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리포트] 총기학살 원인 '허술한 총기규제' 꼽는 사람 28% 불과
[오마이뉴스 글:강인규, 편집:박혜경]
나는 아직도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미국으로 유학와서 월마트에 장보러 갔을 때다. 스포츠·아웃도어용품 코너를 기웃거리며 도시락 가방을 고르고 있는데, 계산대 뒤편으로 상상치 못한 물건이 진열되어 있었었다. 총이었다.
나는 당연히 물감탄환을 쏘는 서바이벌 게임용이라고 생각했다. 명색이 '스포츠용품' 코너 아닌가? 하지만 다가가 살펴보니 모두 실탄을 장전하는 살상용이었다.
내 놀란 눈이 가격표를 본 뒤 더 커졌다. 저가 권총과 소총이 10만 원대에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낚시 미끼를 파는 곳에서 총기도 구입할 수 있으며, 괜찮은 낚싯대를 살 돈이면 산탄총을 장만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었다.
그 뒤로 수많은 총기 난사 사건을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봐야 했다. 논문을 내고 졸업할 때 쯤, 나는 총기사건에 거의 무감각한 지경이 되었다. 쇼핑몰, 식당, 대로, 광장,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심지어 초등학교에서도 총기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앨라배마대학 총기사건과 오하이오주립대 총기사건이 터질 때즘 나는 미국 대학에 교수로 부임했다. 그리고 가을학기가 시작되자 마자 텍사스주립대에서 총기사건이 벌어졌다. 학생 한 명이 무장한 채 도서관에 들어와 반자동소총을 난사한 뒤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한 것이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목숨을 잃지 않았으나, 시민들의 충격은 매우 컸다. 이 아름다운 대학도시에서 벌어진 1966년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텍사스 공대생이 학교 전망대에 올라가 11명을 조준사살한 것을 포함, 모두 17명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 사상 최악의 총기 사건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민이 총으로 10여 명을 살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4년 21명(산이드로 맥도날드 학살), 1991명 23명(루비식당), 2007년 32명(버지니아공대), 2016년 49명(올랜도 나이트클럽 ), 2017년 58명(라스베이거스) 등 난사사건의 사망자 수는 급속도로 늘었다.
2018년 2월 말까지 불과 두 달 동안 미국에서 총기 난사로 살해된 희생자는 플로리다 고교 학살을 포함해 모두 55명에 이른다. 총기폭력의 추이를 분석해 보면, 발생 빈도뿐 아니라 사건당 사망자 수도 급격히 증가한 것을 볼수 있다.
미국의 총기폭력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까닭이 무엇일까? 총기학살은 한국과 상관 없는 미국만의 문제일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북한 코앞에서' 안도감을 느낀 미국 방문객들
가끔 남북간의 긴장이 고조될 때면 미국 동료들이 가장 먼저 걱정해 준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 괜찮아?' 간혹 '북한을 코앞에 두고 불안해서 어떻게 사냐'고 묻는 친구도 있다. 그럴 때 나는 농담처럼 말한다.
"나는 미국 가게에서 팔리는 총이 더 무서워."
최근들어 꽤 많은 미국인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평창올림픽에 참가했던 미국 선수들이 '북한을 코앞에서 바라보는' 평창에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고, 이 기묘한 경험이 대중지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실렸다.
개막식이 열리기 직전, 미국 스포츠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인터넷판에는 좀 생뚱맞은 기사가 실렸다. "평창과 비무장지대(DMZ) 거리는 얼마나 될까?"라는 보도였다. 정답은 40마일, 약 65킬로미터다. 내 동료교수는 이것의 두 배가 넘는 거리를 매일 운전해서 출근한다.
앞의 매체가 이런 기사를 싣는 이유는 간단하다. 평창이 북한과 이렇게 가까운데, 선수를 보내거나 경기를 보러 가도 괜찮을까? 위험하지는 않을까?
<유에스에이 투데이>가 대신 답을 한 셈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선수와 방문객들은 미국보다 오히려 평창 선수촌이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바이애슬론 선수들마저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총을 맡겨야 하는 엄격한 총기규제가 안도감을 준 것이다. 이들은 올림픽 현장에서 상식으로 여겨져 온 중무장 경찰들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거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16년 한국에서 일어난 살인이 모두 356건이었던데 반해, 인구가 절반밖에 안 되는 시카고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두 배를 훌쩍 넘어서기 때문이다. 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사람들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나라가 그러듯, 총기 소유를 금하면 되지 않을까?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여기서 '총기협회(NRA)의 로비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답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총기협회가 강력한 로비단체가 된 것은 사실이다. 총기제조업체, 판매업자, 총기구매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 단체는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에 2100만 불(약 225억 원)을 지원한 것을 포함, 여야 정치인들에게 모두 3360만 불을 후원했다. 트럼프는 아예 총기협회 집회에 참석해 "당신들은 이제 백악관에 진정한 친구 겸 후원자를 두게 됐다"고 화답했을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총기협회만이 아니다. 이들의 반대 뒤에는 강력한 여론의 지지가 있다. 고교생들이 나서서 총기를 규제하라고 절규하는 상황에서도 총기협회에 대한 대중의 지지율은 과반에 가까운 46%에 이른다.
