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는 한국 아마추어 스포츠의 총 본산입니다. 하지만 비록 아마추어 국가대표 선수들을 관리하는 단체이지만 그 행정은 프로페셔널 못지않게 해야 합니다. 1년에 국민 혈세 4천억 원 이상을 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영스타 박태환의 리우 올림픽 출전 여부를 둘러싸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한체육회의 행태를 보면 '진짜 아마추어' 같아 한숨만 나올 정도입니다.
● 대한체육회는 무능한가?
박태환 사태의 모든 발단은 현 국가대표 선발 규정과 국제 규정과의 충돌에서 비롯됐습니다. 국제 스포츠계의 대법원으로 불리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이미 2011년에 도핑 징계 선수의 징계 만료 이후 올림픽 출전 금지를 명시한 이른바 '오사카 룰'의 무효를 판결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관련 조항을 즉각 삭제했습니다.
그런데 2014년에 7월에 제정된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에는 도핑 징계 이후에도 3년 동안은 국가대표가 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CAS가 도핑 징계 선수의 '이중 처벌'을 금지한 판결을 내린 지 2년이 훨씬 넘은 시점에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발 규정이 제정됐습니다. 그럼 대한체육회는 CAS의 판결을 정말 모르고 규정을 만들었을까요? 만약 몰랐다면 국제 정보에 어두워도 너무 어두웠던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CAS가 도핑 징계를 받았던 미국과 영국 선수들의 2012 런던올림픽 출전을 허용한 사실이 2011년 가을쯤 국제 스포츠계에 큰 화제가 되면서 세계 각국 언론에 대서특필됐기 때문입니다. 정말 몰랐다면 대한체육회가 결국 무능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 대한체육회는 비겁한가?
대한체육회의 고위관계자 출신 A씨는 이와는 상반되는 증언을 했습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CAS의 판결을 대한체육회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이 이중 처벌이라고 반대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의원들이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는 일벌백계해야 한다며 강하게 요구했다. 대한체육회도 규정에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 문체부와 정치권의 요구를 막을 힘이 없었다."
이 관계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한체육회가 비겁했고 또 소신이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대한체육회는 '무능 아니면 비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 왜 박태환만 안되는가?
대한체육회는 박태환을 위해 규정을 바꿀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 정관이 헌법이라면,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은 법률에 해당하고, 박태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국가대표 선발규정은 시행령 정도에 불과합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3월 통합체육회 정관을 만든 뒤에도 IOC가 정관 수정을 요구하자 이를 수용해 정관을 대폭 고쳤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지난 3월 21일 제정한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은 불과 한 달 뒤인 4월 28일에 뜯어고쳤습니다.(5월 16일 취재파일 '폭력 선수 살 길 마련한 대한체육회' 참조)
그런데 유독 국가대표 선발규정의 1개 조항만 절대로 바꿀 수 없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국제 스포츠계가 이미 5년 전에 무효라고 판단한 조항을 '금과옥조'처럼 움켜잡고 있는 것입니다.
또 과거에 성추행 혐의로 영구 제명을 당했던 코치를 비롯해 수많은 선수와 지도자들을 이른바 '재심' 제도를 통해 무더기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게 해준 것도 바로 대한체육회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낳은 수영스타 박태환만은 구제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오랫동안 IOC나 문체부 같은 강자에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약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그런데 박태환에게는 강경 일변도입니다. 대한체육회가 과연 원칙 있고 형평성 있는 행정을 해왔는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대한체육회는 "국가대표 선발 규정이 국가대표만 못 하게 하는 것이지 일반 선수 생활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궤변에 불과합니다. 대한체육회의 현 규정은 '오사카 룰'보다 훨씬 가혹합니다. '오사카 룰'은 다음 올림픽 출전만 금지했습니다.
체육회 규정에 따르면 박태환은 2016 리우올림픽은 물론 2018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 등 2019년 2월말까지 모든 국제대회에 나갈 수 없습니다. 박태환이 전국체전만 뛰는 '국내용 선수'는 아니지 않습니까?
박태환과 그의 스승 노민상 감독이 무릎을 꿇고 선처를 호소하는 장면은 이미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박태환은 지난 4월 26일 대한체육회를 상대로 CAS에 공식 제소한 상태입니다. CAS의 과거 판례를 비춰볼 때 본격적인 심리 절차에 들어가면 박태환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큽니다.
볼썽사납게 CAS 판결에 의해 마지못해 리우 올림픽 출전을 허용하는 것은 대한체육회나 박태환 모두에게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대한체육회는 선수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입니다.
공자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고 역설했습니다. 잘못을 깨달았다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대한체육회가 하루빨리 아집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해봅니다.
권종오 기자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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