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Click map below !!)

Turkey Branch Office : Europe & Middle East (Click map below !!)

Mobile Phone Cases (Click photo here !)

Mobile Phone Cases (Click photo here !)
Mobile Phone Cases

Wednesday, December 30, 2015

진보당 ‘마지막’ 대변인, “서청원 한판 붙읍시다” [인터뷰] 홍성규 옛 통합진보당 대변인, 경기도 화성갑 출마 “지역 정치 복원하겠다”

"오늘 진보당은 강제 해산을 당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향한 우리 모두의 노력까지 중단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해진 상황이 아닌가“
지난해 12월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통합진보당의 '마지막' 논평을 읽는 목소리는 떨렸다. 1년 9개월 동안 맡았던 대변인 업무는 그렇게 끝이 났다. 직장을 잃은 해고 노동자와 같이 그도 현실 정치에서 잠시 내려왔다. 홍성규 전 대변인의 이야기다. 

그리고 정당이 해산된지 1년이 지나고 2016년 새해를 이틀 남겨 놓은 30일 홍성규 전 대변인을 그의 고향인 경기도 화성시에서 만났다. 그의 직함은 화성 민주포럼 대표, 화성 노동자인권센터 소장이다. 그리도 하나 더, 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 화성시갑 무소속 후보다. 

화성시 향남읍에 자리잡은 한 건물 맨 마지막층 사무실에 들어서자 노란색 바탕에 "바꾸자 40대 기수로! 심판하자 친박정치!"라고 쓰인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화성하면 연쇄살인, 살인의 고장이 돼버렸다. 다른 가치로 바꿔줘야 한다. 깨달음의 고장, 성찰의 고장, 화성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이미지를 가꿔 화성의 가치를 달리 세우고 미래를 만들 수 있도록 화성의 발전을 고민해야 한다"

기성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지역의 발전’이라는 레토릭을 옛 진보당 대변인의 목소리로 듣는 건 생소했다. 그는 확신이 찬 말투로 야권연대의 후보자가 될 수 있고 오히려 무소속일 때 자신의 위력을 보여줘 진보 정치의 열망이 가시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홍 전 대변인이 넘어야할 산은 만만치 않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약해졌지만 종북 공세는 어딜가나 붙어다니는 딱지가 됐다. 그리고 홍 전 대변인이 상대해야할 정치인은 거물급 친박 실세인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이다. 오리무중인 야당 후보와의 연대도 과제로 남아있다. 특히 진보당 인사의 득표는 지지층의 표심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정당 설립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홍 전 대변인이 지역 일꾼이 되겠다는 일성으로 고향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5년 사이 무려 4번이다. 출마는 곧 인지도와 연결된다. 진보당이 해산되기 전 그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통합진보당 화성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화성시장 선거에 출마한 이후 4년 만에 재도전장을 냈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도 이 지역 후보로 출마했고, 2013년 재보궐선거에 나와 끝까지 완주했다. 화성시민들도 제법 홍 전 대변인의 얼굴을 알아본다. 대변인 업무를 맡으면서 언론에 자주 노출된 것도 인지도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됐다. 

출마 전력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화성시에서 오래동안 정치의 꿈을 키워왔다. 그는 화성시 남양읍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안양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서울로 대학을 가 학생운동을 했고 지난 2007년 민주노동당 학생위원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 정치를 해왔다. 도농 복합도시인 화성시 지역민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며 2년 동안 공장과 목재소, 인쇄소 등에서 일했다. 2008년 화성 기아 자동차 하청업체를 다녔던 그는 문자 한통으로 해고 통보를 받은 경험도 있다. 화성노동인권센터를 세운 것도 중소 영세 사업장의 노조 조직율이 낮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2010년 민주노동당 화성 시장 후보로 나온 뒤 그는 화성시의 모든 선거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그가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40대 기수론은 화성시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화성갑은 지난 2013년 고희선 새누리당 의원이 지병인 폐암으로 사망하면서 재보궐선거 지역이 됐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화성시와 연고도 없는 서청원 최고위원을 전략 공천하면서 내부 반발이 일었다. 서 최고위원은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복역하면서 도덕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 후보로 나온 오일룡 후보가 중앙 당직자 경험만 있어 인지도가 낮고 사실상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도 일었다. 화성갑은 과거에도 재보궐선거를 많이 치루면서 지역 발전과 상관 없이 여야 각축전이 돼 왔다는 인식이 강하다. 서청원 최고위원의 공천에 반발한 친이계 김성회 전 의원(18대 화성갑 의원)이 2년 만 기다리면 공천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지역난방공사 사장으로 낙점, 보은 인사가 이뤄졌다는 소문도 정가에 퍼져 있다. 김 전 의원은 지역난방공사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지역구 의원 시절 사무국장과 박근혜 대통령 대표 시절 경호원을 채용해 뒷말을 낳았다. 또한 공사 명의로 화성시 어린이집연합회 행사에 1000만원에 가까운 물품을 후원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기도 했다. 

