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 황운하 경찰대학 교수부장(경무관) 인터뷰
지난 28일 충남 아산 경찰대학에서 만난 황운하 경찰대학 교수부장(경무관)은 “경찰청장이 가져야 할 리더십, 시대적 상황이 요구하는 리더십을 의제화할 때가 됐다. 사법정의를 위해 경찰은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충남 아산 경찰대학에서 만난 황운하 경찰대학 교수부장(경무관)은 “경찰청장이 가져야 할 리더십, 시대적 상황이 요구하는 리더십을 의제화할 때가 됐다. 사법정의를 위해 경찰은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달 임기가 만료되는 강신명 경찰청장은 2004년 임기제가 도입된 뒤 2년의 임기를 채운 두번째 청장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임기를 채운 것 말고는 경찰에 기여가 없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임기 내 매듭짓겠다던 수사권 문제 등 숙원사업들에 대해 논의조차 못했다는 불만의 소리가 높습니다. 최근 청장에 대한 쓴소리를 공개적으로 내뱉은 황운하 경무관을 만나봤습니다.
“일선부터 각급 지휘부까지 하나같이 다 한심하고 파렴치하다.”
최근 불거진 부산 지역 학교전담경찰관 사건을 두고 지난 30일치 <한겨레>의 사설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했다. “경찰을 믿으려야 도무지 믿을 수 없게 된다. 경찰이 이렇게나 망가져 있었단 말인가.” 사설은 통탄으로 가득했지만, 이 사건 이전에도 경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뢰도는 매우 낮았다. 2014년 12월 미국 갤럽이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관할 경찰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인은 59%만 ‘그렇다’고 답했다. 조사된 34개 나라의 중간값은 74%로, 이 가운데 우리보다 경찰의 신뢰도가 낮은 나라는 멕시코(45%)뿐이었다.
경찰 내 대표적 개혁론자로 꼽히는 황운하(54·경무관, 경찰대 1기) 경찰대학 교수부장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 하나를 올렸다. 같은 경찰대 후배이자 상관인 강신명(52·경찰대 2기) 경찰청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글이었다. 첫 경찰대 출신 청장에 대한 세간의 기대에도 ‘퇴임 후 자리 욕심을 낸 나머지 지나치게 정권 눈치를 봤으며, 달라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오는 9월 경찰은 새 수장을 맞는다. 관련 법에 따라 경찰청장(치안총감)은 6명의 치안정감(서울·경기·인천·부산청장, 경찰청 차장, 경찰대학장) 중 한 명이 맡게 된다. 황 부장은 차기 청장의 과제를 두고 “경찰이 겪는 여러 어려움의 뿌리에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미흡한 신뢰가 있다. 신뢰가 미흡한 가장 큰 원인은 ‘정권의 충견’, ‘강자에 비굴하고 약자에게 군림’하는 과거의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썼다.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길이 있을까. 페이스북 글이 올라온 사흘 뒤인 지난 28일 충남 아산 경찰대학의 본관 건물 3층 교수부장실로 황 부장을 찾아갔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는 얘기가 있다.
“상사에 대한 공개적 비난은 공무원의 품위유지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 하지만 내 비판은 언론 기사에 해석을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이 정도 일에 징계 운운할 정도로 우리 조직이 비민주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전부터 강 청장에 대한 지적을 공개적으로 할 필요가 있겠다 생각했다. 특히 무소신에 눈치보기 등 아무렇게나 청장을 해도 비난받지 않고 (임기를) 마칠 수 있다는 생각을 후임 청장들이 버리도록 하는 게 취지다.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더욱 공개적으로 의제화하고 이슈화해야 한다.”
-글을 통해 하고자 했던 얘기는 무엇인가?
“경찰청장이 가져야 할 리더십에 대해 공론화할 때가 됐다 생각한다. 시대적 상황이 요구하는 리더십이 있다. 난 그걸 경찰이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라 본다. 국민들은 경찰을 정치권력에 절절매는, 굴종적 모습으로 알고 있다. 경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정권이 아닌 국민만 바라보는 청장은 나도 아직 보지 못했다.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정도로 경찰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청장이 나타나야 한다.”
강 청장 공개지적 필요 느껴와
경찰청장 리더십 의제화해야
정치중립성 확보 위한 노력
일본 경찰은 총리에 맞서는데
우린 누군가 눈치보듯 자꾸…
서민들 편에 서지 않는 권력
-경찰에 정치적 중립이 왜 중요한가?
