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Click map below !!)

Turkey Branch Office : Europe & Middle East (Click map below !!)

Mobile Phone Cases (Click photo here !)

Mobile Phone Cases (Click photo here !)
Mobile Phone Cases

Saturday, July 16, 2016

구의역 참사 출발역은 2008년 메트로 외주화 잘못낀 첫 단추, 안전 보장보다 ‘공기업 철밥통’ 깨는데 골몰… 김상돈·오세훈·이명박 책임론

2008년 1월2일, 김상돈 전 서울메트로 사장은 신년사에서 “2010년까지 정원의 20%인 2088명을 감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돈 전 사장은 이를 ‘창의혁신 구조조정’이라 부르며 서울메트로를 ‘고객만족도 1위의 초우량 공기업’으로 만들 것이라 공언했다. 초우량의 조건은 인력감축을 필두로 한 조직슬림화였다.

구의역 참사의 요인으로 지목된 ‘외주화’는 김상돈 전 사장으로부터 시작됐다. 창의혁신 프로그램의 핵심 중 하나가 업무 분사였다. 현재 서울시는 이 시기에 외주화된 5개 업무를 서울메트로 직영으로 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고 당시 이정원 서울메트로 사장, 메트로 전적자 ‘메피아’ 등에 책임이 돌아갔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지금의 지하철 업무 외주화 문제를 누가 어떻게 진행했느냐 여부일 수 있다.

노동 빠진 ‘시민위원회’… 서울메트로 계획대로 구조조정

1월2일 신년사 후 창의혁신 프로그램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1일 ‘초우량 공기업 도약을 위한 서울메트로 창의혁신프로그램’이 발표됐고 10일 후 이 프로그램의 안을 심의할 ‘창의혁신시민위원회’가 곧바로 발족했다. 서울메트로는 4월 외주화 계획을 담은 ‘분사추진계획안’을 작성했고 시민위원회는 이를 4월23일 심의해 5월9일 서울메트로 이사회가 의결 통과시켰다. 분사 추진 논의가 끝나는 덴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노동자 측과 제대로 된 협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 (왼쪽부터) 김상돈 전 서울메트로 사장, 음성직 전 서울도시철도 사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이치열 기자

사측은 ‘창의혁신 추진 노사 공동협의체’를 구성하려고 수차례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으나 노조 측의 입장은 달랐다. 노조 선거가 끝날 때까지 협조를 연기했고 선거 후 협의를 시작하려 했더니 서울메트로가 ‘노조의 거부’로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이다. 또한 노조가 ‘창의혁신 프로그램 백지화’를 요구하는 데 대해 사측은 경영상의 이유로 노사 단협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공기업 및 노동자에 큰 영향을 주는 구조조정 안을 합의 과정없이 진행하기는 어렵다. 서울메트로는 이 역할을 ‘창의혁신시민위원회’에 준 것으로 보인다. 서울메트로의 ‘창의혁신 프로그램’ 문서에 따르면 학계·언론계·재계 등 각계의 24인으로 구성된 시민위원회는 구조조정의 방향 설정, 분야별 계획 심의·확정, 추진상황 점검·확인 등 심의·자문 기구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2008년 한해 7회 회의를 통해 49건의 개혁안을 심의 확정했다. 위원회는 2월5일엔 고객·효율 중심의 조직개편안 등 4개 안건을, 2월21일엔 불합리한 단협조항 개선안 등 23개 안건, 3월20일엔 ERP() 시스템 구축안 등 16개 안건을, 4월23일엔 분사추진계획안 등 3개 안건을 심의했다. 분사추진계획안이 외주화와 관련된 안건이다.

위원회는 서울메트로의 공문이 ‘중추역할을 했다’고 지적한 것과 다르게 ‘거수기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서울지하철노조의 구조조정 투쟁에 함께 했던 한 노조 관계자는 “이름만 빌려줬을 뿐이지 실제로는 특정 한두 사람이 결정하고 김상돈 전 사장이 하자는 대로 했을 것”이라 말했다. 당시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심의·의결을 했다고 돼있으나 사실상 자문 기구였다. 조찬 등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복수의 위원은 “이름을 올려달라고 해서 들어갔고 한 번 참여하고 그 이후로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회의록 등 심의 기록도 남겨져 있지 않다.

문제는 이 위원회에 노동계를 대변할 위원이 없는 점이다. 위원회는 언론인 대표 6명, 교수·연구진 출신 8명, 재계 대표 5명, 변호사 2명, 회계사·노무사 각 1명, 시의원 1명 등으로 구성됐고 위원장은 배병휴 전 매일경제 편집고문이었다. 교수와 변호사는 노사관계 전문가에 가깝고 노무사로 참여한 심종두 전 노무사는 ‘노조 파괴’로 노무사 자격을 박탈당한 바 있다. 서울시의회도 ‘노동계를 대변할 위원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상돈 전 사장은 서울시의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노사를 떠나 제3자의 객관적 입장에 있는 시민대표와 전문가들이 있다”고 답했다.

