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여전히 안철수와 문재인은 정권교체와 정치혁신을 이루어낼 우리 정치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두 사람이 아주 고약하게 갈라섰다. 안철수 단독으로 정권교체가 가능할까? 문재인 혼자 힘으로 정권교체를 할 수 있을까? 안철수의 탈당으로 혼용무도(昏庸無道) 세상을 종식시키는 일은 더 험난해졌다.
지금으로써는 두 세력이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외연을 확대하는 길밖에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는 새정치민주연합과 연대는 절대 없다고 하지만 총선에서는 선거구별로 후보 간 연대가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고 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 정치적 동지가 있는가?
새정치민주연합은 하루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안철수 신당은 순항할까?
홀로서기에 나선 안철수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스킨십도 늘었고, 발언도 단호하고, 예비후보들을 지원하고, 창당 작업에 자기 돈도 쓴다고 한다. 하위 20% 컷오프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사람 가리지 않고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의원도 받아들일 태세다. 호남지역의 민심도 신당에 호의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한 때 ‘안철수 현상’이 한국사회를 강타한 적이 있다. 그 돌풍에 밀려 박근혜 대세론이 깨지고, 거대 양당은 당 간판을 바꾸어 달아야 했다. 그건 안철수의 힘과 노력이 이루어낸 성과가 아니라 그저 ‘큰 바위 얼굴’을 갈망하는 국민적 증후군이었다.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은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유권자들이었다.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에 무임승차한 셈이었다.
다시 안철수가 그런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안철수 현상의 실체를 안철수도 몰랐고, 설사 알았다 해도 안철수가 그걸 사유화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박근혜 정권과 새정치민주연합에 날 선 칼을 들이대며 ‘혁신’과 ‘정권교체’를 들고 나왔다.
그가 넘어야 할 첫 번째 관문은 정치적 동지를 찾는 일이다. 인재영입은 그동안 그가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지난 대선 때 정치적 동지가 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새정치’라는 정체불명의 잣대를 들이대며 그 순수성을 의심하고 경계했던 행태를 반성해야 한다.
전직 총리 한 사람은 요즘도 안철수 신당에 합류할 중량급 인사로 종종 거론되고 있다. 이 전직 총리가 대선캠프에 참여하겠다고 세 번을 제안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대선캠프 내에 어느새 문고리 권력이 형성됐고 이들이 전직 총리의 합류를 부담스러워했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전직 총리가 새정치에 적합한지 아닌지는 부차적 문제다. 그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췄느냐는 것이다.
2년 전 창당준비를 하던 새정치연합이 통합민주당과 통합한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는 순간 안철수를 제외한 공동지도부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그로 인해 윤여준 김성식 등이 안철수와 결별했고, 남은 사람들은 통합을 추인했다.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정치조직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안철수의 사과 한 번으로 봉합이 됐다. 이건 사조직에서나 가능하지 공조직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 후보를 사퇴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고, 탈당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배신당하거나 속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찌 한둘이겠는가?
정치적 동지에게 갖춰야 할 예의가 없는 사람이 인제 와서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겠다고 외친들 누가 선뜻 호응하겠는가?
안철수가 호남을 아는가?
두 번째 관문은 호남 민심의 실체를 올바로 읽는 것이다.
안철수와 문재인의 도토리 키재기식 여론조사 결과도 내용을 살펴보면 호남민심의 향배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다. 호남에서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칠 새정치민주연합이나 ‘반문’ 기치를 내건 안철수 신당, 또는 호남정치의 복원을 내건 천정배 신당이나 도낀개낀이다.
‘호남의 한을 풀겠다’거나 ‘반 문재인’을 외친다고 호남에서 몰표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호남은 한때 안철수 현상의 대중적 진원지였다. 대선 때 입으로는 소통과 융합을 외쳤지만, 호남 방식의 대중운동에 무지했기에 안철수 현상의 주역들을 무시하고 외면했다. 그 결과는 호남에서의 지지율 급락과 후보사퇴였다.
개혁의 대상들이 개혁의 주체인양 하는 데 대해서도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 호남의 현역의원 상당수는 지역 토호와 결탁한 일당독재세력이다. 시민사회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온 한마디로 물갈이 대상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문재인을 비판한다고 하루아침에 혁신세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호남에서도 광주지역은 ‘물갈이’ 분위기가 가장 높았다. 광주지역 현역들이 잇따라 안철수 신당으로 간판을 바꾸어 단다고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관문은 새정치의 실체를 보여주는 일이다. ‘낡은 진보의 청산’도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 광주지역의 한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낡은 진보의 청산을 주장했는데 자던 소가 웃을 일이다. 탈당파들이 낡은 진보의 청산에 합당한 의정활동을 했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상태로 가면 안철수신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새로운 진보는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교육청이 빚을 내어서 연명하고 있는 누리과정예산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청와대가 밀어붙이고 있는 소위 노동개혁법안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정교과서는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
구체적 사안에서 진보와 보수를 두루 설득할 수 있는 대안과 실천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권력의지가 강하고 권력을 쟁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권력을 이용해서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안철수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그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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