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중앙정부와 교육청의 갈등이 좀처럼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감사원 감사 청구와 검찰 고발까지 거론하며 교육청을 압박하고 있고, 이에 교육감 협의회는 공식적으로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 공개 토론회를 제안한 상태다.
누리과정 예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8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만난 자리에서, 누리과정 예산 대란이 발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중앙 정부가 배정한 교부금으로는 교육청이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육감은 "기획재정부는 2012년에 앞으로 교부금이 매년 8.8%씩 올라갈 수 있다면서 2015년에는 약 49조 원이 넘는 돈을 교부금을 책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실제로 2015년 교부금은 49조가 아니라 39조 원 이었다"면서 "대체로 40조 원 안팎인 교부금이 한 푼도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4조 원이 넘는 누리 과정을 덧붙인다는 것은 예산 편성이나 기획에서 있을 수 없는 폭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16년은 지난해에 비해 1조 8000억 원이 늘었다. 그런데 이 액수는 2013년 교부금과 비슷하다. 결코 늘어난 것이 아니다"라며 "2013년과 비교했을 때 현재 교육 경비는 더 늘어났다. 교육 경비의 규모 자체가 커진 건데 이건 생각 안 하고 1조 8000억 원 더 줬으니까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 감당하라는 것"이라며 중앙 정부의 밀어붙이기 식 행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만 해도 기획재정부와 누리과정 예산 문제에 대해 상의했다는 이 교육감은 올해 유독 정부가 협의 없이 강경하게 나오고 있다면서 "일부에서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교육청이 많은 빚을 지게 함으로써 교육청을 무너뜨리고 결국 교육감들을 무력하게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이렇게 몰아치는 이유가 교육감들의 예산 편성권을 뺏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며 "실제 근래에 교육감들에게 예산 편성권을 준 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정부로부터 들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육감은 현재와 같은 '보육 대란'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으로 △교부금, 내국세의 20.27%에서 25.27%로 상승 △비율로 산정하는 교부금법 개정 △국책 사업에 대한 국가적 책임 법에 명시 등을 꼽았다.
그는 "일단 1월을 넘기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절실하다"며 "대통령이 나서서 예비비를 내든 국고 자금이 지원되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누리과정에 있는 아이들이나 학부모뿐만 아니라, 교육 전체가 혼돈 속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인터뷰는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경기도교육청 청사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두고 중앙정부와 교육청의 갈등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감사원 감사 청구, 검찰 고발까지 거론하며 강경한 자세를 보였고 여기에 교육감 협의회는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면서 토론회와 긴급회의를 제안했는데 이에 대해 최경환 부총리 측에서는 응답이 있었나?
이재정 : 지금까지 어떤 연락도 받은 바 없다. 여전히 누리과정 예산은 편성하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중에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편성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전국적으로 보면 편성돼있는 누리과정 예산 액수는 약 1조1300억여 원 정도로, 누리과정 전체에 필요한 예산 4조239억 원의 약 28% 정도다,
이미 대란은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이유는 교부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교육청에서 어떻게든 감당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데, 법률적으로 누리과정 어린이집은 교육감이 벌이는 사업이 아니다. 법률적으로 교육감들이 맡을 수가 없는 사업이다. 이를 정부가 '시행령'을 내세워서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법률에 위반하는 일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2년 전부터 교육감 사업으로 맡을 수 있도록 법률을 고쳐 합법적 기반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법이나 시행령을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시행령을 강화해서 누리과정을 보통 교부금에서 의무편성하라고 만들어 놓았다.
프레시안 : 누리과정 예산을 보니 중앙 정부에서 해가 갈수록 예산 투입 액수를 줄이고 있던데, 무슨 논리로 줄이고 있는 건가?
