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에도 서울 서초구 화장실 살인 사건 여성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17일 새벽 강남역 인근 주점 건물 공용화장실에서 남성 김모씨(34)가 한 여성(23)을 흉기로 살해하고 경찰에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했다”며 범행 동기를 진술한 것이 알려지자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번 사건은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여성혐오 범죄”라는 지적이 나왔다. 시민들은 여성 피해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포스트잇을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 붙이면서 추모를 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이곳을 찾는 시민들은 대부분 20~30대 여성들이었지만 이날은 중장년 세대와 남성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시민들은 포스트잇에 추모의 문구를 써붙인 뒤에도 다른 사람이 붙인 포스트잇을 하나하나씩 읽어보느라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휴대폰으로 포스트잇과 그림이 그려진 종이 등을 직접 촬영해 기억하려는 시민들도 많았다.
사건이 발생한 건물의 옆 건물에 위치한 학원에 다닌다는 ㄱ씨(25)는 “바로 옆 건물에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 학원 화장실 가는 것도 무섭고 내 생명과 직결돼있는 느낌이 들었다”며 “이번 추모에 대해 ‘유난스럽다’는 반응도 있어서 화가 난다”고 말했다. ㄱ씨는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자는 건 당연한 건데 당연한 걸 사람들에게 설명해서 이해시켜야 한다는 게 힘들다”며 “이제서야 공론화가 돼서 다행”이라고 했다.
전날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추모를 한다는 기사를 보고 천안 아산시에서 서울로 올라왔다는 조중묵씨(61)는 “나도 두 딸의 아빠이고 특히 막내딸이 20대인데 아무 관련이 없는 여성을 잔인하게 범행했다는 게 너무 비통하고 안타까워서 추모의 마음을 그 분(여성 피해자)에게 전하고 싶어서 왔다”며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슬프다”고 말했다. 조씨는 “여성이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는데 정신이상자이든 뭐든 간에 나로서는 그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며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김수인씨(22)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기사가 처음 나왔을 때 댓글에 ‘모든 남자가 그런 것처럼 일반화시키지 말라’라든지 ‘조심했어야지’라는 내용이 달린 걸 보고 제일 안타까웠다”며 “작은 한마디가 상처가 될 때가 많은데 동아시아는 유교 문화 때문에 틀을 깨고 (여성 문제에 대해) 인지하는 게 힘들겠지만 조금씩 바꿔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는 ‘저는 두렵습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도 붙었다. 대자보 글쓴이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성폭력, 데이트폭력 사건을 봐왔지만 제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언제 네가 당할지 모른다고 제게 경고합니다”라며 “여성에 대한 묻지마 살인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질까봐 저는 두렵습니다”라고 했다. 글쓴이는 이어 “(이번 사건은) 나를 무시하는 여성은 죽여도 된다는 사고를 드러낸 사건”이라며 “이런 살인은 우리가 멈추어야 합니다. 여성 및 약자에 대한 폭력을 혐오를 멈춥시다”라고 말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이 포스트잇으로 가득차 더이상 붙일 공간이 없게되자 서초구청에서는 출구 옆쪽에 보드판 4개를 붙여 추모를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에서 보드판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7시30분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는 촛불 추모제가 열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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