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오른쪽)과 토머스 밴들 미8군 사령관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정된 바 없다”던 국방부, 8일 ‘쫓기듯’ 배치 발표
실제 배치는 내년 말인데 실무 검토도 안 끝난 결정을
왜 그리 촌각 다투며 발표했나…시험 중 합격자 발표한 꼴
국방부 통제·압도 청와대, 정치효과 노린 미국 추동력
운영개념조차 모호한 사드로 방어 먼저 하는게 합리적인가
실제 배치는 내년 말인데 실무 검토도 안 끝난 결정을
왜 그리 촌각 다투며 발표했나…시험 중 합격자 발표한 꼴
국방부 통제·압도 청와대, 정치효과 노린 미국 추동력
운영개념조차 모호한 사드로 방어 먼저 하는게 합리적인가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사드라는 이름의 ‘유령’
만일 여러분이 대기업 공채 시험을 치르는 중에 다른 한쪽에서 합격자를 발표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겠는가? 지난 8일 한·미 양국의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은 사뭇 도발적이다. 결정 직전까지 국방부는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결정이 임박했다”는 여러 언론 보도를 강력히 부인했다. 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한민구 국방장관은 사드 배치가 결정된 바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드 배치에 대한 한·미 실무그룹의 검토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지어 “(한 장관 본인조차) 아직 검토 결과를 보고받지 못했다”며 당분간 어떠한 결정도 없을 것임을 누누이 강조했다. 이렇게 신중하던 국방부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가 개최된 7일이었다. 상임위원회 회의가 끝난 직후에 국방부는 다음날 사드 배치에 대한 중대 발표가 있을 것임을 국방부 기자실에 통보하면서 일대 파란이 일었다. 국방부는 국회 여야 3당에도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 8일 오전에 한민구 장관이 국회를 방문하겠다고 통보했다. 같은 시기에 국방부는 중국과 러시아 대사관에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발표 당일인 8일에도 마치 국방부는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오후 3시로 예정된 발표를 오전 11시로 앞당기면서 또 한 번의 커다란 혼란을 자초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결정
여기서 당장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어차피 사드 배치는 결정되더라도 부지 선정과 주민 설득, 실제 배치를 위한 준비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국방부는 배치 결정을 내리더라도 실제 배치 시기는 내년 말이 목표 시한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촌각을 다투면서까지 8일 오전에 사드 배치를 결정하고 이를 발표해야만 할 절박한 사정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점이다. 한바탕 태풍이 몰아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인 11일에 열린 국회 국방위에서 국방부는 한·미 실무그룹의 검토 결과를 담은 공동 검토보고서가 “이제 작성 중”이며 “곧 한·미 양국 국방장관에게 보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아직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따른 작전, 법률, 환경 요인에 대한 한·미 양국의 실무 검토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말해준다. 원래 국방부는 실무 검토팀의 공동 검토보고서를 확정하고 양국 국방장관이 10월의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이 보고서의 건의 내용을 수용하는 형식으로 한반도 사드 배치를 결정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이전에 국회와 언론에도 충분한 설명을 통해 협조를 구하겠다는 다짐도 수없이 언급했다. 그런데 이번 결정은 국방부가 설정한 절차와 과정을 전부 뒤집는 것으로, 아직도 시험이 끝나지 않았는데 합격자 발표가 미리 났다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비정상적 의사결정은 즉시 커다란 혼란으로 비화됐다. 한-미 간 실무검토 내용이 중간 브리핑이나 설명 없이 난데없는 정책결정으로 표출된 데 대한 충격과 혼란은 사드가 배치되는 부지가 있는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까지 포괄하는 동북아 국가들에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도대체 7일의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에서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압도해버린 것일까?
