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 골자로 한 개헌 국민투표 4월 16일 시행 … EU 가입 물 건너가고 나토에서 쫓겨날 수도
터키는 오는 4월 16일 개헌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터키 민주주의의 기로다. 1982년 국민투표로 개정됐던 기존 터키 헌법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해 총리가 내각의 수장으로서 정부수반을 맡고 간접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주로 의전적인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11년간 총리에 재임했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지난 2010년 국민투표로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고 2014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심판이 선수로 나온 셈이다.
권력욕이 강한 그는 이 정도로 만족하지 못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대통령중심제 개헌을 밀어붙였지만 야당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군사 쿠데타를 진압한 직후부터 자신에게 반대하는 군인, 정치인, 공직자, 법조인, 교육자, 지식인, 언론인 등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미디어에 재갈을 물린 뒤 개헌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에르도안의 정치적 운명은 물론 터키 민주주의의 명운이 이번 개헌안 국민 투표에 함께 걸린 셈이다.
개헌안 통과하면 대통령이 행정·입법·사법 장악
4월 16일 국민투표에 붙여지는 개헌안의 골자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력을 ‘술탄’ 수준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술탄은 이슬람 세계에서 제정일치의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군주다. 터키가 공화국이 되기 전에 존재했던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군주가 술탄의 지위를 누렸다. 에르도안은 끈질긴 권력욕과 반대파를 용납하지 않는 권위주의적인 말과 행동으로 ‘술탄’으로 불려왔다. 그런 에르도안이 이제 실질적으로 그런 권한을 갖겠다는 것이다.
개헌을 통해 터키의 정치 체제가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가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터키 개헌안은 그 시작이 에르도안이라는 정치인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밀어붙이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개헌안에서 제시하는 대통령의 권한은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갖게 되는 수준을 한창 뛰어넘는다
개헌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 개헌이 이뤄지면 터키의 권력 구조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바뀌게 된다. 개헌안에선 기존 총리직은 폐지되고 대통령이 부통령과 장관을 모두 임명한다. 의회 권력에서 구성하던 내각을 대통령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예산도 좌지우지하면서 기존의 의회가 누리던 행정부 운영 권력이 대통령 소관 아래 놓이게 된다. 판사에 대한 임명권도 대통령이 갖게 되면서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의 통제권도 손아귀에 움켜쥐게 된다.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까지 대통령이 갖는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를 맘대로 주무르게 되는 비민주적인 헌법이다. 이번 개헌안이 통과되면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하는 3권 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은 사라질 판이다. 터키판 ‘10월유신’이라고 할 만하다.
터키 민주주의 기로에
개헌안에 따르면 신헌법에 따른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1회에 한해 중임이 가능하다. 개헌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할 경우 새 헌법에 따라 치르는 2019년 대선과 2024년 대선에서 에르도안이 모두 승리할 경우 2029년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다. 현재 수많은 지지파가 있는 에르도안이 안정적으로 대통령 자리를 누리면서 제왕적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비상사태 선포권도 강화됐다. 터키판 ‘긴급조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터키가 ‘국민의 나라’에서 유일 권력자인 ‘대통령의 나라’로 변하면서 터키 민주주의를 질식 상태로 만들 우려가 크다. 교묘한 것은 대선과 총선을 같은 날에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총선에서 대통령을 견제하는 세력이 원내 1당을 차지할 길은 더욱 멀어진다. 서로 견제하라고 대통령과 의원을 각기 다른 정당을 찍는 전략적인 투표를 터키 국민이 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이 이런 비민주주의적이고 퇴행적인 개헌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터키와 유럽과의 관계는 최악으로치 닫고 있다. 터키는 오랫동안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되기를 갈망해 왔지만 이런 개헌이 이뤄지면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 EU 회원국이 되려면 재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구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은 필수 사안이다. 비민주적인 개헌이 이뤄지면 터키의 EU 가입은 물건너가는 것이나 진배없다. 게다가 개헌안은 유럽이 강력하게 금하고 있는 사형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사형제는 에르도안이 정적을 무자비하게 숙청할 도구다. 유럽은 국가권력이 개인이 생명을 뺏는 사형제를 비인권적인 제도로 보고 이런 제도를 폐지할 것을 가입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다.
