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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February 10, 2017

김훈 작가 "쌓은 것 잃을까봐 두려운 사람들 태극기 들어" 신작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소설' 작업 어려움도 피력

소설가 김훈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정서를 '기아의 두려움'으로 정의했다. <흑산> 이후 6년여 만에 발표한 새로운 장편 <공터에서>(해냄)를 선보인 자리에서다. 

김 작가는 "같이 자란 친구들은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에 사춘기를 보냈다"며 "해외에서 원조를 받는 나라에 살고, 외국에 나가 달러를 국내에 송금한 이들이 겪는 심리는 쌓은 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기아의 두려움"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승만이나 박정희 대통령이 외국갈 때 강제 동원돼 태극기를 흔들었던 사람들, 대통령이 지나가면 만세 부른 사람들이 광화문 시위 자리에서 태극기를 들고 데모한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또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소설을 고민하면서도 관련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세월호와 관련한 다큐나, 르포 등 사실에 관련한 자료를 많이 읽었다"라면서도 "하지만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 다음날 목을 맨 교감선생님의 이야기를 보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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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 소설가 김훈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흑산’ 이후 6년여 만에 발표한 새로운 장편 ‘공터에서’(해냄)를 선보인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정서를 ‘기아의 두려움’으로 정의했다. ⓒ 해냄 출판사

김훈 작가의 신작 <공터에서>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마씨 집안사람들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아버지 마동수와 두 아들 마장세, 마차세의 삶에 일제 강점, 해방·한국전쟁·군부독재·베트남 전쟁 등 한국 현대사가 빼곡히 교차해 펼쳐진다.

다음은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 일문일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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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정농단 사태를 어떻게 보나. 
"어려운 질문이다. 조카들은 광화문 집회에 나가 아이들과 깔깔거리며 찍은 사진을 내게 보내오고, 내 또래 친구들은 태극기 집회에 나간다. 양쪽에서 모두 가자고 하는데 감기 걸렸다는 핑계 대고 안 나갔다. 나랑 같이 자란 친구들은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에 사춘기를 보냈다. 국민학교 들어갔을 때 130달러 정도였다. 우리나라는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최빈국 수준이었고, 필리핀의 원조를 받았다. 

내 친구들은 종합무역상사 해외주재원으로 베를린이나 파리에 가서 우리 여학생 생머리를 잘라 만든 가발, 비닐 원단, 미역, 김 등을 팔아 한 줌의 달러라도 국내에 송금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기아의 정서가 있다. 기아의 두려움이다. 제일 무서운 게 기아와 적화다. 그런 잠재된 근원 정서 때문에 아마 저렇게 됐구나 생각한다. 태극기 집회에 나타나는 성조기, 십자가, 태극기, 이것들은 내가 어렸을 때 이 나라의 반공 패턴과 완전히 똑 같은 것이다.

실은 참가자라기보다 관찰자로서 광화문 집회에 혼자 가 이쪽저쪽을 다 봤다. 내가 어렸을 때 반공이라는 것은 항상 기독교 우파와 결탁했다.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걸 보며 70년이 지났는데, 내가 참 어디 와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승만이나 박정희 대통령이 외국갈 때 강제 동원돼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도심지 학교 애들은 지금 사람들이 시위하는 장소에 나가 대통령이 오기를 한나절 기다려야 했다. 아이들이 오줌 마려우면 남학생들은 가로수 뒤에서 일을 보지만 여학생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겨울에 언 도시락 까먹고 대통령 지나면 만세 불렀다. 바로 광화문 시위 자리에서. 바로 그 자리에서 저렇게 태극기 들고 데모한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거 아닌가. 내가 서 있는 자리 어딘가 싶다."

- 지난해 5월 한 강연에서 세월호에 관한 신작을 고민중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됐나. 
"세월호 얘기는 그 사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자료는 많이 읽었다. 아주 많이. 학문 자료 보다는 기자들이 현장에서 쓴 글을 좋아한다. 다큐나 르포, 보고서, 실록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좋아한다. 