여야 정치인이 화성 지역의 장기적인 비전을 내놓지 못하면서 불신이 강하다는 것이 홍 전 대변인의 생각이다. 홍 전 대변인은 "7선의 최다선 의원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지역 발전시키겠다고 하고 대통령 측근이니까 2년 정도는 지켜보겠다는 게 있었지만 이번에 재출마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며 "70세가 훌쩍 넘어서 또다시 출마하려고 하는데 무얼 할 수 있겠느냐. 화성 쪽에서는 지역 정치인에 대한 갈망이 있다. 발전은 무궁무진한데 정치적으로 낙후됐다.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지역 일꾼을 못 키워내면서 반감이 크다"고 말했다.

서 최고위원이 지방 예산 수백억원을 끌어왔다는 얘기에 대해서도 지역 주민들은 오히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홍 전 대변인은 "지역민의 심리라는게 경제 발전도 중요한데 자꾸만 돈을 끌어왔다고 하는데 돈만 던져주면 되는거야 라는 생각도 강하다"고 말했다.

홍 전 대변인은 "10년 후 화성에 대해 청사진을 제출한 사람이 없다. 서청원이 오면 화성에서 10년~20년 뒤에 뭘 하겠나, 2년 동안 국고를 투입하면 화성시의 발전이 10년 앞당겨지나 천박한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 홍성규 전 통합진보당 대변인. ⓒ민중의소리
 
21세기 40대 기수론은 고령의 노회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서청원 최고위원에 맞서 젊은 정치 신인의 패기를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홍 전 대변인에 따르면 지난 1971년 박정희 군사 독재의 폭정이 심한 것은 물론 야당이 사쿠라 야당이라고 불리면서 실망감이 컸고 이에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들고 나와 파열음을 냈던 것이 40대 기수론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40대 기수론을 통해 대선 후보로 주목을 받았고 대선에서 박정희 정권을 위협할 정도의 표를 얻었다. 홍 전 대변인은 21세기 40대 기수론이 일방통행 중인 집권여당과 무기력한 야당을 비집고 들어가 균열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3년 재보궐선거에서 자신이 얻은 8.16% 득표율도 지역 정치인의 토양을 키워내기 위한 주민들의 표심이 반영됐다는 게 홍 전 대변인의 생각이다. 그해 8월은 이석기 전 의원이 내란 음모 혐의를 받고 종북몰이가 최정점에 달한 시기였고, 당 해산 심판 청구를 앞두고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한달 전엔 국정원으로부터 자택까지 압수수색 당했다. 당시 진보당 지지율은 1~2%에 그쳤다. 뻔히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화성갑 선거 뚜겅을 열어보니 8%가 넘는 득표를 한 것이다. 

홍 전 대변인은 "당시엔 공포분위기가 너무 강했다. 대형버스까지 타고 와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주변 주민분이 구경하는 상황도 있었다"면서 "종북 프레임 자체가 어디든 갖다 붙이면서 희화화됐지만 여전히 공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면서 "진보정치 본령이라고 하는 게 노동자 농민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이다. 정치의 본령이다. 기성 정당이 모두를 대변하지 못한 상황에서 진보 정치에 대한 갈망은 언제든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만약 진보당이 해산되지 않았다면 적어도 야당을 견인하면서 무기력하게 끌려가지만 않았을 것이라는 말로 진보정당 필요성에 대한 생각도 우회적으로 밝혔다.

홍 전 대변인은 "보수 언론에서 진보정당의 재건이라고 물어보는데 15년 동안 진보당의 역사적으로 소임을 다하고 사라졌다. 재건이란 말은 부질 없는 것이고 의미도 없다. 현재 정권에서도 불가능하다"면서 "과거를 두고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2차 시기를 준비해야 한다. 15년 진보당의 역사가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홍성규 전 대변인과 일문일답이다. 

