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이사의 위법 행위 손해 때
모기업 주주가 책임 물을 수 있게
이사 선임 투표 때 1주당 1표 아닌
1주당 후보 수만큼의 의결권 부여
주총 못 나온 주주도 온라인 투표
소액주주 권한 강화 효과 기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경제민주화의 첫 단추로 꼽히는 상법 개정안을 4일 대표발의한다.
이 법안은 대기업 대주주와 총수의 독주를 견제할 강력한 제도들을 다수 담고 있어 ‘김종인표 경제민주화의 결정체’로 평가된다. 당 대표가 직접 발의하는 법안이면서 비례대표로만 5선을 한 김 대표가 대표발의를 하는 첫 법안이라 상당한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3일 공개된 김 대표 발의안에 따르면 이 법안에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명시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모회사 발행주식총수의 1% 이상을 가진 주주는 자회사 이사에게 책임을 묻는 소송 제기를 회사측에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행 상법(제403조)은 1% 이상 주주가 해당 회사의 이사에 대해서만 책임 추궁의 소를 청구할 수 있는데, 개정안에는 제403조의 2를 신설해 이 대상을 자회사 이사로까지 확장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김 대표 등 발의자들은 제안 이유에서 “자회사 이사들의 위법행위로 모회사가 손해를 입었음에도 자회사 주주나 모회사가 책임을 추궁하지 않으면 권리를 구제받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기업 집단화 추세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일부 총수들이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 모회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를 견제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 동양 사태나 삼성SDS의 헐값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논란처럼 비상장 자회사로 인해 모회사가 손실을 입은 경우 모회사 대주주들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 안은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담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 이사 선임 시 1주당 1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선임하는데 AㆍBㆍCㆍD 4명의 후보가 있고 이 중 D후보만 소액주주 지원을 받는 경우, 현재처럼 단순투표제를 하면 3차례 투표를 통해 대주주가 미는 후보가 모두 선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집중투표제를 하면 소액주주가 한 번의 투표에서 주당 3표를 D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어 D후보의 선임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주주 입장에서는 단 한번의 투표에서 AㆍBㆍC 중 한 후보에게만 표를 몰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권 분쟁에 밝은 한 변호사는 “집중투표제가 의무화하면 대주주 이사회 장악력이 떨어지고, 소액주주의 발언권은 상대적으로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영진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최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은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위원회에 들어갈 수 없게 했고, 해당 회사나 그 계열사에서 5년 이내 임직원이었거나 6년 이내 사외이사를 했던 사람은 사외이사를 맡을 수 없게 했다. 우리사주조합이나 소액주주가 요구한 후보자 1명씩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사회 내에서 경영진과 대주주의 독주를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감사위원 선임절차를 일반 이사 선임과 분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렇게 되면 대주주는 주식 비중이 높더라도 감사위원 선임에서 의결권이 3%로 제한되어, 대주주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인사가 감사위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법안에 포함된 전자투표제 의무화 역시 대주주 권한을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다. 전자투표제는 주주가 주총 장소에 나오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소액주주 권한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지금은 회사가 도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지만, 법안은 특정규모 이상(대통령령으로 정함)의 회사는 전자투표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전자투표제 등은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으로, 2013년 7월 법무부가 이런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까지 했으나 재계의 반발로 유야무야됐다.
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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