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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December 14, 2011

KBS 전 사장의 예언 “조중동 몰락이 임박했다”

KBS 전 사장의 예언 “조중동 몰락이 임박했다”[서평] <정연주의 증언> - 나는 왜 KBS에서 해임되었나
(오마이뉴스 / 김갑수 / 2011-12-14)

▲ 정연주 전 KBS 사장 ⓒ권우성

2008년 8월 11일, 이명박 대통령은 정연주 KBS 사장 해임안에 서명한 후, “이제 KBS도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KBS는 이 대통령의 말대로 확연히 거듭나고(?) 말았다. 이것은 KBS가 2010년 가을 ‘G20 신화창조’를 위한 특집에 무려 3300분 분량의 프로그램을 투입했다는 사실(KBS 새 노조 분석) 하나만으로도 너끈히 입증된다.

청와대, 한나라당, 방송통신위원회, 검찰,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 KBS 노조, KBS 이사회, 뉴라이트, 조중동.

이명박 정권이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는 데 동원한 기관들이다. 아무리 KBS가 중요하다고 해도 사장 하나를 몰아내는 데 들인 비용치고는 너무도 크지 않은가? 물론 이 과정에서 피해자 정연주 사장이 겪었어야 할 고통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해자 이명박 정권이 입은 내상과 외상도 결코 작지 않다고 본다.
정연주 사장은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버텼다. 이 외롭고 험난한 과정을 통해 그는 국민으로 하여금 이명박 정권과 하수기관들, 그리고 뉴라이트와 조중동 등의 비열성과 너절함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런 점에서 정연주 사장은 이명박 정권의 정체를 일찌감치 국민에게 알리는 데 기여한 최대 공로자였다고 할 수 있다.

정연주와 엄기영의 엇갈린 운명

KBS 정연주 사장은 MBC 엄기영 사장과 대조된다. MBC 엄기영 사장을 몰아내는 데에는 청와대와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만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KBS에 있던 어용노조와는 달리 MBC에는 엄기영 사장을 지지해 주는 노조가 있었다. 하지만 엄기영 사장은 무기력했다. 그는 얼마 동안 버티는 척만 하다가 물러났다.

이후 엄 사장은 자기가 방송 때 곧잘 쓰던 표현대로 ‘정말 어처구니가 없이’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강원도 지사에 출마했다. MBC와 완전히 결별한 것으로 알았던 국민은 그가 사퇴 후 1년 동안 MBC 고문직을 유지하면서 매달 1천여만 원의 보수에다 최고급 승용차와 기사까지 제공 받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엄 사장과 달리 정연주 사장은 소리(小利)를 탐하지 않고 대의(大義)를 좇았다. 그가 험난한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기자로서 언론의 자유에 대한 투철한 신념과 함께 그 자신 스스로 약점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침내 그는 법정에서 연달아 승리하여 정치 검찰이 옭아맨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죄(업무상 배임)에서 벗어났고, 이명박 대통령이 자행한 해임 행위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얻어냈다.

기자로서의 사명감과 역사의식으로 집필

▲ <정연주의 증언> 표지 ⓒ오마이북

정연주는 이런 모든 일들을 낱낱이 <오마이뉴스>에 게재하여 국민을 각성시켰다. 그러고는 원고를 다시 손질하고 여기에 ‘엄기영 사장에게 보내는 편지’와 ‘젊은 벗들에게’를 추가하여 단행본으로 펴냈다.

“내가 KBS에서 쫓겨난 지도 벌써 3년 너머의 세월이 흘렀다. 강제 해임된 뒤 홀연히 떠날 수도 있었다. KBS 안팎에서 험악한 꼴을 많이 당했기에 그런 것 다 뒤로 던져버리고 잊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위해 더 나은 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이, 평생 동안 언론을 업으로 해온 내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역사적 책무이기 때문이었다. 아픔과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기록하고 증언해야 했다.” - ‘머리말’에서
<정연주의 증언 - 나는 왜 KBS에서 해임되었나>(오마이북, 2011)를 통해 저자는 2008년 KBS를 둘러싸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를 해임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누가 언제 어떤 일을 했는지 등을 역사에 증언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해임 이후 KBS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일선에서 취재하는 기자들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실감 나게 전해준다.

흥미롭고 의미 있는 정보들과 조중동의 몰락 예언

이명박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는 데 얼마나 집요했는지, 그리하여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무슨 짓들을 벌였는지는 알려질 만큼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정 사장이 검찰과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한 법정 투쟁에서 승리했다는 것도 웬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이렇게 알려진 사실 말고도 갖가지 흥미롭고 의미 있는 정보들이 많이 들어 있다.