게다가 터키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서 축출될 가능성도 커진다. 터키는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나토 회원국으로서 서방 연합군의 핵심을 맡아왔다. 1952년 앙숙인 이웃 그리스와 동시에 나토 회원국이 됐다. 1949년 북미의 미국과 캐나다, 유럽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등 12개국으로 창립한 나토가 처음으로 확대한 대상이 터키였던 것이다. 터키의 나토 가입은 독일이나 스페인보다 앞선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기 때문에 나토 창설 논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서방 점령지(서베를린 포함)는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들어서고 소련군 점령지는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들어서면서 각각 주권을 회복했다. 하지만 서독 지역의 연합군 주둔은 1952년 체결된 본-파리 협정이 1955년 관계국 모두에서 비준되면서 비로소 끝났다. 비준에 시간이 걸린 이유는 독일의 재기를 두려워한 프랑스에서 이를 한차례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을 봉합한 뒤에야 서독은 1952년 나토에 가입할 수 있었다. 독일은 1990년 10월 통일을 이룬 뒤 동독지역까지 포함한 통일 독일로서 새롭게 나토 회원국이 됐다.
스페인은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의 파시스트 독재 정권 시기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서방세계 가치를 공유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토와 유럽경제공동체에 초대받지 못했다. 프랑코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시작됐고 1978년 민주적인 새 헌법을 마련했다. 하지만 1981년 불발 군사 쿠데타가 터지는 등 정치적인 위기가 계속되다가 1982년 10월 총선에서 좌파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집권하면서 겨우 혼란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를 회복한 스페인은 1982년 5월 비로소 나토 회원국이 됐다. 그 뒤 국내에서 반대 움직임이 있자 1986년 3월 12일 국민투표를 실시해 56.9%의 찬성으로 나토 잔류를 확정했다.
나토는 회원국 중 한 나라가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 집단으로 대응하는 집단안보 체제다. 그렇다고 단순히 군사적인 역할만 중시하는 건 아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서방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나토 회원국이 되는 조건이다. 터키에서 에르도안 개헌안이 통과될 경우 터키와 서방과의 관계가 일대 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이런 터키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서방의 딜레마가 되고 있다.
권력욕에 눈이 먼 에르도안 대통령
하지만 권력욕에 눈이 먼 에르도안에겐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그는 자신의 개헌안을 통과시키려고 서방국가와의 외교 관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현재 터키에서 개헌안에 대한 찬반 여론은 50대 50이다. 에르도안으로서는 다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유럽에 살고 있는 터키인들이다. 터키인은 전유럽에 퍼져 있지만 독일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에 주로 많이 거주한다. 독일에는 200만 명이나 거주한다. 유럽에 사는 터키인은 상당수가 터키 국적으로서 개헌안 찬반투표에 참가할 자격이 있다.
터키인들은 1950년대 중반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 각국에 노동자로 이주했다. 독일은 경제 재건과 발전 과정에서 일손이 부족하자 가스트아르바이터(Gastarbeiter), 즉 초청노동자란 이름으로 인건비가 싼 터키인을 대대적으로 불러들였다. 독일에 이주한 터키인들은 24시간 용광로를 가동해야 하는 철강 공장 노동자, 광부, 도로청소부, 건설현장 잡역부, 오물수거부 등 온갖 3D 업종에서 일하며 독일이 이룬 라인강의 기적을 바닥에서 받쳐줬다. 인권의 나라 독일은 1970년대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를 크게 개선해 노동허가증을 얻어 합법적으로 이주한 외국인에게는 같은 능력의 독일인 노동자와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고 있다. 5년간 문제없이 취업한 경우에는 영구 노동허가를 내주고 있다. 노동시장이 악화하더라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있을 수 없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에는 국적법을 혈통주의에서 속지주의로 개정해 독일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독일 국적을 주도록 하고 있다. 이중국적도 폭넓게 허용한다. 사회통합적이고 인권적인 정책이다.