이재정 : 기획재정부는 2012년에 앞으로 교부금이 매년 8.8%씩 올라갈 수 있다면서 2015년에는 약 49조 원이 넘는 돈을 교부금을 책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누리과정에 들어가는 4조 원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면서 2015년부터 누리과정은 100% 교육청이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실제로 2015년 교부금은 49조가 아니라 39조 원이었다. 대체로 40조 원 안팎인 교부금이 한 푼도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4조 원이 넘는 누리 과정을 덧붙인다는 것은 예산 편성이나 기획에서 있을 수 없는 일종의 폭력이다. 또 교부금이 49조 원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기재부가 약속도 지키지 않은 셈이 됐다.
연평균 8.8% 올라간다는 계산에도 근거가 없다. 기재부가 근거 없는 계산으로 누리과정 경비를 교부금에서 충당할 수 있다고 추산하고 대통령도 국민도 교육청도 속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 2016년은 어떤가? 2015년에 비해 1조8000억 원이 늘었다. 총 41조2000억 원 정도다. 이렇게 되니까 기재부가 "거 봐라, 늘어나지 않았냐. 충분히 (누리과정 예산) 감당할 수 있다"라고 교육청에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액수는 2013년 교부금과 비슷하다. 결코 늘어난 것이 아니다.
게다가 13년과 비교했을 때 교육 경비는 더 늘어났다. 학급수, 교원수가 늘어나니까 인건비가 늘어났다. 교육 경비의 규모 자체가 커진 건데 이건 생각 안 하고 1조8000억 원 더 줬으니까 누리과정 감당하라는 거다.
프레시안 : 다른 지역도 그렇지만 특히 경기도가 이번 누리과정 예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다. 이유가 있나?
이재정 : 교육 규모가 다른 곳에 비해 크다. 우리가 전국의 4분의 1이 넘는다. 누리과정 부분만 보면 35만 명 정도, 27%가 넘는다. 그러니까 사실 경기도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핵심에 서 있는 셈이다.
저희는 어린이집 부분 누리과정 비용은 편성하지 않았고 억지로 짜내서 유치원 부분 만큼은 편성을 했다. 그게 5100억 원이다. 이 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지난해 삭감했던 학교 운영비에서 5%, 기관 운영비 20% 등을 빼냈고, 기타 여러 교육 사업비를 포기하면서 5100억 원을 만들었다.
그랬는데 도 의회에서 제동을 걸었다. 대통령 공약 사업인데 이렇게 예산 편성해서 되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도 의회 교육위원회는 중앙정부가 어린이집 부분에 대해 국비로 하겠다는 확실한 언질이 없는 한 유치원 부문의 예산도 편성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누리과정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경기도를 비롯해 서울, 광주, 전남이 누리과정 예산을 아예 편성하지 않았는데, 전국적으로 봐도 편성 비율이 28%밖에 안된다. 이건 실제 예산 편성이 불가능하다는 증거다. 진보 교육감인 곳은 예산 편성 안 하고 보수 교육감은 편성하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 충남·충북의 경우 도 의회가 새누리당이 다수임에도 어린이집 부분 누리과정 비용을 '0'으로 해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교부금 액수가 늘지 않았는데 여기에 교부금의 10% 정도인 누리과정에 4조를 편성하라는 건데, 감당이 안되는 거다.
실제 2015년 한 해만 각 교육청이 빚더미에 앉았다. 전국적으로 6조 원의 빚을 지게 됐다. 경기도만 예를 들면 2015년 빚의 비율이 전체 예산의 50.7%이고 2016년은 58%가 예상된다.
정부, 누리과정 교육청에 떠넘기려는 속내는
프레시안 : 정부는 왜 교육청에 누리과정 전 과정의 예산을 떠넘기려고 하나?
