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4년 5~10월 청와대 문건 입수
김기춘 "불순 친북인사들이 미 반정부 시위 주도"
새누리당·자유총연맹 등도 미시USA 비난에 동원
북한 연계 근거로 든 보수 매체 보도 허위로 드러나
김기춘 "불순 친북인사들이 미 반정부 시위 주도"
새누리당·자유총연맹 등도 미시USA 비난에 동원
북한 연계 근거로 든 보수 매체 보도 허위로 드러나
[한겨레]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4년 청와대가 미주 지역 최대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인 ‘미시USA’를 겨냥해 “북한과 연계돼 있다”며, 이를 국내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리라고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가 ‘미시USA-북한’ 연계의 근거로 든 보수성향 매체의 보도 내용은 지난해 법원에서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결이 났다.
<한겨레>가 22일 입수한 청와대의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문건을 보면, 2014년 9월22일 김기춘 비서실장은 회의에서 “브이아이피(VIP) 방미 일정에 맞춰 미시USA 등 미주 반정부단체 회원 일부가 엘에이(LA) 총영사관 앞에서 세월호 사고 추모 및 정부규탄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당시 북한 공작원 노길남이 시위현장에 출몰했다는 사이버안보 전문지 ‘블루투데이’ 기사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이는 미주지역 반정부 세력이 북한과 관계가 돼 있다는 점, 평범한 가정주부 모임이라고 주장한 미시USA의 실체를 보여주는 사례로 국내 언론에 보도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윤두현 홍보수석에게 지시했다.
김 실장이 언급한 ‘블루투데이’는 미시USA 회원들이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자 2014년 9~10월 사이 7차례에 걸쳐 ‘미시USA가 종북’이라는 취지의 보도를 내보낸 바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 지난해 8월 서울서부지법은 미시USA 회원 린다 리씨가 ‘블루투데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증거를 모두 살펴봐도 원고가 속한 단체가 종북 성향의 단체라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구체적인 정황을 찾기 어렵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국내 언론에도 보도되게 하라’는 9월22일 지시가 일부 실현됐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등장한다. 김 전 비서실장은 그 뒤 10월19일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미시USA는 형식상 쇼핑몰 사이트라고 하지만 실제 불순 친북인사들이 파고 들어가 반정부시위를 주도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마침 10월17일 <조선닷컴>에 ‘탈북1호’ 박사 이애란씨의 폭로 기고문(미시USA 뒤에 어른거리는 북미주의 종북세력)이 실렸는데, 다른 매체에도 실상을 정확히 알리도록 홍보하라”고 거듭 지시했다.
당시 김 실장의 발언은 청와대가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나 인사를 종북으로 낙인찍어 탄압하는 데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청와대의 이런 대응은 미시USA가 세월호 참사 당시 박 전 대통령 행적을 비판하고, 이런 내용을 담은 광고를 <뉴욕타임즈>에 실은 게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광고는 ‘진실을 밝혀라’라는 제목으로 “한국 정부가 적절한 비상대응책을 취하는 데 실패했으며 관련 부처 간 협력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미시USA를 비난하는 데는 보수정당과 단체도 동원됐다. 2014년 5월12일 수석비서관회의 문건을 보면, “일부 재미교포들이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광고를 게재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실추시켰다”면서 “이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강력하게 대응해야 하며, 특히 허위내용에 대해 반드시 시정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회의에서 새누리당과 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 등을 동원해 허위 과장 광고에 대한 논평, 담화, 반박광고 등을 통해 적극 대응하라는 주문도 나왔다. 당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황우여 원내대표는 “엄중한 시기임에도 정치적 선동을 꾀하는 정치 세력이 있다”고 비판했고, 자유총연맹·국민통합시민운동 등은 ‘정치적 국론분열’이라며 미시USA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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