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신 김흥기 6·4지방선거 앞두고 강원도 내려간 이유 아리송
‘댓글부대’로 의심받는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용역업체 그린미디어와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 전 카이스트 겸직교수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을까.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온·오프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한 그린미디어와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활동한 김 전 교수의 공식 인연은 2014년 초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교수는 그해 1월부터 그린미디어에서 발행하는 글로벌이코노믹에 각종 칼럼과 인터뷰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그해 12월 글로벌이코노믹 공식 회장으로 취임한다.
하지만 그린미디어 직원들은 이미 2013년 말부터 김 전 교수를 실질적인 회장으로 알고 있었다. 이때는 김 전 교수가 갑작스럽게 정·관계 인사들과의 만남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다. 그는 특히 2013년 12월 강원미래발전포럼21(강미발) 상임의장을 맡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후보들을 집중 지원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강원도와 아무런 지역적 연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도대체 왜 지방선거를 앞두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강원도에 내려갔을까. 강미발 내부에서도 서울 출신의 김 전 교수가 대표를 맡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던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강미발 사무총장인 한모씨는 “강원도 출신이 아닌 인사가 지역 발전을 위한 모임의 의장을 맡는 것에 대해 내부에서 이견이 있었고, (김 전 교수가) 시민단체인데도 처음부터 너무 정치색깔을 내려고 해 의견충돌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김 전 교수가 내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직을 대표한 경위에 대해 “중간에 역할을 한 사람이 있고, 김 전 교수는 아무런 조직도 없이 그냥 홑몸으로 와서 의장이 됐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에만 있는 줄 알았던 낙하산 인사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시민단체에서도 이뤄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서울 출신의 김 전 교수가 강미발 대표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새누리당을 포함한 친여 진영과의 관계다. 현 집권세력이 그에게 강원지역의 선거와 관련해 모종의 역할을 맡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014년 1월 1일 김흥기 전 교수가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통 상임위원 간담회에서 현경대 평통 수석부의장과 찍은 사진. |
시민단체 창립식에 여당 인사들 동원<주간경향>은 김 전 교수가 2013년 12월 원주에서 강미발 창립식을 가질 때 사용했던 초대장을 입수했다. 초대장에 보면 순수 지역 시민단체를 표방한 강미발 창립식에 새누리당 인사들이 대거 동원됐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인사는 박 대통령의 최측근 원로그룹인 7인회의 강창희 전 국회의장과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다.
당시 두 사람의 사진은 초대장 맨 상단에 배치됐고, 모두 축하 영상메시지를 보내왔다. 친박계 3선 의원 출신인 김호일 국민의힘 총재도 축하인사 명단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들은 일제히 김 전 교수와의 특수관계를 부인했다. 강 전 국회의장은 “김흥기가 누구냐.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고, 현 수석부의장도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두 사람은 축하 영상메시지를 보낸 경위에 대해서도 “누가 부탁하니까 해줬겠지만 나는 모르는 일”(강창희) “그런 일이 한두 건이 아니니까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현경대) 등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들의 해명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특히 현 평통 수석부의장은 평통 상임위원인 김 전 교수와 업무상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2013년 12월 말 청와대를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과 같이 사진을 찍었고, 2014년 1월 평통 상임위원 현충원 참배 후 한 호텔에서 단둘이서 찍은 사진도 있다. 김 전 교수는 사진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면서 “평통 의장이신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서 (강미발)창립식 때 축하메시지를 보내주신 현 부의장에게 감사를 표시했다”며 현 부의장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강원도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 김 전 교수가 강미발 상임의장으로 선출된 것 역시 새누리당 중진들과의 이 같은 친분관계가 없으면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와 새누리당 중진들의 두터운 인연은 2012년 대선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강미발 초대장에 자신을 18대 대선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교육복지특별대책위 상임위원장으로 소개했다. 