실제 지방재정법에는 지방자치단체의 빚이 40%가 넘어가면 자치단체장으로부터 예산 편성권을 뺏어갈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 교육감들이 스스로 예산을 편성할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 돈은 다 줬는데 안 한다, 의무 편성하도록 시행령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교육감들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감사원 감사 시키겠다고 하는데, 지난해 이미 우리는 감사원과 교육부의 감사를 몇 달이나 받았다. 숨겨놓은 돈 없나, 막 쓰는돈은 없나 검사하는 거였는데 나온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나올 게 없기 때문이다. 우리 예산 중에 91%는 경직성 예산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렇게 몰아치는 이유가 결국 교육감들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실제 근래에 교육감들에게 예산 편성권을 준 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정부로부터 들은 적도 있다.
또 지난해에만 해도 정부가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2015년 예산 편성할 때는 2014년 말에 기재부와 교육부와 열심히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했다. 기재부 차관과 전화도 하고 만나기도 하면서, 기재부가 오히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채를 얻기 위한 방안을 내고 국고 부담을 이야기해서 문제가 해결됐던 건데, 올해는 전혀 이런 노력도 없었다.
그래서 정말 올해 정부가 왜 이러는지 더 이상한 것이다. 어쩌면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프레시안 : 정부가 교육감을 선거가 아닌, 과거처럼 임명하는 것으로 되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까?
이재정 : 실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고 나서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런걸 뒷받침하기 위한 큰 틀의 전략적 압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니까 느닷없이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각 부 차관들을 거느리고 나와서 교육감들을 겁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한 것 아니겠나.
더군다나 국민의 손에 의해 선출된 교육감들을 경제부총리가 무슨 권한으로, 무슨 입장에서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건 사실 국민들에 대한 겁박이다.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보고 직무 유기다, 우리가 법률을 위반했다고 하는데 직무유기한 것은 교육부, 기재부 장관이다. 대통령이 국책사업으로 정하고 공약을 이행하기로 한 것이라면 당연히 중앙정부에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대책은 없고 무작정 교육청에게 밀어 내리기만 하면 이게 직무유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현행법 어디에도 교육감들이 보육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정돼있지 않다. 또 현행법 어디에도 교부금을 어린이집 보육사업비에 대라고 명시돼있지도 않다. 다만 시행령에만 있는 것이다. 그럼 법률 위반은 기재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이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 현행 법체계 내에서 거의 매년 '보육대란' 이슈가 불거지고 있다. 실질적인 피해는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보고 있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이재정 : 세 가지 방안을 이야기하고 싶다. 하나는 교부금법을 개정해서 현재 내국세의 20.27%로 돼 있는 것을 최소한 5% 올려 25.27%로 높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부금이 누리과정을 부담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두 번째는 교부금 자체가 교육비도 충당하지 못할 정도로 문제가 돼 있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려면 교부금법 자체를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교부금이 비율로 돼 있기 때문에, 내국세가 줄어들면 교육비도 줄어든다. 이럴 때 어떻게 대책을 마련할 것이냐는 부분이 법률적으로 없다. 이 부분이 꼭 보완돼야 한다.
세 번째는 국고 부담을 할 수 있도록 국책 사업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지방재정법에 국책사업을 지방자치단체에 예산으로 책임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명시돼있다. 정부가 이를 어기고 있는 것일 뿐이다.
국가가 의무교육을 이행하기 위해 지급하는 교부금을 법률로 정하고 있는 것은 곧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액수가 이미 지금 교육을 담당하기에는 턱 없이 모자란 상태에 왔다. 교육 재정 구조의 근본적인 파탄이 온 것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 대란은 누리과정이 아니라 '교육재정의 대란'이 일어난 것이라고 본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일단 1월을 넘기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절실하다. 그러면 대통령이 나서서 예비비를 내든 국고 자금이 지원되든 해야 한다. 만약 이렇게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지나간다면, 이는 누리과정에 있는 아이들이나 학부모의 문제뿐만 아니라, 교육 전체가 혼돈 속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 충분히 끌어안아야
프레시안 :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유가족들이 생존학생들의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오는 12일로 예정된 명예 3학년 졸업식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1월에 졸업식을 하는 것은 이른바 '기억교실'을 리모델링하고 정리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세월호 교실 보존 문제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이재정 : 재작년 말부터 교실 문제에 대해 가족 협의회 측과 매월 정례 회의를 가졌다. 그때 학생들이 명예 졸업할 때까지는 교실을 존치시킨다는 이야기를 하고 지나갔다. 지난해 5월에 제가 다시 한 번 이 이야기를 가족협의회와 만나는 자리에서 꺼냈는데, 가족협의회 측에서는 교실을 정리하면 대안은 뭐냐고 물었다.
