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극우 파시즘'의 귀환을 알리는 한상균 5년 선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면 노동조합의 중앙 조직이 노동법 개악과 민중 탄압에 맞서 파업을 선언하고 거리 시위를 주도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주35시간을 명시한 노동법을 손보려는 사회당 정부에 맞서 프랑스의 주요 노총인 노동총동맹(CGT)이 벌이는 파업과 시위가 대표적이다.
몇 달째 이어지는 파업에서 필립 마르티네즈 CGT 사무총장은 시위 현장에서 불법 폭력을 행사한 사람을 잡아가지 않는 정부를 비난하며 의회 청문회를 요구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폭력은 진압 경찰에 맞선 시위대의 저항 폭력이 아니다. 병원 같은 공공시설의 유리창을 해머로 부수는 등 시위와 무관하게 저질러진 '누군가'(우리로 치면 어버이연합이나 고엽제전우회 등 극우 세력)의 폭력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노동조합 시위에서 시위대가 고의로 민간인을 공격하거나 재산을 약탈한 적은 없다. 시위대의 타깃은 늘 헌법이 국민에 보장한 권리를 짓밟던 국가였다.
3.1 운동과 4.19 혁명에서 유래한 '저항권'
국가의 부당한 권력 행사에 맞서 싸울 민중의 권리는 헌법이 보장한 것이다. 헌법 전문에 명시된 3.1 운동과 4.19 혁명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하는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저지를 때 가만있지 않고 저항에 나섰던 "빛나는 전통"에 대한 찬사이다.
우리 민족이 20세기에 일군 저항과 투쟁의 자랑찬 역사를 언급한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가'가 아니라 국민에 있으며, 권력은 '국가'가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옴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이 집회의 자유를 가지며, 집회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분명히 못 박고 있다.
사실 집회 허가제를 고집함으로써 집회의 자유를 짓밟는 반헌법 행위는 극우 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권만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니다. 보수 정권인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도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저항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특히, 자유무역협정(FTA) 등 신자유주의적 국가 정책에 항의하고 기본권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들의 저항은 공권력의 잔인한 폭력으로 심각하게 공격받았다. 자신들의 집권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오판했던 노무현 정권 때는 경찰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노동자와 농민이 살해당하기도 했다.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1948년 이승만 정권 출범(극우 세력이 말하는 '건국') 이후 헌법이 보장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과 권력층에만 보장되어 왔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선언한 헌법 제11조는 훼손된 지 오래다.
우리 선배들이 3.1 운동과 4.19 혁명으로 타도하려 했고, 그래서 우리 헌법이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특수계급"은 창설의 단계를 넘어 사회 곳곳에 똬리를 틀고서 국민들의 등골을 기생충처럼 빨아대고 있다.
우익 정권에 훼손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박근혜 정권은 정보 기관과 군부의 불법 공작이 저질러진 선거를 통해 출범했다. 최근 개표 과정의 실수로 대통령 선거를 불법으로 선언하고 재선거를 명한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현행 법으로도 지난 대통령 선거는 합법성과 정통성에서 치명타를 입었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자유민주적' 질서는 치명적 수준으로 훼손되었다. 일개 관료('국가'로 읽자)가 만든 행정 해석과 행정 지침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만든 법률을 깔아뭉개면서 자유민주적 질서의 전제인 '법의 지배(the rule of law)'는 완전히 무너졌다.
정보 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하여 간첩으로 조작하는 공작을 벌였는데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공영 방송의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언론 통제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정상적인 행위였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국가가 관리하는 기업에서 수조 원의 회계 조작이 이뤄진 사실이 사전 보고된 청와대 회의에서 이를 덮은 관료들의 비리는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가 정상적인 시장 경제가 아님을 증명한다. 변호사로 전직한 전직 판검사에 대한 '전관예우'와 특권층('사회적 특수 계급'으로 읽자)이 누리는 '황제 노역'의 실태는 대한민국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법치' 운운할 자격이 아예 없음을 증명한다.
