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높이가 낮아서일까. 아메리카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미국 국내선 항공기의 창밖을 보노라면 끝없이 펼쳐진 대륙에 새삼 경탄하게 된다. 저 풍요로운 자연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인디언들의 시대를 종결짓고 백인종이 세운 미국 자본주의는 오늘날 세계 정치경제를 끌어가고 있다.
미국의 국익 추구에 충실한 오바마는 남과 북의 권력을 어떻게 볼까. 자국 국민에게 비밀주의로 일관하며 아무 여론 수렴도 없이 덜컥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박근혜를,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드는 동영상을 유포하는 김정은을 어떻게 평가할까. 각각 국익에 충실하다고 바라볼까.
물론, 김정은의 정치도 개탄스럽다. 핵 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서 미국과 대화를 하려는 의도를 몰라서가 전혀 아니다. 미국을 위협해서 회의장으로 끌어 오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효과적일까 묻고 싶어서다. 목표가 미국과의 국교 수립에 이어 수출입을 통한 경제 활성화라면,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무모한 선택이다.
김정은의 문제가 허황된 과욕이라면 박근혜의 문제는 비루한 굴욕이다. 그의 정치적 기반이기도 한 경상북도의 성주 민중이 거세게 표출하는 분노는 박근혜의 무능을 입증해준다. 만일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경제보복이 단계적으로 진행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경제실정으로 인한 민중의 고통은 무장 커질 수밖에 없다. 워싱턴 근교에서 박정희의 딸, 김정일의 아들이 떠올라 우국의 충정으로 쓴다.
‘서해’가 태평양, ‘동해’는 대서양인 미국 대륙과 동아시아의 작은 반도는 근현대사를 통해 끊임없이 ‘접촉’해왔다. 미국은 19세기에 이미 조선왕조와 무력충돌 했고, 일본과 밀약으로 조선과 필리핀을 나눠삼켰고, 20세기 중반에는 북위 38도를 경계로 한 분단의 제안자였다. 실제로 미국 국토와 비교조차 어려울 만큼 땅이 작은 나라는 두 동강났다. 곧이어 일어난 한국전쟁은 아메리카합중국 역사상 최초로 ‘이기지 못한 전쟁’이었다. 새삼 과거를 톺아보는 이유는 앞으로 어떤 ‘접촉’이 이뤄질까 궁금해서다. 역사의 눈으로 볼 때 현실을 새롭게 볼 수 있다.
2016년 7월 현재 남북과 미국 사이의 관계는 심상치 않다. 북은 백악관을 불바다로 만드는 동영상을 제작해 공공연히 유포하고, 남은 미국의 최첨단 전략무기인 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배치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 버락 오바마 (Barack Obama) 미국 대통령. ⓒ iStock |
오바마는 김정은의 허세와 박근혜의 비루함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중국을 내내 압박할 사드의 남쪽 배치를 관철했다. 오바마에게 치밀한 대화 전략 없이 ‘큰소리’치는 김정은이나 국민 앞에 쉬쉬하다가 전격 ‘사드 배치’를 발표하는 박근혜나 참 쉬운 상대 아닐까.
오해없기 바란다. 나는 정치인 오바마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대통령 후보시절 인상 깊은 연설을 했지만 지난 8년 그의 정치는 전혀 담대하지 않았다. 김정일과 만나겠다는 후보 시절의 발언도 흐지부지됐다. 집권 초기 이란에 집중하던 오바마에게 평양이 선택한 ‘미사일 압박’이 되레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오바마가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진 대북 적대정책을 핑계로 조지 부시의 정책을 고스란히 답습한 것도 사실이다.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015년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이 보도했다. ⓒ 연합뉴스 |
오바마와 김정은, 박근혜 두루 문제이지만, 주체적으로 풀어가려면 남쪽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독일에 가서 ‘통일대박’을 부르대다가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널뛰기 대북정책은 결국 미국의 요구대로 사드를 배치함으로써 중국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이 중국에서 돈을 벌어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미국과 손잡고 있다는 베이징의 비판에 대응할 논리는 빈약하다. 사드 배치의 명분인 ‘북의 위협’은 수도권 방어가 안 된다는 점에서 타당성도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월14일 오후 서울공항에서 전용기에 탑승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청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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