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외교 참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한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 협상에 대해 '굴욕 협상'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일본의 법적 책임성도 확인 받지 못한 협상 결과에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이라는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의 위안부 소녀상 철거 요구를 박 대통령이 받아들여 버렸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잃은 것은 10억 엔" 뿐이라고 발언한 것은 과언이 아니다. 협상 다음 날인 29일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가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방문하는 등 일본은 보란 듯이 협상을 비웃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이번 이슈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외교 실패라는 점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를 상회하고 있다. 박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율을 이끌고 있는 것은 '외교를 잘한다'는 이유다. 지난 18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율은 43%였고, 부정 평가율은 46%였다.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자에게 그 이유를 물은 결과(자유응답) '외교·국제 관계'를 잘 한다는 응답이 20%로 1위였다. 그리고 '열심히 한다·노력한다'(12%), '주관, 소신·여론에 끌려가지 않음'(11%), '안정적인 국정 운영'(8%) 등의 순이다.
'외교 하나는 잘한다'는 것이 그간 박 대통령 긍정 평가의 요체였다. 그러나 이런 지지 기반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 이번 한일 협정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이자, 윤병세 장관이 직접 발표한 위안부 소녀상 이전 문제에 대해 국민 66% 이상이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관련 기사 : 국민 세 명 중 두 명은 "소녀상 이전 반대")특히 중도층에서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이번 협상을 통해 박 대통령이 중도층의 지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협상 결과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29일 외교부 차관을 보내는 등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통령이 직접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정해진 바 없다"고만 말했다. 협상 결과를 발표한 직후 일본 외상을 청와대로 불러 접견하고 웃는 모습을 보인 것도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었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언론 플레이'는 노골적이다. 박 대통령을 겨냥,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이라는) 약속을 어기면 국제사회에서 끝난다"는 말까지 나왔다.
일본은 위안부 소녀상 이전과 10억 엔의 출연을 연계한다는 방침을 자국 언론을 통해 흘렸다. 요미우리 신문은 이날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위안부 지원 재단에 10억 엔을 출연하기 전에 소녀상 철거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 일본, 소녀상 철거해야 10억 엔 준다?)
산케이 신문은 아베 총리가 "앞으로 (한국과의 관계에서) 이 문제(일본군 위안부)에 관해 전혀 말하지 않겠다. 다음 일한 정상회담에서도 더 언급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렇게까지 한 이상 약속을 어기면 한국은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끝난다"는 말까지 했다.
이같은 보도들은 진위 여부를 떠나 박 대통령의 '외교 리더십'이 허울 뿐이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패션 외교'의 이면에 있던 무능함이 불거진 셈이다.
당장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시 이번 협정을 무효로 되돌릴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야당이 위안부 문제 관련 재협상을 총선, 혹은 대선 공약으로 내놓을 경우 민심이 어떻게 움직일 지 알 수 없다.
탄핵감이라는 말도 나온다. 민변 국제통상위원장인 송기호 변호사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조약이라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유이고, 조약이 아니라면 일본은 소녀상 철거를 확인한 후 자금을 집행할 것이며, 독도 문제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안부 문제 타결을 계기로 한국이 레버리지를 잃어버렸다고 판단한 일본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독도 문제는 일본 극우 정치인들에게 매력적인 카드다.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협상의 후폭풍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협상 직후 그들은 "박 대통령의 대승적 결단", "한일 협상 대단원의 막"이라는 표현들을 사용하며 공을 박 대통령에게 돌렸다.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은 이번 협상에 대해 사실상 입을 다물고 있다. 비박계 의원들도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해 보인다. 거역하는 인사는 철저히 찍어내는 '공포 정치' 하에서 충언을 할 수 있는 인사들은 이제 없다. '충성파' 진박들의 침묵의 기운만이 청와대 주변에 가득 차 있다.
결국 '콘크리트 지지층'을 굳게 믿었던 박 대통령과 주변 참모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이번 '외교 참사'의 주범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 경기가 가라앉고 있는 데다, 인위적 경제 활성화 효과도 끝나가는 상황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조급증이 발동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국정 교과서 친일 논란 등도 박 대통령에게는 '복병'이다.
박 대통령은 어떤 형식이든 신년에 이번 협상에 대해 설명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번 어긋난 외교 리더십을 세울 방법은 마땅치 않아 보인다. 2016년을 힘겹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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