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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uly 12, 2016

‘봉투’로 특별관리하는 국정원, 부실한 보고에도 ‘OK’ 정보위

정치BAR_은밀한 국정원과 부실한 정보위 
19대 국회 정보위의 한 보좌관. 국정원 직원이 쓱 건넨 ‘두툼한 흰 봉투’에 화들짝 놀랐다. “받지 않겠다”며 거절하니 국정원 직원이 더 당황하더라는 전언. 국정원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기관이 국회 정보위다. 돈과 정보를 앞세운 국정원의 은밀한 관리에 국회는 번번이 ‘국정원 개혁’을 구호로만 부르짖고 마는 것인지.

20대 국회 정보위원회의 첫 ‘작품’은 ‘130㎏으로 추정되는 ‘김정은의 몸무게’였다. 여야 정보위 간사는 지난 1일 첫 정보위 전체회의가 열린 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4년 사이 몸무게가 40㎏ 이상 늘었다”며 “그래서 불면증에 걸려서 잠을 잘 못 잔다”고 브리핑했다. 신변 위협 때문에 고민이 많아 폭음, 폭식을 일삼으며 이 때문에 성인병에 걸릴 가능성도 있다고 친절히 덧붙였다. 정보위 브리핑은 곧 ‘북 김정은 130㎏…30대 탈북 남성 체중의 두 배’ 등의 제목으로 기사화됐다. 과거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건강 문제를 놓고 이런저런 정보들이 무분별하게 쏟아져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김 위원장에 대한 가십성 기사가 국정원의 업무보고에서 쏟아진 것이다.
20대 국회 첫 정보위는 여야 간사가 합의한 것만 공개한다는 관례를 깨뜨리는 ‘사고’도 쳤다. 주인공은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여당 간사인 그는 1일 오후 6시50분 기자들에게 혼자 브리핑을 했다. 그는 “현재 군 장병 포섭을 기도하는 간첩 용의자 4명을 수사 중”이라며 “기무사발” 정보를 전했다. “군 정보나 자료를 빼서 북으로 보내자는 목적으로 (군 관계자들에게) 접근했다. (수사 대상은) 다 민간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수사 중인 간첩 사건을 공개한 것이다. 여야 간사가 공개하기로 합의한 내용에 없던 것이다. 이튿날엔 국정원이 피시방에서 한 남성을 간첩 혐의로 체포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고한 내용도 ‘누군가’에 의해 언론에 공개됐다. 국정원의 언론플레이인지, 특정 의원의 의도된 실수인지 아직 알 수 없다.
정보위원회는 1994년 개혁 입법의 산물로 탄생했다. 그 전까지는 국방부를 담당하는 국회 국방위원회가 정보기관까지 담당했다. 정보위는 국정원 관련 법안 처리, 국정원 예·결산 심의, 국정원장 인사청문회, 국정감사·현안보고 등을 통해 국정원을 감시한다. 국정원을 통제하는 유일한 외부기구가 국회 정보위다. 바꿔 말하면 정보위만 막으면 국정원은 안심이라는 뜻이다. 매번 ‘국정원 개혁’과 ‘국회 개혁’이 논의될 때마다 ‘정보위 개혁’도 첫손에 꼽히곤 했다. 그러나 여소야대인 20대 국회에서도 변한 건 없었다. 야당은 정보위 개혁의 과제로 정보위원들이 다른 상임위를 겸임하지 않고 정보위만 전담하는 ‘전임 상임위’로 만들자고 주장해왔지만 이번에도 관철하지 못했다.
철옹성 국정원을 관장하는 정보위에선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정보위원들은 ‘감춰야 할 기밀’과 ‘알려야 할 정보’를 어떻게 구분할까. 여소야대(여당 5명, 야당 6명)인 20대 정보위는 과거와 다른 정보위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국정원이 정보위를 ‘관리’하는 법
2014년 가을 저녁, 서울 여의도의 한 일식집에서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ㄱ은 국정원 직원 ㄴ과 처음으로 저녁을 먹었다. 서너번 점심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지만 저녁식사는 처음이었다. “술 한 잔 먹자”는 ㄴ의 청에 따른 것이었다. 가볍게 맥주가 몇순배 돌았을 때였다. ㄴ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흰봉투를 꺼낸 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ㄱ쪽으로 쓱 밀었다. 어림짐작으로 지폐 20장 정도의 두께였다. 20만원이었을까, 100만원이었을까. 아니면 고마운 마음을 담은 두터운 ‘감사편지’였을까. “받지 않겠다”고 하자 ㄴ은 매우 당황해했다. 그 모습에 ㄱ은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 이렇게 봉투를 거절하는 경우가 처음이구나. 다들 받는구나.’ ㄱ은 자기 의원을 담당하는 ㄴ과 그 뒤로 만나지 않았다.
국정원은 정보위원들을 특별관리한다. 정보위원들은 다른 상임위를 겸직하는데, 해당 상임위에서 해외 출장을 가면 국정원은 이들을 따로 챙긴다. 외국에 도착하면 현지 국정원 요원들이 나서 정보위 소속 의원들을 접대한다. 한 정보위 관계자는 “동행한 다른 상임위원들이 이 모습을 보면서 ‘역시 정보위는 다르구나’ 하고 느낀다”며 “이런 대접을 받고 귀국하면 아무래도 국정원을 세게 조질 수 없다”고 말했다.

