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안철수와 박원순의 등장은 갑작스러웠다. 오세훈 전 시장의 사퇴 후에 어디선가 불어온 '돌풍'이었다.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씨는 단숨에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을 넘어섰다. 50%다. 그 지지도는 고스란히 박원순 씨에게 이어졌다. 그리고 박원순 씨는 당선됐다. 놀라운 속도로 압축적으로 전개된 정치적 격변이다. 우리는 이 격변의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정치혐오였을까? 반정당 정서였을까? 정당의 위기일까? 그쪽으로 몰고 가는 게 한나라당의 이해관계엔 딱 들어맞는다. 전선을 그렇게 그으면, 활동적 시민사회의 기반이 없는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한 한국 정당정치'의 구원자를 자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야권 정당 지지자들과 비정당적 야권 유권자층을 분리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해석은 틀렸다. 1987년 이후 지속된 투표율 하락 추세가 2008년 이후 반전됐다. 정치냉소가 아니다. 더구나 야권 성향 시민들은 최근 대부분의 선거에서 민주당 등 야권 정당들에 큰 힘을 실어줬다. 단순한 정당혐오도 아니다.
그렇다면 박원순은 그저 친(親)민주당 무소속 후보였을 뿐인가? 그 엄청난 정치적 격랑에도 불구하고 변한 것은 별로 없는 걸까? 그런 해석 역시 엄청나게 커져버린 시민들의 정치적 힘을 애써 외면하는 구체제 엘리트의 자위적(自慰的) 관점일 뿐이다. 한국 정치는 근본부터 변하고 있다. 시민정치, 곧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정치와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정치가 21세기 한국 정치를 움직이는 힘으로 등장했다. 선거정치에 등 돌리지 않고, 정당들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정당들을 세우고 내리고 아우르는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이 복잡한 현실의 여러 결들을 섬세하게 읽어내야 한다.
시민들은 정치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정치에 개입했다
안철수와 박원순의 부상은 '반정치의 정치'라는 성격을 띠었다. 시민들은 기존 정당정치에 비판적이면서도, 정부ㆍ정당ㆍ정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길 원했다는 의미에서다. '반정치의 정치'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학자들이 '반정치의 정치'로 명명해 온 몇몇 세계사적 경험들이 있다. 하나는 1960~70년대 남미 군부정권에서 유래한다. 군부 혹은 민간의 '행정국가'들은 부패, 경제위기, 사회혼란을 바로 잡는다는 명목으로 갈등의 표출과 조정 과정을 억압하는 정치를 펼쳤다. 둘째는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정치기획이다. 신자유주의 국가는 국가의 공공적 역할을 방기하면서 사회관계의 상품화ㆍ시장화를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셋째는 1970~1980년대 서구의 급진적 사회운동과 동유럽 저항운동이다. 이들 중에서 정치와 국가의 역할 자체를 부정했던 반(反)제도적 세력들은 때론 의도치 않게 기존의 제도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래서 반정치의 정치엔 함정이 있다. 탈정치적 행정국가, 국가 없는 시장경제, 냉소적 반정치주의의 위험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환상을 좇으면 '반정치의 정치'에서 '정치'는 실종되고 '반정치'만 남는다. 하지만 2000년대 한국 시민들의 '반정치의 정치'는 달랐다. 시민들이 반대한 것은 정치와 정당 자체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정치현실이다. 소통 결핍의 정치과정, 권력화된 정치계급, 특권층을 위한 정치다. 하지만 이 시민들은 정치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 정치의 주체가 시민들로 확대됐고, 이에 따라 시민들의 정치적 가치와 감각, 행동양식이 한국 정치의 중심으로 깊숙이 진입했다. 대의민주주의의 부정이 아니라, 대리민주주의의 부정이다. 시민들은 실질적인 주권자이고자 한다.
이러한 시민적 정치주체들은 권력의 추를 좌지우지하는 힘을 가졌다. 2002년, 2004년에 이들이 움직여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했고,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획득했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이들이 움직이지 않자 한나라당의 압승이 이어졌다. 2008년 이후 이들이 다시 움직인다. 권력의 지형이 또 변하고 있다. 이제 어떤 정당도 지속적으로 특정 계층의 지지를 기대할 수 없다. 시민들이 움직이는 곳에 권력이 있다.