- 화성갑 지역 민심은 지난 2013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청원 의원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방인 서 최고위원에 대한 생각과 민심을 말해달라.
"얼마 전에 상징적으로 재미난 일이 있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자기 지역구에 차차기 총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70세 이상이 새로 선출직에 나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건데 서청원 의원이 70세가 넘었다. 지역민들도 지역이 낙후돼  있다는 인식 하에 7선 최다선 의원인 서 최고위원이 지역 발전을 시키겠다고 하고 대통령 측근이라고 하니까 2년 정도 지켜보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서 최고원은 충청도 사람으로 연고가 없다. 이번에 재출마하려는 것에 시선이 곱지 않다. 70세가 훌쩍 넘어서 또다시 출마하려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화성 쪽에서는 지역 정치인들에 대한 갈망이 있다. 이 지역에서 재선한 국회의원이 별로 없다. 향후 발전은 무궁무진한데 정치적으로 낙후돼 있다. 재선이든 삼선이든 정치인을 키워야 하는데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정치인을 못 키운다. 서청원 최고위원이 돈을 많이 끌어왔다고 하는데 지역민 심리라는게 경제 발전도 중요하지만 자꾸 듣다 보면 돈 던져주면 뭐든지 되는 거야 라는 반감도 있는게 사실이다"

- 여야 정치인보다 화성에 지역 연고가 더 깊나
“화성 민주포럼이라는 단체와 노동인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태어나서 살고 있는 곳이다. 2013년 재보궐선거에서 제가 얻었던 득표가 당 지지율을 상회한 것을 두고 홍씨 문중의 힘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화성의 남양이 바로 남양 홍씨다. 종편에서 남양 홍씨니까 득표율이 많이 나온 게 아니냐고 했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 해당 지역은 화성에서도 시골지역이고 투표율이 가장 낮게 나왔다. 초중학교를 화성에 나왔고 고등학교를 안양에서 다니고 서울로 대학을 가서 학생운동을 했다.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활동을 하고 2008년도 지역으로 내려왔다. 지역민들 생활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는 도농 복합도시인데 제가 자랄때만해도 시골에 가까웠다. 화성 기아 자동차 사업장이 있고 현대자동차기술원이 있다. 중소 사업장도 많다. 2010년도까지 저도 노동자 생활을 했다. 기아 자동차 사업 하청업체 비정규직이기도 했고, 목재소, 인쇄소 등에서 일했다. 2008년 한국 대우 지엠 사태가 터지면서 문자 하나로 해고됐던 시절도 있었다. 밤 10시 퇴근하고 문자로 해고를 당했다. 청년 시절 민주노동당 활동을 했지만 서민의 삶을 직접 느껴본 것은 아니었다. 지역에서 일을 하면서 지역민들에 필요한게 무엇인지 고민했고 화성노동인권센터 설립으로 이어졌다” 

- 출마 경험이 적지 않다. 상당히 오랜 기간 지역활동을 해왔는데 
“원래 정치를 하겠다는 뜻은 크지 않았다. 2010년도 지방선거가 있었던 해였고 야권연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현이 됐다. 공장에 다니다 급하게 화성시장 후보가 됐다. 선거 이틀 전에 야권연대가 확정됐고 사퇴했다. 시장 선거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민주당이 400-500표 차로 당선됐다. 어떻게 보면 민주노동당이 지역 정권 교체의 주역이 됐다. 2012년 총선 때 출마했고 2013년 3월부터 중앙당 대변인 생활을 하다 재보궐선거에 나왔다. 당 해산 이후 올해 초에 진보정치의 뜻과 열망을 담아 화성민주포럼을 만들고 운영해왔다”

- 2013년도 9% 가까운 득표율을 보이면서 주목을 받았는데
“그해 8월말 내란음모 사건이 터지고 10월 재보궐 선거가 끝나고 일주일이 안돼서 해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전자 결재를 통해 해산 심판 청구를 승인했다. 우스갯 소리로 저 때문에 그랬다는 얘기도 나왔다. 제가 2-3% 받았으면 모르겠는데 수도권에서 9% 가까운 득표율이 나오니까 위협을 느꼈다는 것이다. 당시 공포 분위기가 강했다. 국정원이 대형 버스를 타고와서 압수수색을 하는데 구경하러 온 분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8%가 나온 것에 시민들께 감사하다” 

