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2일 오후 경찰들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호송차로 데려가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7월4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선고공판이 있습니다.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가 선고를 앞두고 공정한 판결을 촉구하는 글을 <한겨레>에 보내왔습니다.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아버지에 대한 대응의 간극을 그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난해 11월14일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이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두 사람에 대해, 한 명은 감옥에 또 한 명은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비정상적인 현실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날 서울에서 민중총궐기 집회가 있었습니다. 13만명이 전국에서 모여 노동개악 반대, 쉬운 해고·평생 비정규직화 반대,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세월호 진상 규명 등 각계각층의 요구사항을 외쳤습니다. 농부인 제 아버지도 전남 보성에서 서울행 버스를 탔습니다. 서울역에서 내려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던 쌀값 인상을 요구하는 농민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농민대회를 마친 뒤엔 다들 광화문으로 행진해서 모일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다른 농민들과 함께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 차벽과 물대포 때문에 광화문광장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의식을 잃고 병원 신세를 진 지 벌써 232일째(7월2일 기준)입니다.
서울경찰청장까지 출동할 일입니까
사상자가 발생한 형사 사건이자 국가폭력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수사는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경찰청 업무보고 때에야 비로소 6월16~17일 검찰이 살수 경찰을 불러 조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검찰에 수사 내용을 수차례 문의했을 때도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한마디도 해줄 수 없다’더니 그동안 수사한 게 없어서 밝힐 내용이 없었나 봅니다.
한상균 위원장은 12월10일 조계사에서 나와 경찰서로 갔고 구속되었습니다. 그즈음 저는 매일 병원 중환자실 앞에서 가족들과 마음 졸이며 앉아 있었습니다. 11월18일 경찰청장 강신명을 비롯한 경찰 7명을 고발했기 때문에 이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소식을 알고 싶어 매일 뉴스를 살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사건에 대한 수사 소식은 들리지 않고 얼마나 많은 경찰들이 당시 한상균 위원장이 머물던 조계사를 둘러싸고 있는지만 보였습니다. 더 어이가 없었던 건 서울지방경찰청장 구은수가 조계사로 간 일이었습니다. 수도의 치안을 책임지는 사람이 집회와 파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민주노총 위원장을 체포하러 직접 출동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 자리가 그렇게 한가한 자리입니까? 그런 고급 인력이 그 많은 경찰들을 데리고 단 한 명을 붙잡기 위해 나선 장면을 방송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아버지의 쾌유를 기원하는 단식까지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기에 그에 관한 소식은 쉬이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저 또한 농부의 딸이자 노동자로서, 한 명의 해고노동자가 고역을 치르고 있는 모습에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문제와 한상균 위원장의 문제, 두 가지 모두 저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서울경찰청장은 한상균 위원장을 체포하러 조계사에 갈 게 아니라, 병원에 와서 제 아버지와 제 가족에게 사과를 했어야 했습니다. 이후 방문하겠다는 전언에 ‘사과할 게 아니면 방문을 거절하겠다’고 했더니 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사과하러 오려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결국 어떤 징계도 받지도 않고 퇴임하여 자연인으로 돌아갔다고 하니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6월13일 검찰은 한상균 위원장에게 8년형을 구형했습니다. 저는 같은 날 벌어진 사건이 왜 이렇게 다르게 처리되고 있는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습니다. 들려오는 말로는 그날 시위 참가자 1500여명이 수사 대상에 올랐고, 확인된 숫자만으로도 500여명을 사법처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 하루의 집회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형사처벌 받는 일은 전례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한상균 위원장 사건에 검찰이 얼마나 전력을 쏟아부었는지 1월에 소를 제기한 뒤 십여 차례의 공판을 거쳐 수천 페이지의 재판자료를 만들어 결국 6월13일에 구형했습니다.
지난해 11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단 한 차례도 만나지 못한 두 사람
한 명은 감옥, 또 한 명은 중환자실
한상균 체포·구속 때 신속했던 국가
아버지 사건선 책임회피 하며 늑장
쌀값 인상 공약 파기 화난 농민과
삶 파괴하는 법개악 저항한 노동자
국가 권력이 그들 호소 외면할 때
사법부만큼은 인권존중 판결 해주길
두 분께 막걸리 따를 날 어서 오길
두 사람에 대한 대응이 왜 이리 다릅니까
제 아버지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고발장 제출 한 달 만인 지난해 12월17일 고발인 조사를 한 차례 한 후, 지난 6월이 돼서야 피의자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피의자 7명 중 지금까지 겨우 4명만 조사했을 뿐입니다. 아직 기소 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같은 날 벌어진 두 사건에 대해 명백하게 자의적·선별적으로 자원을 배치했습니다. 사건이 진행되는 속도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사건의 피의자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분이 확실한 공무원들입니다. 범인이 도망가거나 숨어서 잡으러 가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정직은커녕 승진까지 했고 자기 위치에서 근무만 잘하고 있습니다. 반면 검찰은 자진 출두한 한상균 위원장을 구속했고, 본인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책임까지 물어 법정에 세웠습니다. 저는 국가폭력 피해자의 가족이자 한 명의 시민으로서 제 세금으로 돌아가는 정부가 왜 자의적이고 선별적으로 움직이는지 그 이유를 간절히 알고 싶습니다.
