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4살 시은이(가명)가 집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2~3시간 뒤부터 아이는 복통을 느꼈고, 상태가 심각해져 설사에 피가 섞여 나올 지경에 이르자 사흘 뒤 결국 중환자실에 입원한다. 출혈성 장염에 이은 HUS(Hemolytic Uremic Syndrome·요혈성요독증후군)였다. 2개월여에 이르는 치료 끝에 아이는 퇴원했지만 신장이 크게 손상돼 투석에 의존해야 할 상황이다. 최근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신장장애 2급 판정까지 받았다. 맥도날드 측은 인과관계에 대한 명확한 입증이 없다며 보험 접수를 거부했다. 여기까지가 지난 20일 KBS 보도 내용이다.
기사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KBS 뉴스 홈페이지에서는 이례적으로 80만 건에 달하는 페이지뷰가 기록됐다. 네이버와 다음 등 각 포털 사이트에서도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아이를 응원하며 맥도날드를 성토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명확한 인과 관계에 대한 입증이 우선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맥도날드 측도 집단 감염이 아니었던 점, 해당 매장에 대한 검사 결과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진단서에 HUS 발병 원인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맥도날드 측의 주장은 얼마나 합리적일까?
맥도날드 "자체 검사 결과 해당 매장에 문제없다"
우선 집단 감염이 아니라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기사가 나간 뒤 일부 독자들은 자신이 겪은 유사한 사례를 기자에게 이메일로 알려왔다.
경기도 고양에 거주하는 백 모(34)씨는 지난해 7월 두 아이와 함께 맥도날드 매장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뒤 둘째 아들(18개월)이 식중독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백 씨는 소아과를 찾았지만 상태가 악화됐고 결국 이틀 뒤 입원했다. 그 즈음 첫째 딸(4살)도 비슷한 식중독 증상을 보였다. 두 아이 모두 격리 치료를 받아야 했다. 첫째는 며칠 뒤 건강을 회복해 퇴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은 HUS 판정을 받고 1개월여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아이에게도, 백 씨에게도 힘겨웠던 한 달이었지만 신장 기능이 크게 망가지지 않아 시은이처럼 지속적인 투석을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백 씨는 이 사실을 맥도날드 측에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한 달 정도 고생했지만 아이가 건강을 회복했다는 사실이 기뻐서 다른 건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식중독의 원인을 제대로 입증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햄버거 외에 의심스런 음식은 없었어요. 하지만 그런 대기업을 상대로 피해 보상을 받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죠." 백 씨는 이메일을 통해 기자에게 시은이 어머니의 연락처를 문의했다. "도움이 된다면 아이의 진료내역과 맥도날드 영수증을 시은이 어머니에게 보내겠습니다."
이 사례를 묶어 집단 감염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집단 감염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음식에 문제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학태 녹색식품안전연구원 원장은 "HUS를 일으키는 원인균은 덜 익은 패티뿐 아니라 제대로 세척되지 않은 양상추에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리과정에서 특정 제품 한 개에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매장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주장과 관련해 댓글에서도 논쟁이 일었다. 맥도날드에서는 기계로 패티를 익히기 때문에 덜 익은 패티가 나올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내용의 제보도 접수됐다.
김 모(36)씨는 지난해 12월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딸(4살)과 함께 햄버거를 먹었다. 아이가 햄버거를 먹는 모습이 귀여워 사진을 찍던 김 씨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색깔이 이상했어요. 아이가 먹던 햄버거를 빼앗아서 살펴봤죠. 세상에. 패티가 하나도 익지 않았어요!" 김 씨는 햄버거를 들고 매장 매니저에게 따졌다. 매니저는 김 씨에게 케이크와 쿠폰을 건네며 사과했다. 조카뻘 되는 매니저가 측은하게 느껴져 더 이상 문제 삼지는 않았다. 다행히 아이의 건강에도 별 문제는 없었다. "그 일을 겪은 후 저는 아이에게 절대 햄버거를 먹이지 않았어요."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물다. 추측컨대 직원 개인의 실수나 기계의 오작동으로 빚어진 일일 것이다. 앞서 맥도날드 측은 시은이 어머니의 항의와 관련해 "해당 매장뿐 아니라 해당 매장에 공급된 재료의 이동경로까지 모두 검사했지만 이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맥도날드 측이 언급한 '검사'에 드물게 나타나는 직원의 실수나 기계의 일회성 오작동이 포함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덜 익은 패티 보고 경악"...직원 실수·기계 오작동 가능성
이런 일련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햄버거가 HUS의 원인이었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이제 그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할 과제가 남았다. 기사의 댓글에서도 인과관계 입증과 책임론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이 문제는 결국 법정에서 풀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앞서 비슷한 사건에 대해서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2014년 9월, A씨 부부는 한 백화점 식품관에서 회덮밥을 구입해 집에서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30분 만에 부부는 설사와 구토 등 식중독 증상을 보였고 다음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5일 동안 출근도 하지 못한 부부는 백화점 식품관과 계약한 보험사에 손해배상을 요구했고 보험사는 부부를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 청구소송을 냈다.
보험사 측은 부부가 회덮밥 외에 다른 음식을 함께 먹었고, 음식을 먹은 뒤 30분 만에 식중독 증상이 발생하긴 어려우며, 같은 날 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음식을 먹었지만 식중독 증상에 관한 통보가 없었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하지만 의정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는 이들 부부가 문제의 회덮밥을 먹기 전까지는 신체적 이상이 없었던 점, 집에서도 평소 먹던 김치와 오이무침 외에 다른 음식을 섭취하지 않았던 점 등을 들며 "부부의 구토와 설사 증상은 회덮밥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으로 추인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음식을 먹은 뒤 이례적으로 30분 만에 식중독 증상이 나타났더라도 이 음식이 원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다면 판매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판결이다.
"식중독 배상 책임 판매자가 져야" 판결도
맥도날드는 지금도 시은이 어머니와 접촉하며 보험 접수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타깝게도 시은이의 신장은 이미 90% 이상 기능을 상실해 평생 투석을 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9개월 전인 지난해 9월 일어났다. 시은이 어머니 최은주(37)씨에겐 너무 긴 시간이었다.
소비자 피해 사건에서 이런 일은 흔히 나타난다. 황다연 KBS자문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소비자에 대한 보상이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라며 "어떤 피해를 봤는지, 손해액은 얼마인지, 발생한 피해가 해당 상품 때문인지 입증 책임을 피해자가 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황 변호사는 이어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 제품을 사용해 난소암에 걸린 환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미국 법원은 62억 원의 배상을 인정하고, 여기에 10배인 620억 원을 징벌적 손해배상액으로 판결했다. 반면 같은 해 우리나라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에서는 손해배상액으로 최고 3억 원에서 3억5천만 원이 인정되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양성모기자 (maria61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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