국가가 나서 조작과 은폐로 일관하는 4.16 세월호 참사는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연일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떨어져 죽고, 눌려 죽고, 찢겨 죽고, 튀겨 죽고, 빠져 죽고, 맞아 죽고, 불타 죽고, 독가스로 죽어 나자빠지는 데도 대한민국 정부, 즉 국가는 "사회적 특수 계급"의 눈치만 보면서 '부작위'를 넘어 '직무유기'를 해온지 오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도 '비정상적' 국가의 부작위와 직무유기로 인한 사회적 타살에 다름 아니다.
'집회의 자유'를 거부한 국가
작년(2015년) 11월 민중 총궐기는 이런 현실을 바꿔보고자 거리로 나선 노동자와 국민의 염원이 결집돼 이뤄진 집회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지령'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그리고 시위 당일 광화문 사거리를 비롯한 서울 시내 중심가를 불법으로 막고 "일반 공중의 왕래에 공용되는 도로의 차량 통행을 방해"한 것은 시위대가 아니라 수십 대의 경찰 버스였다. 그날 상황을 돌아보면, 국가는 헌법이 금지한 집회 허가제를 통해 집회를 임의로 '허가'하고선, 스스로 '허가'한 집회를 방해할 의도를 갖고 경찰 버스로 차벽을 쌓아 서울 중심가 교통을 전면 마비시켰다.
불법하고 부당한 국가 정책에 맞서 민주노총이 주도한 민중 총궐기의 날, 일반 교통 방해를 자행하면서 불법 행위를 주도한 것은 다름 아닌 국가였다. '허가'받은 시위를 계속하기 위해 일반 교통 방해의 불법 행위를 하고 있던 경찰 버스를 밧줄로 끌어내던 시위대를 물대포라는 살인 무기로 공격한 것도 국가였다. 그로 인해 농민 한 명은 지금까지 사경을 헤매지만, 국가는 책임자 처벌은커녕 사과성명 한쪽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는 '자신의 불법 행위 수단으로 쓰인 경찰 버스를 밧줄로 끌어낸 시위대의 정당 행위를 불법 폭력으로 낙인찍고 이를 사전에 계획, 지령했다는 혐의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5년의 징역형을 때렸다.
극우 파시즘 체제나 독재 정권을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집회나 시위를 이유로 노동조합의 전국 중앙 조직의 대표자를 구속하는 사례를 찾을 수 없다. 심지어 전두환-노태우 군사 정권 때도 불법 시위를 명목으로 노동조합 지도부에게 검찰이 징역 8년을 구형하고 사법부가 징역 5년을 선고한 예를 찾기 어렵다.
'법의 지배'란 무엇인가
일본의 법학자 오하마 게이기치(大浜啓吉)는 <'법의 지배'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법의 지배'의 근저에 있어야 할 것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며 존엄한 개인'과 '사회'라는 관념"을 꼽으면서 "'존엄한 개인'을 기점으로 해서 '사회'가 구성되고, '국가'는 사회에서 생기는 공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기구에 불과하다"고 썼다.
그는 "사람은 국가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자기 실현을 이루려는 존재"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건전한 사회가 필요하며", "국가는 사회의 건전성을 보지(保持)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인의 자유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오하마는 '개인의 자유'가 '사회의 자율'로 이어지되, 국가는 '보완' 역할에 그쳐야 함을 강조하면서 '법의 지배'가 이뤄지려면 "헌법이 국가를 만든다"는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우 파시즘' 세력의 복귀
이명박 정권부터 시작된 국가주의 세력의 복귀는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완성되고 있다. 국가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이 아니라 '국가'에 있으며,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나온다는 극우 사상을 설파해왔다.
이는 근대 시민 혁명 이후 성취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성과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전체주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국가-전체주의 세력의 권력 장악을 통해 극우 파시즘 체제의 부활과 영속을 꿈꾸는 것이다. 국가-전체주의자들은 '국가'가 시민과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사회가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고 믿는다.
