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미국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를 결정하면서 한·중간 경제 관계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대하는 중국에서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의 핵실험에 대응해 국제사회에 대북제재를 촉구해온 한국이 거꾸로 사드 문제로 인해 중국발 대남제재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가뜩이나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태에서 한국의 무역, 관광 산업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이 본격적인 제재에 나설 경우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국 관영 언론인 환구시보는 지난 8일 사설을 통해 “그들(한국)과 다시는 경제 관계, 왕래를 하지 말고 중국시장 진출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사드 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한국 정계인사의 중국 입국을 제한하고 그들 가족의 기업을 제재해야 한다”며 한국의 정부기관과 기업, 정치인을 제재하라고 촉구했다. 환구시보가 그간 중국 정부의 의중을 대변해온 점에서 사드 배치가 사설에서 언급한 대로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중국이 비관세 장벽을 통해 한국산 제품의 수입을 제한할 가능성이다. 과거에도 중국은 외교적 마찰이 생겼을 때 수입 농수산물에 대한 검역 강화나 통관 거부, 수출 중단, 불매 운동 등 비관세 장벽을 통한 보복을 단행했다.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는 10일 “과거 중국은 대만과 관계가 나빠지자 대만산 농수산물 검역을 까다롭게 하고 대만으로 가는 관광객에 대한 심사를 깐깐하게 한 적이 있다”며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국과 교역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민간이나 지방정부에선 ‘알아서’ 줄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그 효과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1~2년 뒤에는 나타날 것”이라며 “지난해 말 한국이 중국의 ‘제2 경제무역 파트너십’이 됐는데 그 자리를 일본에 내주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은 2012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의 상대국인 일본에 희소자원인 희토류 수출 중단 조치로 대응한 바 있고, 2010년에는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을 준 노르웨이의 연어 수입을 중단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우리 정부가 농가 보호를 위해 중국산 냉동 및 초산마늘에 관세율을 10배로 올리자 중국은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한국은 전체 수출액의 4분의 1 이상, 경상수지 흑자액의 40% 이상을 중국에서 얻을 정도로 대중 의존도가 높다. 또 지난해 한국을 찾은 전체 관광객 1300여만명 중 600여만명이 중국인으로, 관광산업도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자국 여행사들을 통해 한국 여행 자제령을 내릴 경우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다. 당장 사드 배치 결정이 내려진 지난 8일 화장품, 카지노, 여행 관련 국내 기업들의 주가가 떨어지면서 이들 업종에서만 3조2000억원 가량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기업에 차별적으로 규제를 더 하거나 한국제품 수입을 제한해 중국으로 수출하던 국내 기업들의 매출이 확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국가신용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드에 반대하는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적대적으로 나올 수 있고 중국과의 교역 위축 등이 부정적으로 작용해 국가신용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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