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을 21일 단독 보도했다. 이 보도로 인해 대한민국 언론은 심판대에 올랐다. 보도할 수 있는 언론과 보도할 수 없는 언론이 나뉠 것이고 삼성을 대변하며 돈을 버는 언론과 삼성을 비판한 기사를 내리며 돈을 버는 언론이 나뉠 것이다. 이번 보도는 ‘회장님의 사생활’ 또는 ‘성매매 범죄’ 이상의 의미 부여가 필요한 사안이다. 과연 언론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기록할까. 미디어오늘이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보도’와 관련한 쟁점을 정리했다.
1. 뉴스타파 보도, 법적 문제는 없나
결론부터 말하면 설령 법적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위법성 조각사유가 인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건희 회장은 공인에 해당하며, 공인의 위법행위나 비윤리적 행위는 대중의 정당한 관심사에 해당한다. 이건희 회장 측에서 명예훼손을 주장하더라도 보도내용이 공적 관심사로 인정돼 면책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보도 내용이 증거영상과 함께 성매매특별법 위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사회적 특권층이라 할 수 있는 재벌의 윤리적 문제를 짚고 있어 공익적 가치 또한 높다.
10년 전 불거졌던 MBC의 ‘삼성-안기부 X파일’ 보도의 경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쟁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보도는 통비법 위반 소지가 없다. 몰래 촬영하는 과정에서 뉴스타파 기자들이 위장침입을 한 것도 아니어서 주거침입으로 고소할 수도 없다. 언론법에 밝은 한 변호사는 “이번 보도에서 형사처벌 근거를 찾기 어렵다. 민사상 사생활 침해를 주장해도 뉴스타파 쪽이 유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그룹이 22일 낸 짤막한 공식입장에서 법적 대응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 이것은 사생활 침해인가
2013년 9월6일자 조선일보 ‘채동욱 혼외자식’ 보도는 사생활 침해 논란을 일으켰다. 간통죄가 존재하는 시점이었고 그 누구보다 윤리적 책임이 강조되는 검찰총장의 지위에 있었기에 보도가 공적 관심사였다는 주장과,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정권차원에서 채 총장의 업무수행과 상관없는 내밀영역의 정보를 불법적으로 취득해 조선일보에 넘겼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보도도 ‘채동욱 혼외자식’ 보도와 마찬가지로 사생활 침해 논란이 불거질까.
둘 다 공인은 맞다. 그러나 이 회장 성매매 의혹 보도는 실정법 위반 소지가 높은 반면, 채동욱 혼외자식 보도의 경우 간통죄가 친고죄여서 실정법 위반을 주장하기 어렵다. 실제로 채 총장 부인이 채 총장을 간통죄로 고발한 사실이 없다. 반면 불법 성매매의 경우 수사당국이 바로 수사에 나설 수 있다. 삼성측이 22일 공식입장에서 “이건희 회장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이며 “회사에서 입장을 낼 부분도 없다”고 밝히면서도 보도 내용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 한다”고 입장을 낸 이유다.
▲ 21일 공개된 뉴스타파의 보도 장면 갈무리. |
22일 오전 10시 현재 포털사이트 뉴스검색을 통해 상당수의 관련 기사를 접할 수 있다. 이는 실시간 검색어에 ‘이건희’, ‘뉴스타파’가 오르면서 생긴 일이다. 그러나 주류언론의 경우 인용보도에 신중한 상황이다. 이는 ‘삼성 사주’라는 성역을 건드릴 수 없다는 내부의 보도지침 탓일 수도 있다. 지상파3사와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주요 종합일간지에서는 관련 기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22일자 종합일간지 가운데는 한겨레가 유일하게 지면에 기사를 실었다.
주류언론 중 보도여부를 두고 눈길을 끄는 곳은 조선일보와 JTBC다. 조선일보는 앞서 ‘채동욱 혼외자식’ 보도로 채 총장을 낙마시키며 보도의 공익성을 강조했다. 당시 조선일보 보도기준에 의하면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은 보도하는 게 마땅해 보인다. JTBC는 삼성과 특수 관계인 홍석현 회장이 소유한 방송사로, 손석희 보도담당 사장 취임 이후 오늘날 주요 방송사 중 삼성에 비판적인 리포트를 가장 많이 내보내고 있다. 이런 JTBC가 삼성 사주까지 비판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4. 뉴스타파 보도 이후 남은 의문들
우선 성매매특별법 위반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지 여부다. 보도 영상을 보면 수년 전 사건인데다 현재 당사자인 이건희 회장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져 처벌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보도에 나와 있듯 삼성 계열사 고문 명의로 마련한 안가에서 성매매 의혹 사건이 벌어졌다는 정황은 여전히 삼성이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지 않으며 비자금과 분식이 만연해 있다는 증거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후 시민단체 등의 문제제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영상은 삼성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한 협박용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영상제작을 주도한 것으로 확인된 인물들의 생존 여부는 현재 확인이 안 된다고 한다. 협박이 성공했을지, 무산됐을지도 후속보도 대상이다. 무엇보다 이 영상이 어떤 경로로 뉴스타파에 오게 되었는지도 관심사다. 결국 ‘누가 이 보도로 이득을 보느냐’다. 이건희 회장 사후 삼성家의 상속문제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도 가능해 보인다.
5. 지상파 고발프로그램의 낙종, 그리고 우파의 대충 디테일
이번 보도는 유튜브·온라인 기반의 대안언론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며 MBC ‘PD수첩’, KBS ‘추적60분’ 등 공고했던 레거시 시사고발프로그램을 넘어선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고발프로그램의 생명은 ‘제보’다. 이건희 성매매 의혹 동영상이 KBS나 MBC가 아닌 뉴스타파로 갔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이번 보도를 두고 “MBC나 KBS에서 봤으면…”하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를 찾기가 힘들다. 시청자들도 이미 공영방송에 대해선 체념의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12일자 칼럼 ‘좌파가 우파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에서 좌파진영의 ‘대충 디테일’이 좌파의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당시 “대충 디테일은 영화 ‘내부자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며 “권력자들은 자기 보호 차원에서라도 영화 속 ‘성기 동맹’이나 노골적 유착을 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러나 뉴스타파 보도는 영화 ‘내부자들’의 ‘실사판’으로 회자되고 있다. 재벌은 우리가 영화 속에서 봤던 장면 그대로, 살고 있었다. ‘대충 디테일’이 우파의 약점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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