서울시장 선거 투표 성향은 2008년 이후 일관된 양상
그렇다면 이 시민적 정치주체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30대의 75.8%, 20대의 69.3%, 40대의 66.8%가 박원순 후보를 찍었다. 이에 반해 60대 이상의 69.2%가 나경원 후보를 찍었다. 지역 균열도 뚜렷하다. 나경원 후보가 우세했던 지역은 강남, 서초, 송파, 용산구의 4개구뿐이었고, 나머지 21개구에서 박원순 후보가 승리했다. 이것이 지역 변수의 독립적 효과인지, 아니면 계급 균열이 지역 균열의 형태로 나타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직업 변수도 크게 작용했다. 아산정책연구원이 투표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화이트칼라의 65.4%, 학생층의 68.6%가 박원순 후보를 찍어서 다른 직업범주에 비해 훨씬 높았다. 가설적으로, 비강남 지역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투표한 계층은 화이트칼라 중간소득층이 다수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 가설이 옳다면, 서울시장 선거의 투표 성향은 2008년 이후 여러 여론조사, 의식조사 결과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난 양상과 일치한다. 진보적 성향을 가장 강하게 띠고, 정치적 표현과 직접행동에 가장 적극적이며, 선거정치에 가장 활발히 개입한 계층은 20~40대 연령층, 화이트칼라와 학생, 중간소득 계층이다. 이 계층이 21세기 한국 시민정치에서 그 '시민'의 실체적 핵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계층이 서민층에 우호적인 정치세력과 진보적 정책을 가장 강하게 지지하고 있는 데 반해, 저소득층은 한나라당과 보수적 정책의 지지층이 되어왔다. 하층계급의 연대와 계급의식, 집단적 정체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적, 조직적 토대가 없었던 역사의 산물이다. 물론 현실은 변하고 있다. 지난 6ㆍ2 지방선거에서 저소득층의 계급투표 양상이 일부 지역에서 과거에 비해 강해졌다. 하지만 20~40대의 화이트칼라 중간소득층이 가장 적극적인 시민정치의 주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들의 정치행동을 '계급투표'라고 과장하는 것이나, '중산층 운동'이라고 폄하하는 것이나 모두 일면적이다. 이 계층은 계급위치에 상응하는 협소한 경제적 이익만을 좇지 않는다. 일상의 체험에 기초하되, 정보사회 하의 활발한 소통 속에서 사회현실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가치지향, 정치적 정체성을 역동적으로 만들어간다. 그래서 이들의 가치지향과 정치성향은 항구적 '진보'도, 항구적 '쁘띠'도 아니다. 종종 동일한 구조적 환경, 객관적 계급위치가 놀랍도록 상반된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격차와 불안은 2000년대 내내 꾸준히 심화되어 왔다. 하지만 이 계층은 2002~04년엔 진보적 선택을, 2006~07년엔 비투표(20~30대)나 보수적 투표(40대)를 했고, 2008년 이후엔 다시 진보적 전환을 했다.
이 계층의 의식과 행동에는 탈물질적 가치 지향, 현실에 대한 도덕적 판단, 개인적 이해관계의 냉정한 계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시민정치'는 장기지속하는 구조가 아니라, 끊임없이 가꿔야 하는 불안정한 기획, 그러나 21세기의 시대적 조건에서 가장 위력적인 기획이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 한국의 진보정치가 20세기 중엽까지 계급적 균열구조와 산업노동자층을 기반으로 발전했던 유럽의 진보정치와 다른 경로를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민정치의 등장은 21세기 전지구적 추세다
하지만 21세기의 한국 정치는 동시대의 지구적 대전환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시민정치의 활성화는 한국만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대 정치의 큰 추세다. 1990년대에 정점에 이르렀던 일본의 생활정치(生活政治) 운동은 2009년 집권한 민주당의 정책적 키워드를 제공했다. 1998년 설립된 미국의 유권자운동인 무브온(MoveOn)은 오바마 정권의 탄생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독일에서 2010년의 '슈투트가르트21'(Stuttgart 21) 개발사업 반대시위, 2011년 탈원전 운동은 보수 기민당을 침몰시키고 녹색당을 거대야당으로 승격시켰다. 2011년 개시된 스페인의 '5월 15일 운동'(Movimiento 15M)은 청년실업ㆍ양극화ㆍ복지ㆍ정치개혁을 이슈로 수백만의 시민을 네트워킹 했다. 