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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February 25, 2018

"아들 먼저 보내고 감옥 같은 삶"..예순 부모의 눈물

중앙일보·안실련·자살예방협 공동기획
둘째 아들을 먼저 보낸 이동주(오른쪽)·정미숙씨 부부가 22일 4년 전 겪은 아픈 경험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산=프리랜서 김성태
한국에서 한 해 평균 1만3000명가량의 아까운 목숨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살은 남겨진 가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긴다. 중앙일보ㆍ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ㆍ한국자살예방협회는 자살의 문제점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생명, 그 소중함을 위하여’ 기획에 나섰다. 시리즈 2회로 자살 유가족들의 고통을 싣는다. 그들이 직접 말하는 절망적인 경험과 상처 치유의 과정, 앞으로의 희망을 담았다.
━ 남겨진 가족, 그들의 고통이 더 크다 "회사 다녀올게." 2014년 5월, 네 살 아들과 인사를 나눈 이모 씨(당시 34세)는 집을 나섰다. 표정이 밝았고 옷도 여느 때처럼 털털하게 입었다. 가까이에 사는 어머니와 평소와 같이 안부 전화를 나눴다. 그게 가족들이 기억하는 이 씨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는 다음 날 저녁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충남 서산에 사는 이동주(65)ㆍ정미숙(58) 씨 부부는 그렇게 둘째 아들을 먼저 보냈다. 누구보다 의지했던 든든한 아들이 사라지자 부부의 하루는 '지옥'이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과 죄책감, 원망, 분노가 켜켜이 쌓였다. 밤엔 TV를 끄지 못하고 내내 켜놓고 잤다. 빛이 싫어서 집 창문을 커튼으로 꽁꽁 닫아 버렸다. 시도 때도 없이 아들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라 잠도 이루지 못했다. 2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이 씨 부부는 "감옥 아닌 감옥 같은 삶을 살았다. 활화산에서 나오는 용암이 가슴 속에서 매일매일 끓는 듯했다"고 말했다.
작은 아들이 먼저 떠난 뒤 그 슬픔이 차오를 때마다 글로 써내려간 정미숙씨의 노트. 2014년 아들이 숨진 후부터 3년 넘게 그리움을 적어오다 지난해 펜을 놓았다. 서산=프리랜서 김성태
한 달여 뒤, 죄책감에 슬픔을 내색조차 할 수 없던 아버지 이 씨는 아들의 뒤를 따라가려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활발한 성격으로 주도하던 동창ㆍ친구 모임은 거의 다 끊었다. 그는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을 수백번 곱씹게 됐다"면서 "손자가 집에 왔다 갈 때마다 불쌍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 죽겠다"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극심한 스트레스 탓에 어머니 정 씨도 지난해 8월 뇌출혈이 찾아와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4년째 아들 사진을 못 보고 있다는 정 씨는 "아들이 간 순간부터 우리의 삶도 끝났다"라며 "아들이 술이라도 한잔 먹고 '엄마 나 힘들어' 한마디만 했으면 도와줬을 텐데 전혀 몰랐다. 4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아들에게 왜 먼저 갔는지 이유만이라도 물어보고 싶다"며 눈물을 쏟았다.
자살을 결심하는 이들은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하지만 남겨진 가족들은 떠난 이들보다 더 큰 고통에 시달린다. 국내에서 매년 8만명, 최근 10년간 최소 70만명의 자살 유가족이 발생했다. 유가족들은 ”자살은 가족에게 지옥을 남기고 떠나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가족은 자살 위험에도 노출된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죄책감과 분노, 사회관계 단절, 생계 어려움 등을 동시에 겪게 된다.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7배, 자살 위험은 8.3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내가 부족해서 자살을 미처 막지 못했다’거나 ‘나 때문에 죽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사별 가족과 달리 주변에 맘 편히 슬픔을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인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윤혜진(45ㆍ가명) 씨는 2년 전 남편을 자살로 잃었다. 남편은 유서나 메모는 전혀 남기지 않았다. 윤 씨는 생각지도 못한 남편의 선택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주말부부여서 날마다 볼 수 없었다. 옆에 있었다면 괜찮았을까, 막을 수 있었을까 지금도 늘 생각한다”면서 “내가 남편을 부모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 돼버렸다. 왜 힘들었는지 알 수 없으니 평생의 숙제로 남았다”고 말했다.
사망에 따른 행정적 처리, 가장의 빈자리가 안겨준 경제적 어려움, 두 아이의 심리적 불안함도 고스란히 윤 씨 홀로 감당해야 했다. 윤 씨는 “자살은 남겨진 가족에게 잔인한 거다. 그 기억을 잊은 것처럼 산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다. 자살 유가족에겐 정말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37년 전 어머니를 잃은 강명수(56) 씨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강 씨의 어머니는 10년 넘게 우울증을 앓았다. 어머니가 숨졌을 당시만 해도 그는 어린 마음에 '어머니의 고통이 끝났다'는 사실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몹시 슬펐지만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응어리는 가슴에 서서히 ‘짐’처럼 쌓였다. 그는 20년 넘게 아무에게도 어머니의 자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 자신이 어머니 나이 즈음 된 어느 날 갑작스럽게 큰 슬픔이 찾아왔다.
