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일 서영교 의원의 '가족채용' 논란과 관련, "정치인으로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를 떠나 다시 한번 일반 국민들에게 우리 당 의원들로부터 윤리 지키지 못해 다시 사과 드리고 이런 일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당 내부에서부터 철저하게 교육 해나갈 것 말씀 드린다.”
1일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린 당 대표 회의실. 참석자들은 깜짝 놀라며 귀를 의심했다고 합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사과 발언 때문입니다.
요즘은 좀 뜸하지만 김 대표가 더민주에 합류한 초기 당 안팎에서는 그에게 ‘차르(Czar)’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전제 군주처럼 본인 마음대로 당을 쥐락펴락 한다는 비판적 시각과 계파 갈등으로 어수선한 당 분위기를 단 칼에 정리하는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찬사가 묘하게 어우러진 별명이었습니다.
그런 김 대표와 ‘사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늘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에 무언가 문제가 될 법한 문제 제기에도 ‘그게 왜’ ‘그걸 가지고 뭘’ 이라며 늘 대수롭지 않게 대응하곤 했습니다. 물론 김 대표 가 사과한 경험은 있습니다. 입당 초기 5공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참여 전력이 문제가 됐을 때도 한 동안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다 1월 27일 비대위원장을 맡자마자 “광주 여러분에게 죄송하다”며 “그 동안 말을 간략하게 해서 상당히 오해가 있었다. 국보위가 성립된 과정에서 나타난 제반 상황에 대해선 저 자신도 철저하게 그렇게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며 사과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김 대표의 사과는 4ㆍ13 총선을 앞두고 호남 유권자를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라는 평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김 대표가 지난달 29일 비대위 회의에 이어 1일 비대위 회의까지 이틀 간격으로 연 이어 같은 문제로 사과를 한 것 자체가 이례적입니다. 당 관계자는 “예고편도 없이 블록버스터를 터뜨린 셈”이라며 “한 번 사과 할 때도 ‘어’ 였는 데 오늘 또 사과를 하니 ‘어 어 어…’ 했다는 반응들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김 대표는 “어제 당무감사원에서 우리당 문제가 됐던 서 의원에 대한 감사 결과를 윤리위원회로 보냈다”며 “국회의원들 특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데, 그 동안에 관행처럼 진행된 게 법적인 하자가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국회의원이 윤리에 합당한 행위를 했는지가 국민에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에 정치인으로서 그런 문제를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래서 국회의장의 주재로 3당 원내대표가 모여서 앞으로 이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이냐고 회의를 하면서 앞으로 윤리규정을 엄격하게 정해서 지키도록 해야겠다는 합의를 이뤘다”며 “미국의 경우를 보면 의원들이 지켜야 할 윤리 규정이 자세히 명기되어 있고 의원들이 그 규정을 지키는데, 아직 우리는 그와 같은 틀을 마련하지 못해서 윤리규정 의식이 별로 없는 데서 사건이 발생했다”며 강도 높은 윤리규정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대표실 관계자는 “평소 회의 때 하실 말씀 자료를 써서 드리지만 그것은 참고 자료일 뿐 대부분 말씀은 본인이 혼자 고민하신 내용을 본인 만의 단어와 표현을 가지고 말씀 한다”며 “출력한 종이나 서류를 보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거의 없는데 오늘도 그러셨고 때문에 사과 말씀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고 전해졌습니다.
궁금해 지는 것은 왜 김 대표가 ‘릴레이 사과’를 했느냐 하는 것인데요. 김 대표의 한 측근 인사의 말에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인사는 “김 대표는 지금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그는 최근 대표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면서 “서영교 의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야당 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치권 전체가 심각한 위기다. 예전 같으면 그러려니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그렇지 않다.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심해져서 그렇다. 정치권 전체가 반성하고 가야 한다. 민란 직전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국회의원들이 친인척 몇 사람을 사무실 인력을 썼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취업이 어렵고 일자리 하나 얻자고 목숨을 거는 상황에서 누구는 누구 국회의원의 친인척이라는 까닭으로 쉽게 일자리를 얻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상황 자체가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는 판단에서 ‘민란’이라는 단어까지 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제1야당의 대표로서 이 문제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것이죠.
서 의원뿐만 아니라 더민주의 다른 의원들 그리고 새누리당, 국민의당까지 여야를 떠나 주요 정당 모두에서 친인척 채용 문제가 불거지는 상황에서 김 대표의 연이은 사과는 상당히 무겁게 받아들여집니다. 상대방 당에 대한 정쟁의 소재로 삼지 않고 정치권 모두의 잘못이고 이 참에 제대로 고쳐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가 이 문제를 보다 더 관심을 갖고 국민의 눈 높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며, 다른 한편에서는 또 다시 같은 문제로 김 대표가 사과하는 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차르와 사과는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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