세월호도 그렇다. 그런데 세월호는 소설로 쓰자면 이야기를 변형시킬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다음날 자살한 교감을 떠올렸다. 인솔 책임자였는데 탈출해서 다음날 아침에 나무에 목매달고 죽었던 분이다. 이것에 대해 뭐라고 써야 하나. 그 교감선생님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은 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어쩌면 종교의 영역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 평소 소설보다 에세이가 편하다고 했다. 여전히 그런가? 
"에세이와 소설 중에서는 역시 에세이가 편하다. 주인공 없이 무책임한 정서를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어서 그렇다. 소설은 반드시 등장인물을 통해 말해야 하는데 특히 3인칭을 만든다는 게 무척 어렵다. 내 소설에 3인칭을 쓰지만 아직 3인칭에 도달하지 못한 1인칭의 아류들일 것이다. 존경하는 황석영 선배 같은 분은 3인칭을 정말 잘 만드는데 나는 3인칭 만들기가 어렵다."

-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나. 인상적인 후배 소설가가 있나. 
"내게는 젊은 소설가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안목이 없다. 내가 필요한 것만 골라 읽는다. 젊은 작가들은 우리 세대가 못 보는 것들을 보고 있더라. 우리 세대가 구사할 수 없는 언어도 구사하는데 그건 놀라운 발전이다. 우리 노인들은 장님처럼 못 보고 지나는 게 많다. 다만 걱정은 대개 사소한 것들에 치우치는 느낌이다. 사소한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지엽말단이나 사소한 것에서도 큰 의미 찾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들의 새로운 시선은 매우 경이롭게 바라본다. 

젊은이들이 문체에 관한 고민이 없는 점도 걱정스럽다. 문체에 관한 한 나는 매우 신중하다. 어떤 글을 쓰려고 할 때 그 목적에 맞는 장인적 기법을 찾는 일은 내게 무척 중요하다. 그게 없는 한 나는 그 목표를 향해 갈 수 없다. 그렇게 기법을 중시할 때 '조사'는 아주 중요하다. 

한국어 논리 작업에 있어서 조사가 없으면 안 된다. 한국어로 하는 사유는 조사를 연결한다는 것이다. 우리 조사는 '은, 는, 이, 가' 등 대여섯 가지다. 그걸 뗐다 붙였다 하면서 가난한 언어의 삶을 사는 거다. 조사는 모호한데 그 모호함 속에 모국어의 힘이 있는 것이다. '비가 내린다'와 '비는 내린다'는 다른 느낌이지만 그 차이를 문법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다르다. 그런 걸 문장마다 하나하나 따지려면 진이 빠진다. 하지만 그런 노력 없이는 문체를 만들 수 없다. 

나는 법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우리 순수한 한국어는 조사나 종결형 어미밖에 안 나온다. 지시어나 개념어, 주어·동사·술어는 모두 한자로 돼 있다. 그걸 한글로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100년 지나도 법전의 한글화는 불가능할 거다. 가령 '땅'만 해도 대지, 택지, 공한지 등 여러 종류인데 그걸 그냥 땅이라고 했다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정범, 종범, 미필적 고의, 이런 말도 한글로 표현할 수 없다. 

한자는 우리나라 글자다. 수 천 년 쓴 글자다. 우리 글자라고 해도 손상 없는 것이다. '달아 노피곰 도다샤', 이것만이 한글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소설에 한자 도입을 주저하지 않는다. 한자가 필요하면 반드시 넣는다. 그게 우리 모국어를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 역시 두 가지 질문이다. 시대 전체를 조망하는 이 시대 큰 작가가 있다면 어떤 분들인가. 광화문 집회에서 촛불, 태극기 어느 편인가. 
"내가 한국문학 전체를 놓고 통찰력 있는 시각을 내놓을 입장이 아닌데 아무래도 조정래나 황석영 선배 같은 분들 아닐까. 두 분은 한 시대의 억압적인 구조나 역사적인 틀, 그 전체를 보면서 주물러 가면서 인물을 배치하고 소설을 쓴다. 나는 그런 시각보다는 디테일을 통해 좀 더 큰 걸 말해보고자 하는 그런 생각이 있다. 구조나 전체를 들여다 보며 작품을 쓰는 작가들을 한없이 존경하지만 내가 그분들 뒤를 따라가지는 못할 것 같다. 내 정직한 고백이다. 