- 이번 총선에서 야권연대가 화두에 올라와 있다.  
“제1야당의 분화 속 현재 상황은 모든 정당과 모든 후보가 나와 난립하면 새누리당이 압승한다. 그런데 야당은 야당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릇이 작다. 모두 우리한테 모이라고 하는데 말이 안된다. 정권 심판하는데 힘을 모을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하는데 민주당은 현실성이 없다. 2010년도의 야권연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 판을 만들면 이 지역에서도 서청원 의원을 꺾을 수 있다. 적어도 화성갑 지역에서 5년 활동하면서 인지도가 있고 최소한 적어도 이 사람은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민주통일정치포럼과 시민혁명당이 출현하고 전농, 민주노총의 총선 대응 등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런 흐름들이 본후보 등록이 있기 전인 설 이전에 한달 동안 굉장히 많이 분출될 것이고 장담하기 어렵지만 노동자 서민을 위한 정치 가치가 진보 정치의 본령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헌신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보고 (연대의)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 화성갑 지역 현안은
"지역 주민들이 정치권 도움 없이 미군 폭격장(매향리)을 쫓아냈는데 부지가 굉장히 넓다. 국방부 소유로 돼 있고 시에서 절반 정도 부지를 샀다. 주민들은 평화센터 공원을 만들라는 요구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부지에 계획 중이던 유소년 야구장을 전환해 매향리로 틀어 버렸다. 수원 공군 비행장 이전 문제도 있다. 3~4곳 후보지가 있는데 화성 바닷가가 거론이 되고 있다. 올해 발표하려고 했지만 총선 때문에 민감해서 발표가 미뤄지고 있다. 매향리 폭격장도 문제였는데 이곳에 군사시설이 또다시 들어온다는 것이어서 관심이 뜨겁다“

- 당장 출마하면 종북 공세가 예상된다. 
“종북 프레임은 실체가 없는 공포심을 만들고 낙인찍기를 한다. 왜 종북이냐라고 물으면 설명을 못하는데 무섭다. 내란음모 사건이 났을 때 전화 오신 분들도 있었고 에스엔에스 친구였던 선배는 친구를 끊고 자신을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재보궐선거 때도 지지는 하는데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더라. 종북 공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종북 공세가 희화화되면서 프레임 자체가 희석화됐지만 여전히 공포심이 남아있다”

- 분당 사태 등 진보 정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저는 진보정치 본령이라고 하는 게 노동자 농민 서민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정당이 모두를 대변하지 못한 상황에서 진보 정치에 대한 갈망은 언제든지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근대화 이후 굉장히 정치 구조가 왜곡되고 분단과 독재 때문에 진보정치 토양을 어렵게 했다. 1945년 해방 이후 55년이 지나고서야 민주노동당 이름으로 2000년도 창당했다. 갑자기 진보 정치가 없다가 생긴게 아니라 끊임없이 정당을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탄압을 받다가 이를 넘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다만 창당을 하고 잘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했는데 어려운 현실이 있었다. 2014년 진보당 해산되고 창당 15년 역사가 한차례 마무리는 되는 시점에 와 있다. 진보당 해산도 분단과 독재의 프레임에 의해서였고 아직도 진보 정당이 뿌리 내리는데 위협적인 요소가 되고 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 정치를 꿈꾼 사람들이 분당과 독재에 기반한 정치 탄압으로 모든 탓을 돌리는게 맞느냐라고 하면 반성적인 부분이 있다. 분당 사태는 두번에 걸쳐 일어났는데 우리 사이 간극이라고 하는 게 새누리당, 민주당과의 간극보다는 크지 않다. 화합, 소통을 하지 못하고 발전하는데 자양분으로 가져가지 못한 문제가 있다. 어떤 탄압과 마타도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진보정치 본령에 대해 좀 더 소통을 잘 하지 못했던 것을 되돌아 봐야 한다" 

- 진보당 인사들의 출마를 놓고 진보당 재건 운동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보수 언론이 진보당 재건이 아니냐고 물어보는데 15년 동안 통합진보당은 역사적 소임을 다하고 사라졌다. 재건은 부질 없는 짓이고 의미 없다. 현재 정권에서 불가능하다. 과거 두고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2차 시기 운동을 준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진보당 15년 역사가 자양분이 될 것이다”