그래서 우리 생각엔 교실을 빼서 기념관을 짓고(가칭 '4·16민주시민교육원') 그 기념관에 교실과 똑같이 기념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그런 시설이 교육적으로 활용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막연한 기념관이 아니라, 이런 목적으로 기념관을 짓는 안을 제안했는데, 가족협의회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후에 난항을 거쳐오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는 사이에 단원고등학교 재학생 학부모 측에서는, 교육감이 명예졸업할 때까지는 교실 존치시키겠다고 했으니까 그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이게 해결이 안되니까 불만이 나오고 심각한 상황이 됐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해서든지 합의를 해보자는 생각에 우리가 내놓은 제안, 가족협의회의 제안, 그리고 다른 분야에서 내놓은 제안 등을 놓고 사회적 합의를 시도했다. 가족협의회 측 대표와 단원고 학부모 측 대표, 교육청 등 3자와 더불어 4.16연대 대표, 교육계 대표, 시민사회 대표 등이 모여서 '단원고 대책 특별위원회'에서 논의를 해서 거기서 소위까지 구성했다. 그런데 소위에서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 논의를 이어갔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재학생 학부모 측이 대단히 완강하다. 오는 12일로 예정된 명예졸업식이 끝나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만일 여기에서 정말 재학생 학부모들이나 재학생들이 실력행사로 나온다고 하면 정말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이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희생당한 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을 충분히 이해하고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 진실도 밝혀지지 않았고 세월호 인양도 안 됐으니 우리가 좀 더 인내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싶다.
학교를 원만하게 운영하고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게 희생당한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꿈 아니겠나. 그러니까 그런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좀 더 전향적인 생각을 가져야 하지 않은가 싶다. 물론 이런 일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물리적 힘에 의해 서로가 각자의 요구만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가족협의회 측에서 기념관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재정 : 세월호 비극이 가족들에게는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까 그 아픔을 씻어내기가 힘들다. 가족들에게 교실을 비운다는 것은 곧 우리 사회가 세월호 비극을 다 잊어버리고 끝내버리려는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다. 가족들의 이런 생각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제까지 해결된 것이 없지 않나.
그런데 교실을 존치시킨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고 기억되느냐는 조금 다른 지점이 있다고 본다. 지금 단원고등학교는 교장, 교감 선생님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모두 아프다. 또 그 교실을 바라보고 공부하는 학생들도 힘든 상황이다. 매일 그 교실 옆을 지나다녀야 하는 거니까. 교육청으로서는 그런 학생들과 학교의 아픔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 교육청은 그동안 세월호를 기억하고 기념하고 교육을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나 싶어서 '4.16 교육체제'를 만들었다. 이 연구저작물을 올해 2월에 공표한다. 이는 4.16 때문에 일어난 교육 전체의 개혁 운동이다.
이뿐만 아니라 225명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약전을 12권의 책으로 발행한다. 희생당한 학생과 선생님을 기억해낼 수 있고 그들의 꿈이 무엇이었는가를 기록한 저작물이다. 이 저작을 위해 140명의 전문 작가들이 함께했다.
또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으로 장학회를 만들고 4.16 단원 장학 재단을 만들었다. 261개의 장학회를 운영하는 재단을 통해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다.