에르도안은 이를 오히려 악용하려고 하고 있다. 개헌안 국민 투표를 앞두고 지지표를 끌어 모으기 위해 각료들을 터키 교민이 많이 살고 있는 유럽 곳곳에 보내면서 각국과 외교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다 사단이 났다. 지난 3월 11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터키 교민을 모아놓고 개헌지지 집회를 벌이려던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을 태운 전용기가 네덜란드 당국의 착륙 거부 조치로 회항한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공공질서와 안전 우려를 이유로 들었지만 개헌이 가져올 터키 민주주의의 퇴행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모로코계 이민자로 유럽 대도시 시장으로선 유일한 무슬림이자 이민자 시장인 아흐메드 아부탈레브 로테르담 시장이 “차우쇼을루 장관은 외교관으로서 면책특권이 있으므로 우리도 그에 따라 대우하겠지만 우리에게도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한하는 다른 수단이 있다”고 말한 직후 차우쇼을루 전용기의 착륙이 불허됐다. 무슬림 이민자인 아부탈레브 시장이 나서면서 무슬림에 대한 차별을 거론할 수 없게 된 에르도안은 모욕적인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에르도안은 “그들은 정치를 모르고, 국제 외교도 모른다. 이런 것들은 나치의 잔재다. 그들은 파시스트들”이라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오메르 셀릭 터키 EU 담당 장관까지 나서 “유럽 당국의 조치는 인종차별주의자와 파시스트. 반민주주의, 반인권주의, 이슬람 혐오주의, 반유대주의 등을 배경에 깔고 있다”라고 막말을 거들었다. 에르도안은 마침 출장 중이던 터키 주재 네덜란드 대사의 귀임을 불허했으며 네덜란드 대사관은 시위대에 둘러싸였다. 전략적 가치가 큰 항구도시인 로테르담은 2차 대전 때 나치의 공습에 대파돼 전쟁과 나치 피해의 대명사로 간주되는 지역이다. 게다가 16세 때 모로코를 떠난 무슬림 이민자가 시장으로 있는 관용과 개방의 지역이다. 그런 곳에 극언을 퍼부은 에르도안에 대한 유럽의 비난이 쏟아진 것은 당연하다.
독일·네덜란드를 나치라고 비난한 에르도안
에르도안은 네덜란드를 나치로 몰아붙인 것도 모자라 14일엔 1995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의 최대 학살사건인 ‘스레브레니차 학살’ 책임국으로 비난하기까지 했다. 당시 스레브레니차에선 세르비아계 민병대에 무슬림 주민 8000명이 학살당했는데 네덜란드가 이를 방관했다고 주장하면서 “네덜란드의 도덕성이 무너졌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더러운 얼굴을 한 파시즘이 유럽에 살고 있는 모든 무슬림과 외국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 근처에 네덜란드 군인들은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고 있었지만 병력이 적어 제대로 학살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과 이번 터키 장관의 입국 금지조치는 영향이 없다.
에르도안은 지난 5일엔 EU의 사실상 주도 국가인 독일을 향해서도 극언을 퍼부었다. 장관들을 동원해 독일 거주 터키인 유권자에게 개헌안 찬성 독려 유세를 벌이려 했지만 독일이 이를 제지한 데 따른 반발이었다. 챠우쇼을루 장관은 이에 앞서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터키계 개헌 지지 집회에 참석했는데 함부르크 시당국이 안전문제를 이유로 들어 장소를 두 번이나 바꾼 끝에 간신히 허가를 받았으며 이후 터키 정치인의 독일 집회는 발목이 잡힌 상태다. 이렇게 독일 지방정부들이 터키 국민투표 독려에 나선 터키 정치인들의 집회와 활동을 금지하자 “나치 짓거리”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에르도안은 독일을 향해 “독일은 민주주의가 뭔지 모른다. 나치 시대와 다를 바 없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나치 시대가 과거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로테르담에 파시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실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투스크는 “우리 모두는 네덜란드와 한마음으로 결속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며 네덜란드의 조치를 지지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나치에다 지금의 유럽 정부들을 비유하는 것을 듣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말”이라고 분개했다. 융커 위원장은 터키의 EU 가입이 더 멀어졌다고 일침을 놓았다.
