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 요동치는 부산 시민들 좌담
국정농단 겪으며 싸늘해진 민심
180도 달라져 문·안 사이 저울질
"5년전 박 찍었는데 너무 배신감"
60대 이상에선 '홍준표 지지'도
"20~30대 투표율이 관건" 관측도
국정농단 겪으며 싸늘해진 민심
180도 달라져 문·안 사이 저울질
"5년전 박 찍었는데 너무 배신감"
60대 이상에선 '홍준표 지지'도
"20~30대 투표율이 관건" 관측도
[한겨레]
2012년 대선 때 부산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박 후보는 부산에서 전국 평균 득표율(51.6%)을 훌쩍 웃도는 59.8%를 얻었다. 부산 출신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39.9%였다. 하지만 5년 뒤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을 거치면서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박근혜 찍었던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는 탄식이 터져 나올 정도다. 전통적 보수 성향이면서도 대구·경북과 달리 야권 지지 성향이 만만치 않은 점도 변수다. <한겨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상처’받은 보수의 표심과 야권 유권자들의 결집도를 들여다보기 위해 지난 27일 부산에 사는 30~50대 남녀 7명을 한자리에 모아 표적집단심층좌담(FGD)을 실시했다. 좌담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한귀영 여론과데이터센터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좌담회에 참석한 이들의 가명은 2012년 대선 때 투표한 후보(박근혜 또는 문재인)와 이번 대선 때 지지하는 후보(안철수 또는 문재인)의 성을 따왔고, 구분을 위해 가명 뒤에 나잇대와 성별을 표시했다. 7명 가운데 4명은 과거 박근혜 후보를 찍은 이들이지만, 지금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 2명,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지지 2명으로 나뉘었다. 나머지 3명은 5년 전에도 문 후보를 찍었고 지금도 문 후보를 지지한다. 토론자 선정 방법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득표 비율과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가 안 후보를 2배가량 앞선 점 등을 감안한 것이다.
■ “박근혜 찍었다고 하면 욕 나올 지경”
박근혜를 지지해온 부산 사람들에게 2012년 대선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박근혜에 대한 분노가 ‘배신감’, ‘죄책감’으로 변주됐고, 이는 문재인·안철수 누가 되더라도 지금보다는 나아지진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도 이어졌다.
박문(40대·남) 지난 대선에서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술자리에서 박근혜 찍었다고 하면 쌍욕 나온다.
문문(30대·남) 지금 손가락 자르고 싶어하는 사람들 엄청 많다.
박문(40대·남) 하지만 연세가 있는 분들은 여전히 박근혜에 대한 적의가 없다.
박안(50대·남) 지난번에 나도 박근혜 찍었는데, 내 손을 없애고 싶다. 너무 배신감을 느꼈다. 이번 후보는 자기 주체성을 갖고 어느쪽으로 쏠리지 않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박문(30대·여) 원래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지난번엔 부모님이 박근혜 얘기를 하시니까 박근혜를 찍었다. 최근에는 이렇게 된 상황들에 대해서 가족들끼리도 말이 많다. 엄마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 우리 세대들이 더 나서서 투표를 많이 해야 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하자…. 그래서 이번에는 저도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안철수도 생각했는데 텔레비전 토론에서 많이 실망했다. 부모님은 문재인은 싫은데 결정을 못 하고 있다.
문문(30대·남) 문재인을 지지하지만 크게 달라질까? 그런 생각은 안 한다.
문문(40대·남) 크게 바라진 않지만, 그래도 박근혜보다는 100배 더 잘하지 않겠나, 그런 기대심리에 그냥 잘하겠지, 그 정도 생각이다.