그런데 가족들한테는 이런 게 다 무의미한 것 같더라. 가족들은 교실이 없어지면 다 없어지는 거라고 이야기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운동하는 시민단체 분들도 있는데, 이분들의 뜻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학교를 정상화시키는 것은 우리들 모두의 책임이 아니겠나. 교육청으로서는 이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프레시안 : 그런가 하면 최근 이천에서 기간제 교사 폭행 사건이 있었다. 교육 현장에서 상당히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재정 : 좀 특이한 사고였다고 생각한다. 우선 선생님이 그 반에서 학생들과 상당히 격의 없이 친구처럼 지냈다는 것으로 확인했다. 그럼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에서 왜 저런 사고가 일어났느냐. 사고의 배경이 무엇인지 좀 따져봐야 한다. 어떤 것이 학생들로 하여금 선생님에게 막 대들게 했을까, 어떤 이유로 선생님은 그대로 용납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학생들을 처벌하지 말아달라, 자긴 폭행당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을까 등등.
사고 원인이 아직 분명하게 나오진 않았지만 심층 조사가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겉에 나타나는 사건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이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의 과정과 학생들의 의도가 뭐였는지, 선생님은 왜 그렇게 참았는지, 좀 더 단호할 수는 없었는지 등등의 의문이 든다.
현재 학교에서는 선도위원회에서 해당 학생들에 대한 퇴학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은 아직 퇴학을 결정하지 않았고 학생들에게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숙려기간을 주자고 하고 있다. 나중에 어떤 처벌을 받든 교육적으로 이 아이들도 성찰하고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선생님도 생각할 기간이 필요하고. 저는 교장의 결정을 존중한다.
이 사건이 아주 예외적인 사건이지만 그럼에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폭행당하는 것은 앞으로도 단연코 막아야 할 과제라고 본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단호하고도 치밀한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교육청에서 심도있게 논의하고 준비하고 있다.
북한, 마지막으로 오바마 정부 정책 전환 촉구
프레시안 : 최근 북한이 '수소탄'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교육감이기 이전에 전직 통일부 장관으로서, 북한이 지금 이 시기에 핵실험을 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이재정 : 일단 북한의 핵실험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쁜 선택이기도 하고. 그런데 북한 나름대로 해야 할 이유를 찾아보자면, 지난 8년간 버락 오바마 정부는 대북관계에 있어 어떤 측면에서도 제대로 해낸 것이 없다. 남북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지난 8년 동안 사실상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이번 핵실험을 통해 오바마 정부의 임기가 끝나기 이전에, 적어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에 미국의 정책적 변화를 단호하게 요구한 것은 아닌가 싶다. 이전에도 이랬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 정부 마감되기 직전에 대북정책 바꿨고 부시도 임기 끝나기 직전에 대북 정책을 바꿨다. 지나간 두 차례의 경우를 보면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무엇인지, 입장이 무엇인지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미국이나 유엔이나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의 수단 중 쓸만한 것은 다 써봤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방안이 없다. 더 쓸 수 있는 것은 무력행사밖에 없는데, 미-중 관계나 국제사회 관계 속에서 보면 동북아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는 힘들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긴장을 완화시키고 대화의 분위기를 바꿔나갈 수 있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왜 대북 확성기로 대응하는지 안타깝다. 이게 큰 효과가 나타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오히려 보다 적극적인 대화의 길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참 어려운 것은 북쪽에서 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며칠 전 별안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는 점이다. 북 내부에도 대화를 현명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중심인물이 사라졌으니 이것도 문제다.
물론 지금이 상당히 위기의 시점이긴 한데, 오히려 이때가 기회일 수도 있다. 1994년 첫 핵위기가 왔을 때도, 그리고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에도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풀었던 역사가 있다.
한편으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역할이 좀 아쉽다. 임기 8년 동안, 한국인 출신 유엔 사무총장이 어떻게 한반도 문제 해결을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했을까? 반기문 총장 선거운동을 하면서 당시 선거 대책 위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임기 중에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아무것도 해본 것 없이 물러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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