- 21세기 40대 기수론의 구호가 눈에 띈다. 보통 진보당 소속 때 구호는 정권 심판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좀 다르다 
“지역민들에게 호소드릴 부분으로 명료하고 적합한 구호로 볼 수 있다. 현재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70년대 상황을 돌아보게 되고 퍼즐을 맞추면 유신 독재 퍼스트 레이디가 당시 배웠던 정치적 상황을 재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1971년도 대선 직전에 박정희 군사 독재 시절과 유사하다. 군사 독재 폭정은 말할 필요도 없고 야당은 지리 멸렬했다. 여당 2중대냐, 사쿠라 야당이냐는 얘기가 나왔고 실망감이 높았다. 거기에 결정적인 파열구을 냈던 것이 40대 기수론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42살, 김대중 전 대통령이 44살이었다. 야당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를 던졌다. 김대중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됐고 71년 정권을 위협하는 선거 치뤘다. 지금도 흡사하다. 야당이 정신 차려야 하는데 실제 맞서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21세기 40대 기수론은 1970년 상황을 차용해 정권과 싸우겠다는 것이다”
  
▲ 홍성규 전 통합진보당 대변인. ⓒ민중의소리
 
-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TV 토론회에서 이정희 전 대표가 박정희 대통령을 밀어붙여 보수층의 결집을 가져왔고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지적은 어떻게 보나
“상황을 왜곡 시키기 위한 대표적인 매도이자 유언비어라고 본다. 당시 상황은 1차 토론회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문재인이 박근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1차 TV 토론회 다음날 아침 시민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지지율이 올라갔다고 보고 있다. 지지율 수치로만 보면 TV 토론회가 끝나고 불이 붙었다. 문재인 대표의 득표만 보더라도 야권의 힘으로 비등비등하게 쫓아간 대선이었다.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진보당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다”
- 진보당 역할 부재에 대해 아쉽다는 여론도 있다. 진보당이 해산되지 않았더라면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막아설 수 있었다고 보나
"세월호 참사 전에 가장 큰 이슈가 국정원 댓글 사건이었고 국정원이 존폐 위기에 몰렸을 때 내란 음모 사건이 터졌다. 진보당이 있었다면 세월호 참사 문제, 국정교과서 사태, 민중총궐기 백남기 농민 문제 등을 훨씬 더 날카롭게 정권에 맞서서 국민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300명 중 6명이라고 하지만 제1야당을 견인하고 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최소한 어떤 행동을 안할 수 없도록 했을 것이다. 의석수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본질이다. 정권의 일방통행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 역할을 했을 것이다"

- 안철수 신당에 대한 중도층 지지가 가시화되고 있다. 양당제 하에 의미있는 제3정당이 출현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안 의원은 여야 어디로 가도 어울리는 것이 결정적인 약점이다. 야권의 편에 서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백남기 농민 사태 때 서민의 편에 선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석달 보름 동안 모든 힘을 야권의 전체 힘을 모으는데 써야 한다. 안 의원이 연대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정치적 수사라고보고 연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당이라고 하는 게 이념 정당이 아니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오른쪽으로 가면 새누리당도 오른쪽으로 간다. 경제민주화 공약처럼 사회 분위기가 왼쪽으로 가면 새누리당 왼쪽으로 간다. 안철수 의원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양당 구조에 균열을 내는 제3정당이 필요하지만 노동자 농민 서민을 대변하는 진보 정당이 필요하다. 일시적으로 제3당이 될 수 있겠지만 그건 포지셔닝만으로 존재하고 기성 정당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진짜 진보정당이 나오고 세력이 형성됐을 대 제3정당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 이번 총선의 목표가 뭔가
“지역 현안을 잘 알고 있고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할 사람, 10년 후 화성의 청사진을 제출할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다. 서청원 의원이 2년 동안 돈을 끌어왔다고 하는데 지역 발전이 10년이 앞당겨지나? 천박한 인식이다”

“삼국시대 중국으로 가는 빠른 해로 바닷길이 화성이었다. 당안성을 차지 하기 위해 삼국이 벌인 혈투 지역이 화성이었다.  대중국 해로도 그렇고 북한과도 그렇고 한반도로 보면 서쪽 끝이고 동북아로 보면 중심지이다. 동북아 평화 시대 거점도시 화성을 만들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화성은 이제까지 살인의 고장이 돼 있다. 다른 가치로 바꿔줘야 한다. 깨달음의 고장, 성찰의 고장 화성을 브랜드하고 이미지를 가꿔야 화성의 가치가 달라진다. 미래를 만들어나갈 것이냐 놓고 화성의 발전을 고민해야 한다. 지역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뿌리없는 철새 정치인, 일시적으로 머물다 가는 정치인은 필요 없다. 화성과 동고동락하고 미래 화성의 정치를 시작하겠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