박문(40대·남) 안철수는 앞서나가는 사업가였기 때문에 경제에서는 다른 후보보다 낫다고 생각하는데, 정치 경험은 부족해서 경제 외에는 많이 모자랄 것 같다. 문재인은 오랫동안 정치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주변 정치인도 많고 대통령이 되면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 문재인·안철수·홍준표 사이를 표류하다
박근혜와 결별한 이들은 안철수와 문재인으로 흩어졌지만 이들의 정박지는 기반이 무른 듯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도 눈길을 줬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문재인을 줄곧 지지했다는 한 토론자는 TV 토론회에서 심상정의 활약을 지켜보며 갈등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박안(50대·남) 문재인이 싫어서 안철수를 뽑고, 안철수가 싫어서 홍준표를 뽑는다는 말이 나온다. 뚜껑을 열어봐야겠지만, 사실은 좀 갈등이 많이 된다. 인간적으로만 본다면, 홍준표 후보에게도 마음이 간다. 불우하게 커서 부르주아 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것 같다.
문문(40대·남) 나는 문재인을 60% 정도 (투표하려고) 생각하는데 어머니 세대에 물어보면 문재인을 뽑지 말라는 식으로 많이 얘기한다.
박안(50대·여) 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문재인은 진보적이니까 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홍준표는 말을 너무 안 걸러내고 하는 것 같고, 안철수가 좀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 제 친정어머니가 “박근혜 대통령 하는 거 보니 여자는 안되겠더라”라고 하신다. 심상정 후보가 아무리 말을 잘해도, 그런 면에서 불리한 것 같다.
문문(40대·여) 문재인을 지지하는데 이번에 토론하는 거 보면서 심상정이 잘할 것 같다. 문재인과 심상정이 6대 4로 갈등하고 있다.
박안(50대·남) 3자 단일화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문재인 쪽으로 기운다는 느낌이 든다. 예전과 다르게, 영남권이나 호남권이다 이런 구분이 약하고, 보수 쪽도 유승민과 홍준표가 같은 노선을 걷다가 갈라져서, 제 주변 분들은 정신을 못 차린다.
박안(50대·여) 저희 어머니는 토론과 상관없이 홍준표다. 박사모 이런 데서 아침마다 조직적으로 전화가 와서, 동서와 어머니는 헤어나올 수 없다. 유승민을 아주 나쁜 역적으로 알고 있다.
박안(50대·여) 나는 급진적으로 바꾸기 불안하다. 그런데 토론을 보고 지금은 심상정으로 마음이 많이 움직였다. 능력이 있을 것 같다. 현재는 안철수와 심상정이 4대 6 정도다.
■ TV토론회의 수혜자와 피해자는?
좌담회 참석자들은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은 토론을 제일 못한 사람으로 홍준표를 꼽았으나, 본래 홍준표에 대한 기대가 낮았기 때문인지 별 영향은 없었다. 기대를 많이 했던 안철수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실망감을 보였다.
박문(40대·남) 화술이나 언변에서는 심상정이 제일 큰 수혜자 같고, 가장 큰 피해자는 안철수 후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텔레비전 토론을 보면 조금 더 깊게 생각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표시가 많이 나니까.
박문(30대·여) 내 또래들은 토론회에서 안 후보가 ‘갑철수’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호감도가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박안(50대·여) 안 후보는 이과 출신이라 그런지 대화를 잘 못하고 표현력이 부족해서 많이 안타까웠다.
문문(30대·남) 홍 후보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거부감이 별로 안 들었다. 오히려 웃기다고 생각했다. 사실 안철수는 비호감은 아니었는데 토론회 나와서 하는 발언을 보니 잘 삐지는 것 같더라. 옛날 박근혜하고 비슷한 느낌이랄까. 안철수는 조금만 잘했으면 반등기회가 있었을 텐데….
박안(50대·남) TV토론회를 보고 나니, 지금 마음에 두고 있는 안철수가 과연 줏대가 있을까 의심이 든다. 특히 그 당에는 상왕이라는 박지원 대표가 있어서 어느 정도 입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안철수와 문재인을 6대4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4대6이다. 홍준표도 인간적으로는 좋은데 정치적으로 (당선이) 상당히 어렵다. 다만 (선택지로) 생각은 한다. 시간이 가면서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많이 흔들린다. 다만 TV 토론에서는 실수할 수 있다. 많은 분들 앞에서 긴장할 수도 있고. 지난 대선 때 박근혜 그 양반은 거의 말 한마디 안 했는데도 대통령이 됐잖나.
