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를 재해석한 작품 등으로 유명한 가수 조영남. 그의 작품 300여 점에 대한 대작 의혹이 불거져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화가로도 활동 중인 가수 조영남(71)씨의 그림 300여 점을 대신 그렸다는 한 무명작가의 주장이 나오고 이에 대해 검찰이 조씨에 대해 수사까지 진행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술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판과 “작품 컨셉트를 제공했다면 대작이라 할 수 없다”는 의견이 엇갈리며 미술계가 한 바탕 벌집 쑤신 듯하다.
춘천지검 속초지청은 화투를 소재로 한 조씨의 그림에 대작(代作) 의혹이 제기돼 소속사와 갤러리 등 3곳을 압수수색했다고 16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무명 화가 A씨가 그려준 그림에 조금 손을 본 뒤 자신이 그린 것처럼 꾸며 전시ㆍ판매했다는 혐의(사기)를 받고 있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1점당 10만원 안팎의 대가를 받고 조씨에게 그려준 그림이 수백만 원에 거래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 작업을 마치는 대로 조씨 소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조씨는 일부 언론과 인터뷰에서 국내외 작가들이 대부분 조수를 두고 작품활동을 하며 이는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또 “A씨의 도움을 받은 그림은 한 점도 판매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조영남 소속사 미보고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조영남씨와 A씨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조영남이 지난 3월 전시회를 열며 손이 달려 손재주가 좋은 A씨에게 도움을 요청한 정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씨의 그림 작업이 대중의 적잖은 관심을 받아왔기 때문에 대작 의혹만으로도 눈길이 가는 건 사실이지만 미술계에서는 작품의 컨셉트를 조영남이 제공했다면 ‘대작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17일 자신의 SNS 계정에 “그것(컨셉트)을 제공한 사람이 조영남이라면 별 문제 없는 것이고, 그 컨셉트마저 다른 이가 제공한 것이라면 대작”이라고 해석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도 “무명작가가 단순히 테크니컬 어시스턴트였는지가 핵심”이라며 “무명 작가 스스로가 조영남에게 (개념과 아이디어를)받았다고 한 만큼 대작이라고 보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작 논란에 휩싸인 조씨가 “대작이 아니라 관행”이라고 해명한 데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개념미술과 팝아트 이후 작가는 컨셉트만 제공하고 물리적 실행은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게 꽤 일반화한 관행”(진중권)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조수를 두고 작업할 정도로 잘 팔리는 작가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대 교수는 “전시 일정에 쫓기는 등 한시적으로 조수를 두는 경우는 있지만 대신 그리게 하는 것을 관행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다”며 “(조씨의 발언은)정직하게 미술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법무법인 정세의 김형진 변호사는 “A씨의 도움을 받은 그림은 한 점도 판매하지 않았다”는 조영남씨의 주장에 대해 “팔렸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팔려고 한 의도가 중요한 것”이라며 사기 미수죄가 적용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변호사는 “본인이 제3자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인 것처럼 판매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면서 “조씨 사건은 조수의 역할 등을 분명히 짚고 갈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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