노조는 2008년 9월 시민위원회와 김상돈 전 사장을 고소했다. 이들은 “공사 사장의 독단적 판단으로 구조조정을 절대 할 수 없다. 중요사항은 이사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면서 “행정안전부장관으로부터 경영평가 결과 우수한 나등급을 받았고 서울메트로를 경영개선하라는 어떤 명령이 없었음에도 이사회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시민위원회라는 임의단체를 결성했다”고 밝혔다. 고소는 기각됐다.
▲ 2008년 서울메트로 창의혁신시민위원회 활동 개요

주먹구구식 공기업 분사… “‘분사’는 인력퇴출, 비용절감 두 마리 토끼 다잡는 방법”

서울메트로가 ‘조건부 외주용역’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한 때는 대략 9월부터다. 김상돈 전 사장이 서울시의회로부터 “분사의 법적 근거가 무엇이냐”는 추궁을 듣고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하고 부터다. 김상돈 전 사장의 “분사에 관한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는 답에 당시 류관희 한나라당 시의원은 “규정이 없는데 어떻게 분사를 하냐. 공기업을 떼어낼 때는 규정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재차 따져물었다. 공기업이기 때문에 엄밀한 법적 근거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돈 전 사장은 분사가 아니라 외주용역이라 정정하겠다고 답했다. ‘조건부’는 서울메트로가 정한 분사가 경쟁입찰에 의한 외주용역이 될 수도 없기 때문에 붙인 한정어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공기업도 기업’이라는 이유에서 경영상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업무 분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기업의 위상과 의미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면 분할은 엄밀한 절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조직슬림화 취지에 맞춰 설계된 ‘분사’가 엄밀히 설계되지 않았다는 점은 이후 진행과정에서도 서서히 드러났다.

노조 측 관계자는 서울메트로의 ‘분사’는 ‘직원 퇴출’과 ‘비용 절감’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안이었다고 말했다. 일부 업무를 외주화하고 정년을 1~5년 남긴 고령직원을 전직시켜서 서울메트로 슬림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뿐더러 이들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고용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조는 분사가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위장도급으로 인한 불법파견근로성격이 짙은 데다 각 업무들이 같은 교통 신호 체계에 묶이지 못해 지하철 안전에 위협이 된다며 적극 반대했다.

▲ 2008년 4월29일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은 창의혁신 프로그램에 반발해 김상돈 서울메트로 사장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노조는 8월부터 행정법원에 분사중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것으로 시작해 서울시의회, 서울시장, 서울지방노동청 강남지청, 행정안전부, 국토해양부 등에 ‘편법적 분사’를 중지해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노조는 메트로의 분사는 자회사설립, 상법상 분할, 민간위탁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회사라면 서울메트로의 출자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공기업은 상법에 적용되지 않는다. 위탁의 경우는 경쟁 입찰에 의한 계약이어야 한다. 사측이 지방공기업법과 서울시 조례를 모두 위반했다는 것이다. 김상돈 전 사장은 “분사는 일반적인 업무추진의 형태이므로 법적 근거가 필요치 않고 서울시와 행정안전부의 전부 해석을 받은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위장도급 논란도 있었다. ‘합법적 도급관계’는 도급회사가 도급을 준 회사와 사업경영상, 인사노무상 독립성을 가지는 관계다. 도급회사가 서울메트로의 설비, 자재를 일체 공급받고 이면합의서에 서울메트로 전적자 채용·고용 조건이 명시돼있는 등 자율성이 없기 때문에 위장도급에 따른 불법파견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메트로는 “위장도급은 사업경영상, 인사노무상 공사가 직접 개입해 도급업체 독립성을 훼손하는 경우에 성립한다”고 반박했다.

서울메트로는 위탁용역 입찰을 2주 정도 앞두고 관련 근거 조항을 신설하기도 했다. 서울메트로는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 조항을 회계규정에 넣었다. 협상에 의한 계약 체결은 서울시가 정한 계약심사 규칙과 관계없이 양자 간 협상절차를 통해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방식이다. 노조 관계자는 “업무와 인력을 함께 분사해야 할 서울메트로에게 필요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메트로는 규정을 신설했지만 신설 규정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설명회 선 개최, 40일 전부터 입찰공고 게시 등의 규칙을 지키지 않아 시의회의 지적을 받았다. 계약 근거만 신설했지 계약 제안서를 공정하게 평가할 ‘제안서평가위원회’ 구성 요건 등은 규정하지 않아 무리한 분사 추진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비판도 받았다.