그에 영향 받은 미국의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지금 지구 곳곳으로 확산되어 정부와 정당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지구적 현상은 우연한 동시성이나 일시적 확산 효과가 아니라, 지난 수십 년 간 진행되어 온 모더니티의 구조 변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부터 빠르게 진행된 탈산업사회화가 하나의 측면이다. 산업노동자층이 축소되고 화이트칼라 계층이 확대됐으며, 계급구성 전반의 복잡성이 증대했다. 또 하나의 측면은 정보사회의 도래다. 정보통신기술의 혁신이라는 기술적 측면이 중요하다. 하지만 변화의 핵심은 시민들이 노동ㆍ거주의 고착된 장소성으로부터 분리되어, 지식ㆍ정보의 소통을 통해 사회현실을 인식하고 정체성을 구성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그 결과, 계급ㆍ종교ㆍ출신지역 등 '굳은' 집단적 범주가 사람들의 정치성향을 결정하는 힘이 약해졌다. 정치는 더 복잡하고 역동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변화는 이미 1970~80년대에 유럽에서 이른바 '새로운 사회운동'이 급성장으로 현실화됐다. 정치학자 클라우스 오페, 러셀 돌턴 등은 이미 각각 1985년, 1990년에 '제도정치의 경계에 대한 도전'을 이론화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이 운동들은 조직화, 전문화, 제도화의 과정을 밟아갔다. 이와 달리 21세기에 새로이 등장한 시민정치는 이보다 훨씬 수평적, 탈조직적, 탈중심적이고 개인화된 행동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시민들은 사회운동조직들을 경유하지 않고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
한국판 시민정치의 정치적 결과는?
하지만 시민정치의 정치적 결과가 모든 나라에서 동일한 것은 아니다. 몇 가지 패턴이 관찰된다. 하나는 양당 체제 내에서 보다 진보적인 정당을 혁신하고 강화하는 방향이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다. 둘째는 소수정당이 급성장하여 양당 지배체제를 깨뜨리는 경우다. 독일 녹색당의 급속한 부상이 대표적 사례다. 셋째는 제도정치의 혁신이 좌절된 채 무정부주의적 경향이 강해져서 제도정치와 시민정치의 충돌이 반복되는 경우다. 스페인 등 남유럽 나라들이 그러하다.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하나는 민주당의 혁신과 강화다. 양당 구도에 대한 대안이 가시화되지 않을 경우에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시민정치의 지지를 업은 제3정당이 탄생하여, 민주당-제3정당-진보정당의 3자 구도로 가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민주당과 진보정당, 제3세력을 포괄하는 통합야당이 탄생할 수 있다. 어떤 대안이건 간에, 협상정치식의 통합논의가 아니라 시민적 정치주체의 욕구와 에너지를 중심에 세울 수 있을 때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혐오였을까? 반정당 정서였을까? 정당의 위기일까? 그쪽으로 몰고 가는 게 한나라당의 이해관계엔 딱 들어맞는다. 전선을 그렇게 그으면, 활동적 시민사회의 기반이 없는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한 한국 정당정치'의 구원자를 자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야권 정당 지지자들과 비정당적 야권 유권자층을 분리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해석은 틀렸다. 1987년 이후 지속된 투표율 하락 추세가 2008년 이후 반전됐다. 정치냉소가 아니다. 더구나 야권 성향 시민들은 최근 대부분의 선거에서 민주당 등 야권 정당들에 큰 힘을 실어줬다. 단순한 정당혐오도 아니다.
그렇다면 박원순은 그저 친(親)민주당 무소속 후보였을 뿐인가? 그 엄청난 정치적 격랑에도 불구하고 변한 것은 별로 없는 걸까? 그런 해석 역시 엄청나게 커져버린 시민들의 정치적 힘을 애써 외면하는 구체제 엘리트의 자위적(自慰的) 관점일 뿐이다. 한국 정치는 근본부터 변하고 있다. 시민정치, 곧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정치와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정치가 21세기 한국 정치를 움직이는 힘으로 등장했다. 선거정치에 등 돌리지 않고, 정당들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정당들을 세우고 내리고 아우르는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이 복잡한 현실의 여러 결들을 섬세하게 읽어내야 한다.
