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의 부친 김철 전 통사당 당수는 1980년 전두환군부가 5.18 광주대학살을 자행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 라는 비정상의 쿠데타 입법기관을 만들자,여기에 초대 입법회의의원으로
들어가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든 민주시민들을 완전하게 배신한 전력이 있다.
그런 김한길의 처음 정치입문 또한 한나라당(신한국당) 공천신청 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대중정부에 들어서 색다른 변신을 한 김한길은 이후 승승장구 노무현정권에서는 열린우리당 당의장까지 한다. 그러나 노무현정권에 반대편에 서는 ‘민집모’를 만들어서 탈당을 함은 물론 야당의 분열에 그 서막을 열었다. 야당을 분열하는 그 책임자로서 자리를 단단하게 고착해나갔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그의 임무였다. 2008년 18대 총선에는 정치은퇴선언을 하고 사라지는 듯했다. 4년동안 김한길은 무엇을 한것일까? 이명박정권하에서 끊임없이 방송에 출연하면서 정치패널로서 또는 문화예술인으로서 이명박정권과의 물밑거래가 이루워졌다는것이 대부분의 의견이다.
그러다가 2012년 야권의 중심축이 존재하지 않는 무주공산의 시절에 갑자기 정계복귀를 한다. 야권통합이라는 거대캐치프라이즈에 묻혀서 정계에 복귀하게 된것이다.김한길이 어떤 인간인지 야당에서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텐데도,그의 복귀를 종편들은 마치 대환영의 환대를 해주었다.
김한길은 대선패배로 공석이 된 당대표의 자리에 덮석 다선의 위선을 내걸고 자리를 차지한다. 2013년, 야당은 여당의 2중대라는 오명 투성이였다. 급기야 2014년이 돼자 청와대 신년만찬에 가는등 야당대표라기 보다 박그네 호위무사 에 어울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민주시민들은 삭발을 진행하며 김한길의 사퇴를 본격 거론하였다.
그런데 이무슨 날벼락인가? 새벽1시에 안철수가 어디에서 날라왔는지 야당통합을 내걸고
공동대표제를 제안, 김한길-안철수 사꾸라 공동대표가 되어버렸다.
참으로 암울한 세상이 되었다.
4월16일 304명의 학생시민들이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수장이라는 가장 침혹한 참사가 벌어졌다. 김한길은 그 어디에도 모습을 나타나지 않았다.야당대표가 맞는가?
모두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여당 2중대장이 김한길의 참모습이었단 말인가?
그후 6월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와 인천, 부산에서 박그네의 심복 남경필,유정복,서병수가 당선된다.
7월 보궐선거에서는 역시 대참패를 당하고 만다.그리고는 김한길은 여당2중대장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사라졌다.
그런데 웬걸, 다시금 야당분열의 주기획자로서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경악할만한 소식이 들려온다.정말 충격그자체이다.
엄청난 충격!!! 주승용 전 최고위원은 김한길이 뒤에서 배후조종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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