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ㆍ올보르 승마장 매니저 증언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21)가 미르재단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해 9월 초부터 독일에서 덴마크로 은둔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가 덴마크에 은신처를 마련하는 과정에는 덴마크 국가대표 승마선수 출신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이 깊숙이 간여한 정황도 드러났다. 헬그스트란은 지난해 2월부터 유럽 현지 언론에서 삼성그룹과 정씨를 위해 그랑프리 우승마 등을 중개하면서 의혹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4일(현지시간) 덴마크 올보르 헬그스트란 승마장의 선임 매니저 마즈 롬은 승마장 안과 밖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승마장 밖에서 차량을 타고 가다 경향신문 통신원을 만난 롬은 각종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했다. 정씨 일행이 올보르에서 렌트하우스를 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도움을 준 사실도 순순히 얘기했다. 하지만 통신원이 오후에 초인종을 누르고 승마장 안에 들어가자 “누가 함부로 승마장에 들여보냈느냐”며 부하직원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가 ‘당장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며 실제로 경찰에 전화를 거는 순간 뾰족한 연장을 손목과 팔꿈치에 박은 직원이 나오기도 했다. 롬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외부 언론에 노출되면 안되는 무엇이 승마장 안에 있다는 의심을 자아내게 했다.
국내외 언론의 최대 관심은 헬그스트란 승마장 안에 삼성승마단이 정씨의 유럽대회 출전을 위해 제공했다는 말들이 존재하는지 여부다. 유럽 현지 언론들은 2015년 10월 삼성이 독일에서 승마훈련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한 후 그랑프리대회 우승마 비타나V를 비롯해 각종 명마들을 차례로 사들여 정씨에게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의 헬그스트란은 정씨에 대한 승마훈련까지 담당했다. 삼성이 최씨 모녀 회사 비덱과 체결한 승마훈련 지원 계약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말의 소유자는 삼성 아니면 정씨로 돼 있어야 하고 헬그스트란은 코치나 중개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세계승마협회(FEI) 홈페이지에 말 소유자는 헬그스트란으로 돼 있다. 롬은 경향신문에 “정유라가 탄 말 중 비싼 말은 모두 우리 사장 소유이고 단 한번도 정씨 소유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비타나V보다 더 비싼 스웨덴 명마 블라디미르는 정씨가 체포된 직후 소유권이 헬그스트란에서 오스트리아 시몬 피어스로 넘어갔다. 하지만 피어스는 올보르 승마장에서 일하는 25세 보조 트레이너다. 헬그스트란이 급하게 말을 처분하려다 마땅한 매입자를 찾지 못하고 직원 앞으로 명의만 이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덴마크 현지에서 삼성과 정씨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작업은 지난해 9월 미르재단과 삼성의 ‘정유라 맞춤지원’ 의혹이 언론에 불거지면서 본격화됐다. 경향신문이 9월23일 최초로 ‘삼성이 정씨를 위해 비타나V를 10억원 이상 주고 사들였다’고 보도하자 헬그스트란은 9월27일 다른 언론매체에 인터뷰를 자청했다. 그는 “비타나V는 삼성이 아니라 내가 구입한 말”이라고 주장했다. 이 인터뷰가 나간 다음부터 정씨 일행의 덴마크 이주가 시작됐다. 독일에서 승마코치 겸 최씨 모녀 재산관리인 역할을 했던 크리스티앙 캄플라데가 선발대로 건너가 승마장 매니저 롬의 도움을 받아 렌트하우스를 계약했다. 은신처가 마련되자 정씨 아들, 보모, 마필관리사도 차례로 덴마크로 건너갔다. 이들이 덴마크로 가져간 밴 차량은 독일에서 지난해 10월 초 정기검사를 마쳤다. 정씨가 부동산 문제로 독일로 되돌아갈 때는 데이비드 윤(49) 형제의 BMW 차량이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주변 주민들은 “5번 정도 BMW가 마당에 주차된 것을 본 적 있다”고 말했다. 집주인은 “최순실씨도 온 적이 있다”고 했다.
<강진구 기자·올보르 | 강순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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