시민들은 정치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정치에 개입했다
안철수와 박원순의 부상은 '반정치의 정치'라는 성격을 띠었다. 시민들은 기존 정당정치에 비판적이면서도, 정부ㆍ정당ㆍ정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길 원했다는 의미에서다. '반정치의 정치'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학자들이 '반정치의 정치'로 명명해 온 몇몇 세계사적 경험들이 있다. 하나는 1960~70년대 남미 군부정권에서 유래한다. 군부 혹은 민간의 '행정국가'들은 부패, 경제위기, 사회혼란을 바로 잡는다는 명목으로 갈등의 표출과 조정 과정을 억압하는 정치를 펼쳤다. 둘째는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정치기획이다. 신자유주의 국가는 국가의 공공적 역할을 방기하면서 사회관계의 상품화ㆍ시장화를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셋째는 1970~1980년대 서구의 급진적 사회운동과 동유럽 저항운동이다. 이들 중에서 정치와 국가의 역할 자체를 부정했던 반(反)제도적 세력들은 때론 의도치 않게 기존의 제도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래서 반정치의 정치엔 함정이 있다. 탈정치적 행정국가, 국가 없는 시장경제, 냉소적 반정치주의의 위험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환상을 좇으면 '반정치의 정치'에서 '정치'는 실종되고 '반정치'만 남는다. 하지만 2000년대 한국 시민들의 '반정치의 정치'는 달랐다. 시민들이 반대한 것은 정치와 정당 자체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정치현실이다. 소통 결핍의 정치과정, 권력화된 정치계급, 특권층을 위한 정치다. 하지만 이 시민들은 정치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 정치의 주체가 시민들로 확대됐고, 이에 따라 시민들의 정치적 가치와 감각, 행동양식이 한국 정치의 중심으로 깊숙이 진입했다. 대의민주주의의 부정이 아니라, 대리민주주의의 부정이다. 시민들은 실질적인 주권자이고자 한다.
이러한 시민적 정치주체들은 권력의 추를 좌지우지하는 힘을 가졌다. 2002년, 2004년에 이들이 움직여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했고,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획득했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이들이 움직이지 않자 한나라당의 압승이 이어졌다. 2008년 이후 이들이 다시 움직인다. 권력의 지형이 또 변하고 있다. 이제 어떤 정당도 지속적으로 특정 계층의 지지를 기대할 수 없다. 시민들이 움직이는 곳에 권력이 있다.
서울시장 선거 투표 성향은 2008년 이후 일관된 양상
▲ 박원순 서울시장.ⓒ프레시안(최형락) |
만약 이 가설이 옳다면, 서울시장 선거의 투표 성향은 2008년 이후 여러 여론조사, 의식조사 결과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난 양상과 일치한다. 진보적 성향을 가장 강하게 띠고, 정치적 표현과 직접행동에 가장 적극적이며, 선거정치에 가장 활발히 개입한 계층은 20~40대 연령층, 화이트칼라와 학생, 중간소득 계층이다. 이 계층이 21세기 한국 시민정치에서 그 '시민'의 실체적 핵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계층이 서민층에 우호적인 정치세력과 진보적 정책을 가장 강하게 지지하고 있는 데 반해, 저소득층은 한나라당과 보수적 정책의 지지층이 되어왔다. 하층계급의 연대와 계급의식, 집단적 정체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적, 조직적 토대가 없었던 역사의 산물이다. 물론 현실은 변하고 있다. 지난 6ㆍ2 지방선거에서 저소득층의 계급투표 양상이 일부 지역에서 과거에 비해 강해졌다. 하지만 20~40대의 화이트칼라 중간소득층이 가장 적극적인 시민정치의 주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들의 정치행동을 '계급투표'라고 과장하는 것이나, '중산층 운동'이라고 폄하하는 것이나 모두 일면적이다. 이 계층은 계급위치에 상응하는 협소한 경제적 이익만을 좇지 않는다. 일상의 체험에 기초하되, 정보사회 하의 활발한 소통 속에서 사회현실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가치지향, 정치적 정체성을 역동적으로 만들어간다. 그래서 이들의 가치지향과 정치성향은 항구적 '진보'도, 항구적 '쁘띠'도 아니다. 종종 동일한 구조적 환경, 객관적 계급위치가 놀랍도록 상반된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격차와 불안은 2000년대 내내 꾸준히 심화되어 왔다. 하지만 이 계층은 2002~04년엔 진보적 선택을, 2006~07년엔 비투표(20~30대)나 보수적 투표(40대)를 했고, 2008년 이후엔 다시 진보적 전환을 했다.
