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무능·식물 국회.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성적표”.
주류 언론은 19대 국회를 임기 내내 난타했다.
“법안 1만 건 자동 폐기. 생산성과 입법효율성 낙제 수준”.
언론이 국회에 후한 점수를 매긴다면, 그 자체가 뉴스거리다. 19대국회라고 예외일 리 없다. 아무리 봐줘도 낙제점이다. 하지만 국회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따지는 언론의 평가 잣대는 왠지 거부감을 일으킨다. ‘국회가 법률제조 공장인가’라는 의문 때문이다.
어찌 보면, 19대국회는 ‘동물국회’라는 18대의 오명을 씻어내고, 진일보한 의회였다. ‘국회선진화법’의 효력 탓인지, 몸싸움과 날치기 따위의 볼썽사나운 모습이 사라졌다. 대신 ‘식물국회’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지만, 이 또한 해석하기 나름이다. 약육강식의 ‘야만’에서 상생의 ‘문명’으로 진화했다는 뉘앙스도 풍기기 때문이다.
필리버스터는 ‘악법 저지’가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38명의 의원들이 192시간 동안 발언하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지만, 테러방지법은 끝내 통과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허탈감에 싸여 실망하고 분노했다. 그만큼 의원들의 입법활동을 지켜보는 유권자의 눈길도 날카로워지고 있다.
필리버스터의 울림이 컸던 까닭은 악법의 독소조항을 적발했기 때문이다. 발언대에 선 의원들은 불량식품의 유해성분을 검출하듯,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을 꼼꼼하게 드러냈다. 식품위생법 위반업체를 고발하듯, 직권상정의 위헌성을 규탄했다. 언론의 역할을 필리버스터가 가로챈 셈이다.
유해식품이 인체에 해롭듯, 악법은 시민사회를 병들게 한다. 우리나라의 의정사는 사사오입 개헌, 유신헌법, 국가보안법 등 숱한 악법들로 얼룩져 있다. 예산 날치기를 수반한 ‘4대강 사업법’은 생태계와 국가재정을 망가뜨린 ‘MB악법’의 대표로 꼽힌다.
‘기초연금법’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과제였다. 대통령의 닦달과 주류 언론들의 추임새에 주눅 든 국회는 서둘러 처리했지만, 노령층의 거센 반발에 곤욕을 치렀다.
'부동산 3법'을 통과시킨 뒤에는 “수고했다”는 말 대신 "퉁퉁 불어터진 국수를 받았다"는 대통령의 핀잔을 들었다. 독촉하던 주류 언론들은 '미친 전세가격'과 '부동산 버블' 따위의 부작용에 대해선 말문을 닫았다.
2조3천억원의 신규투자와 1만4천개의 신규일자리가 생긴다던 ‘외국인투자촉진법’의 입법 효과는 신규투자 0, 직접 고용 170명.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제왕적 대통령’은 지금도 틈만 나면 책상을 치고, 한숨을 토해내며 국회를 잡도리 한다. 주류 언론들도 ‘국회심판론’까지 들먹이며 의원들을 다그친다. “발목 잡는 야당, 민생은 저 멀리”는 주류 언론의 애창곡이 된지 오래다. ‘통법부’의 유니폼을 걸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장단을 맞출 수 있다.
누구나 알듯,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은 민주국가의 버팀목이다. 어느 한 쪽이 기울면 나라의 토대가 흔들린다. 흔히 ‘제4부’라고 불리는 언론은 권력분립의 틈새를 메우는 균형 추로 작동해 왔다. 규모 큰 언론사의 기자들이 입법·행정·사법부의 요소 요소에 상주하며, 감시견 노릇을 해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아쉽게도, 요즘의 주류 언론은 권력의 쏠림을 탐지하는 감시견이 아니라, ‘입법 몰이’에 끼어든 사냥개처럼 비쳐진다. 보도의 논조가 행정권력과 사법권력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기울어지면 균형 추가 영영 고장 날지도 모른다. 늦기 전에 저널리즘의 위치로 복귀해야 한다. 길은 가까운 곳에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언론만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국회는 '좋은 법'은 통과시키고, '나쁜 법'은 저지하고, '이상한 법'은 꼼꼼하게 따져야 합니다”
더민주의 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 달 17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잊혀진 상식을 일깨웠다. 그리고 엿새 뒤, 필리버스터의 막을 올렸다. 그럼에도 주류 언론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트집잡았다. 저널리즘의 책무를 필리버스터에 떠넘긴 셈이다.
지난 몇 년, 주류 언론의 성적표는 국회 못지 않게 초라했다. ‘찌라시’ ‘기레기’가 상용어로 자리잡을 정도였다.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의 평가지수도 몇 년째 곤두박질 하고 있다. 이제 활로를 찾을 때다.
마침, 국회에 변화의 싹이 움트고 있다. 언론이 키워야 한다. ‘진박 감별’ 같은 허튼소리는 매섭게 조져도 가십기사다. ‘악법 감별’은 지루해도 진짜 기사다. 이상한 법은 꼼꼼하게 따지고, 나쁜 법은 저지하는 게 언론의 기본이다.
