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금액 90%' 공공기관 구매의무 없앤 법 개정안 국회 계류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결핵퇴치 운동에 쓰이는 크리스마스 실(Seal)이 갈수록 우리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해마다 겨울이면 찾아오는 크리스마스 실은 화려한 도안이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결핵 예방에 일조한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기에 구매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모바일 문화에 밀려 손 편지가 쇠퇴하면서 크리스마스 실에 대한 관심이 급감했다. 이르면 내년부터 학교 등 공공기관의 판매 협조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7일 대한결핵협회 등에 따르면 2011년 50억1천만원이던 크리스마스 실 모금액은 2012년 43억원, 2013년 39억원에 이어 작년 34억1천만원으로 감소했다. 10년 전인 2004년 64억원에서 절반 가까이로 줄어든 액수다.
올해는 아직 모금 초기여서 판매량 통계가 없지만 감소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협회 관계자는 "최근 몇년간 지속적으로 학교 등 공공기관에서 모금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올해도 크게 바뀔 것이 없다"며 "교사들도 실 판매가 잡무이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수요가 줄었지만 매년 모금액의 약 90%를 차지해온 공공기관 판매가 이르면 내년부터 사실상 막혀 상황은 더욱 답답해졌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는 보건복지부가 발의한 결핵예방법 일부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학교 등 공공기관이 결핵협회의 크리스마스 실 모금에 협조하는 조항을 없애는 것이 골자다.
크리스마스 실은 결핵예방 사업을 맡는 결핵협회의 주요 재원이다. 정부의 지원 감소로 실 모금액이 협회 예산에서 차지한 비중은 갈수록 높아졌다.
보건복지위 남인순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자료에 따르면 협회 총예산에서 크리스마스 실 모금액의 비율은 2011년 13.6%에서 계속 높아져 올해는 28.5%에 달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결핵협회는 예산의 5분의 1 이상이 사라지는 셈이다.
크리스마스 실은 1932년 캐나다 선교의사인 셔우드 홀이 결핵 퇴치를 위해 국내에서 처음 발행했다. 1953년 결핵협회가 설립되면서 범국민적인 성금운동으로 정착했으나 최근 손 편지 사용이 줄어들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학교에서는 실 모금이 사실상 '강매'가 아니냐는 학부모 민원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결핵 발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하는 등 결핵 퇴치까지 갈 길이 먼 상황에서 정부가 대안 없이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2015 세계 결핵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결핵 발생률은 10만명당 86명으로 포르투갈(25명), 폴란드(21명)를 제치고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실 모금액은 노숙인 등 의료 취약계층 검진과 학생환자 지원 사업 등에 쓰인다.
남 의원은 "크리스마스 실 모금이 감소하면 결핵 퇴치 사업에 어려움이 따르게 될 개연성이 크다"면서 "정부가 법 개정 추진을 재검토하거나 결핵퇴치 사업 예산 지원을 확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핵협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일반 모금과 기업 후원을 늘리려고 노력 중이지만 우리가 전문 모금 기관이 아니어서 실적이 미미하다"면서 "이대로라면 예방 사업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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