오하마의 문장을 빌리자면, 국가-전체주의자는 "국가는 사회의 바깥에 있고, 본질적으로 사회보다 우월한 존재이며, 국가가 법을 창조하며, 국가 행정은 공익 판단권을 독점하며, 법률을 이용해 헌법이 보장한 인민의 권리를 박탈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 떨어진 징역 8년 구형과 징역 5년 선고는 "국가가 국민이나 사회보다 우월한 존재이고, 국가가 법을 창조하며, 사회적 특수 계급의 창설과 유지는 불가피하다"고 믿는 국가주의자, 즉 국가-전체주의 세력이 대한민국의 행정부와 사법부를 장악한 현실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우울하게도 우리는 극우 파시즘 세력의 귀환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몇 달째 이어지는 파업에서 필립 마르티네즈 CGT 사무총장은 시위 현장에서 불법 폭력을 행사한 사람을 잡아가지 않는 정부를 비난하며 의회 청문회를 요구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폭력은 진압 경찰에 맞선 시위대의 저항 폭력이 아니다. 병원 같은 공공시설의 유리창을 해머로 부수는 등 시위와 무관하게 저질러진 '누군가'(우리로 치면 어버이연합이나 고엽제전우회 등 극우 세력)의 폭력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노동조합 시위에서 시위대가 고의로 민간인을 공격하거나 재산을 약탈한 적은 없다. 시위대의 타깃은 늘 헌법이 국민에 보장한 권리를 짓밟던 국가였다.
3.1 운동과 4.19 혁명에서 유래한 '저항권'
국가의 부당한 권력 행사에 맞서 싸울 민중의 권리는 헌법이 보장한 것이다. 헌법 전문에 명시된 3.1 운동과 4.19 혁명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하는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저지를 때 가만있지 않고 저항에 나섰던 "빛나는 전통"에 대한 찬사이다.
우리 민족이 20세기에 일군 저항과 투쟁의 자랑찬 역사를 언급한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가'가 아니라 국민에 있으며, 권력은 '국가'가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옴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이 집회의 자유를 가지며, 집회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분명히 못 박고 있다.
사실 집회 허가제를 고집함으로써 집회의 자유를 짓밟는 반헌법 행위는 극우 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권만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니다. 보수 정권인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도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저항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특히, 자유무역협정(FTA) 등 신자유주의적 국가 정책에 항의하고 기본권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들의 저항은 공권력의 잔인한 폭력으로 심각하게 공격받았다. 자신들의 집권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오판했던 노무현 정권 때는 경찰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노동자와 농민이 살해당하기도 했다.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1948년 이승만 정권 출범(극우 세력이 말하는 '건국') 이후 헌법이 보장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과 권력층에만 보장되어 왔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선언한 헌법 제11조는 훼손된 지 오래다.
우리 선배들이 3.1 운동과 4.19 혁명으로 타도하려 했고, 그래서 우리 헌법이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특수계급"은 창설의 단계를 넘어 사회 곳곳에 똬리를 틀고서 국민들의 등골을 기생충처럼 빨아대고 있다.
우익 정권에 훼손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박근혜 정권은 정보 기관과 군부의 불법 공작이 저질러진 선거를 통해 출범했다. 최근 개표 과정의 실수로 대통령 선거를 불법으로 선언하고 재선거를 명한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현행 법으로도 지난 대통령 선거는 합법성과 정통성에서 치명타를 입었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자유민주적' 질서는 치명적 수준으로 훼손되었다. 일개 관료('국가'로 읽자)가 만든 행정 해석과 행정 지침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만든 법률을 깔아뭉개면서 자유민주적 질서의 전제인 '법의 지배(the rule of law)'는 완전히 무너졌다.
정보 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하여 간첩으로 조작하는 공작을 벌였는데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공영 방송의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언론 통제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정상적인 행위였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국가가 관리하는 기업에서 수조 원의 회계 조작이 이뤄진 사실이 사전 보고된 청와대 회의에서 이를 덮은 관료들의 비리는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가 정상적인 시장 경제가 아님을 증명한다. 변호사로 전직한 전직 판검사에 대한 '전관예우'와 특권층('사회적 특수 계급'으로 읽자)이 누리는 '황제 노역'의 실태는 대한민국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법치' 운운할 자격이 아예 없음을 증명한다.
국가가 나서 조작과 은폐로 일관하는 4.16 세월호 참사는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연일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떨어져 죽고, 눌려 죽고, 찢겨 죽고, 튀겨 죽고, 빠져 죽고, 맞아 죽고, 불타 죽고, 독가스로 죽어 나자빠지는 데도 대한민국 정부, 즉 국가는 "사회적 특수 계급"의 눈치만 보면서 '부작위'를 넘어 '직무유기'를 해온지 오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도 '비정상적' 국가의 부작위와 직무유기로 인한 사회적 타살에 다름 아니다.