광화문 집회는 아무 데도 안 간 건 아닐 것이다. 양쪽 다 기웃거렸다. 해방 후 70년이 지나도 자동차 공회전 하듯 나는 같은 자리, 외국 나가는 박정희에 태극기 흔들었던 그 자리에 아직 서 있다는 게 너무나 서글픈 마음이었다. 위정자들이 저지른 난세를 광장의 군중들의 함성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크나큰 불행이지만 그 안에 희망의 싹이 있을 거다. 분노의 폭발을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는 동력으로 연결하기를 바라는데, 그 연결은 역시 정치 지도자들의 몫일 것이다."

- 당신에게 현대사가 특별한 이유는.

"내 아버지 세대와 내 세대가 살아온 일들을 다섯 권 분량으로 쓰려고 했다. 한데 기력이 미치지 못했고 싹 다 버렸다. 결과는 초라했다. 내가 쓴 것보다 못 쓴 게 더 많다. 내 평생 짐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세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저런 아버지가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누구나 자기 아버지들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나는 저런 삶을 살면 안 되겠구나. 그게 이 작품을 쓴 동기다."

- 희망과 고통 중에 어떤 것을 쓸 것인가?
"희망적인 내용을 쓰고 싶었는데 잘 안 돼 미수에 그친 느낌이다. 이번 소설에서 말할 수 있는 희망이란 아주 사소한 희망이다. 갓난애가 태어나는 것, 특히 여자아이가 태어나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일은 순수한 생명의 원형이 드러나는 일이다. 여성의 생명은 다시 그걸 가능하게 하니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걸 희망이라고 하자니 좀 한심하지 않나. 그렇다고 어떤 이념을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희망은 생활 위에서 건설할 수밖에 없다. 그 바탕에서 갑질을 쳐부수는 거다."

- 소설 제목 <공터에서>의 의미는? 또 책 표지에 말이 그려져 있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 
"아버지가 내게는 말의 인상이었다. 소설 속에 말 타는 얘기도 나오는데 비루먹은 불쌍한 말이다. 그 말에 아버지를 투사한 거다. 표지의 말은 너무 경마장 말처럼 됐다. 제목은, 공터는 주택과 주택 사이 버려진 땅인데 아무런 역사적 구조물이나 시대가 안착될 만한 건물이 들어있지 않은 공간이다. 나와 아버지가 살아온 시대를 공터로 가정한 거다. 나는 평생 가건물에서 산 것 같다. 광화문의 태극기집회 보고 내가 계속 철거되는 가건물에 살아왔구나, 또 헐리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터에서>는 그런 나의 비애감과 연결되는 제목이다."

- 현대사를 다뤘다고 하면서 정작 1970년대 얘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동안 글 쓰는 게 저조했다. 몸이 많이 안 좋았다. 지금은 좋아졌다. 특별한 건 없는데 노화현상인 것 같다. 글을 쓰기가 싫었다. 단편을 가끔 쓰거나 에세이를 쓰며 살았다. 올해부터 정신 차려서 쓰려고 한다. 닭이 알 낳듯. 70년대에 대해서는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80년 당시 한국 언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나는 다 안다. 완전히 안다. 그건 어느 언론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후에 생긴 언론사는 예외다. 신생 언론사들은 80년대로부터 자유롭지만 나는 다 안다. 어쨌든 70년대, 80년에 있었던 일을 나는 다 안다. 내 선배들은 더 잘 알 거다. 한데 우리 사회는 그 문제에 대해 총체적으로 반성하거나 되묻지 않는다. 단 한 번도. 그리고 그래도 흘러간다. 그것을 이제 말할 때도 된 거 아닌가. 

나는 74년에 언론사에 입사해 1년 수습하고 5년 반쯤 된 기자였다. 그때 나를 지휘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일을 내가 소설로 써야 하나, 자신이 없다. 내가 소설을 쓰는 것보다 그 시대에 언론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다 모여 왜 그렇게 됐는지 얘기라도 좀 했으면 좋겠다. 

아마 짐작하기에 그 시대 언론들이 역사라는 것은 민주적 법칙에 따라 전개되고 진화한다는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신념을 가진 언론인도 있었겠지만 압도적인 사회 전체의 공포 분위기에 짓밟혀 있었다. 그 시대 그런 언론 행위로 출세해 권력의 정상까지 간 사람, 지금도 있다. 다 모여 얘기했으면 좋겠다. 그걸 내가 소설로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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