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흡연율 8% 포인트 하락’ 전망 불구 7개월 만에 예년 수준 회복
담뱃값 인상은 국민건강과는 별 관계가 없었다. 골초들만 왕창 털이 뽑혔을 뿐이다. 담배를 만드는 담배회사와 담배를 파는 편의점도 웃었다. 정부는 애초에 국민 금연 의지가 없었다. 국책연구원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전망은 크게 빗나갔다. 애초에 담배 소비 감소율을 과도하게 잡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담뱃값 인상을 위해 조세재정연구원이 들러리를 선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담뱃값 인상 6개월 만에 드러난 민낯이다.
9월 16일 기획재정부는 ‘2016년도 부담금운용종합계획서(수정)’라는 자료를 냈다. 엿새 전인 9월 10일 배포한 계획서의 수정안이었다. 부담금이란 특정사업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해당 사업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에게만 부과하는 일종의 준조세다. 수정안에서 기재부는 2016년도 부담금 징수목표를 전년보다 1조3941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바꿨다. 당초는 내년도 부담금이 4374억원 감소할 것으로 봤다. 6일 만에 1조원이나 계획에 차이가 났다. 계획이 이렇게 틀어진 것은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때문이었다. 정부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728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가 5737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바꿨다.
정부와 담배회사, 편의점만 웃었다국민건강증진부담금은 담배에 포함된 부담금이다. 한 갑이 팔리면 841원이 걷힌다. 애초 정부가 전망한 내년도 담배 판매량은 28억6000만갑이었다. 그러다 34억6000만갑으로 8억갑가량이 더 팔릴 것으로 전망치를 바꿨다. 28억6000만갑이 팔릴 것으로 추정한 측은 보건복지부였고, 34억6000만갑이 팔릴 것으로 본 부서는 기획재정부였다. 올해 담배 판매 예상량은 28억8000만갑이다. 복지부는 내년에는 올해보다 2000만갑이 더 줄어들 것으로 봤다. 그래야 금연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재부가 난색을 표했다. 세수가 너무 줄어들었다. 그래서 올해보다 8억갑이 더 늘어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사실상 내년에는 금연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기재부와 복지부의 합의안을 기준으로 예산을 짰는데, 보도자료를 쓰면서 잘못 기재한 것”이라며 “최초 보도자료의 2억6000만갑은 복지부 요구였다”고 말했다. 판매량 전망치가 바뀌면서 국민건강증진부담금 수입도 껑충 뛰었다.
지난해 9월, 정부는 올해부터 담뱃값을 2000원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인상된 담배가격의 대부분은 세금이었다. 담배에 붙는 각종 세금과 부담금만 8개. 지난해까지는 한 갑에 1550원이 붙었는데, 올해부터는 3323원이 붙는다. 정부는 담뱃값을 올리면 담배소비량이 줄어 국민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현재 43.7%인 성인남성 흡연율을 5년 뒤인 2020년에는 29% 수준으로 낮추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금연치료와 흡연예방을 위한 예산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골초’들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방안이었다. 당장 정부는 담뱃값 2000원을 올리면 담배 판매량이 2014년보다 34%가량 적은 28억8000만갑으로 줄어들고, 이 때문에 남성 흡연율도 8%포인트 떨어진다고 밝혔다.
담뱃값이 인상된 올 1월 서울 종로의 한 가판대에서 흡연자가 개비당 300원에 가치담배를 사고 있다. / 이준헌 기자 |
금연사업 예산은 오히려 줄어들어담뱃값 인상 이후 7개월. 하지만 정부의 전망과 약속 어느 것도 지켜진 것이 없다. 한국담배협회의 자료를 보면 6월 이후 담배 판매량은 예년 수준을 회복했다. 6월에는 3억1000만갑, 7월엔 3억5000만갑이 팔렸다. 지난해 6월 3억6000만갑과 7월 3억5000만갑에 거의 근접했다. 연초는 달랐다. 예년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지난 1월 담배는 1억7000만갑, 2월은 1억8000만갑이 팔렸다. 연초효과(연초에 담배를 끊는 사람이 많아 담배 판매량이 줄어드는 현상)에다 가격인상 때문에 담배를 끊은 사람이 많았다. 거기에다 값이 오르기 전인 지난해 연말에 담배를 미리 사놓은 사람도 많아 판매량이 줄 수밖에 없었다. 담배 판매량은 3월 들어 2억갑을 넘더니 6월부터는 3억갑을 넘어서고 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팔린 담배는 18억갑이 넘는다. 남은 기간 한 달에 3억갑만 팔린다고 가정하면 15억갑이 더 팔릴 수 있다. 그러면 올해 최종 판매량은 33억갑에 이른다. 정부가 예상한 28억8000갑보다 최소 4억갑 이상이 더 나간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담배 판매에 따른 총 세수입도 10조원을 넘어선다. 지난해 담배로 거둔 세금은 6조6000억원이었다. 기재부가 당초 예상한 추가세수(2조8000억원)를 훨씬 초과하게 된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정부가 중독성이 강해 쉽게 끊지 못하는 기호품인 담배를 정상재(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어드는 일반적인 재화)로 간주해 매우 높은 가격 탄력성을 잡았다”며 “사실상 담뱃값 인상에 따른 담배 소비 감소 효과를 고의로 부풀렸다”고 말했다.
정부가 담배 소비 감소량의 근거로 잡은 것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담배효과의 과세와 재정’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담배의 가격 탄력성을 0.425로 잡았다. 1원의 가격이 오르면 0.425갑의 소비가 감소한다는 의미다. 이 기준을 잡아 담뱃값 2000원을 올리면 담배 소비가 34% 줄어든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 예산정책처는 달랐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가격 탄력성을 0.38로 잡았다. 1원의 가격 변화에 따른 판매량 변화가 조세재정연구원보다 적다고 본 것이다. 이 기준이면 담뱃값 2000원이 오르면 담배 판매 감소는 20%에 그친다. 조세재정연구원의 자료는 정부 용역을 받았고, 국회 예산정책처는 자체 예산으로 분석했다. 지금까지 결과대로라면 국회 예산정책처의 ‘완승’이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담뱃값 인상에 따른 금연효과는 줄어들고, 정부 세수만 충당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이는 정부가 잘못된 가격 탄성력을 근거로 가격을 인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조세재정연구원의 자료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높았다. 이 분석을 보면 담뱃값이 8500원을 넘어서면 판매량이 0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사람들이 담배를 끊는다는 의미다. 기재부 관계자는 “담배는 1만원이 넘어도 사서 필 사람은 필 것”이라며 “단순 모델이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금연투자도 ‘눈가리고 아웅하기’였다. 정부는 올해 금연사업 예산을 지난해 113억원에서 1475억원으로 13배나 늘렸다고 했다. 하지만 내년 예산은 1315억원으로 오히려 올해보다 160억원 줄이기로 했다. 학교 흡연 예방사업은 올해 444억원에서 333억원으로 줄고, 금연치료사업도 128억원에서 81억원으로 줄어든다.
담뱃값 인상으로 덕 본 것은 정부 세수입과 함께 물가였다. 담뱃값 2000원 인상은 소비자물가를 0.58%포인트 끌어올렸다. 담뱃값 인상이 없었으면 소비자물가는 한동안 마이너스를 찍었을 것이다. 담뱃값 인상은 국민들에게는 세부담이 커진 ‘대국민 사기극’에 가까웠지만 기재부에는 각종 정책의 골칫거리를 없애주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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