이 계층의 의식과 행동에는 탈물질적 가치 지향, 현실에 대한 도덕적 판단, 개인적 이해관계의 냉정한 계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시민정치'는 장기지속하는 구조가 아니라, 끊임없이 가꿔야 하는 불안정한 기획, 그러나 21세기의 시대적 조건에서 가장 위력적인 기획이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 한국의 진보정치가 20세기 중엽까지 계급적 균열구조와 산업노동자층을 기반으로 발전했던 유럽의 진보정치와 다른 경로를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민정치의 등장은 21세기 전지구적 추세다
하지만 21세기의 한국 정치는 동시대의 지구적 대전환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시민정치의 활성화는 한국만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대 정치의 큰 추세다. 1990년대에 정점에 이르렀던 일본의 생활정치(生活政治) 운동은 2009년 집권한 민주당의 정책적 키워드를 제공했다. 1998년 설립된 미국의 유권자운동인 무브온(MoveOn)은 오바마 정권의 탄생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독일에서 2010년의 '슈투트가르트21'(Stuttgart 21) 개발사업 반대시위, 2011년 탈원전 운동은 보수 기민당을 침몰시키고 녹색당을 거대야당으로 승격시켰다. 2011년 개시된 스페인의 '5월 15일 운동'(Movimiento 15M)은 청년실업ㆍ양극화ㆍ복지ㆍ정치개혁을 이슈로 수백만의 시민을 네트워킹 했다. 그에 영향 받은 미국의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지금 지구 곳곳으로 확산되어 정부와 정당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지구적 현상은 우연한 동시성이나 일시적 확산 효과가 아니라, 지난 수십 년 간 진행되어 온 모더니티의 구조 변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부터 빠르게 진행된 탈산업사회화가 하나의 측면이다. 산업노동자층이 축소되고 화이트칼라 계층이 확대됐으며, 계급구성 전반의 복잡성이 증대했다. 또 하나의 측면은 정보사회의 도래다. 정보통신기술의 혁신이라는 기술적 측면이 중요하다. 하지만 변화의 핵심은 시민들이 노동ㆍ거주의 고착된 장소성으로부터 분리되어, 지식ㆍ정보의 소통을 통해 사회현실을 인식하고 정체성을 구성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그 결과, 계급ㆍ종교ㆍ출신지역 등 '굳은' 집단적 범주가 사람들의 정치성향을 결정하는 힘이 약해졌다. 정치는 더 복잡하고 역동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변화는 이미 1970~80년대에 유럽에서 이른바 '새로운 사회운동'이 급성장으로 현실화됐다. 정치학자 클라우스 오페, 러셀 돌턴 등은 이미 각각 1985년, 1990년에 '제도정치의 경계에 대한 도전'을 이론화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이 운동들은 조직화, 전문화, 제도화의 과정을 밟아갔다. 이와 달리 21세기에 새로이 등장한 시민정치는 이보다 훨씬 수평적, 탈조직적, 탈중심적이고 개인화된 행동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시민들은 사회운동조직들을 경유하지 않고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
한국판 시민정치의 정치적 결과는?
하지만 시민정치의 정치적 결과가 모든 나라에서 동일한 것은 아니다. 몇 가지 패턴이 관찰된다. 하나는 양당 체제 내에서 보다 진보적인 정당을 혁신하고 강화하는 방향이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다. 둘째는 소수정당이 급성장하여 양당 지배체제를 깨뜨리는 경우다. 독일 녹색당의 급속한 부상이 대표적 사례다. 셋째는 제도정치의 혁신이 좌절된 채 무정부주의적 경향이 강해져서 제도정치와 시민정치의 충돌이 반복되는 경우다. 스페인 등 남유럽 나라들이 그러하다.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하나는 민주당의 혁신과 강화다. 양당 구도에 대한 대안이 가시화되지 않을 경우에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시민정치의 지지를 업은 제3정당이 탄생하여, 민주당-제3정당-진보정당의 3자 구도로 가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민주당과 진보정당, 제3세력을 포괄하는 통합야당이 탄생할 수 있다. 어떤 대안이건 간에, 협상정치식의 통합논의가 아니라 시민적 정치주체의 욕구와 에너지를 중심에 세울 수 있을 때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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