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일보 자료사진
요즘 대우조선해양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대우조선에 대한 여론이 얼마나 나쁜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우조선 스스로는 물론 대우조선 대주주인 산업은행까지 나서 뼈를 깎는 심정으로 쇄신한다고 밝혔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합니다. 시쳇말로 ‘그 동안 해 먹은 게 얼만데 고작 그거 가지고 쇄신이라고 할 수 있냐’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따져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대우조선은 200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었지만 호황에 취해 그 누구도 나서서 경고벨을 울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부·정치권·국책은행에서 내려 온 낙하산들은 대우조선에서 요직을 차지하며 매년 거액의 성과급 파티를 열었습니다. 대규모 부실이 드러난 지난해 정부는 ‘메스’를 들이대는 대신 국책은행을 통해 4조2,000억원을 추가로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우조선에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댄 돈만 13조원에 이릅니다. 사실상 혈세로 성과급 파티를 연 셈이죠. 상황이 이러한데, 대우조선 현직 임원들이 연봉의 일부를 반납하는 식의 쇄신안이 국민들 귀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말로 ‘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라는 비아냥이 계속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이유죠.
도대체 10년 넘게 정부 관리를 받던 대우조선은 왜 이렇게 망가진 걸까요. 손에 하나만 꼽기 어려울 정도로 이유는 많을 겁니다. 낙하산 인사의 폐해라든지 경영 부실을 방치한 무능한 대주주(산은) 등을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겁니다. 막대한 비용을 치르긴 했지만 이런 부분은 어떻게든 개선될 겁니다. 언론의 감시망이 집중된 이 시점에 대우조선에 낙하산을 내려 보내려는 간 큰 정부 관료나 정치인은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여전히 바로잡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전임 경영자들이 거짓 실적을 기초로 받은 성과급을 환수하는 일입니다. 최근 전임 대우조선 경영진들이 챙긴 성과급을 두고 비난 여론이 일자 산은이 소송을 통해 성과급을 거둬들이겠다고 했지만, 절차가 복잡해 성과급 환수까지는 아마 아주 오래 걸릴 겁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전임 남상태 사장과 고재호 사장이 챙긴 성과급만 220억원에 이릅니다. 문제는 이들이 거짓 실적을 바탕으로 성과급을 챙겼다는 겁니다. 성과급이 과도하게 부풀렸거나 부당하게 지급됐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입니다. 아마 감사원이 그 이전 장부까지 뒤져 감사를 진행했다면 회계부정 규모 역시 더 커졌을 거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감사원은 이런 분석도 덧붙였습니다. 대우조선은 전년도 1년 성과를 바탕으로 성과급을 매깁니다. 단기 실적만 내면 성과급을 챙길 수 있는 구조여서 경영진들이 단기 성과에 집착해 무리하게 경영을 펼치거나, 회계실적을 부풀릴 유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애초부터 경영진이 이런 회계부정에 나설 유인을 없앨 방법은 없을까요. 회계전문가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부당 성과급을 환수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거죠. 이 제도가 도입되면 경영자로서도 단기 실적을 내려고 무리한 경영을 하지 않게 되고, 특히 추후 성과급이 환수되기라도 하면 본인 명성에 금이 가기 때문에 더더욱 회계장부에 손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난 24일 한국일보가 현재 성과급 제도상의 맹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내보내자 국회가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보도 이후 미국식 제도를 본 떠 부당하게 지급된 성과급을 거둬들일 수 있는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도 개선에 서둘러야 할 정부는 느긋합니다. 본보는 주무부처인 법무부에 최근 국회의 움직임을 설명하며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영국처럼 부당 성과급 환수제도를 도입할 계획이 없는지 공식적으로 질문했습니다. 법무부는 담당 검사가 국회일로 바쁘다는 핑계를 계속 대며 3주가 훌쩍 넘겨 A4 1장도 안 되는 분량의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답변의 일부분을 직접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일반 상장회사의 임원에 대하여 지급한 성과보수를 환수하거나 이연 지급하도록 하는 등 의무화하는 것은 책임감 있는 경영활동을 유도할 수 있는 측면이 있으나, 개별 기업의 현실적 요구에 부합하는 이사회의 탄력적인 경영판단을 보장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따라서 제도 도입 여부는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회계부정 등을 통해 성과급을 부당 지급한 경우에는 상법 제399조에 따라 회사가 이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부당 성과급 환수제도 자체가 장점 못지 않게 분명한 단점도 있기 때문에 도입까지는 검토해야 할 사안이 많다는 겁니다. 또 법적으로도 소송이란 절차를 거쳐 성과급을 환수할 수 있는 만큼 당장 도입이 시급하지는 않다고 강조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릅니다. 부당 성과급 환수제가 법적으로 도입되면 애초에 경영진들이 회계부정에 나설 사전적 유인을 제거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소송을 거쳐야 하는 방식은 그런 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겁니다. 또 부당 성과급 환수제는 비용이 들지 않아 기업들로서도 제도 도입에 부담이 크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합니다. 아예 미국은 지난해 법을 고쳐 상장기업은 의무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하도록 하고 규정을 따르지 않는 기업은 상장 폐지할 수 있도록 했죠.
법무부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긴 했지만, 사실상 제도 도입 의지가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부당 성과급 환수제 도입으로 개별 기업이 탄력적인 경영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해석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잘못된 성과급을 다시 거둬들이는 건 상식에 가까운데 말이죠. 굳이 법적으로 부당 성과급 환수제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소송’을 거치면 얼마든지 환수할 수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법무부의 태도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답변을 보내주기로 한 기한이 3주나 늦어지길래 정부의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했는데,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요. 모두가 다 아는데 법무부만 ‘뭣이 중헌지’ 모르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제가 지나치게 민감한 걸까요.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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