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태완이법'으로 알려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015년 7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직후 해당 법안을 대표발의한 서영교 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
"꼬시죠(고소해요)."
"왜 지금인지 모르겠어요."
더불어민주당(아래 더민주) 서영교 의원의 '가족 보좌진' 사건에 대한 여야 국회의원들의 반응이다. 전자는 새누리당 의원, 후자는 더민주 의원이다.
특히 후자의 반응에는 같은 당 동료의원이 공격받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19대 국회에서 있었던 일이 왜 20대에서 불거졌냐?"는 궁금증이 혼재되어 있다. 서 의원을 당의 징계 수순까지 몰아넣은 일련의 사건들이 총선 국면에서 이슈화됐다면 서 의원의 지역구 공천이 순탄하지 않았고, 더민주의 총선 가도에도 '악재'가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독자들도 이 부분이 궁금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 가설이 있다. 확정적인 팩트가 아닌 불확실한 가설임에도 소개하는 이유는 이것이 사건의 이면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편의상 설득력이 가장 낮은 가설 순서로 소개한다.
'정운호·홍만표 법조 비리' 자료 수집하다가 '낙마'?
첫째, 새누리당 음모설이다. 서 의원은 그동안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원내대변인 등을 지내면서 새누리당을 아프게 하는 논평을 자주 냈다. 특히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성범죄로 곤욕을 치를 때 앞장서서 공격했던 사람이 서 의원이었다. 야당의 대표적인 '저격수'를 새누리당이 가만 놔둘 리가 없다. 서 의원은 사건 직전까지도 박근혜 정권의 악재 중 하나인 '정운호·홍만표 법조 비리'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 의원에게 '앙금'이 많은 새누리당이 왜 19대 국회에서 있었던 일을 계속 묵혀두었다가 20대 총선이 끝나고 국회가 개원된 뒤에야 터뜨렸겠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서 의원을 꼬집는 당의 공식 논평(23일 김정재 원내대변인)도 사건 발생 3일 후에 나왔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 계파 갈등으로 시끄러운데) 우리 당이 그런 거 일일이 챙길 상황이냐?"고 반문했다.
둘째, '사법고시 존치' 진영으로부터 언론이 보도할 만한 정보들이 흘러나왔다는 설이다.(<오마이뉴스>가 처음 보도한 '회계책임자 오빠'는 본보가 중앙선관위에 정보공개 청구로 받은 19대 국회의원 정치후원금 지출내역을 근거로 했다.)
기존 사법시험을 통한 법조인 수급은 2017년을 끝으로 없어지고 로스쿨 제도로 대체되는데, 사법고시 존치를 두고 19대 국회부터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혔다. '사시 존치' 안건의 주무 상임위인 법사위 소속의 서 의원은 이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 때문에 서 의원을 본보기로 낙마시키기 위해 이들이 움직이지 않았겠냐는 얘기다.
특히 국회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딸이 로스쿨에 진학한 대목이 일부 고시준비생들의 감정선을 건드린 측면이 있다. 국회의원 딸이 어머니를 등에 업고 로스쿨에 낼 자기소개서 등으로 합격에 유리한 점수를 딴 것 아니냐고 이들은 의심한다. 이들은 23일 친인척 보좌진 채용 관련해 서 의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집회를 국회 앞에서 열었고, 24일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물론, 서 의원은 로스쿨 특혜 입학은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셋째, 당내 갈등의 산물로 보는 시각이다. 부연하면, 이 갈등은 더민주하면 으레 떠올리는 친노-비노의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정확히 두 달 후면 더민주의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8월 27일)가 열리고, 그에 앞서 지구당 정비와 시도당위원장 선거가 열리게 된다. 서울시당위원장 대의원대회는 8월 20일로 예정되어 있다.
정당의 시·도당위원장 선거는 공천권이 걸리는 해가 아니라면 그닥 치열하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 뽑히는 시당위원장은 지난해 새로 도입된 당헌당규에 따라 권역별 최고위원이 돼서 당 지도부에 입성할 가능성이 높다. '지역구 다선'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적 성장을 꿈꾸는 의원이라면 한번쯤 노림직한 자리라는 얘기다.