그는 또한 2011년 27개 단체가 모여서 결성한 대한민국 과학기술대연합(대과연)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새누리당 대선캠프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대선을 열흘 정도 앞둔 2012년 12월 7일에는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을 초청한 가운데 열린 과학기술간담회에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 후보와 대과연이 메니페스토 협약을 맺을 때 대과연 공동대표로 참석한 협약식 사진에서도 그의 모습이 발견된다. 그가 대선과정에서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 흔적은 한두 가지가 아닌 셈이다. 특히 김 전 교수가 대선 때 맺은 인연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새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2014년 4월 김흥기 교수가 운영하는 중국과학원 최고위과정에 특별강사로 초청된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앞줄 가운데)이 김 전 교수(앞줄 오른쪽 끝), 수강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2012년 대선부터 새누리당 중진들과 인연네이버, 저서, 보도자료 등에 올라온 그의 30여 가지 주요 이력 중 20여개가 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인 2013년 이후 얻은 것이다. 특히 2013년 5월 민주평통 상임위원 임명은 그의 인맥이 평통을 중심으로 여권 내 실세들로 확장되는 계기가 됐다. 8월 중국과학원 최고위과정 개설은 전·현직 장·차관, 국회의원들을 한꺼번에 수십명씩 강사와 수강생으로 동원할 정도로 막강해진 그의 인맥을 과시하는 계기였다. 11월에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1억원의 예산까지 지원한 글로벌창업정책포럼 상임의장이 됐다.
3선 경력의 새누리당 박진 전 의원과 이상희 전 과기처 장관은 김 전 교수가 새로운 일을 벌일 때마다 강사, 명예원장, 자문위원 등에 이름을 올린 ‘단골멤버’였다. 두 사람과도 역시 대선 때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의원은 “김 전 교수가 대선 때 당에서 무슨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이런 인연으로) 내게 강의를 부탁해 몇 번 도와준 기억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 전 교수가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에서 모종의 역할을 한 것은 확인되지만 정확히 당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강미발 초대장에는 그가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교육복지특별대책위 상임위원장을 맡은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 선대위 명단에서 그의 이름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대선 때 공동선대위 위원장을 맡았던 재벌가 출신의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김 전 교수가 주도한 글로벌창업정책포럼의 공동의장으로 등장한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김 총재는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여성 유권자의 표심을 노리고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전격 발탁했으나 온갖 설화를 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2014년 9월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전격 발탁돼 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보은인사’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런 김 총재가 김 전 교수가 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포럼의 공동의장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선거과정에서 김 전 교수의 역할과 위상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을 사석에서 ‘누님’으로 호칭한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대표적인 ‘친박인사’로 분류되는 한선교 의원도 포럼의 고문으로 참여했다.
김 전 교수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원도에 내려간 것도 자연스럽게 이 같은 새누리당과의 특수한 관계 속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김 전 교수는 강미발 창립식에서 “우리는 강원도민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의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한 실용적 중도개혁 단체임을 천명한다”고 했다. 하지만 중도개혁 시민단체 표방은 말뿐이었다.
그의 행보는 철저하게 6·4 지방선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다만 그는 바닥표를 훑는다든지 언론을 통해 고공플레이를 하는 식의 전통적인 선거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바닥표를 훑기에는 지역적 연고가 없었고, 고공플레이를 하기에는 강원도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었다. 6·4 지방선거 당시 최흥집 새누리당 강원지사 후보는 “선거캠프가 차려지고 얼마 안 있어 연락이 와서 남춘천역 앞 카페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뭘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통상 바쁜 후보를 불러내서 만날 때는 돈이나 조직 지원 등의 얘기가 오가기 마련인데 전혀 그런 얘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선거에 관여했다면 뭔가 다른 방식으로 후보를 지원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연 그는 무슨 역할을 했을까.
