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사망사건, 과학수사·증언으로 커진 서해순 의혹 1% '스포트라이트'
[서울경제] “앞으로 TV 출연도 많이 하고 바빠질 것” “다음 주 스케줄까지 상의하고 갔다”
‘스포트라이트’가 가수 故 김광석 사망 사건 중 말끔히 밝혀지지 않은 단 1%를 파헤치기 위해 나섰다. 19일 방송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김광석의 사망 두 달 전의 행적부터 서해순 씨와의 불화로 생긴 착잡한 심경까지 재조명했다. 이날 ‘스포트라이트’에서는 과학적 수사로 1996년 1월 6일 새벽 3시 30분경 자택에서 사망한 김광석의 당시 상황을 취재했고, 여전히 부검, 동기, 수사 사이에 커다란 부조화를 발견했다. 부검감정서를 본 서중석 전 국과수 원장은 “불완전 의사(목 매어 죽음)로 기록돼 있다. 질식사 중에서 교사와 의사는 삭흔의 방향이 다르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9%였으며 제압 교살로 나타날 수 있는 출혈 흔적도 없었다”며 타살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서해순 씨의 “전기줄이 목에 세 번 감겨있었다”는 말과 달리 부검감정서에는 ‘단선만 감겨 있었다’고 기록돼 있었다. 한길로 법의학자는 김광석이 사망한 자택 계단 재현 세트에서 직접 시범을 통해 “천장 쪽으로 향해 누워있는 모습이 불가능하다”며 “3번 줄을 감으면 줄 길이가 계단에 이어지지 않는다. 부검할 때도 목에 3줄의 흔적이 반드시 나와야 했다”고 말했다. 당시 재떨이에 2종류의 담배가 있었다고 의문점을 제기하자 서해순 씨는 “나는 담배를 핀 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박관천 경정은 “사망 직전에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가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된다. 타액으로 DNA 감정, 맥주잔의 지문 감정을 반드시 해야 했다”고 전했다. 당시에는 이 기본적인 수사 과정이 생략돼 있었다. 사망 전날 밤 김광석과 만났던 동료 백창우, 카페 사장, 팬클럽 회원은 모두 입을 모아 “경찰이 따로 와서 수사를 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사건 하루만에 ‘조울증’을 원인으로 삼으며 김광석의 사망은 자살로 보도됐다. 제작진이 초동수사에 미흡함을 제기하자 당시 수사경찰은 “그 부분에 대해 수사를 충분히 했기 때문에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입 열기를 꺼려했다. 당시 김광석의 매니저는 “11월달쯤 ‘음악 안 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겠다. 2달 정도 걸릴 것 같다’며 출국하더니 한 달만에 돌아오더라”고 여전히 의아함을 드러냈다. 당시 맨하탄 공연 영상에서 김광석은 평소와는 달리 상당히 지친 모습을 보였다. 이에 김광석의 친구는 “이렇게 힘든 모습으로 부르는 걸 처음 본다. 광석이는 무대에서 잘 웃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취재 과정에서 ‘스포트라이트’ 측은 김광석의 형 김광복 씨로부터 김광석의 일기를 단독 입수했다. 김광복 씨가 “광석이가 미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썼던 일기일 것이다”라며 건넨 일기에는 ‘사람을 이해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라는 의미심장한 글이 적혀 있었다. 또한 김광석은 “아내는 2일 밤이나 외박을 하고 첫날은 공연 전날인데, 소식도 없이 나를 애태우게 했다. 경찰서에 가서 바보가 된 기분. 낯선 남자들과 이틀 밤이나 술 마시며 함께한 것에 대해 나에게는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이후 그는 “처음엔 화가 나고 참기 어려웠다. 한편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 잘못이라곤 하지만 너무 힘들다”며 자책의 심경을 남겼다. 김광석의 일기를 본 최호선 심리부검 전문가는 “문제를 자신의 내부에서 찾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내용이 많다”고 분석했다. 당시 미국에 함께 있었던 지인은 SNS에 “이○○이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부인 서해순을 호텔 전화로 불러내 그 길로 며칠 잠적을 해버린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거의 초상집 분위기였다고 했다”고 게재했다. 이 같은 의문점을 제기했을 당시 최근 서해순 씨는 “김광석이 먼저 갔다. 술 먹고 음악 듣고 놀다가 거기서(김광석 친구 집) 잠이 든 것이다”라며 “이전에 김광석의 여자 문제로 사이가 멀어졌었다. 자기가 질투가 나서 써 놓은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광석이 미국에서 돌아와 포장마차에서 따로 만남을 가졌던 고인의 친구는 “‘난 더 이상 처가집에 돈 벌어주기 싫어. 내가 버는 돈 모두를 처가집에서 가져가고 있어’라더라”고 괴로워했던 김광석의 모습을 전했다.
‘스포트라이트’는 미국 지인들의 증언까지 모았다. 서해순의 미국 지인은 “모녀 관계가 뭔가 이상해 보였다. 김광석 친구 집에 아이를 한참 맡기고 가끔 오는 정도였다”고 말했고, 미국에 거주한 김광석의 친구는 “98년에 서해순이 딸을 잠시 맡긴다고 했다. 자주 와야 3개월에 한 번 오고, 6개월에 한 번 왔다. 키운 건 저희가 키웠다. 98~99년에는 ‘아이가 궁금하지도 않냐?’며 아이를 데려가라 했다. 서연이라는 짐을 떼어놓고 자기는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며 서 씨가 딸을 방임했다고 밝혔다. 김광석-서해순의 딸 서연 양의 사망 진단기록을 본 박종태 전 법의학회장은 “간질성 폐렴이다. 병사다”라고 말했으며 서중석 전 국과수 원장까지 “타살 혐의는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2003년 가부키 증후군을 앓고 있던 서연 양은 관리가 소홀하면 면역력이 떨어져서 목숨까지 위험한 처지였다. 유기치사죄까지 의심할 만했다. 최근 서해순 씨는 “98년도 1년 동안 저작권은 5백만 원 나왔고, 그 이후 7~8년간은 거의 5~8백만 원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제작진 취재 결과 김광석의 저작료는 해마다 증가해 2017년에는 약 1억 원임을 확인했다. 저작권은 사후 70년간 인정되기 때문에 김광석의 저작권은 앞으로 49년간 저작권이 남아있는 상태다. 의심은 증폭됐지만 확증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점차 드러나는 정황들은 故 김광석이 못 다한 말, 그날의 진실을 전하는 것 같았다. 이날 추가로 일기장 분석 등 과학수사까지 동원했지만 고인의 죽음은 여전히 미궁으로 남아있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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