“최근 검찰은 전관인 홍만표 변호사 건에 대해 검찰에 대한 실패한 로비라 결론냈다. 국민이 동의하기 어려운 결론이다. 국민은 검찰이 굉장히 문제가 많고 개혁돼야 한다 생각한다. 하지만 국민은 경찰에 대해서도 검찰과 똑같이 나쁘거나,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검찰 개혁의 대안으로 경찰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들은 검찰과 경찰에 권력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게 한다.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라면, (검찰에 대한 견제 구실을 해야 할 기관은) 경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경찰을 생각할 때 일제 식민경찰을 떠올린다. 해방 뒤에도 계속 정통성 없는, 독재정부를 유지하는 구실을 해왔기 때문이다. 경찰의 본연은 혁명의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이지만, 4·19(1960년)나 박종철 사건(1987년) 때처럼 국민들은 ‘굳이 총을 쏠 필요가 있었나’, ‘물고문을 할 필요가 있었나’ 생각한다. 경찰의 과오가 덧붙여지며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이다. 경찰은 또 여전히 서민들에게 굉장한 권력이면서, 서민들 편에 서지 않는 권력이다. 강자에겐 비굴하고 약자에겐 군림하는 이미지에서 탈피됐다 보기 어렵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정치권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국민에게 각인돼야 한다. 몇 가지 상징적 사건이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본에 그런 예가 있다. 요시다 시게루 총리(45·48~51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때 총리가 경찰청장에게 선거 관련 정보 보고를 요구했는데 청장이 ‘경찰은 치안정보를 수집하긴 하지만 치안을 위한 것이지 총리에게 보고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거부했다. 총리가 해임하려 했지만 국가공안위원회(총리의 임면권 견제 구실)가 해임안을 부결시켰다.”
-총리의 지시를 거부하는 경찰청장은 우리로선 대단히 생소한 모습이다. 일본에 그런 사례가 또 있나?
“1968년 도쿄대 야스다 강당 점거 사건 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우리로 치면 87년 6월항쟁 때 같았는데, 그즈음 굉장히 많은 시위가 있었다. 총리가 도쿄 경시총감에게 시위대를 소요죄로 의율(법률 적용)하라 지시했다. 한데 당시 총감은 ‘소요죄로 의율하고 안 하고는 경찰이 판단할 일이다. 게다가 이런 혼란 상황의 원인을 정치권이 제공해놓고 당사자가 소요죄 의율을 요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맞섰다. 우리와 상황은 비슷한데 대응은 정반대였다. 작년 민주노총 시위(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 대회) 때 우리 경찰은 소요죄로 의율했는데, 이는 대표적인 정권 눈치보기였다. 경찰 내부에서 법리적으로 소요죄가 무리란 의견이 있었음에도 (강 청장은)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듯 자꾸 소요죄를 얘기했다.”
형법 115조에 규정된 소요죄는 다중이 집합해 폭행, 협박 또는 손괴의 행위를 한 경우에 적용된다.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혹은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강 청장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해 소요죄 적용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에서도 강 청장은 “처음부터 ‘뒤엎자, 갈아엎자’며 조직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임무를 분담했다면 충분히 소요죄 적용 대상”이라 했다. 경찰 수사단계에서 소요죄가 적용된 사례는 군부독재 시절인 1986년 ‘5·3 인천사태’가 마지막이었다.
‘정권충견’ 이미지 벗을 수 있다
기구 독립은 절반쯤 됐지만
정치적 중립, 사법정의 세워야
리더십 통해 검찰·경찰 개혁
정의의 문제 시대적 사명이다
변할 수 있다, 노력이 없었을 뿐
“경찰 입장에서 볼 때 ‘경찰에 대한 폭행이 심했다. 상황이 달랐다’고 얘기할 측면도 물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이 전부 서울에 올라왔고, 그럴 땐 뭔가 절실한 요구사항이 있지 않았겠나. 전달하고픈 절박한 목소리가 있었다. 경찰이 귀 기울일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걸 헤아려보는 가슴 같은 건 있어야 하지 않나. 너무 강경일변도로 나간 측면이 있다.”
-당시 경찰의 직사 물포를 맞은 백남기 농민이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다.
“경찰청도 유감 표명을 여러 번 검토했다고 들었다. 근데 진압경찰에 대한 사기 문제 등을 이유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경위가 어찌 됐든, 국가 공권력으로 인해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또 적정한 공권력 행사가 아니라는 비판이 있다면 귀 기울이고 유감 표명을 하는 게 맞다고 본다. 경찰이 더 유연하고 공감받는, 새롭고 신선한 이미지를 주면서 질서를 유지하는 방안을 찾아보고 모색하면 좋지 않겠나. 그랬다면 국민들의 경찰에 대한 신뢰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지 않았겠나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얘기할 순 없지만, 양쪽이 피해가 없도록 하고 경찰의 입장과 시민의 입장을 터놓고 얘기하면서 평화적인 집회가 보장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한다. 미국도 백악관 앞에서 시위할 수 있잖나. 너무 경직된 생각을 하면 관리도 경직될 뿐이다.”