시기적으로 볼 때 그가 강미발을 조직한 시기와 빅데이터 전문기관인 중국과학원 가상경제센터와 모종의 계약을 체결한 시기는 2013년 8월로 거의 일치한다. 또한 그가 강미발을 조직한 시기는 그린미디어가 KTL과 함께 SNS 등 빅데이터들을 가공 처리하는 짐스(GIMS) 프로그램에 대한 개발에 착수한 것과 거의 일치한다. 즉 시기적으로만 보면 빅데이터 전문기관인 중국과학원 가상경제센터와 계약, 짐스 프로그램 구축, 강미발 조직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추진됐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컴퓨터 보안 전문가들에 따르면 새누리당 쪽에서 빅데이터를 선거에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기도 대략 이 무렵부터다. 강미발 사무총장인 한모씨는 “강미발 조직을 처음 논의한 시가는 2013년 8월이나 9월쯤으로, 김 전 교수는 굉장히 급하게 조직을 꾸리려 했다”고 말했다. 강미발이 빅데이터를 이용한 모종의 시스템 구축과 관련해서 더욱 의심을 받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그가 그린미디어에서 발행하는 글로벌이코노믹 회장에 취임한 후 한 달 만인 2015년 1월 그린미디어가 KTL에 용역보고서를 제출했다.
18대 대선을 12일 남겨둔 2012년 12월 7일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을 초청한 과학기술정책 간담회에 김흥기 전 교수(오른쪽 끝)의 모습이 보인다. |
새누리당 출신 후보들 공개적 지지이 보고서에서 그린미디어는 국정원, 민주평통, 자유총연맹을 정보수집, 분석, 배포를 위한 광범위한 정보협력 파트너로 제안했다. 실시간으로 타깃 정보를 종합적으로 원격제어할 수 있는 K룸 설치도 제안했다. 또한 시험구축 단계에 있던 짐스 프로그램을 이미 검증된 시스템으로 제시했다. 이미 짐스가 실전에서 가동됐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짐스가 어떤 과정을 통해 검증됐는지는 아직 알려져 있는 게 없다. 다만 짐스 개발 착수시기가 2013년 7~8월이고, 용역보고서 제출이 2015년 1월인 점을 감안할 때 짐스가 선거에 활용됐다면 그 무대는 6·4 지방선거가 유력하다.
김 전 교수는 지방선거 기간 중 강미발 상임의장으로서 최홍집 지사 후보, 최동용 춘천시장 후보, 심재국 평창군수 후보 등을 비롯해 다수의 새누리당 출신 후보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물론 강원도 출신도 아니고 조직표도 없던 그가 강원지역에서 어떤 식으로 선거 지원을 하고 실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강원도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가 강미발의 상임의장을 맡은 것 자체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6·4 지방선거 당시 최흥집 새누리당 강원지사 후보는 “김 전 교수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이인제 최고위원 쪽 사람과 함께 왔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의 ‘강원도 행’이 단지 개인적 동기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이유다.
<주간경향> 취재 결과 새누리당 중진 중 이인제 최고위원은 강미발에 가장 애정을 보였던 인사다. 강미발 창립식 초대장에 영상이 아니라 직접 참석해 축사를 하기로 예정된 국회의원은 이 최고위원이 유일하다. 강미발 임원진들이 선거과정에 국회에 올라와 임원회의를 할 때 이 최고위원이 참석한 기록도 있다. 이 최고위원은 지방선거를 앞둔 2014년 4월 김 전 교수가 운영하던 중국과학원 최고위과정 특강 강사로 초청돼 수강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김 전 교수가 진행하는 글로벌이코노믹 파워 인터뷰에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 최고위원 측은 ‘김 전 교수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강미발 창립식에 영상 축사를 보낸 강 전 국회의장, 현 평통수석부의장과 마찬가지로 이 최고위원도 일절 ‘모르쇠’ 행보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김 전 교수의 개인블로그와 강미발 사이트도 삭제됐다. 김 전 교수는 <경향신문>이 지난 10월 전화를 걸어 그의 행적에 대해 최초 의문을 제기한 직후 갑자기 자신이 관련된 사이트들을 일제히 폐쇄했다. 당시 강미발은 거론도 하지 않았던 시기다.
하지만 언제까지 진실을 가둬둘 수는 없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김 전 교수의 역할과 KTL 별관에서 온갖 특혜를 받으며 수상한 용역을 진행한 ‘KTL 댓글부대’ 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김신애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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