이런 정보들 중에는 ▲ KBS 사이비 저널리스트들의 기묘한 행태 ▲ 가히 ‘괴기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성싶은 어용노조의 변태성(?) ▲ 일신상의 출세만을 좇는 앵커와 기자들 ▲ 사장 몰아내기에 부역한 사내 이사 ‘6(敵)’의 이야기 ▲ 후임 간부들의 이중성 ▲ 특히 후임 사장 김인규의 ‘극과 극’적인 처신을 소개하는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 책의 긴요함은 이런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저자를 격려한 원로학자 리영희·백낙청 교수와 김대중 전 대통령, 개념 있는 연예인 김제동, 온갖 회유와 압력을 담담히 견디다가 KBS 이사직은 물론 교수직까지 박탈당하는 신태섭 교수의 미담, 그리고 때 묻지 않은 KBS 젊은 기자들의 열정 등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긴요함은 이 책이 과거를 되새기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미래의 희망을 예언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노아의 방주에 어린 잎사귀를 물고 와 홍수가 끝났다는 소식을 전한 비둘기처럼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는 저자는 이 책의 제6장을 ‘그래도 희망은 있다’라는 제목으로 장식하고 있다.
저자는 이명박 정권의 실패와 조중동의 몰락을 예언한다. 아마도 그는 노무현 대통령 다음으로 조중동에게 많이 공격당한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중동을 가리켜 태연히 ‘조폭언론’이라고 명명한다. 그는 조중동을 보지 않는 젊은 세대가 희망의 근거라고 진단하면서 조중동의 몰락이 임박했다고 확신한다.

종이 신문업이 사양산업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젊은이들일수록 종이 신문을 구독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중동은 이를 만회하려고 무리수를 두었는데 그것이 곧 TV 종합편성 채널이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조중동의 몰락을 재촉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종편채널이야말로 조중동의 ‘죽음의 덫’이라고 단언한다.
먼저 종합편성 채널 자체가 불법적인 미디어법에 근거한 것이므로 차후 얼마든지 재허가 취소가 가능하다. 다음으로 한국의 광고시장은 새로운 종편채널에까지 옮겨 갈 여력이 없다. 종편의 시청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그래서 종편은 속성상 막장 방송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는 예상 역시 지금 현실로 입증되고 있다.

TV 방송에는 거액의 초기 함몰비용이 발생한다. 프로그램의 제작비용은 종이신문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드라마만 해도 일정한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저자는 제아무리 조중동일지라도 이 많은 악조건을 극복하기란 어렵다고 본다. 여기에다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으로 인해 공영방송인 KBS와 MBC가 이미 조중동 성격의 방송이 돼버린 판에 시청자들이 굳이 또 다른 조중동 방송을 보려 하지 않을 것임을 감안한다면 종편의 시청률 제고는 기대하기가 난망이다.
조중동의 몰락을 기대하는 저자지
만 한편으로는 진보언론에 대해서도 따끔한 비판을 잊지 않는데 이것은 정말 공감이 가는 대목이어서 소개하기로 한다. 저자는 자기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법조기자의 심각한 문제를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꼈다고 하는데, 그것은 검찰 중심의 취재 관행 때문에 빚어진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법조 출입기자들은 대검찰청 기자실을 중심으로 하고, 법원 취재는 등한시한다. 그러다 보니 검찰이 주는 먹이를 덥석덥석 물면서 그게 특종이라고 여기고 대서특필한다. 수구언론이고 진보언론이고 구분이 없다. 특히 사안이 정치적인 경우 검찰은 진보언론에 먼저 먹이를 주는 것을 종종 보았다. 결과는 수구언론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  202~203쪽

나는 정연주처럼 살고 싶지만…

▲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문재인-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발간기념 ‘The 위대한 검찰’ 토크 콘서트에서 정영주 전 KBS 사장이 관객들의 요청으로 최근 자신이 집필한 <정연주의 증언 나는 왜 KBS에서 해임 되었나>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 ⓒ유성호

저자 정연주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암흑의 유신 시절이었던 1979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하다가 해직과 함께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복역한 후 도미했다. 그는 어려운 가운데에도 자기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 같다. 미국 휴스턴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얻은 그는 창간된 <한겨레신문>의 워싱턴 특파원과 논설주간을 역임한 후 2003년 시민·언론 단체의 추천 공모로 KBS 사장에 부임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새해 벽두 조중동은 일제히 ‘KBS 정연주 몰아내기’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어서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유가 KBS와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고 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오히려 더욱 떨어지기만 했다.

대한민국 사회는 정연주 같은 기자 또는 언론인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일면식이 없는 그지만 책을 읽어 보니 그는 부단히 계몽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치열한 내면의 원칙을 일관되게 견지해 온 인물인 것 같다. 2008년 새해 벽두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정연주가 누구인가’라는 다섯 번의 질문을 던지면서, 그가 얼마나 파렴치한 인간인가를 격문처럼 설파했지만, 나는 그래도 정연주처럼 살고 싶다. 아니, 그처럼 살지 못한 것이 조금 부끄러워진다.

김갑수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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