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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May 3, 2017

노무현이 만든 대통령기록물법, 박근혜 구명줄 되나? [주장] 대통령기록물 지정 놓고 논란... 정권 치부 은폐에 악용해선 안 돼

▲ 지난 2005년 9월 7일 단독 회담을 위해 마주 앉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표. ⓒ 연합뉴스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주말인 12일 오후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사저로 돌아왔습니다. 상식적이라면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된 지난 10일 오후 청와대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사저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틀을 더 머문 끝에 지난 12일 청와대를 떠났습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을 무단 폐기하거나 관련 증거들을 은닉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박 전 대통령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사실을 철저히 부정하고 은폐해왔다는 점,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곤궁한 처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 7시간 기록도 대통령기록물 지정?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복귀한 이후 대통령기록물 지정과 이관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증거인 범죄 기록들이 파기되거나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봉인될 가능성에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기록물로 지정이 되면 최장 30년 동안 열람이 제한되기 때문에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증거들이 묻혀버릴 공산이 커지게 됩니다.

야권은 박 전 대통령의 기록물이 국정농단 사태와 직접 연관돼있는 만큼 검찰 수사가 먼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청와대에는 구속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 청와대 비서진들의 회의자료와 이메일 등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자료 상당수가 남겨져 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따라서 야권은 필요하다면 청와대 압수수색을 통해서라도 관련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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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청와대와 정부의 입장은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13일 박 전 대통령 기록물의 이관작업을 시작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기록물의 지정 권한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있다고 밝혔습니다. 청와대 역시 법률 검토 이후 법에 따라 기록물이 지정될 것이라고 밝히며, 황 권한대행이 대통령기록물을 지정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청와대와 정부의 입장대로라면 검찰 수사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거들이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황 권한대행은 박 전 대통령이 직접 국무총리로 임명한, '박근혜의 아바타'라 불리는 인물입니다.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과 연장을 불허한 과거의 전력으로 볼 때 황 권한대행이 박 전 대통령을 사지로 몰 수 있는 증거를 봉인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봐야 합니다.

청와대의 과거 행태 역시 증거인멸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줍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지난 2014년 7월17일 김기춘 비서실장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대통령의 기록물을 비공개로 하기 위한 법률적 검토를 지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대통령에게 불리한 내용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 봉인시키려는 의도에서였습니다. 청와대와 정부가 박 전 대통령의 기록물을 서둘러 지정 이관하려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야권과 시민사회의 주장입니다.

박 전 대통령 기록물에는 국정농단 사태에 관련된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및 관련 기록, 위안부 협상과 관련된 한일 정상 간의 통화 내용, 비선실세 국정농단 자료 등 각종 문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황 권한대행이 이와 관련된 기록물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한다면 국정농단의 증거뿐만이 아니라 아직까지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민감한 내용들 역시 베일에 가려지게 됩니다.

대통령기록물 지정권한이 황 권한대행에게 있다는 국가기록원과 청와대의 주장도 따져봐야 합니다. 국가기록원은 "대통령기록물법상 지정권한은 대통령에 있고, 대통령은 권한대행과 당선인을 포함한다"며 황 권한대행이 기록물을 지정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청와대 역시 연설기록비서관실에서 기록물을 정리해 올리면 황 권한대행이 절차에 따라 대통령기록물을 지정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기록물 지정권한이 오직 현직 대통령에게만 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대통령기록물을 법률 해석기관이 아닌 국기기록원에서 검토하고 결정하는 것 역시 '직권남용'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와 관련 한국기록전문가협회에서는 "권한대행에 의한 지정기록물 지정은 탈법행위"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이 궐위한 상황에서의 대통령기록물 지정은 이처럼 정치적·법리적 논란이 첨예합니다. 

문제는 박 전 대통령의 기록물들이 국정농단 사태의 주요 증거들이자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기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황 권한대행에 의한 대통령기록물 지정은 향후 검찰 수사나 재판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현재 민변과 녹색당이 펼치고 있는 한일 정상회담 녹취록과 세월호 참사 등 정보공개소송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노무현이 만든 대통령기록물법, 박근혜 악용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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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전경. ⓒ 남소연

논란이 되고 있는 대통령기록물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들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이 법을 만든 취지는 대통령 재임 중의 활동기록을 온전히 보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 이전에는 대통령이 재임 중 활동기록을 폐기 처분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정권 차원의 치부들이 감춰지거나 은폐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이와 같은 관행과 구습을 바로 잡고,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관련한 활동기록을 보전하기 위해 대통령기록물법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노 전 대통령이 5년 동안의 재임기간 중 남긴 대통령기록은 무려 825만건에 이릅니다. 노 전 대통령 이전 8명의 대통령이 남긴 105만건에 비해 약 8배나 많은 기록물을 남긴 셈입니다. 기록 보전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집념과 의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의 활동기록을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후대에 전해주려는 노 전 대통령의 신념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노 전 대통령의 선의에 의해 만들어진 대통령기록물법이 외려 박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와 치부를 은폐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시스템이라 할지라도 누가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극단적으로 오용되고 변질될 수 있습니다.

국회에는 현재 대통령이 탄핵 등으로 공석이 되는 경우를 대비해 대통령기록물의 이관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기록물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대통령기록물법이 만들어진 본래의 취지와 목적이 정치권력에 의해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정농단 사태의 피의자인 박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가 은폐·폐기되는 것 역시 좌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관련법 개정에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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