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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ly 3, 2016

[단독]‘댓글부대’ 의혹 김흥기, 1억 받은 ‘표절 보고서’ 감사원도 면죄부

미래부 1억 예산지원 엉터리 정책보고서 ‘문제 없다’
‘댓글부대’ 논란과 관련해 <경향신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국정원 출신 김흥기씨의 수상한 행적이 양파껍질 벗기듯이 계속 드러나는 데도 권력기관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다. ‘댓글부대’ 논란의 진원지가 됐던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의 글로벌 수출정보 용역사업은 온통 베일에 가려져 있고 진상규명 작업은 외면당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4월 KTL 직원 9명과 그린미디어 직원 5명 등 총 14명을 검찰에 송치했지만 정작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김씨는 명단에 없었다. 해당 용역을 수주한 그린미디어가 ‘댓글부대’ 의혹을 제기한 <경향신문>을 고소하면서 시작된 1차 명예훼손사건도 마찬가지다. <경향신문>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김씨가 중국과학원 빅데이터 센터와 계약을 맺고 2014년 지방선거 때 수상한 행보를 했고, 그린미디어 용역보고서에 국정원을 정보협력 파트너로 제시하는 등 ‘댓글부대’ 의혹을 제기하게 된 18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하지만 검찰은 아무런 자체 진상조사 없이 단지 “직접증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댓글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검찰과 경찰이 진상규명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김씨에 농락당한 기관들은 외교부, 미래부, 중소기업청, 특허청,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서울시 강남교육청 등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9월 김씨가 국정홍보지 사장을 찾아가 청와대 안봉근 비서관의 이름을 팔고 다니며 각종 사업을 제안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민정수석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김씨가 우익청년단체연합이 개최한 ‘노동개혁’ 관련 행사에 새누리당 전희경 의원과 함께 나타나 건재를 과시한 사실을 문자로 전달받고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청와대 대변인은 왜 김씨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있을까.
최소한 2편은 ‘표절’이 분명
<경향신문>은 지난 5월 시민 379명의 서명을 받아 감사원에 공익감사 청구를 했다. 김씨가 2013년 11월 미래부 글로벌창업정책포럼 상임의장에 추대된 이후 1억원의 예산을 받아 엉터리 용역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것이 청구취지였다. 감사 결과는 뜻밖이었다. 감사원은 명백한 증거자료가 제시됐음에도 6월 22일 “업무처리에 있어 위법·부당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며 2장짜리 감사 결과 통보서로 모든 의혹을 덮어버렸다.
하지만 감사원 판단과 달리 김씨가 제출한 정책보고서는 누가 봐도 문제점들이 수두룩했다. 김씨는 미래부로부터 2013년 4500만원(11편), 2014년 5500만원(5편)의 예산지원을 받아 모두 16편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미래부를 상대로 다년간 용역과제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한 대학교수는 “김씨가 제출한 정책보고서들의 내용을 보니 각 교수나 연구원이 다른 곳에 실은 글을 그대로 가져온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경향신문>이 김씨가 제출한 정책보고서를 구글로 검색한 결과 이미 발표된 논문이나 잡지에 실린 글을 엉성하게 짜깁기한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됐고, 최소한 2편은 ‘표절’이 분명했다. 경기대 백모 교수가 작성한 30쪽 분량의 ‘글로벌 창업의 실패 및 성공요인’은 2007년 조동성 서울대 교수 등 3명이 작성한 ‘벤처기업의 글로벌 확장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를 가져다 거의 절반가량 그대로 베꼈다. 극동대 장모 교수의 ‘글로벌 창업 성과지표 개발’ 역시 정부 제출 용역으로 믿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보고서 내용 중 상당 부분이 2007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성과·혁신관리 시스템 구축 및 운영방안>, 2002년 삼성 SDS의 등과 정확히 일치했다. 심지어 각종 표나 다이어그램도 다른 발표자료를 그대로 전재했다.