이 문제를 규명하기에 앞서 이와 유사한 또 하나의 사례를 참고해보자. 2014년 12월 말에 체결된 ‘한·미·일 정보공유약정’이 바로 그 사례다. 약정 체결이 임박한 시점에 한민구 장관은 국회에서 “약정 체결은 한·미·일 국방차관이 만나 조인식을 거쳐 체결된다”고 설명하며 “그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돌연 12월29일이 되자 국방부는 “사실은 12월26일에 이미 3국 차관의 서명을 마쳤고 이미 발효되었다”고 말을 바꿨다. 차관급 회의를 열 틈도 없이 미 국방부의 한 국장급 관리가 한국과 일본을 각기 방문해 서명을 받아 갔다는 이야기였다. 이 사실을 간과한 한 장관은 이미 서명이 끝난 약정에 대해 국회에서 엉뚱하게 설명을 했다는 점도 드러났다. 여기서 드러난 의문은 3국 차관회의를 통해 모양 좋게 조인해도 될 일을 왜 이렇게 비정상으로 처리해서 국방부가 공연히 빈축을 샀느냐는 점이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곧 밝혀졌다.
미국 국내정치에 좌우되는 안보
2014년 6월에 미 의회는 미 국방부 국방예산을 승인하는 ‘국방수권법’을 통과시키면서 그해 “연내에 한국, 일본과 정보협력을 도모하는 합의를 성사시키라”고 국방부에 주문한 바 있다. ‘연내’라는 촉박한 시점에 민감해진 미 국방부가 차관급 회의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 우리 쪽에 차관급 회의를 생략하고 서명을 종용해온 것이다. 미국 쪽의 요구를 받은 당사자가 한민구 국방장관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국방장관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서명이 이루어졌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국방장관을 거치지 않고 서명이 이루어지도록 업무를 통제할 수 있는 당사자는 청와대의 김관진 안보실장밖에 없다는 시중의 여론이 조성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해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이 있자 국회 국방위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주문하는 국방위원들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며 확성기 방송 재개에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엔에스시 상임위에서 확성기 방송 재개가 전격 결정되자 뒤늦게 이를 따라가는 소극적 행보로 질타를 받았다. 당시에도 국방부를 압도하는 김관진 안보실장에게 시선이 쏠렸다. 이렇듯 손발이 맞지 않는 청와대와 국방부의 어긋나는 행보를 보면 중요한 군사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국방부의 전문적인 검토를 압도하는 청와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이번 사드 배치 결정과 부지 선정 발표 과정에서도 역시 7일의 엔에스시 상임위가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청와대가 미국과 어떤 대화를 했고, 그것이 이번 결정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가라는 문제이다. 5일에 미 국무부의 프랭크 로즈 차관보가 한국에 와 있었다는 점도 사드 배치 결정을 위한 막후 대화가 한-미 간에 진행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11월의 미국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미국의 국내정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유력 정치인들이 대중 강경정책을 두고 선명성 경쟁이 매우 격화된 상황이다. 때마침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 간에 전략적 대치가 강화되고 이번 기회에 중국을 강하게 체벌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 미국은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결정을 중국에 대한 강경 메시지로 활용할 여지가 매우 크다. 사드 배치로 인한 군사적 효과는 내후년이 되어서야 나타나지만 사드 배치 발표로 인한 정치적 효과는 바로 지금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이 지금 사드 배치를 전격적으로 발표하게 한 추동력으로 작동했다는 ‘미국 역할론’에 많은 전문가들이 동조하고 있다.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그러한 미국의 복심을 대변하는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이 “중국에 경사되는 경향을 보인 한국이 다시 미국의 품으로 돌아왔다”며 일제히 환영의 논평을 게재하고 있는 현상을 지목한다.
