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와 검찰의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검찰은 처음엔 '돈봉투 만찬'에 대한 세간의 비판에 무딘 편이었다. 동일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법무부-검찰 간부'의 만찬에서 '돈봉투는 관례'라고 여겨온 탓이다. "선후배 검사끼리 으레 주고받는 격려금"이라는 변명으로 버티면, 소나기처럼 비판은 금세 사라져갈 것이라고 기대한 듯하다. 하지만, 영수증 없이 사용되는 '특수활동비'에 대한 문제 제기로 비판이 확산하고, 청와대의 감찰 지시까지 내려오면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세금으로 편성된 '특수활동비'가 사실상 ‘검은 돈’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베일에 감춰진 사용처와 은밀한 수령 절차 같은 운용의 불투명성 때문이다. 매년 예산안을 편성할 때 총액만 공개할 뿐, 실제 편성된 돈을 '누가 어떻게 가져가 어디에 사용하는지' 외부에 드러내지 않는 탓이다. 특활비가 편성된 기관 소속의 공무원들 대부분조차 '실상을 알 수 없는 돈'인 건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깜깜이 돈', '눈 먼 돈'으로 사용될 여지가 다분하다. 내부에서도 제대로 알 지 못하는 비밀의 특수활동비.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최근 10년간 정부기관의 특활비, 특히 법무부 검찰의 특활비에 대해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 10년간 8조4,268억원…국정원>>국방부>경찰청>>법무 검찰>대통령 비서실 순
'돈봉투 사건' 이후 법무부와 검찰 내부에선 "억울하다"는 말을 종종 들려온다. 한 법무부 관계자는 “만찬 자리가 부적절했을지 몰라도, 법무부나 검찰보다 더 많은 특수활동비가 배정된 기관들도 많고, 해당 기관 역시 사용처 공개 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 말처럼 법무부나 검찰보다 특활비를 더 많이 받아가는 기관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올해(2017년은 책정액 기준)까지 10년간 실제로 정부 기관에서 특수활동비로 사용한 금액은 8조4,268억 원이다. 인구 300만 명이 넘는 인천시의 한 해 예산(8조3,132억원)보다 많은 규모다. 연 평균 8,489억 원의 특활비가 국민 세금으로 사용된 것인데, 국가의 최대 행사인 대통령 선거비용(19대 대선 기준 3,110억원)의 3배 가까운 금액이 매년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른 채 사라졌다.
기관별로 보면, 국가정보원이 지난 10년간 특활비 4조6,969억원(1년 평균 4,697억원)을 사용해 전 기관에서 1위를 기록했다. 다음으론 국방부가 10년간 1조5,888억 원, 경찰청 1조2,393억원, 법무부·검찰이 2,707억원 상당의 특활비를 썼다. 4개 기관 외에 10년 간 1,000억 원대 이상의 특활비를 쓴 곳은 청와대(대통령 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 경호실)이 있다.
● 대법원은 받지만, 식품 수사 식약처, 문화재 도굴 수사 문화재청은 못 받는 특수활동비
올해 기준으로 국방부, 경찰청, 법무 검찰 등 특수활동비가 책정된 기관은 19곳이다. 국가 기관 중 특활비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라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특활비는 수사나 정보수집 활동에 필요한 비용이다. 이런 맥락에서 특활비는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 위주로 책정되는 게 취지에도 부합된다.
하지만, 실제 수령 기관을 보면 그렇지 않다. 연평균 3억 원대의 특수활동비가 배정된 대법원, 미래창조과학부(연평균 46억원), 국회(연평균 91억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연평균 8천2백만원)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관은 수사기관도, 정보 수집 기관도 아니다.
반면, 식품의약 수사를 하는 사법경찰이 배치된 식품의약품안전처, 문화재 도굴 등을 수사하는 사법경찰이 있는 문화재청, 선거 사건을 조사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엔 별도의 특별활동비가 책정돼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큰 사건이 발생해 진상 규명 또는 전방위적 조사가 필요할 때 설치되는 한시적 기관, 즉,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같은 기관 등에도 특활비는 배정되지 않았다. 심지어 정부는 세월호특조위 예산을 두고 "세금이 많이 드는 문제"라며 요청 예산의 44%를 삭감한 89억원만 지원하고, 부족한 예산으로 직원들 월급도 지급하지 못했다.
● 원칙이 사라진 특수활동비…‘판공비’·‘추가 급여’로 여기는 고위 공직자들
정작 특수활동비가 필요한데 받지 못하거나, 적게 받은 기관에선 당연히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활비는 기관의 권력 서열이나 파워게임으로 결정 된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지적이 나오는 데는 특활비를 관례적으로 판공비처럼 사용해온 공직 문화 탓이 크다.