백 교수는 “전체 보고서 중 내가 쓴 것이 어느 부분인지 기억이 나지 않으나, 17페이지만 내가 쓰고 나머지는 모르겠다”고 버티다 표절로 의심되는 논문 제목을 말해주자 “(해당 논문을) 인용한 것”이라고 그제야 한 발 물러섰다. 장 교수는 “서론 부분은 외국책 내용을 정리한 것이고, 결론은 내가 창작한 내용”이라며 결론만 베끼지 않으면 표절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절대로 특정보고서를 인용하지 않았고 기존에 나온 문헌조사일 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보고서는 단순 문헌조사 수준을 넘어 컴퓨터로 특정보고서를 그대로 복사한 수준이다
상당수 보고서 시중의 자료 짜깁기
이처럼 상당수 보고서가 시중의 자료나 논문을 짜깁기한 상태였음에도 감사원은 “정책보고서 발간 등이 당초 계획하였던 성과에 미치지 못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며 적정 용역으로 판단했다.
용역비도 제대로 집행됐는지 의문이다. 미래부가 총 1억원의 예산을 지원했음에도 저자들 대부분은 보수가 편당 100만~200만원을 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2014년 총 5편(107쪽)의 논문에 5500만원이 배정된 정책보고서 발간작업의 경우 인터넷진흥원 윤모 팀장은 “보수는 100만~150만원 정도였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김모 교수도 “내 기억으로 300만원을 넘지 않았고, 그것도 그쪽 직원에게 사정해서 올린 것”이라고 했다. 결국 나머지 3편의 논문에 5000만원이 배정되지 않았다면 용역비 중 상당 부분은 엉뚱한 데로 흘러갔을 수밖에 없다.
보고서 용역 대가가 적다 보니 당연히 보고서는 날림으로 작성될 수밖에 없었다. 경기대 장 교수는 “연구금액(200만원)이 너무 적고 연구기간도 짧아 깊이 있는 보고서는 불가능했다”고 털어놨다. 뉴욕주립대 박모 교수도 “보수가 적고 작업도 힘들어 2014년에 같은 요청이 왔을 때에는 거절했다”고 말했다. 또한 보고서 저자들이 사전에 용역 참여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전체 보고서 목차나 내용 등을 조율하는 자리를 가졌는지도 불투명하다. 2014년 미래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작성한 과업지시서에는 “(사전에) 집필진을 구성해 시장조사 및 세미나 등을 개최하고 산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정책 결과를 도출하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경기대 박 교수는 “세미나는 없었고 언제까지 정리해서 내라는 지시만 있었다”고 했다. 인터넷진흥원 윤 팀장 역시 “벨기에에 있을 때 이메일로 와서 (전체 모임 없이) 스스로 작성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김씨는 과업지시서도 무시하고 전체 용역단가에 훨씬 못 미치는 편당 100만~200만원씩 보수만 준 채 개별보고서를 긁어 모아서 정책보고서로 제출한 것이다. 심지어 저자들 중에는 보고서가 정부에 제출되는 과제였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감사원은 “(해당 용역은) 규정된 절차에 따라 진행하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떤 근거로 감사원이 정상적인 절차로 판단했는지는 구체적인 언급이 하나도 없다. 김씨가 2008년 국가보조금 횡령혐의로 기소돼 3000만원의 벌금형까지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는 사실 역시도 간과됐다. 감사원은 “미래부의 예산집행과 관련해 (김씨가) 횡령으로 참여제한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감사원이 과연 김씨를 상대로 조사를 진행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김씨는 <경향신문>이 엉터리 용역보고서에 대한 취재에 들어가자 뒤늦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보고서에 (특정 자료의) 출처를 밝히고 인용을 했기 때문에 표절로 확인됐다는 이야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2013년 발간된 정책백서 사진을 보내왔다. 하지만 아무리 출처를 밝혔다고 해서 특정보고서 내용을 몇 페이지에 걸쳐 거의 통째로 인용하는 것은 표절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구나 <경향신문>이 당초 미래부로부터 받은 파일 형태의 최종보고서에는 인용표시도 없고 심지어 제목이 ‘초안’으로 표시된 것도 있었다.
미래부는 왜 이런 엉터리 정책보고서 발간에 1억원을 지원했고, 감사원은 무슨 근거로 예산집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이 모든 논란을 종식시킬 책임은 감사원과 미래부에 있지만 양 기관은 꿀먹은 벙어리로 일관하고 있다. 감사원은 ‘보고서가 다른 자료를 표절했는지, 저자들을 상대로 얼마나 받았는지 확인했느냐’는 질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청와대에 이어 감사원마저 김씨에 농락당한 채 침묵을 지키면서 그를 둘러싼 ‘댓글부대’ 의혹은 이래저래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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