급기야 지난 19일 12대 독일 대통령으로 취임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도 나서서 터키에 “최근 수십 년간 쌓은 공을 위협하며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끊게 하는 행동을 자제하라”고 요청했다. 그는 취임식 연설에서 에르도안에게 독일 정부 관계자들을 나치에 비유하는 하는 발언을 중단하라며 이같이 말했다. 터키 정부가 지난 1월 테러 선전 혐의로 구속한 독일 일간 디벨트 특파원 데니츠 위첼의 석방도 요구했다. 독일은 에르도안의 반대파 숙청과 관련해 터키가 민주적인 시민사회가 되려면 멀었다고 비난해 왔다. 에르도안의 권력욕이 터키의 EU가입과 나토 잔류를 어렵게 하고 있다. 터키의 대통령 리스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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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욕이 강한 그는 이 정도로 만족하지 못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대통령중심제 개헌을 밀어붙였지만 야당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군사 쿠데타를 진압한 직후부터 자신에게 반대하는 군인, 정치인, 공직자, 법조인, 교육자, 지식인, 언론인 등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미디어에 재갈을 물린 뒤 개헌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에르도안의 정치적 운명은 물론 터키 민주주의의 명운이 이번 개헌안 국민 투표에 함께 걸린 셈이다.
개헌안 통과하면 대통령이 행정·입법·사법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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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을 통해 터키의 정치 체제가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가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터키 개헌안은 그 시작이 에르도안이라는 정치인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밀어붙이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개헌안에서 제시하는 대통령의 권한은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갖게 되는 수준을 한창 뛰어넘는다
개헌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 개헌이 이뤄지면 터키의 권력 구조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바뀌게 된다. 개헌안에선 기존 총리직은 폐지되고 대통령이 부통령과 장관을 모두 임명한다. 의회 권력에서 구성하던 내각을 대통령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예산도 좌지우지하면서 기존의 의회가 누리던 행정부 운영 권력이 대통령 소관 아래 놓이게 된다. 판사에 대한 임명권도 대통령이 갖게 되면서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의 통제권도 손아귀에 움켜쥐게 된다.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까지 대통령이 갖는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를 맘대로 주무르게 되는 비민주적인 헌법이다. 이번 개헌안이 통과되면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하는 3권 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은 사라질 판이다. 터키판 ‘10월유신’이라고 할 만하다.
터키 민주주의 기로에
개헌안에 따르면 신헌법에 따른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1회에 한해 중임이 가능하다. 개헌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할 경우 새 헌법에 따라 치르는 2019년 대선과 2024년 대선에서 에르도안이 모두 승리할 경우 2029년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다. 현재 수많은 지지파가 있는 에르도안이 안정적으로 대통령 자리를 누리면서 제왕적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비상사태 선포권도 강화됐다. 터키판 ‘긴급조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터키가 ‘국민의 나라’에서 유일 권력자인 ‘대통령의 나라’로 변하면서 터키 민주주의를 질식 상태로 만들 우려가 크다. 교묘한 것은 대선과 총선을 같은 날에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총선에서 대통령을 견제하는 세력이 원내 1당을 차지할 길은 더욱 멀어진다. 서로 견제하라고 대통령과 의원을 각기 다른 정당을 찍는 전략적인 투표를 터키 국민이 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이 이런 비민주주의적이고 퇴행적인 개헌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터키와 유럽과의 관계는 최악으로치 닫고 있다. 터키는 오랫동안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되기를 갈망해 왔지만 이런 개헌이 이뤄지면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 EU 회원국이 되려면 재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구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은 필수 사안이다. 비민주적인 개헌이 이뤄지면 터키의 EU 가입은 물건너가는 것이나 진배없다. 게다가 개헌안은 유럽이 강력하게 금하고 있는 사형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사형제는 에르도안이 정적을 무자비하게 숙청할 도구다. 유럽은 국가권력이 개인이 생명을 뺏는 사형제를 비인권적인 제도로 보고 이런 제도를 폐지할 것을 가입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다.
