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지난달 25일 출범 3년을 맞았습니다. 청와대는 이를 ‘기념’해 지난달 23일 정책 모음집을 통해 평화통일 기반 구축, 역사교과서 국정화,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 전작권 전환 연기 등을 그간의 업적으로 꼽았습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경제민주화 실천, 국내총생산(GDP) 및 고용률 증가, 소득 분배 수준 향상 등을 내세웠습니다. 박 대통령은 “욕을 먹어도 좋다는 각오로, 오로지 대한민국 정상화를 위해 비정상적인 요인을 바로잡았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정치·외교·안보 분야는 물론이고 경제·사회 분야에서도 못한 게 없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3년의 평가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집권자 입장에서는 지나온 길에 대해 나름 평가를 받고 싶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총선이 눈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자화자찬은 듣기 거북하기만 합니다. 과연 지난 3년간 한국인들의 삶은 나아졌을까요. 지난 3년을 평가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수치’가 담긴 기사들을 모아봤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인빈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비경제활동인구 증가율은 2005년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대졸 이상 비경제활동인구는 15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청년과 노인층이 동시에 소득 절벽에 직면하면서 ‘쌍봉형 빈곤’(쌍봉낙타처럼 부모와 청년 세대가 동시에 빈곤해지는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사교육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사교육비가 3년 연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1인당 사교육비는 월평균 24만4000원으로 2007년 사교육비 조사 이후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교육비 경감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지난 정부에서 줄여놓은 사교육비를 현 정부에서 다시 조금씩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거비
주택 시장에 전세 물량이 부족한 ‘전세난’이 심각했던 지난해 각 가구별 월평균 주거비가 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에 비해 전국 평균 가구 소득은 또다시 작은 폭으로 올라 아파트 매매에 필요한 시간은 더욱 길어졌습니다. 지난달 28일 나온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실제주거비는 7만4227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2014년의 6만1423원보다 20.8% 증가한 수치입니다. 자가나 전셋집에서 사는 가구는 매월 주거비 명목으로 내는 비용이 없어 자가·전세가 많을 수록 주거비는 적게 잡힙니다. 전세 물량이 부족해 세입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월세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면서 월평균 주거비액수도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전·월세 거래량 중 월세의 비중은 44.2%를 기록해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11년(33%) 이후 최대치를 경신했습니다.
UN이 정한 ‘세계 주거의 날’인 지난해 10월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세입자협회 등 주거관련 시민단체 회원들이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오르고 있는 월세를 풍자하는 “밑 빠진 집세에 월급 붓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정지윤기자
■노동시간 및 근속시간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조사를 보면 한국 전체 임금노동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6.1년입니다. 노동시간은 세계 최장 수준이지만 줄어들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4년 통계에서 한국인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57시간을 기록했습니다. 물론 OECD 평균(1796시간)보다는 여전히 훨씬 많습니다. 멕시코(2327시간), 칠레(2067시간)에 이어 세 번째로 깁니다. 그나마 2013년의 2163시간보다는 감소했습니다.
근속시간을 다시 볼까요. 통계청이 발표한 ‘2015 한국의 사회동향’에서 국내 임금노동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6.1시간으로 집계됐습니다. 임금근로자의 52.8%가 3년 미만 단기 근속자였습니다. 10년 이상 근속자는 20.6%에 그쳤습니다. 절반이 한 직장에서 3년도 일하지 않으며, ‘노동개혁’에서 강조하는 장기근속자는 5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매달 1600만명 이상이 이직했습니다. OECD 국가의 5년 이상 근속자 비중은 평균 53.4%입니다.
직장인들이 서울의 한 빌딩 회전문 출입구를 나서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가계빚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1200조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치를 또 경신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3년간 늘어난 가계빚은 243조원이 넘습니다. 금리를 낮춰 돈을 풀어 소비와 투자를 자극하겠다던 기대효과는 사라지고 부동산시장의 거품을 키우고 빚만 늘린 셈입니다. 오히려 빚에 짓눌려 소비 여력이 줄어든 가계가 지갑을 열지 못하면서 내수가 더 위축되고 경기 부진이 장기화하는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저출산
이렇게 삶이 팍팍하니 젊은이들은 결혼을 할 수도, 또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을 수도 없습니다. 지난해 출생아 수에서 사망자 수를 뺀 자연증가 인구는 16만3000명으로 역대 최소였습니다. 1000명당 자연증가 인구수를 의미하는 자연증가율도 3.2명으로 역대 최저였습니다. 저출산 초기에는 아이가 적게 태어나도 수명이 늘어나면서 전체 인구가 줄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출산이 심해지고, 고령인구가 본격 사망하기 시작하면 인구는 줄어들고, 한번 인구가 줄어들면 흐름을 바꾸기 어려워집니다. 현 상태로 가면 2028년에 자연증가율이 0명이 되고, 2030년부터는 한국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했던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달러’, 이른바 ‘4·7·4공약’은 애초부터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출·내수 침체, 청년 실업, 전셋값 폭등, 가계부채 급증은 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또 지난 3년간 대한민국이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가 되고,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여기는 시민은 얼마나 될까요. 박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2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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