그는 “자살 유가족은 일반적으로 사별하는 분들과 비교했을 때 애도 과정이 복잡하고 길다. 자살에 노출되지만 정작 도움을 청하기 쉽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다”면서 “말을 해야 도움을 받는데 ‘네가 죽인 거 아니냐’는 사회적 시선이나 밖에서 비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서울 마포대교에 세워진 자살 위로 동상. [중앙포토]
이들은 자살이 발생하면 지금처럼 경찰 조사로 끝내는 게 아니라 사망신고ㆍ장례ㆍ심리 상담 등을 한 번에 안내해주는 ‘원스톱’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윤혜진 씨는 “유가족을 가장 먼저 대하는 경찰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고, 상담 전화번호만 전달해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강명수 씨는 “자살 유가족은 자살 고위험군인데 유가족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여전히 미미하다. 유가족이 나설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탓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유가족 지원 정책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전명숙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현재 심리 부검과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 심리 지원과 사례 관리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유가족들이 잘 안 하시려는 경우가 많다. 원스톱 시스템도 유가족이 사망 신고 과정에서 상처를 받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면서 "경찰서에서 자살 유가족을 위한 브로슈어를 배포할 수 있도록 경찰청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자살 시도가 많이 이어지는 서울 마포대교에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쓰여진 문구. 자살 유가족들도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처럼 공감과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합뉴스]
유가족들은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것으로 자살예방센터의 무료 심리 상담 지원과 유가족 자조 모임을 꼽았다.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비슷한 처지의 유가족끼리 공유하고 치유하는 자조 모임의 역할이 크다. 복지부에 따르면 유가족들은 자조 모임(72.2%)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가족·친척, 자살예방센터(59.7%) 등이 뒤를 이었다.
이동주ㆍ정미숙 씨 부부도 충남 지역 자조 모임에서 울고 웃으며 서서히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창문을 가렸던 커튼도 열고, TV도 새벽에 덜 켜놓게 됐다. 힘들었던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부부 사이도 자연스레 좋아졌다. 이 씨는 "처음에는 나가길 망설였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막상 만나니까 울어도 흉보는 사람 없고 허물도 없었다"면서 "지금은 내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됐고 한 달에 한 번 보는 모임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이제 부부는 다른 유가족의 아픔을 앞장서서 보듬고 있다. 나서길 망설이는 유가족에겐 하루에도 1시간씩 전화하며 위로하고, 아픔을 호소하는 이의 손을 말없이 잡아주는 식이다. 정 씨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라는 한 유가족의 문자 메시지를 말없이 보여줬다.
정부는 지난 1월 인구 10만 명당 26명에 달하는 자살률을 2022년까지 17명으로 줄이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은 자살 예방 실무를 맡고 있는 중앙자살예방센터.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유가족도 자살이라는 사회적 문제의 피해자인 만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전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상대적으로 미비한 자살 유가족에 대한 학술적 연구 등도 활성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 사건 뒤 유가족을 만나는 경찰, 주민센터 직원이 유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게 중요하다. 정부가 유가족 지원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이를 못 받는 분들을 발굴해서 안내하고 위로해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유가족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떻게 지원받을 수 있는지 몰라서'(53.1%)였다.
지난해 경북 구미시의 구미대교, 남구미대교에 설치된 생명사랑조형물. 꾸준히 이 지역 교량에서 자살자가 나옴에 따라 설치됐다. [연합뉴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본에선 자살유가족 종합지원센터에서 유가족이 교육을 받은 뒤 직접 상담사로 나선다. 영국에서도 전국에 70여곳 유가족지원센터를 운영하는데 유가족이 다른 유가족의 치유를 돕는 활동을 한다. 유가족들이 슬픔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자살예방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은 유가족의 소망도 마찬가지다. 자살 유가족 가운데 또 다른 자살자가 나오지 않는 것, 그리고 자살로 고통을 겪을 유가족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다. 정미숙 씨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제가 아무것도 몰라서 자식을 보낸 것만 같아요. 국가가 자살 문제에 신경 써주고 많이 알려서 좋은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뿐이에요. 유가족 자조 모임도 활성화돼서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분들도 세상으로 나오셔야죠. 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을 겪은 사람이 없어져야 합니다." 이에스더ㆍ정종훈 기자 etoile@joongang.co.kr
■ 자살 유가족 정미숙 씨가 아들에게 보내는 글
「 ▶너 있는 그곳, 그곳은 어떻니?
옆에 있을 땐 소중함을 몰랐어 당연히 있어야 하는 줄 알았으니까 아들 왜 그랬어? 엄마와 아빠, 네 형제, 아내와 아들을 남기고 왜 홀로 그렇게 훌쩍 떠난 거니? 왜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해? 그 결정은 용기였어? 아니면 포기였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너에게 물어보네 소중한 줄 모르고 살았던 지난날들이 몹시도 후회 되네
'어머니'하고 불러주던 그 한마디가 그땐 이렇게 소중한 줄 몰랐네 살아 있는다고 잘 해줄 것도 아니면서 네가 세상에 없으니 왜 그렇게 보고 싶고 그립니
엄마인 나를 늘 웃게 하던 아들이 이제는 밤낮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우내 눈물만 흘리게 만드네
미안해 많이 사랑해주지 못 해서 미안해 많이 고맙다고 인사 못 해서 미안해 많이 아껴주고 안아주지 못 해서 미안해 많이 착하다고 말해주지 못 해서 미안해 34년간 열심히 살아왔던 너의 인생 인정해 주지 못 해서 미안해 모든 게 미안해 미안해 참으로 미안해
너 있는 그곳은 따뜻한 봄날이니 아니면 시베리아 벌판 같은 추운 겨울날이니 너 있는 그곳, 다녀올 수만 있다면 가겠다만 남아 있는 가족이 엄마를 붙들고 있네
너에게 가지 못하고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불행인데 이 못난 어미는 어찌 해야 하니
거기서는 행복하게 지내다가 엄마가 갈 때 꼭 맞이해주길 바라네 늙어서 많이 변해 있더라도 온 마음으로 나를 알아봐주고 그 넓은 품으로 나를 안아주길 바라네
그동안 자네도 열심히 지내다가 나 다시 만날 때 기쁘게 해주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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