-경찰이 변할 수 있겠나?
“경찰이 정권의 충견이란 이미지를 완전히 벗지는 못하겠지만, 변할 수는 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노력이 없었을 뿐이다. 경찰대학 졸업생들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시선이 있다. 경찰대 출신들은 국가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다.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라는 시대적 과제도 부여받았다 생각한다. 경찰대 4학년 때 실습하러 간 경찰서에 ‘장래 경찰이 되면 무슨 일이 하고 싶은지’를 써냈던 적이 있다. 당시 그걸 받았던 분이 갖고 계시다 20년 뒤(2004년) 돌려주셨다. 돌려받은 내 자기소개서에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경찰의 수사권 독립, 경찰의 기구 독립 이 세 과제를 경찰에서 나의 존재 이유로 삼겠다’고 써 있었다. 1991년 경찰은 내무부에서 경찰청으로 독립해 치안 사무에 관한 한 독립적 관청이 됐다. 기구 독립은 절반 정도 됐다. 정치적 중립성 확보는 아직이다. 수사권 독립보다 더 우선돼야 할 과제다.”
-시대적 상황이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인가?
“선거 때마다 시대정신이 뭐냐 이런 얘기 많이 하지 않나. 경제민주화나 격차 해소 같은 것들이 화두이고 그로 인한 좌절감, 분노도 커가고. 우리 사회에서 새삼스레 정의의 문제가 주목받는 것 같다. 경찰이나 검찰은 경제정의, 사회정의의 기초가 되는 사법정의를 다룬다. 사법정의가 튼튼히 자리잡아야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정의가 살아 있다 믿지 않는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고 공부한 사람들은 전부 다 스스로 특권계급이 되려 한다. 누가 그러더라. ‘사법정의란 말 자체가 지독한 농담’이라고. 그런 측면에서 경찰의 역할, 검찰의 역할을 자꾸 고민하게 된다. 검경 갈등 문제를 자꾸 얘기하는 이유의 뿌리도 거기에 있다.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검찰을 개혁하려면 경찰의 개혁을 먼저 이뤄야 하고, 경찰 개혁의 첫째는 청장이니 경찰청장에게 요구되는 올바른 리더십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빽’ 없는 승진 사례 만들고 싶다
-수사권 독립은 어떤 의미가 있나?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검찰 개혁을 위한 것이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맡는 게 대체적이다. 확고한 권력 분립이다. 대륙법계인 독일이나 프랑스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검사의 직접 수사가 이뤄진다. 경찰에 대해선 수사지휘만 한다. 일본도 도쿄지검 특수부가 정치인 비자금 사건 등을 수사할 뿐이다. 우리처럼 검찰이 경찰의 3분의 1 규모의 수사인력을 갖고 1년 내내 수사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 검찰은 수사권과 수사지휘권과 기소권을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다. 검찰은 점점 더 괴물이 돼가고, 검사들은 스스로 한국을 쥐락펴락한다 생각한다. 그러니 권력만큼 부도 최고 수준으로 누려야 한단 생각에 홍만표 같은 사람이 나온다. 공직의 기본은 도덕성이다. 공직은 도덕성으로 버티는 거다. 권력의 단맛에 취하니 여러 문제가 생기고 온갖 인권침해적 수사가 이뤄지는 거다. 어떤 이에게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줘선 안 된다. 권력은 쪼개고 감시받고 견제받아야 한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거나, 수사 지휘를 못하게 하거나, 직접 수사를 하지 않고 경찰 수사에 대해 지휘만 하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내년이 계급정년이라 들었다. ‘바른말 하는 이미지’ 덕에 부당하게 승진이 누락됐단 평가가 있다. 개인적인 계획은?
“경찰은 경무관 이상 인사가 너무 무질서하다. 어떤 사람은 1년 만에 치안감이 되기도 하고 느닷없이 청장이 되기도 한다. 왜 승진됐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합리적인 인사, 공감받는 인사가 아닌 경우들이다. 난 납득할 수 있게, 당당하게 승진하고 싶다. ‘정권 실세에 줄을 대야 승진할 수 있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굳어져 있는데, 그렇지 않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 몸조심하고 눈치 보는 거 안 하면서 당당하게 승진을 요구해 승진한 사례를 남기고 싶다. 남아서 여러 경찰 개혁을 꼭 하고 싶다. 내가 검찰한테 껄끄러운 사람이라고 승진을 안 시킨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래선 안 된다. 그게 승진이 안 된 요인이라면 마땅히 극복돼야 한다.”
아산/글·사진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