까지 위축될 수 있지만, 무고죄 성질에 따라 강하게 처벌하는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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