■ “박근혜 심판은 문재인” vs “그래도 경제는 안철수”
문재인과 안철수를 지지하는 이유, 아쉬운 점, 마음에 안 드는 점은 무엇일까. 각 후보가 잘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은 공약을 비롯해 차기 정부에 바라는 정책을 들어봤다.
문문(40대·여) 문재인은 깨끗할 것 같다. 재벌한테 뒷돈도 안 받을 것 같고 특혜도 안 줄 것 같다.
문문(30대·남) 장모님 친구 남편이 문재인하고 엄청 친하게 지냈는데, 문재인이 청와대 들어가니까 갑자기 연락을 다 끊더란다. 그런 걸 보고 더 매력적으로 봤다. 지난 총선 때도 김종인을 선대위원장으로 모시고 공천할 때 자기 사람 많이 떨어졌는데도 터치를 안 했더라. 지금은 문재인처럼 원칙대로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박문(40대·남) 문재인이 되어야지 이명박이나 박근혜의 비리를 밝혀내지 않을까. 다른 후보가 되면 되겠나? 박근혜 국정농단도 잘못하면 묻히지 않겠나.
박안(50대·여) 문재인이 일단 정부 주도로 공공부문 일자리 늘린다고 하니까 일자리 창출은 기대한다.
박문(40대·남) 난 걱정 된다. 결국은 세금이 들어가니까. 오히려 안철수의 일자리 정책이 현실적인 면을 보나 장기적으로 봐서도 더 낫지 않나 싶다.
박안(50대·남) 문재인의 일자리 공약은 물거품이 아닌가 싶다. 정부가 직접 공무원 늘리는 것보다는 아예 기업인들 압박을 해서라도 민간 쪽에서 일자리 늘리는 게 경기를 일으키고 사업 하는 분들 마이너스 요인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문문(30대·남) 안철수는 본인이 잘 아는 벤처 육성 쪽은 남들보다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
박문(40대·남) 안철수는 경제나 나라 살림, 외환유치 이런 면에서 아무래도 낫지 않을까 싶다.
박안(50대·여) 안철수는 기존 정치인하고 다를 것 같다. 참신한 면이 있다.
일자리·경제 이슈 꼼꼼히 살펴
“민간 맡긴다는 안, 제대로 할까”
“정부 앞세우는 문, 부작용 걱정”
세금·자영업 지원 더 적극 나서라 TV토론 영향 두고 갑론을박
“안, 잘 빠지는 듯…실망 크다”
“문은 북한 문제 불안감 남아”
“말 잘한 심상정이 최대 수혜자”
“민간 맡긴다는 안, 제대로 할까”
“정부 앞세우는 문, 부작용 걱정”
세금·자영업 지원 더 적극 나서라 TV토론 영향 두고 갑론을박
“안, 잘 빠지는 듯…실망 크다”
“문은 북한 문제 불안감 남아”
“말 잘한 심상정이 최대 수혜자”
박문(40대·남) 앞선 두 정권은 대기업에 특혜를 많이 줬다. 이제는 대기업에 피해를 많이 본 골목상권이나 영세업자를 위한 정책이 더 나와야 한다. 청년 일자리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한국 경제를 끌어올려야 하지 않나. 그래서 각 후보들의 경제 공약을 많이 본다.
문문(40대·여) 애가 대학생이니까, 군대 다녀오고 졸업하면 취직을 해야 하는데 일자리가 별로 없어 걱정이다. 우리 젊을 때는 일자리가 많았고 나름 좋은 직장에 다녔는데, 지금 애들은 너무 갈 데가 없으니까 제일 걱정이다.