“내부 출신이 설립한 특정회사에 용역 밀어주기를 했다”는 특혜 논란, “도시철도사업의 일부를 위탁받을 땐 국토해양부장관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는 도시철도법 위반 논란 등도 일었다.

노조 관계자는 “이와 같은 문제 많은 분사는 자기 입맛에 맞게 비용 효율성 최대화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충분히 설계하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미숙한 외주화 추진이 수차례 드러났음에도 서울메트로는 계획대로 분사를 추진할 수 있었다. 서울메트로는 분사 첫 단계로 7월 역무·유실물센터 업무와 기지 내 구내운전 업무에 대한 용역 입찰을 공고했고 9월부터 영업을 개시했다.
▲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논란의 과정에서 ‘지하철 안전’에 대한 강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김상돈 전 사장은 2008년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비용절감, 인력 효율화, 민간회사로서 서비스 질 제고 등의 이점만 강조했다.

당시 노조는 구조조정을 저지하기 위해 이사회·사장 출근 저지 투쟁, 시청역 및 사장실 앞 농성, 단식농성, 사측 고소·고발 등의 방법으로 사측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이들은 인원 감축과 업무외주화가 결국 지하철 안전을 훼손할 것이라 주장했다. 노조는 파업 직전까지 갔으나 11월 결국 노사협의를 체결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집행부는 이후 민주노총 탈퇴를 이끈 노사 협조적인 집행부로 물갈이됐다.

‘메피아’ 만든 건 김상돈 전 사장 구조조정안

구의역 참사로 숱한 비판을 받은 ‘전적자 특혜’는 서울메트로가 설계한 규정이다. 서울메트로는 명예퇴직을 1~5년 남긴 고령 직원들에게 3년 이상 정년이 늘어나며 현재 임금의 60~80%를 주겠다고 약속하며 전직을 홍보했다. 서울메트로는 이미 2008년 4월 분사추진계획안에서 “분사 전출 직원의 용이한 확보를 위해” 이런 방침을 세웠다고 밝히고 있으며 김상돈 전 사장 또한 서울시의회 업무보고에서 “(분사로 나가는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메트로는 ‘분사전출 명예퇴직자’를 예우한다고 △명예퇴직일자로 1직급 특별승진 △금2냥 지급 △공로휴가 20일 부여 △공로여행 실시 △명예퇴임식 실시 및 서울시장 표창 수여 등의 혜택을 주기도 했다. 이 결과 2008년 9월14일에 44명, 9월19일에 34명 등이 명예퇴직했다.
▲ 2008년 서울메트로가 작성한 분사추진계획안 중 일부.

‘안전’ 언급한 적 없는 김상돈·오세훈·이명박의 ‘공기업 선진화’

오랫동안 공공 교통 업무에 종사한 관계자들은 “교통 안전은 업무, 인력이 단절돼선 이룰 수 없다”고 지적한다. 각 업무들이 신호로 연결되기 때문에 일원화된 구조 내에서 소통·협조 체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지적에도 2008년 안전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엔 서울메트로를 포함한 서울시·정부의 비용 효율성에만 중점을 둔 ‘공기업 선진화’ 흐름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상돈 전 사장은 2010년까지 2088명을 감축한다는 계획 하에 2008년 1만284명의 직원을 9880명으로 감축했고 그 과정에서 무능력한 직원을 ‘서비스지원단’에 발령 내는 공무원 퇴출제를 실시했다.

2006년 임기시작부터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역설해 온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10년까지 5개 공기업에서 3406명을 감축해 연간 1800억 원 절감할 계획임을 밝혔고 서울시 자체 인력도 1500명 줄일 예정임을 밝힌 바 있다. 인력감축 계획은 경영성과계약 등에 연동돼 하위 기관에 압력을 줬다. 김상돈 전 사장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간 경영성과계약을 보면 404명 인력감축 목표가 성과 항목으로 지정돼있고 연봉은 경영 성과에 따라 정한다고 돼 있다.

이명박 정부는 더 큰 그림을 그려 이 흐름을 주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공공부문에도 경쟁을 도입”하며 “공무원 수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빠른 시일 내에 혁파”하겠다며 2008년을 선진화 원년으로 선언했다. 이 전 대통령은 민영화, 통폐합, 기능조정, 경영효율화 등을 공기업 선진화 4대 원칙으로 발표해 인천공항공사, 철도공사, 한국전력 등의 공기업자회사 매각, 지분 매각, 인력감축 등을 추진했다. 당시 기획예산처의 공공부문 평가 제도를 통해 공공기관이 선진화 원칙을 따르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가령 ‘인건비’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직접고용보다 ‘사업비’로 포함되는 간접고용을 늘리는 식이었다.