김정은 몸무게 등
가십성 정보
정보위는
‘국정원발 뉴스' 통로
국정원, 의전·접대 능하나
‘기밀 보호’이유 보고는 부실
국회의 예산·감시 강화 위한
'전임 상임위화' 또 흐지부지

정보위 커튼은 1년 내내 열리지 않는다
정보위는 국회 내에서도 보안이 별나기로 유명하다. 국회 정보위에는 3명의 전속 속기사 팀이 있다. 정보위원장실 맞은 편에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사무실이 있는데 이 방엔 외부망과 전혀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가 있다. 정보위 속기사팀은 이 컴퓨터로만 회의록을 완성한다. 외부 도움 없이 팀 자체 인력만으로 완성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모두 경력 15~20년 이상의 베테랑들이다. 1~2년에 한번 팀원이 교체될 때마다 엄격한 신원조회를 거친다. 정보위는 회의가 자주 열리지 않기 때문에 정보위 소속 속기사들은 손이 빌 땐 다른 상임위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다른 상임위의 속기사들은 정보위를 돕지 못한다. 완성된 회의록은 다른 회의록과 달리 의정기록과가 아닌 정보위원회에 따로 보관된다. 이 회의록은 정보위원장의 허락을 받은 국회의원만 열람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볕이 좋은 날도 정보위 회의장 커튼은 열리지 않는다. 회의장 안에서 말하면 공기가 떨리고, 떨린 공기는 창문을 흔들며, 이 진동은 도청장치에 의해 말로 복원되기 때문이다. 창문엔 도청방지장치도 붙어 있다. ‘귀대기’(기자들이 방안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문틈에 바짝 귀를 대고 엿듣는 취재방식)도 통하지 않도록 방음설비를 갖췄다. 다른 상임위 회의장엔 의원들 자리마다 컴퓨터가 놓여있지만 이곳엔 없다. 공식적으로, 의원들은 회의장에 휴대전화도 들고 들어갈 수 없다. 보고를 듣는 동안 각자 메모를 할 순 있지만 회의가 끝나면 메모지도 수거한다.

