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은 고도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주한미군에 배치하기로 8일 최종 결정했다. 사진은 이날 용산 전쟁기념관의 MIM-23 호크 미사일. 연합뉴스
사드 한반도 배치 맞서
’중·러 미사일 협력’ 강화 뜻
동북아 군비경쟁 불붙어
’중·러 미사일 협력’ 강화 뜻
동북아 군비경쟁 불붙어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 쪽 분위기가 갈수록 격앙되고 있다. 한국·미국 당국은 “고도화하는 북한의 미사일 방어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설명하지만, 중국에선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한국이 합류한 것”이라며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드 배치 결정이 한-중 관계 악화를 넘어 동북아 지역의 군비 경쟁 격화 등 안보 딜레마 심화라는 판도라 상자를 연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정부의 반응은 단호하다. 왕이 외교부장은 9일 “사드 배치는 한반도 방어 수요를 한참 넘어선다. 다른 나라의 정당한 안보 이익에 손해를 줘선 안 된다”며 “관련 각국은 반드시 신중해야 하고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왕이 부장은 “그 어떤 변명도 무기력하다”는 말로 ‘전적으로 북한 핵·미사일 대응용’이라는 한국 정부의 공식 견해를 정면 반박했다. 전날 중국 국방부의 양위쥔 대변인은 “한·미 양국과 관련한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필요한 조처를 취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군사적 대응 조처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중국의 이런 태도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미-중 간 동북아 경쟁 구도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간에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 이후 미국이 일본·오스트레일리아·필리핀 등과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 포위 전략을 구사해 갈등·대립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남중국해의 영유권 갈등은 결국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의 관련 중재 결정(12일)을 앞둔 상황까지 왔으며, 동북아에선 센카쿠 열도(중국이름 댜오위다오)의 영유권 분쟁 등이 미-중 갈등의 불쏘시개 구실을 하고 있다.
중국한테 대규모 주한미군이 있는 한반도 남쪽은 미국의 대중국 봉쇄의 최전선에 해당한다. 이 와중에 미국의 전략무기인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니 반감이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글로벌 미사일방어(MD) 네트워크 구축과 관련해, 사드의 한국 배치로 동북아에선 한·미·일의 미사일방어 협력 강화로 이어지고, 이는 중국 봉쇄를 위한 미국의 ‘한·미·일 준동맹’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중국의 <신경보>는 8일 “사드는 미국 글로벌 엠디의 구성이므로 한국에서 수집한 정보는 세계 시스템과 연계되는 것”이라며 “미국이 중국에 대해 더 큰 전략적 우위를 점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이런 상황을 벗어나 동북아에서 미국과 전략적 균형을 맞추기 위한 군사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자오샤오줘 중국 군사과학원 부주임은 8일 <환구망>과의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의 최대 영향은 중-미-러 3개 세계 주요국 간 전략적 균형을 파괴한 것”이라며 “중·러는 핵탄두 기술의 연구와 응용을 증가시켜 핵 위협의 효과를 제고시키고 미사일방어 영역에서 협력을 확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에 대응한 중국의 핵·미사일 역량 강화를 주문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이런 군사적 대응 강화는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일의 군사적 대응을 다시 촉발해 동북아 군비 경쟁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번 사드 배치로 한국을 바라보는 중국 여론은 싸늘하다. 왕쥔성 중국 사회과학원 부연구위원은 10일 중국 <참고망> 기고를 통해 “1992년 수교 이래 중-한 관계 발전이 극도로 빨랐고 국가 간 발전의 모범이던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한국이 중-미 간 전략 안보 경쟁에서 중립을 지켰기 때문”이라며 “이번에 한국이 사드 문제에서 중립을 포기하고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을 억제한 것은 앞으로 중-한 관계 기초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환구시보>는 9일 사설에서 “미·한의 사드 배치 결정은 남중국해 영유권 중재안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남의 위기를 틈타 남을 해치는 것’”이라며 △사드 배치와 관련된 기업, 한국 정부 등의 경제제재 △사드 배치를 주장한 정치인 중국 입국 금지 등 구체적인 보복 조처를 주문했다.
한국에 대한 군사적 대응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의 인줘 평론원은 “우리도 사드 타격 수단이 있고, 한국은 타격 대상이 된 것이다. 만약 필요하다면, 우리 안보상 위협이 생긴다면 즉각 타격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한국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무력충돌 등 만약의 사태에는 한국의 사드 배치 지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다는 위협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대응책은 중국을 상대로 한 ‘외교적 설득’ 노력을 빼고는 눈에 띄는 게 없는 ‘무대책’에 가깝다. 정부는 이달 하순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릴 아세안지역포럼(ARF) 외교장관회의와 15~16일 몽골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9월 중국 항저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외교무대에서 중·러 양국을 상대로 ‘설득 외교’를 펼치겠다는 방침만 되뇌고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10일 <한국방송>(KBS)에 나와 “우리 국민 모두가 사드가 우리를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주고, 외국에 대해서도 그런 입장이 전달됐다”며 “중·러에 우리의 필요성·불가피성을 당당하게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러 정상이 공동성명을 채택하면서까지 반대한 사드 배치 관련 대립·갈등을 ‘말 몇마디’로 때우겠다는 것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