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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September 17, 2015

민족문제연구소 "김무성 부친은 명백한 친일파" 김용주의 일제말기 '군행기 헌납' 기명광고 등 근거로 제시

민족문제연구소가 17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선친 고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을 둘러싼 친일 논란과 관련, "일제에 적극 협력한 명명백백한 친일파임이 틀림없다"고 단언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서울 동대문구 민족문제연구소 역사 자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해방 70돌을 맞은 지난 8월 15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선친 김용주 씨에 대한 평전 <강을 건너는 산>이 출간되면서 김용주의 일제시기 행적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김용주의 친일 행적과 근거자료를 최초로 공개한 뒤, 이같이 규정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김용주는 경상북도 도회의원, 국민총력경상북도수산연맹 이사, 국민총력경상북도연맹 평의원,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및 경상북도지부 상임이사·사업부장 등을 지냈다. 

연구소가 열거한 김용주의 대표적 친일행각은 ① 문명기 등 특급 친일파와 함께 전시체제하 근로보국을 위한 국민개로운동 독려, ② 출정 황군에 대한 감사 전보 발송을 제안하고, 징병제 실시에 기쁨과 감사를 표하며 영광이라고 찬양했으며 청년들에게 미영격멸에 나서라고 선동, ③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위해 신사 건립, 내선동조동근론 전파, 징병원호사업 확립 등을 주장, ④ 황국신민화 정책에 부응하여 대구국체명징관·대구신사 등에 기부금 헌납, ⑤ 군용기 헌납운동 주도 등이다. 

연구소는 "김용주가 명백한 친일파라는 점은 그가 박중양, 문명기, 장직상, 서병조, 정해붕 등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의원이나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낸 거물 친일파들과 반열을 나란히 하며 식민지배와 전쟁동원에 기여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며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행적은 그가 비행기 헌납운동에 앞장섰다는 사실"이라며, 구체적 근거로 김용주가 1944년 7월9일자 일본 <아사히신문>에 낸 기명 광고를 제시했다. 

실제로 당시 <아사히신문>에는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이라는 김용주의 기명 광고가 실렸다.

연구소는 "지난 1945년 김용주가 조선임전보국단 경상북도지부 상임이사 등으로 활동한 경상북도 영일군에서만 100만원 상당이 모금돼 패전 직전까지 경북도민이 총 109대의 비행기를 헌납했다"면서 "1940년 1월 금값을 기준으로 당시 1만원은 현재 1억원 상당의 가치를 가졌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김용주가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김 대표가 공당의 대표로서 또 공공연한 대권 행보자로서, 선친의 친일행적과 관련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그간의 행태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무성 대표는 그동안 선친의 친일행각을 전면 부인해왔다.

한 예로 김 대표는 지난 2013년 9월17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국내 언론보도를 보면 선친께서는 은행원 신분으로 독서회를 만들고 야학에서 가르치다 은행에서 내침을 당했다. 그래서 세운 게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은 ‘삼일상회’다. 일본 경찰로부터 집요한 상호변경을 압력을 받은 끝에 간판을 내려야 했다. 몸도 약한 분이 헌병대·경찰서에 수시로 끌려가는 등 요시찰 인물로 찍혔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어 "또 29세 때 재산의 절반을 털어 포항영흥보통학교를 세웠다. 식민지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려는 취지였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면서 "이런 분이 어떻게 친일파인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았으므로 친일파가 아니라는 김 대표측 주장에 대해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최종 결정을 거쳐야 하지만 각종 증거 자료로 볼 때 <친일인명사전> 보유편이나 개정판이 나올 때 수록이 확실시 된다"며 등재 방침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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