서 의원은 사건이 터지기 전 바로 이 서울시당위원장 선거를 준비중이었다. 대의원들의 표심을 파고들 수 있는 시·구의원 지지자들이 뭉치는 등 초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인해 서 의원은 시당위원장 출마는 물론이고, 당무감사원 감찰까지 받는 처지가 됐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아는 당내 인사들은 서영교 사건을 시당위원장 과열 경쟁의 산물로 본다. 서 의원의 '낙마'는 서울시당위원장에 큰 관심이 없었던 서울의 중진 의원들에게도 "이참에 내가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이 동하게 하는 이슈가 됐다. 결국 이번 사건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는 사람도 생기겠지만, 이것이 향후 또 다른 당내 갈등을 증폭시킬 소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더민주 내부 분위기도 "19대 국회 일이지만 20대 의원들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원칙론과 "당직 선거인데 (네거티브 공세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동정론으로 갈리고 있다.
더민주 "여성 의원 2명 동시 낙천에 대한 부담감 작용"
서영교 사건이 서 의원 개인만이 아니라 그를 공천했던 김종인 지도부의 책임론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는 점은 사건의 성격을 한층 복잡하게 만든다.
서 의원은 더민주의 5차 공천명단(3월 14일)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다. 무소속 이해찬 의원의 공천 배제를 결정한 이날, 더민주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는 서울 은평갑의 이미경 의원(5선)도 낙천시켰다. 공관위 사정을 잘 아는 핵심관계자는 "서 의원의 '가족 보좌관' 문제에 대해서는 공관위원들도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지역구에 뚜렷한 당내 경쟁자가 없었고 같은 날 여성 의원 2명을 한꺼번에 낙천시키는 것에 대한 부담 등이 (공천 결정에)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서 의원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당 지도부는 "이기는 공천을 했다"는 현실적인 명분을 취하게 됐지만, "공천의 명확한 기준이 있긴 있었냐?"는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영교 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 2014년 10월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을 외면한 것을 질타하고 있다. ⓒ 유성호 |
그럼에도 이번 사건의 본질이 서 의원의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같은 당 전직 의원의 반응은 이랬다.
"지역구 선거 치르면서 가족들 도움 많이 받아요. 무보수로. 그나마 선거 치르고나면 다들 '원대복귀'시켜요. 국회까지 데려왔다가 무슨 말이 나올 줄 알고? 아닌 얘기로, (우리 당이 비판하는) 재벌의 족벌 경영도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서 의원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당무감사원의 징계 여부와 상관없이 상당기간 '정치적 잠행'은 불가피해보인다. 그는 자신의 고발 건을 수사하게 될 검찰을 관장하는 국회 법사위도 떠나기로 했다.
험악한 여론의 요구에 부응해 의원직을 사퇴할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국회의원이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대)법원이 의원직 상실을 확정하기 전에 의원직을 사퇴한 전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더민주의 '형제 당'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당 박지원·박주선 의원은 검찰이 여러 차례 기소해도 치열한 법정 투쟁 끝에 의원직을 지켜낸 전례가 있다. 심지어 검찰의 불기소나 법원의 무죄 판결 같은 법의 '선택'이 의원의 도덕적 책임까지 일정부분 상쇄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새누리당은 뒤늦게 서 의원을 맹폭격하는 논평을 매일 내놓고 있다. 계파 갈등으로 어지러운 여당 입장에서는 더민주의 악재를 공격함으로써 따가운 시선을 어느 정도 돌릴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고, 그동안 자당을 괴롭혀온 저격수 의원에 대한 정치적 앙갚음이라는 부수적 효과도 거둘 수 있는 행보다.
서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도덕성을 공격한 과거 전력에 대한 질문에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고, 사법 처리도 면하게 되면 4년 뒤 선거에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한국정치 1년이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속설대로 단시간에 너무도 많은 변수들이 훑고 지나가는 토양 위에 우리 정치가 서 있기 때문이다.
서 의원은 재기할 수 있을까? 4년 뒤 민심이 그를 어떤 이미지로 기억할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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