총이 아니라 정신병이 문제?
최근 플로리다 고등학교에서 총기학살이 일어나자, 트럼프는 '미친사람의 소행'이라는 트윗을 날렸다. 새로운 주장도 아니었다. 넉 달 전인 2017년 10월 라스베이거스에서 58명이 피살되었을 때도 '심각한 정신질환자'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다음 달 11월 텍사스의 교회에서 26명이 살해되었을 때에도 똑같이 반응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정신질환 문제가 심각하며, 이건 총기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는 '다른 나라 역시 정신질환 문제가 심각하다'면서도, 왜 다른 나라에는 총기학살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지 말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엉뚱함은 널리 알려져 있으니 별로 놀랄 일도 아닐 터이다. 문제는 '총이 아니라 정신병이 주범'이라고 믿는 미국인들이 꽤 많다는 점이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와 에이비씨(ABC) 방송이 공동집계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총기학살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과반이 넘는 57%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적절한 조처'라고 답했다. '허술한 총기규제'를 문제의 원인으로 꼽은 사람은 28%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 미국 언론은 '여론조사 사상 총기규제 여론이 가장 높다'고 대서특필하고 있다. 씨비에스(CBS) 방송은 23일 미국인의 3분의 2에 달하는 65%가 '총기판매 조건을 강화하길 바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내용을 들여다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다.
이번 플로리다 학살을 비롯한 수많은 참극의 주범으로 AR-15 계열 반자동소총이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치명적인 반자동화기의 판매와 소유를 금해야 한다는 여론은 53%로 간신히 과반을 넘을 뿐이다. 규제 찬성자 대부분은 '총기 구매자 배경조사 강화' 정도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김빠지는' 조사 결과가 있다. 규제를 지지하는 미국인 3분의 2가 실제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의회가 규제법안을 마련할 것으로 낙관하는 사람들은 1/3에 지나지 않았다.
트럼프가 교사를 무장시키는 것을 '가능한 대안'이라고 내놓은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게다가 미국인 44%가 이 정책에 찬성하고 있으며, 공화당 지지자들 가운데 찬성자는 무려 68%에 이른다. 총을 줄이는 게 대안이 아니라, 더 많은 총을 지급하는 게 대안이라는 것이다.
미국을 지배하는 비이성적 공포, 한국도 위협한다
나는 매체학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묻는다. '지난 20년간 미국사회가 더 위험해졌을까, 아니면 더 안전해졌을까?' 학생들은 예외없이 '더 위험해졌다'고 답한다.
나는 통계자료를 보여준다. 미국의 강력범죄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1990년대 초반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면, 학생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이때를 기회삼아 미디어가 현실의 인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말하기 시작한다.
미디어학자 조지 거브너는 텔레비전 폭력과 현실 폭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미디어에서 폭력을 접할 기회가 많을 수록 현실이 위험하다고 느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끔찍한 세상 증후군'이라고 불렀다.
총기폭력이 일어나면 총기판매가 더 늘어난다. 사람들은 세상이 무서워졌다며 총을 사고, 이 총이 집단학살을 일으키고, 이 집단학살이 또 다시 총기구매를 자극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은 미국에 만연한 총기폭력의 원인을 타자에 대한 미국인의 뿌리깊은 공포에서 찾는다. 유럽에서 종교적 이유로 신변의 위협을 느껴 미대륙에 온 이들은, 원주민을 '타자'로 학살하고 흑인을 '타자'로 착취하면서 나라를 세웠다. 노예 해방은 그들을 착취해 온 백인들에게 또 다른 무장의 구실을 제공했다.
미국인들은 다른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을 타자화라는 차별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경계했다. 동양 이민자들은 '황색위협(Yellow Peril)'으로 인식되었고, 중동인들을 맞은 것은 적대적 오리엔탈리즘이었다. 20세기 이후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공포감을 안긴 것은 '이데올로기적 타자'였다.
자본주의로 부를 축적한 미국의 기득권층이 자본주의 이외의 체제를 '악마'로 그려낸 것은 당연했다. 처음에는 '빨갱이(pinko)'가 사회주의 혁명을 받아들인 국가를 비난하는 말이었지만, 점차 '우리' 속 동료를 헐뜯는 언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반공주의가 매카시즘으로 바뀌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들'을 죽여도 좋다고 믿는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일원에게도 총을 겨누게 되어 있다. 이렇게 미국에서 탄생한 극우반공주의는 한국에 이식되었고, 미국보다 더 강화한 형태로 존속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한다는 보수세력의 살벌한 구호들을 보라.
미국의 총기폭력은 사회에 팽배한 타자혐오, 공포의 문화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미국 드라마를 점령한 범죄물이나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할리우드의 '좀비' 장르는 타자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를 드러내 준다.
그렇다면 미국의 비이성적 공포가 어떻게 한국을 위협할까? 우리는 어떻게 그 위험을 피할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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