'집회의 자유'를 거부한 국가
작년(2015년) 11월 민중 총궐기는 이런 현실을 바꿔보고자 거리로 나선 노동자와 국민의 염원이 결집돼 이뤄진 집회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지령'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그리고 시위 당일 광화문 사거리를 비롯한 서울 시내 중심가를 불법으로 막고 "일반 공중의 왕래에 공용되는 도로의 차량 통행을 방해"한 것은 시위대가 아니라 수십 대의 경찰 버스였다. 그날 상황을 돌아보면, 국가는 헌법이 금지한 집회 허가제를 통해 집회를 임의로 '허가'하고선, 스스로 '허가'한 집회를 방해할 의도를 갖고 경찰 버스로 차벽을 쌓아 서울 중심가 교통을 전면 마비시켰다.
불법하고 부당한 국가 정책에 맞서 민주노총이 주도한 민중 총궐기의 날, 일반 교통 방해를 자행하면서 불법 행위를 주도한 것은 다름 아닌 국가였다. '허가'받은 시위를 계속하기 위해 일반 교통 방해의 불법 행위를 하고 있던 경찰 버스를 밧줄로 끌어내던 시위대를 물대포라는 살인 무기로 공격한 것도 국가였다. 그로 인해 농민 한 명은 지금까지 사경을 헤매지만, 국가는 책임자 처벌은커녕 사과성명 한쪽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는 '자신의 불법 행위 수단으로 쓰인 경찰 버스를 밧줄로 끌어낸 시위대의 정당 행위를 불법 폭력으로 낙인찍고 이를 사전에 계획, 지령했다는 혐의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5년의 징역형을 때렸다.
극우 파시즘 체제나 독재 정권을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집회나 시위를 이유로 노동조합의 전국 중앙 조직의 대표자를 구속하는 사례를 찾을 수 없다. 심지어 전두환-노태우 군사 정권 때도 불법 시위를 명목으로 노동조합 지도부에게 검찰이 징역 8년을 구형하고 사법부가 징역 5년을 선고한 예를 찾기 어렵다.
'법의 지배'란 무엇인가
일본의 법학자 오하마 게이기치(大浜啓吉)는 <'법의 지배'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법의 지배'의 근저에 있어야 할 것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며 존엄한 개인'과 '사회'라는 관념"을 꼽으면서 "'존엄한 개인'을 기점으로 해서 '사회'가 구성되고, '국가'는 사회에서 생기는 공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기구에 불과하다"고 썼다.
그는 "사람은 국가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자기 실현을 이루려는 존재"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건전한 사회가 필요하며", "국가는 사회의 건전성을 보지(保持)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인의 자유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오하마는 '개인의 자유'가 '사회의 자율'로 이어지되, 국가는 '보완' 역할에 그쳐야 함을 강조하면서 '법의 지배'가 이뤄지려면 "헌법이 국가를 만든다"는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우 파시즘' 세력의 복귀
이명박 정권부터 시작된 국가주의 세력의 복귀는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완성되고 있다. 국가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이 아니라 '국가'에 있으며,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나온다는 극우 사상을 설파해왔다.
이는 근대 시민 혁명 이후 성취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성과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전체주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국가-전체주의 세력의 권력 장악을 통해 극우 파시즘 체제의 부활과 영속을 꿈꾸는 것이다. 국가-전체주의자들은 '국가'가 시민과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사회가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고 믿는다.
오하마의 문장을 빌리자면, 국가-전체주의자는 "국가는 사회의 바깥에 있고, 본질적으로 사회보다 우월한 존재이며, 국가가 법을 창조하며, 국가 행정은 공익 판단권을 독점하며, 법률을 이용해 헌법이 보장한 인민의 권리를 박탈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 떨어진 징역 8년 구형과 징역 5년 선고는 "국가가 국민이나 사회보다 우월한 존재이고, 국가가 법을 창조하며, 사회적 특수 계급의 창설과 유지는 불가피하다"고 믿는 국가주의자, 즉 국가-전체주의 세력이 대한민국의 행정부와 사법부를 장악한 현실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우울하게도 우리는 극우 파시즘 세력의 귀환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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