특수활동비 사용 범위는 기획재정부 '예산 및 기금운영계획 집행지침'에 나와 있다. '2017년 지침'에 따르면, 특활비 적용범위를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로 규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은밀한 정보 수집과 수사 활동에 활용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광범위한 '국정수행'이라는 사용 목적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탈법과 불법을 오가는 특수활동비 사용 문화가 형성됐다. 법원행정처 소속 간부(판사)와 국회 관계자의 저녁 식사, 국정원 간부와 검사의 술자리 등 고위 공직자들의 친목 빙자 모임도 '기밀이 필요한 국정수행 활동'이라는 명분 아래 특활비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게 된 것이다.
특수활동비가 기밀 수사나 정보수집이 아닌 고위 공무원들의 쌈짓돈처럼 활용된 배경엔 특활비의 '뿌리'도 한 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과거 특활비는 1993년까지 '판공비' 항목 아래 '정보비'라는 이름으로 편성됐다. '공무 수행에 필요한 비용'을 총칭하는 '판공비'는 과거 공무원의 품위 유지비, 원활한 직무 수행을 위한 수당, 한 마디로 추가 급여처럼 마음대로 사용해도 '문제없는 돈'으로 여겨졌다.
이후 판공비는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로 바뀌었다. 공무원에게 지급되는 모든 돈은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투명성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컸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2004년부턴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특정업무경비 등 크게 3가지로 구분됐다. 판공비라는 명칭은 공식적으로 사라졌고, 각기 다른 목적으로 편성되는 세 종류의 비용만 남은 것이다.
특정업무경비는 '수사, 감사, 예산 등 특정업무 수행에 필요한 경비', 업무추진비는 '사업 추진에 필요한 식음료비, 간담회 등 경비' 목적으로 편성된 예산인데, 사용 범위만 놓고 보면 '특수활동비'와 구별이 어려운 면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특활비의 경우 '필요한 시기(부정기적)에 증빙 자료가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업무추진비?
원칙적으로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특수활동비는 지급 방법, 처리 방식, 사용 목적 등에 있어 차이가 있지만, 업무 현실에선 구분 없이 사용되면서, 고위 공직자들의 쌈짓돈이 된 측면도 크다.
특수활동비로 감찰을 받고 있는 법무부·검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검사들에겐 매달 25만원 정도의 카드가 지급된다. 업무추진비 성격의 해당 카드는 호프집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클린 카드’로 대부분 직원과의 식사비에 사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검사들은 이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통상 검사실엔 검사1명, 수사관2명, 실무관 1명 모두 4명인데, 월말 회식비로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부족분은 추가 지급받은 특정업무경비로 메우고, 이 경우엔 영수증 처리를 해야 한다.
한 검사는 “특정업무경비로도 방(검사실)을 운영하는데 턱없이 부족하다”며 “부족한 부분은 위에서 내려오는 금일봉이나 격려금을 사용하는데, 이 돈이 검찰에 배정된 특수활동비”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업무추친비, 특정업무경비, 특활비 모두 같은 목적으로 사용됐다. 이 관계자는 “차이가 있다면, 돈 받는 사람 입장에서 나중에 영수증 처리를 해야 되면 그 돈은 특정업무경비이고, 영수증을 제출 할 필요가 없으면 특활비”라고 밝혔다. 특활비의 본래 목적이 퇴색된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회식, 야식비, 격려금 등도 성공적 수사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며 “범죄자를 마주보고 신문하는 것만이 수사가 아니라는 현실을 알아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검찰의 기존 논리와도 배치된다. 특수활동비 축소나 폐지 논란이 있을 때마다 검찰은 “특활비에 꼬리표가 달리면 경우엔 첩보 제공자는 사라지고, 수사에 지장이 초래 된다”고 주장해왔다. 수사 현실에서 특활비의 주목적이 고위공직자의 식사비용이었다면, ‘꼬리표가 달린 돈’이 되더라도 수사엔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그동안 검찰에서 특활비가 간부들의 외연 확장, 인맥 관리용 식사비에 상당부분 사용된 건 사실이고, 원활한 공직수행이라는 명분아래 세금이 고위공직자의 사적 용도로 쓰인 측면은 부정할 수 없다"며 "다만, 이런 관행은 검찰만이 아니라 국정원, 경찰, 대법원 등 대부분의 기관에서도 똑같다"고 말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안혜민 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안혜민 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권지윤 기자legend8169@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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