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영방송 보도국장에는 “나 좀 살려주쇼”… 소규모 매체에는 “이렇게 기사쓰고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미디어오늘김도연 기자]
지난달 30일 언론 시민단체들이 공개한 세월호 참사 직후 당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의원)의 통화녹취에서 눈에 띄는 건 이 전 수석 특유의 화법이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핏대’를 세우며 끊임없이 내뱉는 화술이다. “(국방부) XX놈들아”라고 거침없이 욕을 하면서도 상대를 어르고 달래며 본인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그가 통화한 후 KBS에서 관련 리포트가 빠졌다고 하니 성과라면 성과랄까.
“뉴스 편집에서 빼 달라.”, “다시 녹음해서 만들어 달라.” KBS보도에 서슴없이 개입하는 것도 충격적이었으나 이 전 수석이 김 전 국장에게 “(대통령님이) KBS를 오늘 봤네. 한 번만 도와주시오. 국장님 나 한번만 도와줘”라며 애걸복걸하는 대목에서는 폭소를 금치 못했다.
▲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왼쪽)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사진=미디어오늘, 연합뉴스) |
4년 전 내가 경험한 모습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대선 직전이었던 12월 기자는 ‘미디어스’ 소속이었다.
당시 동료이자 선배인 김완 기자(현 한겨레21 소속)는 “박근혜 TV토론 ‘아이패드 소지했다’는데”라는 제하의 기사를 썼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TV 대선 토론회 중 아이패드를 보고 커닝했다는 의혹에 대해 당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선방위) 공보 담당자를 통해 사실 확인을 한 기사였다.
당시 김 기자와 통화한 선방위 관계자는 사실을 확인해줬고 이를 바탕으로 기사는 출고됐다. 기사가 나가고 선방위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는 등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무릇 모든 선거가 그렇듯 선거가 끝나자 유야무야됐다.
흥미로운 건 기사 출고 이후 이정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 공보단장 반응이었다. 그는 미디어스로 직접 전화를 걸어와 대뜸 “이건 기사가 아니니까 내리라”고 요구했다. 당시 기자는 미디어스 사무실에서 김완 기자와 이 단장의 전화 통화를 유심히 지켜봤다.
통화가 계속될수록 김완 기자의 얼굴과 목소리가 달아올랐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물었다. “선배, 이정현이 뭐래요?” 돌아오는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어떻게든 너희(미디어스)는 없앤단다.”
4년 전 일은 지금껏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1년차 기자로서 진짜 직장이 없어지진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막강한 권력의 실세가 소규모 인터넷 매체 하나 없애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사쓰고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위에 내가 다 이야기했다”, “내게 찾아와보지도 않고 어떻게 이런 기사를 쓰느냐”, “강구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그의 발언들은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 오래 회자됐다.
지난해 9월 서울 관악신사시장에서 ‘마약 사위’ 논란의 당사자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앰부시’(ambush)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때 이 전 수석과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마약 사위 이후 친박계가 김무성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친박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는데도 언론이 자꾸 싸움을 부추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 전 수석은 “자꾸만 언론이 분열, 편가르기식으로 쓰니까 문제다. 친박이 도대체 뭐냐. 누가 친박이고 친이냐”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불편한 질문에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 것, 그게 그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만 도와주시오. 국장님 나 한번만 도와줘.” 30일 공개된 녹취록 말미에 나오는 이야기다. KBS 보도국장 앞에서도 거침없이 항의하면서도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는 4년 전 동료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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