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가 광화문광장에 대형 태극기를 설치하는 문제로 서울시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보훈처와 서울시는 ‘광복 70주년 기념 행사’로 광화문광장에 태극기를 설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보훈처가 한시적 설치에서 영구설치로 돌아서면서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을 마치 매국노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 동아일보는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도 않고 무조건 서울시가 태극기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일부 우익언론에서는 서울시의 입장이 ‘반태극기 정서’를 가진 박원순 시장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까지 내세우고 있습니다.
태극기를 설치하는 문제가 왜 논란이 되고 있는지, 정말 박원순 시장이 매국노인지 따져보겠습니다.
① 박원순 시장은 태극기 설치를 반대했다?
보훈처와 조선, 동아일보는 박원순 시장이 광화문광장에 대형태극기 설치를 반대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은 반대한 적이 없습니다.
“태극기 설치 자체를 반대한 적이 없기 때문에 광복 70주년 기념행사 사업과 관련해 보훈처와 업무협약도 한 게 아니겠느냐, 다만 항구적으로 광장에 뭔가 설치하는 건 조심해야 하며 한시적으로 설치하거나 이동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정도의 얘기였다” 박원순 시장.
박원순 시장은 태극기 설치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영구설치에 대한 의견을 낸 것입니다. 영구설치는 한 마디로 태극기 설치와는 별개로 광화문광장에 조형물이 설치되는 것입니다.
광화문광장에는 두 개의 대형 조형물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입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17미터, 세종대왕 동상은 6.2미터입니다. 보훈처가 설치하려는 대형태극기는 45미터로 이순신 장군 동상의 두 배가 넘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15층짜리 건물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박원순 시장은 태극기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광화문광장에 15층짜리 조형물이 영구적으로 설치될 때의 모습과 환경을 정확히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광복70주념을 기념한다고 해서 무조건 15층짜리 조형물을 광화문광장에 설치하는 일은 함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광화문광장에 15층짜리 높이의 조형물이 들어서는 일은 서울시가 찬성을 한다고 해도 정부 차원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사용권을 가진 지자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봐야 합니다.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일제가 왜 세웠는지, 광화문광장이 어떻게 사용됐고, 그 안에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단순히 태극기를 설치하는 일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② 서울시는 보훈처와의 MOU 체결을 어겼다?
보훈처는 태극기 설치에 대해 국가보훈처장과 서울시장이 업무협약(MOU) 체결까지 마친 사업을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태극기를 상시로 설치한다는 계약을 위반했다며 박원순 시장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박승춘 보훈처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명한 ‘광복 70주년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공동업무 협약서’를 보면 광화문광장에 태극기를 영구적으로 설치한다는 문구는 없습니다.
2015년 6월 2일 업무협약을 맺은 보훈처는 7월 2일 박원순 시장에게 2015년 8월 15일부터 2016년 8월 15일까지 한시적으로 태극기 게양대를 운영한다고 보고했습니다. 2015년 7월 23일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광장운영을 결정하는 시민 위원회)에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심의안을 제출했습니다.
보훈처는 업무협약 때도, 서울시장 보고 때도, 광장운영 심의안 제출 때도 모두 태극기를 한시적으로 운영한다고 해놓고서는 이제 와서 영구적으로 설치하는 것을 서울시가 반대한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광장에서 기간을 정해 행사를 하겠다고 했다가 영원히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말을 바꾸고는 왜 계약을 어겼느냐며 적반하장으로 상대방을 계약위반이라고 고소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③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지 못한 이유는 보훈처 때문
광화문광장에는 태극기 게양대가 설치되지 못했습니다. 보훈처와 언론은 이 모든 것이 서울시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광화문광장에 태극기 게양대가 설치되지 못한 이유는 보훈처 때문입니다.
서울시와 보훈처는 2015년 6월 2일 광복70주년 기념사업 관련 MOU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정부 예산은 6월 12일에서야 확정됐습니다. 보훈처는 2015년 6월 16일부터 7월 13일까지 태극기 게양대 설치, 운영계획 수립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4회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보훈처가 서울시에 태극기 게양대 심의안을 제출한 날짜는 광복절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7월 23일이었습니다.
행사가 불과 20여 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15층짜리 높이 건물의 조형물을 설치하겠다고 서류를 제출하면 누가 심의를 합니까? 만약 서울시가 졸속으로 행정을 처리하면 언론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서울시는 오히려 2017년 3월까지 태극기를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훨씬 기간이 길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보훈처는 영구적으로 설치해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태극기 게양대의 영구적인 설치를 무조건 받아 들이기 어렵습니다. 이유는 서울시는 ‘의정부’(조선시대 최고 정치기구) 터의 원형을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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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육조대로 추정 배치도와 현재의 항공사진을 오버랩한 모습. 출처:서울시 |
보훈처와 언론은 서울시가 이미 추진하는 역사적 유물 발굴 사업을 태극기 게양대 설치를 위해 포기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15층짜리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 설치가 역사적 가치보다 더 높게 추진돼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광화문광장 바로 옆에 있는 정부서울청사 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부지에 설치하면 안 됩니까?
광화문광장에 45미터짜리 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해야만 애국자이고, 조선시대 역사 유물은 파손되거나 복원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도대체 어떤 역사의식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대형 태극기가 애국심의 척도라고 외치는 그들이 과연 일제강점기 시절 태극기를 흔들었는지, 일왕을 향해 신사에서 참배했는지 따져보고 싶습니다.
한국전쟁 전후 서북청년단은 돈을 벌기 위해 태극기와 이승만 사진을 팔았습니다. 만약 태극기를 사지 않거나 행사 때 태극기를 흔들지 않으면 '빨갱이'라며 몽둥이로 팼습니다. 당시 서청과 보훈처의 주장은 너무나 흡사합니다. 태극기를 흔들고 태극기를 달아야만 애국자입니까?
여름방학 때 서울에 올라와 아이들과 광화문광장을 걸었습니다. 서울시청 벽에 걸려있는 김구 선생이 들고 있는 태극기를 본 아이들은 ‘저 할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김구 선생이 어떻게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를 썼는지 이야기를 해주자, 아이들은 ‘저 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태극기가 지금도 있는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애국심은 우러나오는 것이지,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찢진 태극기라도 그 안에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분들의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에스더가 흥얼거리는 ‘우리나라 태극기가 좋아요’에 나오는 태극기가 꼭 45미터짜리 15층 높이의 태극기라야 애국심이 생길까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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