주류 언론은 19대 국회를 임기 내내 난타했다.
“법안 1만 건 자동 폐기. 생산성과 입법효율성 낙제 수준”.
언론이 국회에 후한 점수를 매긴다면, 그 자체가 뉴스거리다. 19대국회라고 예외일 리 없다. 아무리 봐줘도 낙제점이다. 하지만 국회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따지는 언론의 평가 잣대는 왠지 거부감을 일으킨다. ‘국회가 법률제조 공장인가’라는 의문 때문이다.
어찌 보면, 19대국회는 ‘동물국회’라는 18대의 오명을 씻어내고, 진일보한 의회였다. ‘국회선진화법’의 효력 탓인지, 몸싸움과 날치기 따위의 볼썽사나운 모습이 사라졌다. 대신 ‘식물국회’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지만, 이 또한 해석하기 나름이다. 약육강식의 ‘야만’에서 상생의 ‘문명’으로 진화했다는 뉘앙스도 풍기기 때문이다.
필리버스터는 ‘악법 저지’가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38명의 의원들이 192시간 동안 발언하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지만, 테러방지법은 끝내 통과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허탈감에 싸여 실망하고 분노했다. 그만큼 의원들의 입법활동을 지켜보는 유권자의 눈길도 날카로워지고 있다.
필리버스터의 울림이 컸던 까닭은 악법의 독소조항을 적발했기 때문이다. 발언대에 선 의원들은 불량식품의 유해성분을 검출하듯,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을 꼼꼼하게 드러냈다. 식품위생법 위반업체를 고발하듯, 직권상정의 위헌성을 규탄했다. 언론의 역할을 필리버스터가 가로챈 셈이다.
유해식품이 인체에 해롭듯, 악법은 시민사회를 병들게 한다. 우리나라의 의정사는 사사오입 개헌, 유신헌법, 국가보안법 등 숱한 악법들로 얼룩져 있다. 예산 날치기를 수반한 ‘4대강 사업법’은 생태계와 국가재정을 망가뜨린 ‘MB악법’의 대표로 꼽힌다.
‘기초연금법’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과제였다. 대통령의 닦달과 주류 언론들의 추임새에 주눅 든 국회는 서둘러 처리했지만, 노령층의 거센 반발에 곤욕을 치렀다.
'부동산 3법'을 통과시킨 뒤에는 “수고했다”는 말 대신 "퉁퉁 불어터진 국수를 받았다"는 대통령의 핀잔을 들었다. 독촉하던 주류 언론들은 '미친 전세가격'과 '부동산 버블' 따위의 부작용에 대해선 말문을 닫았다.
2조3천억원의 신규투자와 1만4천개의 신규일자리가 생긴다던 ‘외국인투자촉진법’의 입법 효과는 신규투자 0, 직접 고용 170명.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제왕적 대통령’은 지금도 틈만 나면 책상을 치고, 한숨을 토해내며 국회를 잡도리 한다. 주류 언론들도 ‘국회심판론’까지 들먹이며 의원들을 다그친다. “발목 잡는 야당, 민생은 저 멀리”는 주류 언론의 애창곡이 된지 오래다. ‘통법부’의 유니폼을 걸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장단을 맞출 수 있다.
누구나 알듯,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은 민주국가의 버팀목이다. 어느 한 쪽이 기울면 나라의 토대가 흔들린다. 흔히 ‘제4부’라고 불리는 언론은 권력분립의 틈새를 메우는 균형 추로 작동해 왔다. 규모 큰 언론사의 기자들이 입법·행정·사법부의 요소 요소에 상주하며, 감시견 노릇을 해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아쉽게도, 요즘의 주류 언론은 권력의 쏠림을 탐지하는 감시견이 아니라, ‘입법 몰이’에 끼어든 사냥개처럼 비쳐진다. 보도의 논조가 행정권력과 사법권력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기울어지면 균형 추가 영영 고장 날지도 모른다. 늦기 전에 저널리즘의 위치로 복귀해야 한다. 길은 가까운 곳에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언론만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국회는 '좋은 법'은 통과시키고, '나쁜 법'은 저지하고, '이상한 법'은 꼼꼼하게 따져야 합니다”
더민주의 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 달 17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잊혀진 상식을 일깨웠다. 그리고 엿새 뒤, 필리버스터의 막을 올렸다. 그럼에도 주류 언론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트집잡았다. 저널리즘의 책무를 필리버스터에 떠넘긴 셈이다.
지난 몇 년, 주류 언론의 성적표는 국회 못지 않게 초라했다. ‘찌라시’ ‘기레기’가 상용어로 자리잡을 정도였다.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의 평가지수도 몇 년째 곤두박질 하고 있다. 이제 활로를 찾을 때다.
마침, 국회에 변화의 싹이 움트고 있다. 언론이 키워야 한다. ‘진박 감별’ 같은 허튼소리는 매섭게 조져도 가십기사다. ‘악법 감별’은 지루해도 진짜 기사다. 이상한 법은 꼼꼼하게 따지고, 나쁜 법은 저지하는 게 언론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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