▲ 2016년 5월31일 구의역 참사 피해자의 친구와 흙수저당, 청년전태일 등에서 나온 청년들이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안전’ 무시한 ‘공기업 선진화’ 책임 물어야

당시 서울메트로 업무 외주화는 의회기관과 여론·언론의 조명을 크게 받지 못한 상황에서 물꼬가 텄다. ‘공공기관 선진화’ 슬로건을 건 대통령이 당선된 상황에서 공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견제력이 강하게 발휘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있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국회 153석으로 과반을 차지했고 서울시의회에서도 113석 중 91석을 차지했다. 2008년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에서는 서울메트로 분사 절차가 위법적이라는 지적 외엔 별다른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지금보다 낮았다는 평가도 있다. 하청구조에 따른 위험의 외주화 문제는 2011년 12월9일 인청공항철도에서 선로보수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 5명이 뒤에서 달려오던 열차에 치여 숨진 사건을 계기로 공론화됐다. 안전장비 착용, 안전책임자 입회, 열차운행 감시 등 안전매뉴얼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고 작업을 서두르느라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정황도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사내 하청 구조가 빚은 참사’라는 지적과 철도노동자의 위험한 근무 환경이 재조명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분사 당시 안전 문제를 제기한 쪽은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했던 서울지하철노조로 좁혀진다. 노조 또한 인력감축을 중심으로 한 조직개편안 저지에 방점을 찍어 외주화 및 인력감축으로 인한 위험도 증가를 널리 의제화하진 못했다.


김상돈 전 사장은 지난 2010년 퇴임했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11년 사퇴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는 2012년 종료했다. 2008년 공공 교통 부문의 안전 문제에 사회가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는 사이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안전을 계산하지 않은 정책결정을 내려왔다. 참사 뒤에, ‘메피아’가 있기 전에, 서울메트로의 창의혁신 프로그램이 있었고 이 배경에 서울시와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드라이브가 있었다.

‘노조탄압 노무사’ 심종두도 시민위원회에 있었다

서울메트로 외주화 추진계획을 심의했던 시민위원회에 ‘노조파괴범’으로 알려진 심종두 전 노무사가 노무사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노조측은 업무 외주화 등을 통한 노동 조건 변경이 우려된다며 노동계 참여를 요청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편파적인 위원회 구성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2일 미디어오늘이 ‘창의혁신시민위원회’ 위원 명단을 확인한 결과 노조탄압으로 유명세를 날렸던 심종두 노무사가 노무사 자격으로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창의혁신위원회는 서울메트로가 2008년 1월31일 발족한 심의·자문 기구로 △창의혁신의 목표 및 방향 설정 △분야별 계획 심의·확정 △혁신 추진상황 점검·확인 등을 맡았다.

심종두 노무사는 유성기업, 발레오만도 등 민주노총 금속노조 계열 사업장에서 사측 자문을 맡아 합법파업에도 공격적으로 직장을 폐쇄하거나 어용노조 설립해 노노갈등을 유발하고 민주노총 조합원인 직원을 표적삼아 고소·고발을 제기하며 노조를 탄압해왔다. 유성기업 조합원 한광호씨는 노조 탄압으로 인한 고통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용노동부는 그가 노조파괴 컨설팅을 했고 노동부 감독 과정에서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하는 등 공인노무사법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 이유로 2012년 노무사 등록 취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정아무개 전 한국노동교육원 교수와 변호사 위원 두 명은 ‘노사관계 전문가’로 분류된다.

김상돈 전 서울메트로 사장은 서울시의회 업무보고에서 “노동계 대표를 접촉했으나 여기에 들어가기 껄끄럽다 해서 안 들어왔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2008년 3일17일 기사에서 위원회에 시민·노동계 대변 위원이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류재근 서울메트로 경영기획실장은 “노동계의 목소리는 노무사를 통해 대변한다”고 대답했으나 류 기획실장이 말하는 노무사는 심종두 노무사를 지칭한다.

서울메트로 측은 위원회가 '자문기구' 수준이라고 평가했으나 공기업 업무 분사 및 인력 구조조정 등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위원 구성 문제의 편파성을 간과할 수 없다.

당시 서울지하철노조는 사측의 구조조정안에 대해 파업을 불사할 정도로 적극 반발해왔다.

한편 위원장은 매일경제 편집고문 출신의 배병휴 경제풍월 발행인이었다. 배병휴 발행인을 포함해 언론인 출신은 모두 6명이었고 방송사 및 주요 일간지의 이사대우, 편집국장 등 임원급 언론인이었다.

재계 대표로는 삼성CS아카데미 총괄본부, 여성경영자총협회, 한국여성벤처협회장, 한국경영자협회 등에서 참석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