문문(30대·남) 와이프가 장사를 하니까 세금에 관심 많다. 아직 부가가치세를 올린다는 후보는 없더라. 그리고 4차산업 혁명을 안철수는 민간 주도로, 문재인은 국가 주도로 해야 한다는데 안철수 말대로 민간 주도로 하면 좋긴 좋은데, 실질적으로 제대로 되겠나 싶다. 정부주도로 하겠다는 문재인 정책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박안(50대·남) 북핵이나 사드 문제가 있어 대북정책을 신경쓴다. 우리 세대는 반공방첩에 세뇌가 돼 있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논란을 보면 송민순 그 양반 말이 맞는 것 같다. 북한 문제에서는 문재인이 불안하다. 북핵과 사드 문제로 우리가 피해를 많이 보고 있지 않나. 외교·대북정책에는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박안(50대·여) 나는 사실 통일도 반대한다. 북한은 우리의 적인 것 같다. 문재인은 안보에서 불안해 (대통령으로서는) 아닌 것 같다.
박문(30대·여) 일자리 문제를 많이 본다. 일자리 창출은 당연한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세월호 사건이나 위안부 합의 문제를 보면서 차기 정부는 국민의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하면 좋겠다.
■ 문재인-안철수 네거티브는 ‘상쇄효과’
이번 대선 네거티브의 최대 쟁점은 문 후보 아들 특혜채용과 안 후보 부인의 갑질 논란 의혹이다. 젊은 세대는 이런 이슈에 대해 민감한 반면 중장년층은 덤덤했다. 그러나 토론자들은 각 후보에 대한 의혹의 ‘무게’를 비교하기보다는 “둘 다 똑같다”는 평가를 내놨다.
문문(30대·남) 네거티브가 영향을 미치는데 둘 다 있으니까 다 상쇄되는 느낌이다. ‘다 똑 같은 놈들이네, 거기서 그냥 뽑자’ 이런 마음이다.
박안(50대·남) 사람이 티끌이 없다면 너무 완벽해서 싫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오히려 터트릴 게 없어서 그런 걸 터트리나 하는 생각이다.
박문(40대·남) 안철수 의혹이 좀 더 크게 와 닿는다. 갑질 논란에 와이프가 제2의 최순실 아니냐 이런 얘기도 있다.
문문(40대·남) 60~80대는 네거티브 전혀 생각 안 한다. 옛날 한나라당만 지지하듯 아직 그렇다. 경상도는 (보수정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도 문재인 얘기하면 바로 저한테 “빨갱이 뽑지 말라”고 한다.
■ “20대 투표율이 승부를 가른다”
대부분의 토론자들은 이번 선거의 특징으로 젊은층의 관심이 높은 점을 짚었다. 과거에 비해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 의지가 피부로 와 닿는다고 했다. 다만, 문재인을 지지하는 한 토론자는 휴일이 몰려 있어 젊은층이 놀러 나가느라 투표하지 않을 가능성도 우려했다.
박문(30대·여) 저번 대선에 20~30대가 많이 못해서, 이번에는 친구들이 꼭 투표하겠다고 한다.
박문(40대·남) 초등학생들도 학교 갔다 집에 오면 대선 얘기할 만큼 관심이 높다. 지난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이렇게 나라 꼴이 우스워졌는데 다들 신경 많이 쓰지 않겠나.
문문(30대·남) 제 할아버지는 이명박·박근혜를 찍었는데, 문재인을 싫어하시니까 이번에 뽑을 사람이 없다고 얘기하신다. 20~30대는 투표할 거라 하는데 사실은 투표일 돼봐야 할 것 같다. 말만 그렇게 하지 놀러 가거나 직장인들은 그때 아니면 놀 시간이 없으니 은근히 (투표 안 하고) 놀러 가는 사람들도 꽤 있을 거다.
문문(40대·여) 제 주위는 이번에는 무조건 투표한다고 한다. 탄핵 집회를 몇 번 갔는데, 젊은 사람뿐만 아니라 나이 드신 분들도 많이 왔다. 그런 점을 봐서는 지난 대선보다 투표율이 더 올라갈 것 같다.
문문(40대·남) 20대가 얼마나 투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다. 어차피 60~70대는 새벽부터 가기 때문에 높게 나올 거다.
부산/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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