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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May 18, 2016

절묘한 개입... 한강을 빛낸 번역은 달랐다 맨부커상 ‘채식주의자’ 데버러 스미스 번역의 차별점

한국어 원문에 얽매이거나

고유 색채 지운 번역서 탈피

원문-번역문 일대일 대응 아닌

단어 가감ㆍ구문 변화 통해

원작의 효과 재현하는 방식

시적 표현도 더 극적으로 시각화

“번역의 텍스트북으로 삼을만”

“데버러 스미스의 놀라운 번역에 의해 이 기묘하고 빛나는 작품이 영어로 제 목소리를 완벽하게 찾았다.
”(보이드 턴킨 맨부커상 심사위원장)
한강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데버러 스미스의 탁월한 번역을 꼽는다. 2007년 국내 출간된 이 작품이 뒤늦게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의 높은 미학적 성취가 데버라 스미스라는 걸출한 번역가와 비로소 만난 덕분이라며 번역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다. 지금까지 해외에 번역된 수백 종의 한국문학 작품과 다른 데버러 스미스 번역의 차별점은 뭘까.
‘홍길동전’을 번역해 펭귄클래식 최초의 한국문학 작품으로 등재시킨 강민수 미국 미주리주립대 역사학과 교수는 18일 한국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스미스의 번역을 출발어에 충실한 원문주의와 도착어 위주의 과잉번역(overtranslation)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점을 찾은 작업으로 평가했다. 그는 “영어로 번역된 여러 한국소설을 읽었지만 전혀 불편하거나 어색함 없이 한국인이 한국사회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건 ‘채식주의자’가 처음이었다”며 “번역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텍스트북으로 사용해도 좋을 모범”이라고 말했다.
한국문학 번역의 실패는 한국어에 너무 충실하게 번역해 외국어가 매끄럽지 않은 경우와 외국어 독자들을 지나치게 고려한 나머지 한국어와 한국문학 고유의 특징을 소거해버리는 경우로 크게 나뉜다. 그간 한국문학 번역은 한국인 외국어 전공자가 주로 맡아 전자의 경우가 많았으나, 외국인 번역자가 증가함에 따라 후자의 과잉번역도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강 교수는 “과잉번역된 작품은 외국독자가 읽기에 편안할지는 몰라도 한국소설이라는 느낌이 휘발되고, 작품 고유의 색채는 유실된다”며 “과연 한국어로 어떤 단어였길래 이렇게 번역했을까 짐작도 되지 않는 영어 번역들이 꽤 많은데 스미스의 ‘The Vegetarian’에서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채식주의자’와 ‘The Vegetarian’을 비교해 본 결과, 스미스의 번역은 문장 단위의 일대일 대응을 고수하기보다 단어 가감과 구문 변화를 통해 원작의 효과를 전반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에 더 가까웠다. 스미스는 얼마 전 국내 문학잡지에 기고한 ‘채식주의자’ 번역 후기에서 “영어와 한국어의 거리 때문에 원문의 효과를 영어 번역문에 재현하고자 적확한 문장 구조와 어휘를 찾기 위해 공을 들여야 했다”면서 “이때 원문과 번역문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1부를 번역하면서는 채식을 시작한 주인공 영혜의 남편 말투에 “현학적이고 스스로 결백하다고 믿는 사람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원문에는 없는 ‘완전히’ ‘당연히’ 같은 부사를 몇 군데 삽입”했다. 남편의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성격을 더 강하게 드러내는 방식의 추가 번역이 여러 차례 보였으며, 한국사회의 위계적 에티켓을 설명하기 위한 묘사도 원문보다 훨씬 상세했다. 예컨대 회사 임원들과의 식사자리 장면에서 “아내는 웃지도, 얼굴을 붉히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은 채”를 “But the demure, apologetic smile that was the only reasonable response never came, and without even having the grace to look embarrassed(마땅히 보여야 할 얌전하고 미안한 미소는 나오지 않았고, 예의상 당황한 듯 보이려 하지도 않으며)”로 길게 맥락화해 옮겼다. 남편이 채식이 필요한 이유를 단정적으로 열거하는 대목에서는 원문에 없는 “소화불량으로 잠을 못 이룰 때(having your sleep disturbed by indigestion)”가 추가되기도 했다.
‘회식에서 마신 소주’는 회식을 이해하지 못할 영어권 독자들을 위해 ‘저녁식사 중 마신 소주(soju I’d had with dinner)’로 바뀌었고, 소주처럼 비빔밥과 김치는 각각 ‘bibimbap’, ‘kimchi’로 번역됐으나, 갈비는 ‘rib meat’, 향긋하고 달콤하게 튀긴 삼겹살은 ‘fragrant, caramelized deep-fried belly fork’로 풀어 설명했다. 닭도리탕을 ‘a thick chicken and duck soup’로, “달리다 죽은 개가 (식용으로) 더 부드럽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대”는 “driving a dog to keep running until the point of death is considered a milder punishment(더 가벼운 벌)”라고 한 오역도 일부 있었다.
소설의 특징인 시적 효과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혜의 독백은 번역가의 적극적 개입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동사를 생략한 명사의 반복으로 간결한 표현과 시적 어조를 구현했고, 원문에 없는 피와 도살(butchered bodies) 같은 표현들을 추가해 시각적 이미지는 더 강렬하게 극화했다.(표 참조) 스미스는 “영어권 독자들이 원서를 접한 독자들과 최대한 근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요소로 한강의 시적인 문체를 꼽으며 “한강 작품은 분위기와 어조와 결이 하나의 정제된 이미지로 만들어져 번역가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미국 하버드대 영문 한국문예지 ‘아젤리아’ 편집장인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 교수는 “데버러 스미스는 몇 년 전부터 단어 선택이 예민하고 번역이 깔끔해 주목 받았던 번역가”라며 “서구문학의 전범과는 다른 한국소설의 독특한 주제와 기법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한국문학도 세계시장에서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오른쪽) 작가와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가 16일 영국 런던 맨부커상 시상식장에서 수상작 '채식주의자'를 들고 나란히 서 있다. 런던=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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