게다가 터키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서 축출될 가능성도 커진다. 터키는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나토 회원국으로서 서방 연합군의 핵심을 맡아왔다. 1952년 앙숙인 이웃 그리스와 동시에 나토 회원국이 됐다. 1949년 북미의 미국과 캐나다, 유럽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등 12개국으로 창립한 나토가 처음으로 확대한 대상이 터키였던 것이다. 터키의 나토 가입은 독일이나 스페인보다 앞선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기 때문에 나토 창설 논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서방 점령지(서베를린 포함)는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들어서고 소련군 점령지는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들어서면서 각각 주권을 회복했다. 하지만 서독 지역의 연합군 주둔은 1952년 체결된 본-파리 협정이 1955년 관계국 모두에서 비준되면서 비로소 끝났다. 비준에 시간이 걸린 이유는 독일의 재기를 두려워한 프랑스에서 이를 한차례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을 봉합한 뒤에야 서독은 1952년 나토에 가입할 수 있었다. 독일은 1990년 10월 통일을 이룬 뒤 동독지역까지 포함한 통일 독일로서 새롭게 나토 회원국이 됐다.
스페인은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의 파시스트 독재 정권 시기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서방세계 가치를 공유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토와 유럽경제공동체에 초대받지 못했다. 프랑코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시작됐고 1978년 민주적인 새 헌법을 마련했다. 하지만 1981년 불발 군사 쿠데타가 터지는 등 정치적인 위기가 계속되다가 1982년 10월 총선에서 좌파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집권하면서 겨우 혼란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를 회복한 스페인은 1982년 5월 비로소 나토 회원국이 됐다. 그 뒤 국내에서 반대 움직임이 있자 1986년 3월 12일 국민투표를 실시해 56.9%의 찬성으로 나토 잔류를 확정했다.
나토는 회원국 중 한 나라가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 집단으로 대응하는 집단안보 체제다. 그렇다고 단순히 군사적인 역할만 중시하는 건 아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서방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나토 회원국이 되는 조건이다. 터키에서 에르도안 개헌안이 통과될 경우 터키와 서방과의 관계가 일대 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이런 터키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서방의 딜레마가 되고 있다.
권력욕에 눈이 먼 에르도안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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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인들은 1950년대 중반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 각국에 노동자로 이주했다. 독일은 경제 재건과 발전 과정에서 일손이 부족하자 가스트아르바이터(Gastarbeiter), 즉 초청노동자란 이름으로 인건비가 싼 터키인을 대대적으로 불러들였다. 독일에 이주한 터키인들은 24시간 용광로를 가동해야 하는 철강 공장 노동자, 광부, 도로청소부, 건설현장 잡역부, 오물수거부 등 온갖 3D 업종에서 일하며 독일이 이룬 라인강의 기적을 바닥에서 받쳐줬다. 인권의 나라 독일은 1970년대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를 크게 개선해 노동허가증을 얻어 합법적으로 이주한 외국인에게는 같은 능력의 독일인 노동자와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고 있다. 5년간 문제없이 취업한 경우에는 영구 노동허가를 내주고 있다. 노동시장이 악화하더라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있을 수 없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에는 국적법을 혈통주의에서 속지주의로 개정해 독일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독일 국적을 주도록 하고 있다. 이중국적도 폭넓게 허용한다. 사회통합적이고 인권적인 정책이다.