‘수박 겉핥기’ 예산 심사
유별난 보안 강조는 필연적으로 감시를 방해한다. 국회는 정책과 예산을 들여다봄으로써 행정부를 견제한다. 그러나 국정원의 경우 정책에 관해선 ‘어디까지 보고 의무가 있는지’, ‘비밀의 경우 어떤 형식으로 보고해야 하는지’ 등의 규정 자체가 없다. 피감기관인 국정원이 스스로 판단해 보고 내용과 수위를 결정한다.
그나마 국정원 예산은 보고 의무가 법에 규정돼 있다. 국가정보원법 12조는 “예산안의 첨부서류를 제출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모든 예산에 관해 실질심사에 필요한 세부 자료를 정보위에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공개’는 안해도 되지만 필요한 자료는 ‘후공개’하라는 취지다. 국정원 관계자는 “일반 행정부처와 달리 예산안의 첨부서류를 미리 내지 않아도 되지만 정보위 예산을 심사할 때는 다 제출하고 있다. 정보위 소속 전문위원들에게도 제공한다. 극도로 보안을 요구하는 공작 관련 내용만 빼고는 상세히 제출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정원 예산 감시는 턱없이 부실하게 이뤄진다는 게 전·현직 정보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미리 자료를 받아 분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전에 검토할 수 없으니 국정원 자료의 진위를 검증하는 건 불가능하다. 정보위 경력이 많은 한 보좌관은 이렇게 설명한다. “국정원 예산서는 우리나라 법전만한 두께다. 국회 본관에 있는 정보위 정보열람실에서 의원만 이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수백개에 이르는 사업 이름이 잔뜩 있는데, 훑어보다가 지친다. 일부 사업에 대해 ‘세부 설명자료를 내라’고 하면 의원에게만 대면보고를 한다. 사전 준비를 할 수가 없으니 그냥 국정원 설명을 죽 듣는 거다.”
그나마 의원들이 의지할 수 있는 건 정보위 전문위원들이 사전에 국정원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검토보고서다. 의원들은 이 보고서 한 권에 의지해 수백쪽에 달하는 국정원 예산을 ‘열람’만으로 감시해야 한다. 정보위 간사를 맡고 있는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은 “보좌관 도움 없이 의원이 열람만 하고 국정원의 설명만 들어서는 예산 통제가 안된다. 여당 의원들 중에는 ‘국정원 예산은 그냥 훑어만 보는 것’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2013년 당시 정보위 위원이던 유인태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에서 두꺼운 책을 가져와 30분에서 1시간 동안 대면보고한다. 국회의원이 그 시간 동안 보고 뭘 알 수 있느냐. 항목을 물어보고 대충 이런 데 쓰는 것이라는 대답을 듣는 게 예산 심의다. 정보위원들이 무능해서 국정원을 통제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예산은 다른 예산과 달리 국회 예결산특별위원회의 추가 심사도 받지 않는다. 오직 정보위 심의만 거친다.

‘보안 사고-부실 보고’의 악순환
제대로 된 감시를 위해선 충실한 자료 공개가 필수다. 하지만 공개에는 보안사고 위험이 뒤따른다. 보안사고가 빈발하고,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이 두루뭉술한 자료를 제공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의회의 경우 정보기관의 철저한 정보 공개와 이에 대한 엄격한 보안이 명문화돼 있다. 상·하원 모두 수십쪽 분량의 정보위 운영규칙을 갖고 있다. 보고내용 유출 행위에 대한 처리 절차는 물론, 회의 공개 기준, 정보기관의 예산안 제출 방식과 범주, 시한 등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보기관에 대한 의회의 강력한 무기는 예산 통제력이다. 대체로 정보기관이 요청한 예산을 반영해주지만 예산 심의 자체는 상세하게 진행된다. 또한 미 의회는 기밀자료 접근권을 관련 규정에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정보기관에게 시민의 권리를 침해했거나 법·행정명령·대통령 지시 혹은 부서나 기관의 규칙과 통제를 위반했다고 볼 수 있는 모든 정보활동을 위원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현재 진행 중인 활동뿐 아니라 향후 진행할 활동에 대해서도 사전 보고를 받고 승인하는 권한까지 갖고 있다.
미국도 정보위 회의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비공개다. 다만 정보 출처, 정보를 획득하는 방식, 작전과 관련한 자료는 철저히 기밀을 유지한다. 그러나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결의를 거쳐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만약 정보기관과 공개를 둘러싸고 의견이 맞설 경우엔 본회의 결의를 통해 공개가 가능하도록 길이 열려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보기관이 반대할 경우 궁극적으로 의회가 정보 공개를 강행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정보위 운영이 주먹구구식 ‘관행’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회법(54조)은 국회 정보위 구성과 운영에 필요한 구체적인 사항은 국회 규칙으로 정해 시행한다고 정하고 있지만, 그런 규칙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허태회 선문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정보위가 세부 규칙에 의해 운영되지 않다보니 더 정략적이고 파행적으로 운영돼 정쟁에 매몰될 가능성이 크다”며 “‘정보의 정치화’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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