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른바 3+3 회동 합의문에 난데 없이 관광진흥법이나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이 포함됐다. 국회 문턱을 넘어서는 안 될 ‘악법’을 밀어붙이는 새누리당이 가장 큰 문제지만, 여기에 동의해준 새정치연합 또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제1야당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합의다.
본회의 처리까지 합의한 관광진흥법은 예산 부수법안이 아니다. 교육 환경과 대한항공에 대한 특혜를 맞바꾸는 법이다. 이런 법을 박근혜 대통령 한마디 때문에 새누리당이 밀어붙였고, 결국 졸속으로 처리했다. 아무리 국회에서 정치적 타협이 필요하다지만, 야당이 관광진흥법 처리에 응한 것은 문제다.
테러방지법이나 북한인권법을 정기국회에서 ‘합의 처리’하기로 한 것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파리 테러 사건을 빌미로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는 법이다. 심지어 계엄이 아닌 상황에서도 테러방지를 명목으로 국정원이 군을 통제할 수도 있다. 북한인권법도 극우단체나 대북단체에게 혜택이 돌아갈 뿐,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남북관계만 악화시킬 뿐이다. 새정치연합도 이들 법안의 문제점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사정이 변한 게 전혀 없는데도 덜컥 합의해준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새정치연합은 이에 대해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처리할 수 없으니 괜찮다’고 해명하고 있다. 법안 처리를 막는 통상적 수준의 합의란 얘기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런 식으로 한 발 물러서면 결국 다음에는 두 발 세 발 후퇴할 수밖에 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국정원이나 남북관계는 야당의 정체성과 관련한 문제다. 협상이나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새누리당의 강공에 무기력하게 당했다고 비판받아도 새정치연합은 할 말이 없다.
새정치연합이 이렇게 밀린 이유는 지역구 예산 확보라는 약점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새누리당이 법안과 예산을 역으로 연계하겠다는 파렴치한 수법까지 만지작거렸겠는가. 국회의원이 지역주민을 대표하는 존재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이나 원칙마저 지역구 예산과 맞바꿔서는 안 된다. 그런 야당이라면 군부독재 시절 정권의 회유에 넘어간 민한당이나 ‘사쿠라 정치인’과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가.
야당의 무기력한 모습은 어쩌면 필연적이기도 하다. 새정치연합의 무원칙한 타협을 견제했던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돼 버렸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이 국회 안에서 눈치볼 세력이 없어진 것이다. 그런 역할을 대신할 만한 정치세력이 지금 국회에는 보이질 않는다. 신뢰할 만한 야당을 갖지 못한 국민들의 울화통만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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