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정치’를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런 뜻을 관철시킨 게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사퇴였다. 자기 정치를 했다며 여당원내사령탑을 지목하고 국민의 심판을 주문하자 유승민은 사라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박 대통령의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그런데 유승민 사태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김 대표는 자기 정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넘칠 정도로 박근혜 정부 코드를 과도하게 맞춰왔다. 바짝 엎드렸다는 얘기다.
지난해 김 대표가 개헌론을 꺼내들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가 드러나자 김 대표는 곧바로 개헌 카드를 접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옆에서 찍혀서 죽어 나갈 때에도 청와대를 향한 김무성 대표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아가 김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최대 화두인 노동개혁을 위해 강경노조 쇠파이프 발언을 쏟아내며 악역을 자처했다. 당 대표로서 부담이 될 수 있는 국정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도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 7월 당권을 잡고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오른 뒤 김 대표는 청와대에 반기를 든 적이 없다. 당권을 쥐고 있고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총선에서 승리하면 대권 가도를 달릴 수 있는데 굳이 대통령의 심기를 건들릴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지난 2013년과 비교해도 김무성 대표의 행보는 도드라진다. 최장기 철도노조 파업 당시 김 대표는 협상파임을 강조하며 파업을 철회시키는 타협을 이끌어냈다. 강경 대응을 주문했던 청와대를 머쓱하게 만들었고 소위 노동계와도 대화가 통하는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쇠파이프 발언을 통해 노동계와 협상에 노력을 기울였던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동시에 청와대에 러브콜을 보냈다.
그런데 ‘자기 정치’도 하지 않았고 청와대의 뜻을 충실히 따랐던 김무성 대표에게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첫째, 김무성 대표 사위의 마약 투약 논란과 관련한 청와대 기획설이다. 정치인의 가장 약한 고리는 본인의 비리 문제를 포함해 친인척의 도덕성과 관련한 문제다. 이번 사위 마약 사건은 '마약'이라는 선정적인 소재로 인한 화제성과 특권층의 봐주기 논란이 겹치면서 김 대표의 이미지에 타격을 줬다.
무엇보다 마약 사건이 청와대의 기획 작품이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김 대표에게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선고된 사건이 불거진 것은 타이밍상으로 뒷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둘째, 박근혜 대통령을 사석에서 '누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박으로 분류되며 청와대 정무특보를 맡고 있는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김무성 대권 불가론’에 가까운 발언을 유력 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쏟아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김 대표 사위 마약 사건 청와대 기획설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가까웠지만 윤 의원의 발언은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정치적 해석이 나올 것을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김무성 죽이기의 ‘확실한 증거’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윤 의원은 15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으로 4선(選)이 될 친박 의원들 중에 차기 대선에 도전할 분들이 있다"면서 김 대표를 겨냥해 “당 지지율이 40%대인데 김 대표 지지율은 20%대에 머물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윤 의원의 발언은 마약 사건 청와대 기획설에 이어 김무성 대표에 치명타를 입히는 쐐기 효과로 작용했다. 특히 윤 의원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 선거와 관련해 "내년 총선 공천은 청와대가 주는 게 아니라 지역주민이 주는 것”이라며 “현지 분위기는 매우 힘든 것으로 듣고 있다”고 말했는데 김 대표를 향한 발언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유 전 대표 역시 박 대통령에 찍혀 당선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우회적으로 김무성 대표의 ‘충성’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 ||
김무성 대표가 그동안 청와대에 납짝 엎드리는 행보를 걸어왔다는 점에서 사위 마약 사건과 윤 의원은 발언 내용을 청와대 작품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박근혜 정부 코드 맞추기 행보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사건이 청와대가 깊이 개입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미 청와대는 차기 권력으로서 김무성을 버렸다고 볼 수 있다. 김 대표가 청와대가 자신을 버렸다고 판단하고 이후 최고 권력자에 반기를 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본격적으로 차기 대권 주자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김 대표가 그동안 정치적 반대 세력은 고려치 않고 보수 지지층인 집토끼에 집중해왔지만 청와대가 버린 이상 자신의 표 확장을 위해 '자기 정치'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무성 대표의 사위 마약 사건과 윤상현 의원의 발언에 이어 청와대발 김무성 죽이기가 터진다면 김무성 대표도 반격을 준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의도 정가에서 친박 세력의 대안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회자되는 것도 김 대표가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이다. 중국 열병식 때 박근혜 대통령이 반기문 사무총장과 '은밀한' 애기를 나눴다는 미확인 루머도 돌고 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자기 정치를 했다며 국민이 심판해달라고 배신의 정치로 찍어냈다면 김무성 대표는 그동안 박 대통령을 향한 유화 제스처와 상관없이 박 대통령의 성격과 인간적인 호불호에 비껴가 있는 인물로 보인다"며 "향후 총선의 공을 세운 자가 대선으로 달려갈 수 있는데 적어도 올 가을이나 겨울에 대통령이 의중이 주목되는 큰 이슈가 터져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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