민중총궐기 당일 왜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 정책에 항의하며 시정을 요구했을까요? 농민들은 대통령의 쌀값 인상 공약 이행을 요구하며 민중총궐기에 참여했습니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 가마에 17만원 하는 쌀값을 21만원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보육 문제나 노령연금 문제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애초부터 공약을 지킬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쌀값을 올리기는커녕 정부가 앞장서서 밥상용 쌀을 수입한 결과 쌀값은 오히려 20년 전 가격 수준(13만~14만원)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생존권을 위협받은 농민들은 광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동자도 생존권을 위협받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쉬운 해고와 ‘평생 비정규직’을 뼈대로 한 노동개악은 노동자로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점점 늘어나고 최저임금이 지켜지지 않는 사업장이 많은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안마저 통과된다면 노동자들이 설 곳은 더 이상 없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정부가 국민의 삶을 제대로 살폈다면 시위도 없었을 것입니다. 최근 위기에 몰린 조선업계 등에서 상황이 힘들어졌다면서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농민, 노동자들도 똑같습니다. 정부에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부작용이 충분히 예상되는 정책을 실행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재벌이나 노동자나 농민이나,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부에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그 요구사항들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라고 국민들이 그 자리에 앉혀준 것입니다.
그러나 경찰은 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차벽을 쳤고 물대포를 배치했습니다. 이것은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로운 집회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지난 1월말 한국에 와서 확인한 내용입니다. 정부는 폭력 시위라고 주장하지만, 폭력의 시작은 차벽을 먼저 친 경찰이었습니다. 심지어 선제적 차벽설치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후 2~4차 민중총궐기 땐 차벽을 치지 않고도 집회가 질서있게 진행되었습니다. 행진하는 시위대 옆을 경찰이 함께 걸으며 지켜주었습니다. 그렇다면 11월14일에 경찰이 집회 전부터 차벽을 치고 강력 진압을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냥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시위대를 자극하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온통 의문투성이입니다.
경찰의 직사 물대포에 맞아 200일째 의식을 잃고 있는 농민 백남기씨 대책위와 야3당 대표자들이 지난 5월3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진상조사와 책임자 규명 등을 위한 국회 청문회 실시를 촉구한 뒤 참석자들이 딸 백도라지씨를 위로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정부의 분열적 태도
지난 6월28일 국회에서 ‘집회에서 물포 사용 문제와 경찰의 집회 대응 개선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심포지엄에서 ‘평화적 집회’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국제 인권 규범에 따르면 평화적 집회는 집회 참가자들의 의무가 아니고 경찰의 의무입니다. 집회 참가자들로 하여금 평화로운 집회를 할 수 있도록 경찰이 제반 사항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집회 과정에서 충돌이 있더라도, 집회가 내거는 목적이 평화적이라면 그 집회는 평화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제 인권 규범에 비추어봤을 때, 한국 경찰이 말하는 평화적 집회는 굉장히 협소한 의미이며, 집회 참가자들에게 과도한 의무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검찰이 한상균 위원장에게 8년형을 구형하며 근거로 내세운 혐의들은 경찰의 잘못된 대응에서 비롯되었으며, 한상균 위원장의 잘못이 아니라 경찰의 잘못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시위대가 평화로운 집회를 할 수 있도록 경찰이 충분히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분열적인 태도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경찰청장 강신명은 아버지 사고 직후 사과하라는 국회의원들의 요구에 ‘법적으로 잘잘못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으나, 아직 법적으로 판결이 나지 않은 ‘부산 학교전담경찰관 사건’에 대해서는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제 가족에게는 어떤 형태의 사과도 하지 않았으면서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한국 보고서의 수정을 요청하며 경찰 3명을 제네바까지 출장을 보냈습니다. 사건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건을 숨기려는 데 인력과 돈을 쓰고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경찰은 시민들이 집회만 한다고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진압하려 애를 쓰면서, 퇴직 경찰들이 보수단체에 ‘알바비’를 줘가며 특정 사안에 대한 집회를 조장한 일에 대해선 방관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들에 돈을 댄 주체가 퇴직 경찰들의 모임인 ‘경우회’라는 조직이라고 합니다. 경찰이라는 조직이 뭐 하는 곳인지 다시 한 번 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경찰은 모든 집회를 평등하게 대하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 아버지 사건과 더불어 이런 단체들에 대한 청문회도 20대 국회에서 열린다고 하니 지켜볼 것입니다.
7월4일은 한상균 위원장 선고 공판이 있는 날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병원에 누워 있던 만큼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며 8년 구형을 받은 그는 선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옥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저로서는 짐작할 수 없지만 부디 건강 잃지 않고 잘 견뎌내길 기도합니다. 경찰과 검찰은 정부의 입장에서 잘못된 권력 행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사법부만큼은 제발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원칙으로 상식적인 판결을 내리길 바랍니다. 한상균 위원장이 하루빨리 감옥에서 나오고 아버지도 어서 일어나서 두 분이 함께 손잡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제가 두 분께 막걸리 한 잔씩 따를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백도라지(백남기 농민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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