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란목걸이 노란반지 노란팔찌 노란배지... 온통 노란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고 오영석 군의 어머니 권미화 씨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여야 의원들의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내 의원실을 방문했다. 노란 상의에 노란 목걸이, 노란 반지, 노란 팔찌, 노란 배지를 단 '영석엄마' 권씨가 의원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고 있다. | |
ⓒ 남소연 |
6월 30일, 정부는 세월호가 인양도 안 된 상황에서 진상규명을 종료했다. 정부는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아래 특조위)' 조사활동 종료를 강행했고, 그 결과 특조위는 조사활동 예산을 모두 쓸 수 없게 됐다. 한마디로 정부가 '세월호 종료'를 선포한 것이다. 아직도 저 바다 아래 세월호가 그대로 있는데 세월호 종료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아홉 명의 미수습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이 그대로 있다. 304명이 왜 억울하게 희생됐는지 그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르는 세월호가 동거차도 앞 바다 아래 그대로 있는데, 세월호를 끝내라니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새로 뽑힌 국회의원 과반수가 진상규명을 보장하고 인양을 촉진시키는 특별법 개정을 발의했다.
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과반수 국회의원들이 1호로 발의한 안이 바로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일부 법률개정안'이었다. 이는 20대 국회를 여소야대로 탄생하게 만든 민의의 반영이기도 하다. 하지만 20대 첫 국회인 6월 임시회기, 정부의 진상규명 강제종료를 멈추게 할 수도 있었던 본회의 마지막 날인 6일, 세월호는 없었다. 왜 그런가?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특조위 조사활동은 9개월여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특별법이 제정된 지 9개월이 지나고서야 지난해 8월에 특조위에 진상조사 활동 예산이 최초로 배정되었다. 특조위는 조사 개시를 서둘렀고 지난해 9월 14일 세월호 유가족으로부터 첫 조사신청을 받은 특조위는 일주일 뒤 9월 21일 5건의 첫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얼마 뒤인 10월 19일에는 정부 업무의 적정성을 살펴보고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참사 당일 대통령 행적 조사'를 결정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정부는 매우 노골적이고 위법적으로 특조위 중립성과 독립성을 침해하기 시작했다. 바로 '해수부 문건' 사태였다. 해수부는 특조위 내 새누리당 추천위원들에게 "청와대 조사를 결정하면 전원 사퇴를 불사하고 막으라"고 '지시'했고 새누리당 추천위원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를 수행했다.
특조위는 2014년 11월 7일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총 18개월의 활동 기간과 예산, 3개월의 보고서 작성 기간을 보장 받았다. 그러나 특조위는 정부의 방해와 왜곡으로 기간과 예산이 모두 반토막 났다. 2000년대 들어서서 만들어진 의문사/과거사/친일 관련 진상규명 조사위원회는 대부분 조사기간이 5년 이상이었다(의문사위는 법개정을 거친 뒤 조사기간이 추가 보장되고 과거사정리위원회로 이어짐). 그런데도 정부는 조사기간이 이전 조사위들보다 훨씬 짧은 특조위를 '세금 낭비하는 곳'이라고 왜곡 선동했다.
청와대로부터 지시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어버이연합의 특조위 왜곡 선동도 같은 맥락이었다. 최근 제주 해군 기지로 향하는 '철근 400톤'이 세월호에 실려 있었다는 사실도 예전부터 특조위의 조사 대상이었다.
얼마 전에는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참사 직후 보도 통제를 시도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한 보도통제 때문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통령 행적과 관련한 검찰 수사자료 실지조사와 청해진 해운과 국정원이 특수관계에 있음을 청문회에서 밝혀낸 특조위는 지난달 국정원 실지조사를 개시했었다.
구조실패에 관한 의문을 풀기 위해 해경 CCTV와 교신기록을 통째로 받으려 해경 건물 안에서 농성을 한 곳도 특조위였고, 국회에 구조지휘라인 윗선에 대한 특검을 요청한 곳도 특조위였다. 이 외에도 특조위는 수없이 많은 조사활동을 전개했다. 매우 짧은 기간,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특조위를 두고 '한 게 없다'고 하는 새누리당은 대체 어떤 조사위원회를 두고 말하는 것인가.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정치권은 왜 그러는가
사실 새누리당은 매우 모순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그것은 바로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가 폭로한 새누리당의 물밑 제안이다. '청와대 조사 빼면 특조위 기간을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특조위가 한 것 없이 세금을 낭비해서 반대하는 게 아니라 청와대 조사, 즉 '성역'으로 향하는 진상규명 활동이 두려웠던 것이다.
정치권은 고민에 빠졌다. 이미 과반수 국회의원이 위와 같은 문제들을 바로 잡기 위해 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런데도 왜 고민에 빠져든 것일까? 새누리당의 청와대 조사를 배제하면 협상 가능이라는 얘기는 개원 한참 전부터 이미 정가에 파다하게 퍼진 이야기였다.