에르도안은 이를 오히려 악용하려고 하고 있다. 개헌안 국민 투표를 앞두고 지지표를 끌어 모으기 위해 각료들을 터키 교민이 많이 살고 있는 유럽 곳곳에 보내면서 각국과 외교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다 사단이 났다. 지난 3월 11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터키 교민을 모아놓고 개헌지지 집회를 벌이려던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을 태운 전용기가 네덜란드 당국의 착륙 거부 조치로 회항한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공공질서와 안전 우려를 이유로 들었지만 개헌이 가져올 터키 민주주의의 퇴행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모로코계 이민자로 유럽 대도시 시장으로선 유일한 무슬림이자 이민자 시장인 아흐메드 아부탈레브 로테르담 시장이 “차우쇼을루 장관은 외교관으로서 면책특권이 있으므로 우리도 그에 따라 대우하겠지만 우리에게도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한하는 다른 수단이 있다”고 말한 직후 차우쇼을루 전용기의 착륙이 불허됐다. 무슬림 이민자인 아부탈레브 시장이 나서면서 무슬림에 대한 차별을 거론할 수 없게 된 에르도안은 모욕적인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에르도안은 “그들은 정치를 모르고, 국제 외교도 모른다. 이런 것들은 나치의 잔재다. 그들은 파시스트들”이라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오메르 셀릭 터키 EU 담당 장관까지 나서 “유럽 당국의 조치는 인종차별주의자와 파시스트. 반민주주의, 반인권주의, 이슬람 혐오주의, 반유대주의 등을 배경에 깔고 있다”라고 막말을 거들었다. 에르도안은 마침 출장 중이던 터키 주재 네덜란드 대사의 귀임을 불허했으며 네덜란드 대사관은 시위대에 둘러싸였다. 전략적 가치가 큰 항구도시인 로테르담은 2차 대전 때 나치의 공습에 대파돼 전쟁과 나치 피해의 대명사로 간주되는 지역이다. 게다가 16세 때 모로코를 떠난 무슬림 이민자가 시장으로 있는 관용과 개방의 지역이다. 그런 곳에 극언을 퍼부은 에르도안에 대한 유럽의 비난이 쏟아진 것은 당연하다.
독일·네덜란드를 나치라고 비난한 에르도안
에르도안은 네덜란드를 나치로 몰아붙인 것도 모자라 14일엔 1995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의 최대 학살사건인 ‘스레브레니차 학살’ 책임국으로 비난하기까지 했다. 당시 스레브레니차에선 세르비아계 민병대에 무슬림 주민 8000명이 학살당했는데 네덜란드가 이를 방관했다고 주장하면서 “네덜란드의 도덕성이 무너졌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더러운 얼굴을 한 파시즘이 유럽에 살고 있는 모든 무슬림과 외국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 근처에 네덜란드 군인들은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고 있었지만 병력이 적어 제대로 학살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과 이번 터키 장관의 입국 금지조치는 영향이 없다.
에르도안은 지난 5일엔 EU의 사실상 주도 국가인 독일을 향해서도 극언을 퍼부었다. 장관들을 동원해 독일 거주 터키인 유권자에게 개헌안 찬성 독려 유세를 벌이려 했지만 독일이 이를 제지한 데 따른 반발이었다. 챠우쇼을루 장관은 이에 앞서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터키계 개헌 지지 집회에 참석했는데 함부르크 시당국이 안전문제를 이유로 들어 장소를 두 번이나 바꾼 끝에 간신히 허가를 받았으며 이후 터키 정치인의 독일 집회는 발목이 잡힌 상태다. 이렇게 독일 지방정부들이 터키 국민투표 독려에 나선 터키 정치인들의 집회와 활동을 금지하자 “나치 짓거리”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에르도안은 독일을 향해 “독일은 민주주의가 뭔지 모른다. 나치 시대와 다를 바 없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나치 시대가 과거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로테르담에 파시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실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투스크는 “우리 모두는 네덜란드와 한마음으로 결속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며 네덜란드의 조치를 지지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나치에다 지금의 유럽 정부들을 비유하는 것을 듣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말”이라고 분개했다. 융커 위원장은 터키의 EU 가입이 더 멀어졌다고 일침을 놓았다.
급기야 지난 19일 12대 독일 대통령으로 취임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도 나서서 터키에 “최근 수십 년간 쌓은 공을 위협하며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끊게 하는 행동을 자제하라”고 요청했다. 그는 취임식 연설에서 에르도안에게 독일 정부 관계자들을 나치에 비유하는 하는 발언을 중단하라며 이같이 말했다. 터키 정부가 지난 1월 테러 선전 혐의로 구속한 독일 일간 디벨트 특파원 데니츠 위첼의 석방도 요구했다. 독일은 에르도안의 반대파 숙청과 관련해 터키가 민주적인 시민사회가 되려면 멀었다고 비난해 왔다. 에르도안의 권력욕이 터키의 EU가입과 나토 잔류를 어렵게 하고 있다. 터키의 대통령 리스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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