우리가 모르는 무기의 환각
이번 사드 배치 결정의 비정상성, 비논리성은 발표 시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드 배치가 미국의 미사일방어(MD)에 사실상 한국이 참여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국내외의 의심을 풀어줄 핵심 사안은 한국에 배치되는 사드의 실제 운영개념과 절차가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있다. 즉, 사드를 통제하는 군사지휘관은 누구이며, 사드 레이더에서 수집된 미사일 정보는 어느 범위까지 공유되는 것이며, 사드와 연동되어 합동작전을 하는 한·미·일 미사일방어 무기체계는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사드의 운영개념과 절차는 배치 이후에 결정될 예정”이라며 “현재로서는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이다. “사드가 미국의 엠디 체제의 일환이냐?”는 질문에 대하여 한민구 국방장관은 “미국의 엠디에 대해 설명조차 들은 바 없다”며 선을 긋는다. 바로 이 점이 현재는 북한 미사일 방어용으로 도입되는 사드가 장차 중국 견제를 위한 거대한 미사일방어망으로 편입되느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임에도 국방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운영개념조차 모호한 사드가 과연 한반도 방위에 얼마나 기여를 하게 될지 어떻게 확증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배치 부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애초 국민들 중 일부는 수도권 방어에 대한 기대로 사드 배치에 많은 지지를 보낸 바 있다. 그러나 사드는 서울 방어에 기여하는 ‘한강 전선’에 투입될 무기로 기대했는데 경북 성주로 내려가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는 무기라는 점이 밝혀졌다. 여기에는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서해가 아닌 동해에 가까운 영남으로 지역이 설정되었다는 점도 고려되었겠지만, 사실상 전시에 미 증원군이 들어오는 ‘미군기지 방어용’이라는 사드 배치의 기본 성격에 따라 부지가 결정되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듯하다. 이런 사드 배치의 기본 목적과 성격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마치 사드가 한반도 안보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만능의 무기로 그 이미지를 확산시켜온 국방부가 어쩌면 자승자박의 논리적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 “사드가 배치되면 한반도 안보에 기여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만으로 더 중요한 세부사항에 대해 접근하지 못한 국방부가 겪는 일종의 혼란으로 보여진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사드는 미국 무기이기 때문에 접근이 제한된다”며 우리가 사드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경로가 차단되어 있음을 필자에게 직접 밝힌 바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사드의 한반도 안보에 대한 효용성 문제도 국방부는 아무런 검증이나 확인이 곤란하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국방부가 사드에 대해 아는 지식 정도라면 사드는 하나의 유령무기이거나 허상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다. 14번의 요격실험에 대한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국의 자료에 대해서는 국방부는 요격실험 조건, 즉 날씨, 불시성, 요격고도, 거리, 실전과의 유사성 등 세부 사항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의 패트리엇이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을 90% 이상 요격한 것으로 미 국방부가 발표하였지만 나중에 미국의 회계감사원(GAO)이 검증한 결과 실제 요격률은 2%밖에 되지 않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가 무기체계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검증’과 ‘확인’이다. 군사무기의 부풀려진 성능은 실전배치 이후 또다른 무기 수요를 불러일으키는 밑 빠진 독이다. 안전에 대한 수요는 끝이 없어서 한번 악순환에 빠져들면 헤어날 길이 없다.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그러한 악순환으로 안내하는 일종의 독약이 될 수밖에 없다. 성주로 사드 배치 부지가 결정되자 곧바로 서울 방어를 위해 패트리엇을 증강하고 사드를 추가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뒤를 잇는 것은 벌써 그러한 군비경쟁의 신호라고 할 수 있다.
군비경쟁의 역설
사드에 대한 비논리적 접근의 백미는 북한이 아직 핵미사일을 완성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데 있다. 공격자가 계속 실험을 통해 공격무기를 증강하고 있는데 방어자가 벌써 공격능력을 기정사실화하고 방어개념을 확정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냐는 문제다. 만일 사드, 패트리엇, 이지스함과 같은 방어체계를 우리가 먼저 확정하게 되면 북한은 이를 잘 관찰한 뒤 다른 재래식 수단으로 우리의 방어망을 돌파하는 계획을 수립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북한은 사드의 방어망을 돌파할 수 있는 다른 재래식 수단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이것이 이번에 사드 배치 결정이 성급할 뿐만 아니라 무모한 결정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방어의 역설이다. 사드가 숭배 대상이 된 방어의 이데올로기가 유령처럼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다.
▶ 김종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할 말은 하는 군사전문가. 1993년부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과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방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과 별들의 암투를 지켜봤다. 권력과 군대가 독점하는 안보가 아닌 ‘진짜 안보’를 지향한다. 제20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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