지난 5월 11일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김정재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그런 뉘앙스를 공개적인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일찌감치 내비쳤다. 이날 김 대변인은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면 (특조위 기한 연장에 대한)접점이 찾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농해수위 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영춘 더민주 의원의 입에서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조사를 포기해서라도 특조위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러한 개연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새누리당의 말도 안 되는 정치적 거래 시도는 무산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권은 새누리당과의 협상을 아예 깨지는 않은 모양새다. 최근 농해수위에서 특별소위를 구성하여 특조위 조사활동 '연장안'을 다루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반수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법개정안은 '연장안'이 아니라 '보장안'안이다.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농해수위에서는 연장안을 다루려고 했고 그 안도 김정재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이 말한 올해 12월까지라는 이른바 3+3 협상안인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농해수위 안에서는 싸움을 벌여서라도 이번 첫 본회의에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상정을 논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법개정 발의안은 온데 간데 없고 연장안 검토라니 정치권은 대체 왜 그러는가?
물론, 국회 선진화법이라는 것 때문에 여당과의 협상이나 조율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저 바다 아래 수장된 세월호가 정치 '협상'의 대상일 수 있는가? 백번을 양보할 수도 없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초유의 비상상황임에도, 양보한다고 치자. 하지만 이미 제정된 법이 있고 법대로 하자는 것도 협상의 대상일 수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지 의심될 뿐이다. 사실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새누리당도 하는 '국회의장 직권상정'이다. 당장 이번 본회의에서부터 의장이 직권상정 한다면 좋겠지만 이것은 희망사항일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 마지막 하반기 정기국회에서도 과반수를 가지고도 직권상정 시도는커녕 새누리당의 왜곡된 주장에 굴복할 셈인가?
세월호가 '협상'의 대상인가?
▲ "세월호특조위 강제해산 안돼!"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중구 저동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특조위)앞에서 열린 특조위 강제해산 중단과 성역없는 진상조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
ⓒ 권우성 |
국회의원 과반수 발의안 개정안에는 진상규명 기간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지점이 담겨 있다. 그것은 바로 '세월호 인양'이다.
더 잃을 것도 없고 양보할 것도 없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것이 바로 '세월호 인양'이다. 진상조사 기간이 법해석에 관한 문제이니 양측의 주장을 맞춰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세월호 인양'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국회의원 과반수가 발의한 법개정안에는 인양 후 최소 6개월 이상의 선체조사를 포함한 진상조사 기간이 담겨져 있다.
지난 5일 특조위는 정부가 인양 작업을 위해 92개의 구멍을 잘라 낸 부위가 유실 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여 파문이 일었다. 사실 정부는 인양의 핵심적 과정과 계획 모두를 철저히 비밀리에 부치고 있다. 정부는 인양 지연과 실패에 대해 날씨 탓, 기술보완 탓으로 돌리며 책임 회피와 면피의 알리바이를 차곡차곡 쌓고 있기도 하다. 정부의 세월호 인양작업을 강제할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전무후무 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법개정안은 중립적이며 독립적인 특조위에 선체 조사 '임무와 권한'을 명시하고 선체 조사도 '인양 후 최소 6개월 이상'이라고 못 박았다. 달리 말해 인양 후 감독권이 특조위에 있기 때문에 정부의 세월호 훼손과 절단 작업을 예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법개정안은 '세월호 훼손 방지법' 혹은 '세월호 인양 촉진법'이라고 명명되어도 무방하다.
청와대가 언론 장악을 시도한다 해도 길거리에 주저앉은 세월호 유가족까지 외면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정부의 강제종료를 전면거부한 특조위원과 조사관들을 없앨 수도 없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국민들의 관심이 또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조위를 지켜야 한다는 자발적인 국민성금 제안도 촉발되고 있다.
사실 특조위 문을 빨리 닫고 싶은 정부여당의 속마음은 너무 티가 났다. 아니, 정부여당은 세련된 왜곡과 방해가 아니라 이젠 매우 노골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세월호 유가족이 바닥에 깔고 앉을 은박 깔개를 가지고 달아나고 노란리본을 철거하기까지 했다.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 2명이 지나가면 길을 막는 경찰과 세월호 피켓을 빼앗으려고 하는 경찰들. 이게 다 일부 일선 경찰의 우발적 행위였을까?
이른바 '연내 세월호 끝내기'라는 정부의 전략은 풀가동되기 시작했다. 대체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서 그런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선이 시작되는 해가 되기 전에 다 정리하겠다는 말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진상규명에 기한은 없다. 인양에 실패란 있을 수 없다. 304명의 희생을 두고 협상은 있을 수 없다. 계속적으로 죽어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흥정은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다. 정치권은 특별법 개정으로 화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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